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68
68화 : 대한의 미래 (3)
“그게 지금 무슨 망발인가!”
내 말에 최익현이 노호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작 민영환이나 이상설, 이회영은 이미 이런 대답을 예상했는지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을 뿐이지만 말이다.
노인답지 않게 참 혈기 왕성한 사람이다.
그러니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을사조약에 분개하며 의병을 일으키려 한 것이겠지.
물론 최익현은 의병을 일으켰다가 고종의 해산 권고에 고민하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대한제국군이 나타나자 동포와 싸울 순 없다며 그대로 투항하여 쓰시마로 유배되는 결말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조선이 나라 문을 닫게 되는 것도 모자라 왜인들의 노예가 될 거라니. 남작, 자네 지금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제 부모님에 대고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까지 걸자 누가 유학자 아니랄까 봐 바로 입을 다무는 최익현.
그때, 민영환이 침울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리 단언하시는 것입니까?”
“민 대감님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 머지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은 보급로 확보를 위해 조선부터 점령하고 보겠죠.”
전쟁이란 말에 민영환의 얼굴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이미 그도 알고 있었겠지만, 이리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더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한다면…….”
“그 일본이 과연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은 세력의 균형이었다.
타이는 그것이 가능했기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한제국은 달랐다.
러시아와 일본 간의 세력 균형은 러일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박살이 나고 마니까.
이상설이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죄송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열강들은 전쟁의 승패가 완전히 갈리기 전에 전쟁을 끝낼 생각이니까요.”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여기엔 내가 개입했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았으니까.
결코 분노한 최익현에게 머리를 벼루로 내려 찍힐까 봐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매우 높은 확률로 일본에 나눠 줄 전리품이 되겠죠.”
“한 나라의 미래를 자기들 멋대로 결정하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면암 선생님. 그것이 약소국의 운명입니다. 이미 수많은 나라가 그렇게 사라졌고, 이 나라 또한 그 예외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정녕 없겠습니까?”
이회영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반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국제 사회에 호소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상설이 손을 들며 그리 말했다.
역시 원 역사에서 헤이그 특사를 이끌었던 사람다운 아이디어.
하지만 그 헤이그 특사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자신들이 얻을 이득도 없는데 극동의 약소국을 위해 나설 열강은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관심이 있다 해도 그저 동정을 표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이상설 씨. 죄송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조선의 호소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외면하고 무시하겠죠. 얻을 이득도 없을뿐더러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분란을 일으킬 만한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그럴 수가…….”
“물론 서양에도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소수이고, 열강의 정부는 국익을 위해 약소 민족의 억울함 따위는 언제나 그랬듯 신경 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 싸워야지. 비록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지라도 나라를 눈 뜨고 빼앗길 수는 없는 일. 500년 종사가 드디어 망하니 어찌 한번 싸워 보지 않겠는가.”
최익현은 을사조약 당시 남겼던 말을 그대로 내뱉으며 그리 투지를 불태웠다.
사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오지 못했기에 그렇지, 최익현 또한 나라에 대한 충심만큼은 진심이었다.
“맞습니다. 끝까지 이 나라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 엎드려서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습니다!”
이상설과 이회영도 이번만큼은 최익현의 말에 동감하며 그리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민영환은 세 사람과 달리 여전히 침울한 모습이었다.
“의병을 일으키더라도 과연 일본으로부터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가? 을미년에도 의병이 일어났지만 결국 진압되지 않았나.”
“대감. 그 무슨 약한 소리입니까. 만약 패배할지라도 그저 훗날을 도모하면 그만입니다!”
“나는 모르겠네. 나라가 망하면 과연 거기에 무엇이 남겠는가.”
“대감!”
민영환의 부정적인 태도에, 이상설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원 역사에서 그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민영환은 을사조약에 분개하며 대한제국의 고관으로서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영환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엔 자포자기의 심정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목숨을 끊는 것 말고 이상설이나 이회영처럼 독립운동의 길을 걷는다는 선택지도 민영환에겐 분명히 있었으니까.
실제로 친러파의 거두이자 민영환의 정치적 동지였던 이용익 또한 그리했다.
하지만 민영환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저 망국의 운명에 비통해하며 자결을 했을 뿐이다.
‘어쩌면 젊어서부터 권력의 중심에 가까웠기에 더욱 보고 느낀 것이 많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지도 모르지.’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이런 나약한 소리나 하다니. 난 이만 실례하겠소!”
내가 그리 생각하는 사이, 민영환의 모습에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최익현이 그리 말하며 저택을 떠났다.
뭐, 최익현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어깨가 축 처져 있는 민영환을 향해 말했다.
나 개인적으론 이번엔 그가 다른 결정을 내려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민 대감님. 이 나라가 망하면 무엇이 남느냐고 말씀하셨지요.”
“…….”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남습니다.”
“백성…….”
