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 관동대지진
쿠르르릉─
“어, 방금 무슨 못 들었어?”
“못 들었는데…… 우왁?!”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최초의 지진은 요코하마 남쪽 미우라 반도와 그 옆에 위치한 오다와라의 지하에서 일어났다.
그 시간은 불과 수십 초에 불과했지만, 규모 8.1에 달하는 거대한 지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그리고 관동 지역에서 사는 조선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불행히도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콰르르릉! 콰르르르릉!!
“으아아아악!”
“건, 건물이 무너진다!”
“모두 도망쳐!!”
“도쿄가, 도쿄가아아아아─!”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계속 일어났다.
여진은 그 수천 배 이상으로 일어났다.
도쿄, 요코하마, 치바, 가나가와, 시나가와 등 관동 지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지가 갈라지고 요동치며 건물, 사람 할 거 없이 자신의 위에 존재하는 것을 모조리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불이야! 불이야!”
“소방대! 소방대를 불러!”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대한 화마가 일어나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도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필이면 점심 식사 시간을 맞아 도쿄 여기저기서 요리를 위해 불을 쓰고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난 탓에 벌어진 참상이었다.
게다가 바로 전날인 8월 31일에 규슈 방면에서 태풍까지 불어오기까지 했으니, 불씨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넘어 화염의 소용돌이로 변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뜨, 뜨거워!”
“스미다강으로 뛰어들어! 살고 싶으면 그 방법밖에 없어!”
화재에 버티다 못한 일부 시민은 도쿄를 가로지르는 스미다강으로 뛰어들었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강에 뛰어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리어 압사당하거나 익사하는 사람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으아아! 군함들이 쓰러진다!”
“아마기 대파! 아마기 대파!”
대지진의 피해는 민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지의 분노는 군대, 특히 일본의 주요 군항인 요코스카항에 정박 중이었던 해군 함선들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
특히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때문에 순양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장 중이었던 아마기급 순양전함 1번 함 아마기(天城)는 지진에 직격당해 선체가 뒤틀리고, 용골이 박살 나는 대참사를 겪었고, 결국 원 역사처럼 아무것도 못 해 본 채 무덤으로 들어갔다.
콰르릉! 콰르르릉!!
사람들의 비명과 무너지는 건물 소리에도 불구하고 지진은 계속되었다.
관동 전역을 박살 내기 전까진 멈추지 않겠다는 듯 계속되었다.
“신은 일본을 버렸는가!”
무너진 폐허 위에 누군가의 절망 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옥,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 * *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예, 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엔 일본에서 대지진이라니. 올해 아시아는 정말이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요.”
난데없는 대지진의 소식에 아데나워가 골치 아프단 얼굴로 말했다.
나야 뭐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진 않았지만.
“일본 정부의 발표는 이미 최소 추정 사상자만 10만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실종자는 3만여 명에 이르고 재산 피해는 뭐,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돕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일본 정부는 대지진 수습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래라면 워싱턴 해군 조약 때 이름을 알린 가토 도모사부로가 총리로서 대지진을 수습해야 했지만, 그는 하필이면 대지진 바로 일주일 전에 오랜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 정부는 현재 외무대신인 우치다 고사이(内田康哉)가 권한대행을 맡아 이끄는 중이었고, 덕분에 정부와 내각이 마비되어 제대로 된 대처조차 못 하고 있었다.
우치다가 지도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그런 일본 정부의 삽질 속에서 일어난 것이 관동대학살이지.’
정부가 대지진을 해결하지 못하니, 계엄령을 내렸음에도 치안이 개판이 되자 일본 내무성이 어떻게든 질서를 되찾겠다고 벌인 미친 짓이었다.
자신들에게 향한 불만의 목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만만한 조선인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에게 갈 곳 없는 증오와 분노를 돌린 것이다.
다만, 이것이 비단 일본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당장 유럽에서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며 포그롬 등 유대인 학살이 툭하면 일어난 실정이다.
