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 다가오는 불안
“총리님, 시연회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예, 오랜만에 재미난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부총리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도…… 참 많이 생겼고요.”
베를린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데나워가 나를 다시 한번 째려보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독일 제국 군비 지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다.
솔직히 딱히 반박할 말은 없긴 한데, 이것도 다 독일을 위해서다.
그러니 좀 봐주면 안 될까?
“우리가 베를린을 떠나 있는 사이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습니까?”
“총리님이 걱정하실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아데나워를 향해 애교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이 루터 재무장관이 대답했다.
“다만, 영국에서 들어온 소식이 하나 있는데…… 처칠이 무언가를 하려는 모양이더군요.”
“그거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일 아닙니까?”
그야 그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이 무언가를 한다니.
좋지 않은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이번엔 아닙니다. 그저 영국이 금태환을 재개한다고 발표했을 뿐이니까요.”
“금태환이라면…… 금본위제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재작년에 이미 복귀했었지.
“예, 늦은 감은 있긴 하지만, 이제 충분히 경제를 회복했으니 기축통화로써 파운드 스털링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세계대전으로 정지되었던 금태환을 재개하고, 금본위제로 복귀하겠다는 뜻이겠죠. 현재 영국의 경제 패권은 미국 때문에 위태위태한 상황이니까요.”
“흐, 처칠 다운 생각이군요. 물론 이번엔 그 판단이 틀리진 않은 것 같지만요.”
아니, 틀린 판단이다.
왜냐하면 금본위제는 머지않아 다가올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과 대공황으로 인해 망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공황이 일어난 지 얼마 안 가 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해야 했고, 파운드 스털링 또한 기축통화의 위치를 잃으며 영국은 패권국의 위치에서 완전히 내려와야만 했다.
‘게다가 영국의 금본위제 복귀가 처칠의 많고 많은 흑역사 중 하나 아니었던가?’
나도 이제는 전생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탓에 잘 기억나진 않는데, 처칠이 재무장관 시절 금본위제를 고수한 탓에 영국의 상품경쟁력이 하락하고, 금리가 올라 서민들이 살기 팍팍해졌다던가 그랬을 거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가 현 영국 총리이기도 한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내각 최대의 위기였던 1926년 영국 총파업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볼드윈이 노동당의 램지 맥도널드(James Ramsay MacDonald)에게 다우닝가를 내줘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스터 갈리폴리가 또 총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윈스턴 갈리폴리 처칠이 아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대공황이 문제였지.
‘애초에 대공황이 원 역사와 같은 시기에 오긴 할까?’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내가 경제 전문가도 아니고, 대공황이 발발한 원인 자체도 명확하지 않으니.
내가 아는 것은 대충 미국의 거품 경제가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폭발 사산했고. 이걸 미국 정부가 제때 수습하지 못해서 일이 커졌다 정도였다.
‘이거 슬슬 누군가와 상의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대공황으로 촉발된 불황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러나 대공황 그 자체의 여파를 최소화하는 것은 우리 집 가계조차 루이제에게 일임하고 있는 나에겐 무리였다.
그러나 과연 누구와 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
미국 경제가 터져서 대공황이 일어날 거라고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있는데.
‘아데나워나 루터 장관은 안 돼.’
자칫 잘못하면 쓸데없이 일만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선택지는 하나뿐.
‘얄마르 샤흐트, 라이히스방크 총재를 만나 봐야겠어.’
프랑크푸르트에 갈 시간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부총리님. 라이히스방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샤흐트 총재님.”
며칠 후,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라이히스방크 본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나를 맞이한 것은 얄마르 샤흐트.
내가 아는 독일 최고의 경제 전문가 중 하나이자 독일 제국의 중앙은행인 라이히스방크 총재였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연유로 프랑크푸르트까지 오신 것입니까? 아, 물론 오실 거란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외무장관 겸 부총리께서 굳이 라이히스방크 본사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이유가 저로선 감이 잘 오지 않는군요.”
“총재님과 긴히 상의하고 싶은 안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인답게 쓸데없이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을 이야기는 샤흐트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저와 상의하고 싶은 안건이라, 정부 일과 관련된 것입니까?”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죠.”
“……그렇다면 보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편이 좋겠군요.”
샤흐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밖으로 새어 나가 봤자 도움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이야기긴 했다.
“자, 이제 말씀해 보시죠.”
얼마 후, 라이히스방크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귀빈실로 나를 데려온 샤흐트가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에 나는 숨을 고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먼저 이것을 봐 주시죠.”
“이건…… 미국 경제에 대한 자료군요.”
“네, 미국 대사와 정찬을 하던 중에 우연히 듣게 된 건데 최근 미국 증시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더군요.”
“맞습니다. 휴즈 정권 때부터 시작된 감세 정책으로 유동자금이 증가하면서 주식 시장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활성화되었거든요.”
“다만, 제가 보기엔 그것이 지나치게…… 과열된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과열이요? 설마 지금 투자금의 과잉 공급으로 인해 미국 금융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샤흐트가 안경을 내리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우려에 불과하지만, 이 거품이 터지면 1907년 공황의 재림, 아니 그보다도 더한 경제적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이미 1907년 은행 패닉으로 미국에 공황이 터지면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미국 경제가 훨씬 성장해 무려 세계 경제의 4할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으으으음…… 거품, 거품이라.”