“예. 왕이 없어도 나라는 돌아가지만, 백성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백성만 존재한다면, 그 나라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즐비한 나라 잃은 이들이 가냘픈 한 줄기 희망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희망을 포기하지 마시지요.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깃드는 법이니 말입니다.”
* * *
다음날.
나와 아달베르트 왕자가 독일로 돌아가는 날이 찾아왔다.
“남작님.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제물포에 온 민영환과 이상설, 이회영은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오르려는 나를 배웅하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이제는 시간이 되었다.
“네. 저 또한 조금 더 조선에 머무르고 싶지만, 저에겐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언젠가 남작님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상설의 말에 나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붙잡고 악수를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은 꽤 먼 훗날이 될 것이란 것을.
그리고 이 나라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란 것을.
“민 대감님. 어제보단 밝은 얼굴이시네요.”
“하하하, 어린아이에게 설교까지 들었는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면 어른이라 불릴 자격도 없죠.”
내 질문에 어제의 대화가 떠올랐는지 민영환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말처럼 민영환의 얼굴은 어제처럼 자포자기한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포기하기엔 아직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잊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것을요.”
“예? 하, 하하.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그거 좋은 말이네요.”
민영환이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때, 배 위에서 아달베르트 왕자가 난간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스, 출항 시간이야. 빨리 와!”
“후, 이젠 정말로 가 봐야겠군요.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는 이렇게 말했죠.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반드시 실현할 날이 온다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오늘 힘들 수도 있고 내일 힘들 수도 있지만, 그다음 날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비칠 테니까요.”
“예. 마음에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모두 무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부우웅───
그걸로 작별이었다.
내가 탄 배는 곧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커다란 기적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탄 배는 제물포를, 대한제국을 떠나 바다 저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배에 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망할 뱃멀미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가 독일로 돌아가면 당장 라이트 형제에게 접촉해서 어떻게든 여객기부터 뽑고 말 거다. 진짜.
* * *
“그럼 앞으로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많겠군.”
“예, 대감.”
민영환의 말에 이상설과 이회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설이 말했다.
“그나저나 면암 선생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최익현은 어제 문을 박차고 나간 뒤 어떠한 작별 인사도 없이 곧바로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여기 있는 세 사람은 최익현이 지방에 내려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최익현은 지방에 남아 있는 유림을 조용히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이 이 나라에 송곳니를 드러내는 날, 그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의미한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이란 인간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러한 최익현의 행동을 나무랄 수 없었다.
최익현의 행동은 세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달랐지만 허무하게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사지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진 못할망정,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면암 선생의 일은 면암 선생 자신에게 맡기세.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는 것처럼 그 또한 그의 일을 하는 것뿐이니.”
“예. 대감.”
민영환의 말에 이상설이 어쩔 수 없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뭉쳐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찌 보면 차라리 이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최익현과 최익현을 따르는 유림은 사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자신들과 맞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는 분란의 씨앗이 되어 내부 분열의 원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들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고 겪어 왔던 것처럼 말이다.
“일단 나는 이용익(李容翊) 대감을 비롯한 조정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 보겠네.”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민영환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라를 지키려는 자들보다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자들이 훨씬 많은 것이 작금의 대한제국이었다.
그때 이회영이 혹시나 하고 물었다.
“폐하를 설득할 순 없습니까? 황상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신다면 일이 크게 수월해질 것입니다.”
“후, 시도는 해 보겠네만 과연 내 말을 들으려고나 하실지 모르겠군.”
민영환은 고종과 남작과의 밀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황상은 이 나라를 일본에 순순히 넘길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권력과 재산, 그리고 안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민영환은 독립협회가 어떻게 없어졌는지를 생각하며 황제를 설득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렸다.
게다가 차선책인 훗날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되는 황태자는 김홍륙 독차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뒤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말이다.
“일단 그 문제는 나에게 맡기게. 일단 순오와 우당. 자네 둘은 조정 밖에서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 주게나.”
민영환은 머리 아픈 일에서 시선을 억지로 돌리려는 듯 이상설과 이회영을 향해 말했다.
“특히 우당, 자네 가문의 재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네. 우리 가문의 힘도 보태고 싶네만, 우리 민씨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안 되면 다행인 상태이니까.”
“물론입니다. 대감. 나라를 위해서라면 그깟 돈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물론이고 시영이를 비롯한 제 동생 녀석들도 흔쾌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구한말 조선 10대 부자 집안의 4남이었던 이회영이 그리 호언장담했다.
일본에 협력했으면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었음에도 집안의 막대한 재산과 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6형제 전원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인물다운 태도였다.
그리고 이상설도 그런 친구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전 조선에 우호적인 외국인들이나 백암 선생 같은 지식인들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백암 선생이라면 독립협회 소속이었던 박은식(朴殷植) 선생 말이군. 그분이라면 믿을 수 있지.”
민영환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을 지키진 못할지라도 대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순 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대한의 운명 또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