재해가 일어났을 때마다 사회적 약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디나 똑같았다.
“총리님, 일본에 구호물자를 지원하고, 적십자와 연계해 지진피해 수습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단을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봉사단 말입니까?”
“총리님도 아시겠지만, 이번 지진으로 일본에 거주 중이던 우리 독일인들도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긴, 우리 대사관부터가 완전히 박살이 났으니까요.”
“예, 그러니 우리 국민을 돕고, 겸사겸사 인도적 차원에서 재해 수습도 도우면 독일 제국의 위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상당한 재원이 들겠지만…… 그 부분은 뭐, 제가 지갑을 열겠습니다.”
“의외로 열정적이시군요. 난 부총리가 카이저 폐하처럼 일본을 그다지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하하, 가끔은 인류애를 위해 사감을 뒤로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치곤 요즘 외무청에서 대지진을 부총리가 일으켰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던데 말입니다.”
“뭡니까, 그 말도 안 되는 루머는.”
내가 무슨 코리안 샤먼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정말 일본인들을 가엽게 여겨서 이러는 것도 아니긴 하지.’
내 진짜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원봉사단을 통해 조선인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것이다.
겸사겸사 내가 임정을 지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는 탓에 조선인들 사이에서 떨어지고 있는 내 평판 좀 올리고.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인도적 활동이 국가 위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내각 회의에서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독일 제국의 국익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없으니.
“뭐, 좋습니다. 돈도 부총리께서 내신다고 하니, 우리로선 딱히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요. 그럼 그 부분은 부총리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예, 총리님.”
나는 아데나워를 향해 대답하며 동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부는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 * *
“조센징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센징을 죽여야 한다!”
“경찰서장은 숨겨둔 조센징들을 내놔라!”
“대지진이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만들었군.”
요코하마 츠루미 경찰서장 오오카와 츠네키치(大川常吉)는 경찰서밖에 몰려든 시민들, 아니 근거도 없는 증오에 사로잡힌 폭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지진으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은 여전히 대지진이 만들어 낸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제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빠진 사람들에게 조선인들이 무차별로 학살당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조선인들뿐만이 아니지.’
저들은 조선인에 이어 중국인들도 죽이고 있었고, 심지어 같은 일본인들까지 죽이고 있었다.
그들이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당장 얼마 전엔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라는 헌병대 대위가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大杉栄) 일가, 심지어 어린아이였던 오스기의 조카까지 무참하게 살해해 육군 헌병대와 대립 중인 경시청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도호쿠 출신이나 아와미 제도 사람들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던가?’
경찰서장으로서 치안을 지켜야 하는 오오카와로선 그로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서장님, 폭도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습니다. 벌써 그 수만 수천입니다!”
“다른 서에서 지원은?”
오오카와의 말에 경찰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오지 않을 거란 뜻이었다.
오오카와처럼 양심 있는 인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경찰들은 조선인 학살을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장님, 이대로라면 우리까지 저들에게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냥 조선인들을 서 밖으로 내보는 것이…….”
“경찰로서 무고한 이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설령 할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내 임무를 다할 것이다!”
오오카와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던 경찰들이 다시금 각오를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쿵! 쿵!
“오오카와는 조센징을 내놔라!”
“내놔라! 내놔라!”
당장이라도 문을 부술 기세인 폭도들을 긴장감 어린 얼굴로 바라보며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모두 비켜라!”
“뭐, 뭐야?”
“군대다!”
탕! 탕!
허공에 울려 퍼지는 총소리와 함께 일련의 무리가 나타나 경찰서밖에 몰려 있던 폭도들을 내쫓았다.
군인들이었다.
“군바리들이 무슨 꿍꿍이지?”
다만, 오오카와는 군대의 등장에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의심을 먼저 내비쳤다.
그야 얼마 전의 아마카스 사건도 있었고, 군대는 몇 달 전에 퇴역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대장을 제외한 몇몇을 빼곤 경찰처럼 학살을 방관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 다친 사람들이 있어!”