샤흐트 또한 라이히스방크 총재의 자리는 포커로 따지 않았다는 듯 아까와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건넨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지금 있는 자료만으론 미국 주식 시장에 거품이 끼었는지 안 끼었는지는 더 자세한 조사 없이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다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은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경제 성장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둔화하고 있거든요.”
“성장동력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지만요. 게다가 만약 미국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고 한들 이게 말씀하신 공황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낮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거품이 터질 때까지 손 놓고 있겠습니까?”
그래,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지.
문제는 이 시기 미국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는 점이고.
당장 금주법 같은 마피아들이나 좋아할 법을 일시적인 부작용이라며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총재님, 총재님도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사신 분이시니 만큼 미국 정부가 경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자유방임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영국의 경제학자 존 애덤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일명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간섭하지 않아도 시장경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 덕에 알아서 잘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을 과신하는 바람에 간섭해야 할 때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는 거지.’
사실 애덤 스미스도 억울한 것이 미국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잘못 이해한 것이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시장에 아예 간섭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국가가 기업이랑 손잡고 독과점하지 말라는 것에 훨씬 가까웠으니까.
“제 생각에 미국 정부는 거품이 꼈다는 것을 알아채도, 심지어 공황의 조짐이 보일 때도 시장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방관할 이들입니다.”
“흐으으음…….”
내 말에 샤흐트는 여전히 긴가민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과연 ‘미국 정부가 그 정도일까?’라는 생각과 ‘미국이라면 그러고도 남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격하게 충돌하고 있는 모양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아직 추측과 가정에 불과하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그러니 일단 미국 주식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치고, 이것이 터져 미국 금융 시장이 붕괴하고, 공황이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총재께서는 그 여파가 과연 얼마나 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종말 수준입니다.”
내 물음에 샤흐트가 단언하듯 대답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역대 최고의 경제적 위기,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대공황이 도래할 겁니다. 물론 전 여전히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 직업은 그런 작은 가능성, 그리고 이로 인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것이라서요.”
“부총리께서 절 찾아오신 이유군요.”
“예, 쓸데없는 고생일지라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총재님 같은 전문가의 조사가요.”
“뭐, 알겠습니다. 장관님의 우려가 그냥 우려에 그쳤으면 좋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이 건에 대해선 제가 따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샤흐트와 악수하며 대답했다.
여전히 샤흐트는 대공황 발발 가능성에 회의적인 모양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당장으로선 이것이 최선이고, 그 가능성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크나큰 한 걸음이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대공황은 100% 온다! 전 세계 경제가 5년 안가 박살 날 것이다!’라며 큰소리가 외치고 싶다만…….’
그랬다간 양치기 소년을 넘어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이미 아데나워에게 반쯤 그런 취급을 받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진실은 숨길 수도 부정할 수 없다.
대공황은 온다.
이미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 * *
한편, 우리의 주인공이 다가오는 불안을 걱정하고 있을 때 문제의 원인인 미국은 아무것도 모른 채 번영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차고마다 한 대의 자동차를 넣겠다는 후버의 공약대로 미국 서민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해져 중산층들은 자동차 1대, 라디오 1대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을 정도였고, 뉴욕 증권 거래소의 투자자들은 투자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미국의 부가 그 어느 때보다 흘러넘친다고 한들 미국이 소란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부가 흘러넘쳤기에 소란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금주법.
미국 역사상 가장 기만적이고 위선적이라는 평을 듣는 법답게 금주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큰 부작용을 보이며 미국 사회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무언가를 못 하게 하면 오히려 그것을 더 하고 싶은 법이라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술을 많이 찾았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듯 밀주 사업도 덩달아 성행했으니.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이 밀주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마피아, 이탈리아계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마피아들이었다.
뚜벅뚜벅뚜벅──
그리고 그 이탈리아 마피아 중에서도 최근 두각을 드러내는 자가 있었으니,
“보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서 와라, 알폰스.”
그 이름은 알폰스 가브리엘 카포네(Alphonse Gabriel Capone).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를 지배하고 있는 마피아 패밀리인 시카고 아웃핏(Chicago Outfit)의 차기 두목으로 인정받고 있는 젊은 알 카포네(Al Capone)였다.
“그래,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이자 알 카포네의 후견인, 그리고 여우라는 별명답게 교활하기로 유명한 조니 토리오(Johnny Torrio)의 물음에 알 카포네가 스카페이스란 별명답게 얼굴에 난 흉터를 꿈틀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예, 보스께서도 아시다시피 최근 노스사이드 놈들이 우리 영역을 계속 넘보고 있지 않습니까?”
노스사이드란 단어에 조니 토리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시카고 아웃핏은 현재 노스사이드 갱단(North Side Gang)이라는 아일랜드 마피아(다만 독일인이나 폴란드계 유대인 등도 있었다)들과 피비린내 나는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 건방진 아일랜드 놈들. 언젠가 확 쓸어버려야 하는데 말이지.”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노스사이드 놈들보다 우위에 서려면 역시 자금이 더 필요합니다.”
“자금이라. 밀주 말고 새로운 자금원이라도 찾은 거냐?”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사업입니다.”
“호오…….”
알 카포네의 말에 흥미를 보이는 조니 토리오.
이에 알 카포네가 다시 한번 흉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로, 우유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