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 야심한 밤에 (2)
오래된 속담 중에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걸어가든, 자동차를 타든, 배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그 과정이 어떻든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세운 계획을 단 한마디로 이리 설명하겠다.
‘모로 가도 일단 러시아를 살리고 보자’라고.
이대로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원 역사처럼 영국이 독일을 본격적으로 적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곰이 쓰러지면, 다음은 늑대가 성가셔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러시아 제국은 아직 자신의 허약함을 내보여선 안 됐다.
러시아는 아직 언제든지 남쪽으로 마수를 뻗을 수 있는 위협적인 불곰의 모습을 유지해 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과 계속 투닥거리며 싸워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영국을 동맹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립을 유지한 상태로 러시아·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협상국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협상국의 원년 멤버 삼인방 중 프랑스와 러시아는 이미 동맹 상태지.’
게다가 프랑스는 독일과 완전히 척진 상황이고, 러시아 또한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버리지 않는 한 일시적인 협력을 맺을 순 있더라도 본격적인 관계 회복이 어려운 상황.
그렇기에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영국뿐이었다.
영국은 아직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본래라면 이 시기에 영불협상 이야기가 서서히 나왔어야 했지만, 프랑스의 정계가 아직 혼란해서인지 영불협상은 아직 그 어떤 조짐도 없었다.
물론 나도 반쯤은 그걸 노리고 프랑스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폭탄을 터트린 것이지만 말이다.
‘뭐, 원 역사에서도 영국은 영불협상이랑 영러협상을 맺었음에도 제1차 세계대전 터졌을 때 프랑스랑 러시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며 참전을 망설였지만.’
결국 영국은 독일 제국이 자신들이 독립 보장을 한 벨기에를 침공하고 나서야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물론 꼭 벨기에 침공이 아니더라도 영국이 독일 제국이 프랑스를 집어삼키는 것을 그냥 두 눈 뜨고 지켜보진 않을 테니 어떤 식으로든 개입은 하려 했겠지만.
그래도 당장 나라가 위기에 처한 프랑스가 보기엔 이런 영국의 행동이 참 어이가 없었을 거다.
‘이러니까 영국이 혐성국 소리를 듣지.’
이 홍차 놈들은 자기 자신만 알지 의리란 게 없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자국군의 안위를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바람에 같은 동맹국들의 불신을 샀을 정도니까.
어쨌든 나는 에드워드 7세를 만나자마자 대강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제1단계. 영국인들에게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에드워드 7세를 처음 만났을 때 ‘나 이렇게 똑똑해요!’라고 일부러 자랑하듯이 러일전쟁 이야기를 떠벌리면서 완료.
여기서 에드워드 7세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었느냐 안 들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그가 들었다는 것뿐이다.
다음으로 제2단계. 러시아가 적어도 일본에 패배하지 않도록 지원한다.
원 역사대로 가면 러시아는 육지든 바다든 일본과의 전쟁에서 100% 패배하기 때문이다.
설령 어떻게든 러시아가 전쟁을 질질 끌어서 일본이 파산하도록 유도한다고 해도 러시아 내부에 ‘피의 일요일’이란 시한폭탄이 존재하는 이상, 러시아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러시아가 패배하면 나로선 본전도 못 찾고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설령 무승부 판정을 받을지언정 일본에 패배를 당하면 안 된다.
바다는 몰라도 적어도 육지에서만큼은 말이다.
육지에선 러시아, 바다에선 일본.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균형의 완성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러시아가 움직여 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내가 직접 러시아로 가서 교섭을 할 필요가 있었고,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비테와 거래를 함으로써 내가 목표하던 것을 이루었다. 2단계의 완료였다.
그리고 대망의 제3단계.
이간질이었다.
“러시아 제국이라니. 여기서 왜 러시아가 나오는가?”
“몇 달 전, 저는 하인리히 왕자님과 함께 러시아에 방문했습니다. 하인리히 왕자님의 부인이신 이레네 왕자비께서 여동생인 알렉산드라 황후님을 만나고 싶어 하셨거든요. 전 어쩌다 보니 두 분을 따라가게 되었고요.”