“빨리 붕대 가져와.”
그러나 오오카와는 곧 도움이 되긴커녕 일만 저지르던 군대가 왜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적십자 완장을 차고 있는 백인들이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난장판이 된 경찰서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장님, 저들은…….”
“독일 제국에서 보낸 봉사단이다. 이제 좀 안심할 수 있겠군.”
안심하라는 듯 굳게 닫힌 경찰서로 다가오는 독일인들의 모습에 오오카와는 그제야 마음 놓을 수 있겠다는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악명 높은 육군 헌병대라도 독일인들 앞에선 그 포악함을 드러내진 못했으니까.
적어도 자신도, 그리고 경찰서에서 보호하고 있는 조선인들은 오늘 목숨을 잃진 않아도 되리라.
* * *
“후, 독일 제국엔 몇 번이나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군요.”
한편, 현 일본 정부의 수장이자 외무대신, 그리고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인 우치다 고사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화재로 인한 더위로 인한 땀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액체를 손수건으로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894년 메이지 도쿄 지진과 1855년 안세이 에도 지진 이래 또다시 관동 지역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피해를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그리고 이로 인한 혼란을 대체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고 있을 때 독일의 인도적 지원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멀지만.’
당장 계속되고 있는 화재로 인해 도쿄의 40%가 전소된 상황이라 다이쇼 덴노마저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이번 지진으로 황실의 매우 중요한 행사, 다른 누구도 아닌 히로히토(裕仁) 황태자와 방계 황족인 구미노미야 나가코(久邇宮良子) 여왕의 결혼식까지 미뤄지고 말았다.
물론 안 미뤘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했겠지만, 어쨌든 우치다로선 어깨가 무겁다 못해 박살 나는 기분을 매일같이 맛보고 있었다.
“권한대행, 군부에서 또다시 천도에 대한 문의가 왔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미치겠군. 폐하께서도 도쿄 주민들을 버릴 순 없다며 천도에 부정적이신데, 천도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천도입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도쿄를 버리는 게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여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망가진 치안을 조속히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무성에선 제발 일 좀 똑바로 하세요. 특히 조선인 문제로 말 좀 안 나오게 하시고요!”
“네,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우치다의 절박한 심정만큼이나 절절한 목소리에 내무대신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다만, 그 대답엔 조선인 학살을 멈추겠다는 의지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들이 퍼트린 유언비어로 인한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유 없는 분노는 이미 제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빌어먹을 쪽바리 놈들.”
관동대학살에 대한 외무청의 보고서를 받아든 한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역시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학살을 완전히 막지 못할 줄은 알고 있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은 한정되어 있었으니.
물론, 내가 보낸 자원봉사단 덕에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학살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일본 정부는 우리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듯 손을 놓고 있었다.
내 기분이 거지 같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창문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갓난아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살이 된 장남 라인하르트였다.
“일본에서 아버지 옛 고향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 때문인가요?”
“라인하르트, 그건 어디서 들었니?”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이 요즘 심란하다고요.”
“그렇구나. 뭐,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란다.”
그야 내 자식들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독일인이다.
이 문제는 옛정을 못 이긴 내 선에서 끝내야 하지, 굳이 내 자식들까지 조선 문제에 관여시킬 이유는 없었다.
“흠, 전 아버지가 조선인들을 도와주는 게 아버지가 우리 중 누군가에게 조선의 왕관을 주려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요.”
뭐야, 그 무시무시한 오해는.
내 아이들 머릿속에서 나는 대체 무슨 존재인 거지?
“라인하르트, 넌 왕이 되고 싶은 거니?”
“아뇨, 전 그냥 책이나 읽으며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어요.”
“그렇구나.”
이 무슨 목 아래론 쓸모없는 모 제독 같은 야심일까.
아무래도 얘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다.
“하여튼, 조선을 돕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취미 같은 거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너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을 거란다.”
나는 라인하르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흐르고 흘러 시대는 어느덧 1925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