나는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밝히는 듯한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니콜라이 2세 폐하를 알현했을 때, 차르께서 하인리히 왕자님께 독일 제국의 무기를 구입하고 싶다고 은밀히 요청하셨습니다.”
“뭐?”
“잠깐, 잠깐만. 그럼 얼마 전 극동 러시아에서 발견된 독일제 무기가 정말 독일이 러시아에 판매한 것이었다고?!”
당황한 아서 밸푸어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영국은 이미 독일제 무기가 러시아에 흘러 들어간 것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영국과 일본의 스파이들이 러시아에서 한창 활개를 칠 때니.’
괜찮다. 밸푸어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모양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밸푸어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설마 이것도 네 짓이냐?”
‘그래. 그것도 나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난 바보가 아니었다.
이건 숨겨야 했다.
“아닙니다. 폐하. 전 반대했습니다.”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대로 거짓말을 내뱉었다. 물론 약간의 사실을 섞어서 말이다.
“하지만 카이저께서 일본인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특히 그땐 영일동맹 때문에 황제 폐하께서 이성을 잃으셨던지라…….”
“확실히 그 카이저라면 그러고도 남지.”
“설득력이 있어……!”
랜스다운 후작과 체임벌린 장관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실제로 빌헬름 2세는 러일전쟁이 터지자 일본에 맞서 러시아를 돕겠다고 외치고 다녔다.
물론 지원은 안 해 줬다. 그냥 외치고만 다녔다.
“하지만 이상하군. 그 융커들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용납했다고?”
에드워드 7세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말했다.
물론 국왕의 말처럼 그들이 내 이야기를 반기지 않았던 것은 맞다.
뷜로 총리도 그렇고 슐리펜 참모총장도 그렇고, 처음엔 이를 반대했으니까.
‘발더제가 본의 아니게 날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물론 발더제는 그 때문에 화병이라도 생겼는지 베를린을 떠나 그대로 3군 총감에서 은퇴하고 감찰관이 되어 하노버로 내려갔지만 말이다.
뭐, 그 노인네는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에드워드 7세가 내 이야기를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게 중요했다.
“비테가 움직였습니다.”
“비테?”
“예. 러시아의 재무장관 말입니다. 애초에 차르에게 독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자고 설득한 것도 그입니다. 일본에 맞서기에 러시아 극동군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니까요.”
“흠. 확실히 니키가 꺼낼 만한 생각은 아니지.”
“하지만 비테가 왜?”
체임벌린의 질문에 나는 곤란하다는 듯이 한숨 쉬며 대답했다.
“베조브라조프 파벌 때문입니다. 비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익을 위해 무리한 극동 확장을 밀어붙이는 그들 때문에 극동에서의 긴장도가 급속도로 올라가자 차선책으로 무기 구매를 추진한 것이겠죠.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대비라도 해야 하니까요.”
“베조브라조프……. 확실히 그 이유라면 비테가 그리 행동하는 것도 이해가 가.”
“비테 재무장관이 독일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해 주는 대신 밀을 더 싸게 공급하기로 약조했습니다. 구매한 무기들도 어디까지나 극동에서만 사용하겠다고 맹세했고요.”
물론 그런 약속은 없었고, 맹세도 안 했다.
비테는 그저 나와 거래를 했을 뿐이다.
“그 조건이라면 융커들이 이를 받아들일 만도 한가…….”
“하지만 한스. 왜 이런 사실을 우리 영국에게 밝히는 것이냐. 지금 와서 빌리를 배신하기라도 하겠단 거냐?”
에드워드 7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폐하. 이것이 독일 제국에게 더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이득?”
“러시아 제국은 언젠가 독일의 적이 될 나라입니다. 그런 러시아 제국을 우리가 왜 도와야 합니까? 게다가 지금 러시아는 극동의 균형을 어그러트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건 그렇지.”
균형이란 단어에 균형 외교를 참 좋아하는 우리 영국 아저씨들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비테가 작정하고 독일에 무기를 구매하면서까지 극동의 수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뜩이나 패배할 가능성이 큰 일본을 더 불리한 상황에 부닥치게 만들겠죠. 그리고 일본이 러시아에 크게 패배하면…….”
“……러시아 놈들이 바다로 나온다. 젠장,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피셔 제독이 여기가 높은 분들이 모인 자리란 것도 잃어버렸는지 거친 말투로 그리 외쳤다.
그러나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러시아가 바다로 나와선 안 된다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영국인이 공유하는 생각이었으니까.
게다가 미리 내가 러일전쟁의 떡밥까지 뿌린 상태다.
이게 안 먹히려야 안 먹힐 수가 없다.
“피셔 제독의 말이 맞습니다. 폐하. 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특히 드레드노트 때문에 가뜩이나 총리 자리가 위태로운 아서 밸푸어는 무척이나 절박한 얼굴로 에드워드 7세를 향해 열변을 토해냈다.
하긴, 지금 상황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겨 불곰들이 바다로 나오면 그땐 밸푸어는 자신의 정치 인생이 아니라 진짜 인생을 걱정해야 한다.
저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전쟁이 일어나면 카이저 폐하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러시아를 압박해 어떻게 협상장으로 끌어내겠습니다.”
“남작, 설마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을 중재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는 체임벌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러시아에 조금 양보를 해야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오. 자세히 말해 봐라.”
“러시아 제국이 한반도와 랴오둥반도에서 물러나는 대신 그들에게 북만주 일대를 쥐여 주는 겁니다.”
나는 러시아에 갔을 때 비테에게 제안했던 것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에드워드 7세와 영국 정부에 제안했다.
이중 계약.
우리 밸푸어 씨의 특기였다.
물론 훗날 팔레스타인에서 피바람이 불게 되는 원흉 중 하나인 맥마흔 선언, 그리고 밸푸어 선언과 다르게 내 제안은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정된 일본만 빼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달랐지만.
“북만주라……. 하지만 러시아가 과연 뤼순이란 부동항을 포기하려 할까요? 애초에 러시아 제국이 확장정책을 펼친 것은 결국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랜즈다운 후작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엔 한 가지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사실 러시아 제국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부동항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레이트 게임 당시 해양 제국이었던 영국과 러시아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설처럼 굳어진 일종의 오해였다.
‘애초에 러시아가 극동이랑 연해주로 진출한 이유도 어디까지나 모피 때문인걸.’
블라디보스토크와 뤼순 같은 부동항은 이 과정에서 얻게 된 부산물 같은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 제국의 대외 무역 중심지는 바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육로를 통한 교역.
무역 수입도 육상 교역 쪽이 훨씬 많았고, 러시아 제국은 해상 교역로 대부분을 수출이 아닌 수입용으로 사용했다.
‘비테가 뤼순을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어차피 본토랑 떨어져 있는 곳이라 오래 지키기도 어려운 곳이고.’
물론 내가 굳이 영국인들에게 러시아 확장 정책의 진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착각에 빠진 편이 내게 더 도움이 되니까.
“그 부분은 저에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후작님. 그러니 그 문제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극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워 내진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론 우리 영국의 이익에도 들어맞으니까요.”
“하지만 러시아가 독일의 중재를 받아들일까 그것이 의문이군.”
“체임벌린 장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전 미국에 중재역을 맡기려고 합니다.”
“미국이라…… 괜찮은 선택이군. 미국도 태평양 이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제안에 긍정적일 테지.”
“하지만 그 전에 우선 베네수엘라 문제를 해결해야겠죠.”
내가 말했다.
“영국이 제 제안에 동의해 주신다면 제가 직접 미국으로 가서 베네수엘라 문제를 매듭짓고 오겠습니다. 덤으로 러시아 문제도 말을 해 놓고요.”
“한스, 네가 직접?”
“예. 말씀드렸다시피 전 영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독일 제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영국과 독일의 동맹 이야기는 사실상 끝났잖소.”
체임벌린이 말했다.
아무래도 영독동맹 문제로 독일에 데인 것이 많은 모양이라 내 말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땐 내가 없었고, 지금은 내가 있었다.
“전 양국이 당장 동맹을 맺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작은 협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우호를 쌓아 가자는 거죠. 영국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흠…….”
동맹은 어차피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솔직히 영국이 세계대전에서 중립만 지켜도 독일 제국엔 충분히 이득이었다.
“그럼 동의하시는 겁니까?”
“이것이 최선이라면.”
다른 이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에드워드 7세는 그리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영국에게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지만 말이다.
제3단계 완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