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7
7화 : 축구장에서 생긴 일
독일 제국해군청(Reichsmarineamt)은 최근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카이저와 티르피츠 제독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야기를 꺼낸 가칭 ‘드레드노트급 전함’.
독일 황립 해군의 제독들은 처음엔 이 듣도 보도 못한 신형 전함에 눈을 찌푸렸지만, 곧 드레드노트의 가치를 깨닫고 열광했다.
공격이면 공격.
방어면 방어.
거기에 기동성까지 우월하다.
압도적. 그야말로 압도적인 궁극의 전함이었다.
많은 제독이 드레드노트에 환호를 보내며 당장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나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몇몇 노련한 제독들은 드레드노트가 혁신적인 전함인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못한 점을 마음에 걸려 했다.
세상이 이론대로 돌아간다면 현실에 문제가 왜 생기겠는가?
게다가 드레드노트는 협차사격이나 대응방어 등, 기존 전함에 비해 새로운 요소가 너무 많았다.
도입은 신중히 결정할 문제였다.
또한 드레드노트를 건조하기 위해 브라운슈바이크급과 도이칠란트급 같은 신형 전함의 건조를 취소하겠단 것도 말이 많았다.
특히 난데없이 하루아침에 신형 전함 수주 계약이 날아가게 생긴 게르마니아베르프트와 시하우-베르케, AG 풀칸 슈테틴 등의 조선소들이 죽는 목소리를 내며 카이저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빌헬름 2세는 단호한 태도로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뷜로 총리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지금 독일 황립 해군에겐 모험이 필요했다.
다만 죄 없는 조선소들에까지 모질게 군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달랠 건 달래야 했다.
빌헬름 2세는 적절한 보상과 함께 취소된 신형 전함 대신 드레드노트의 건조를 그들에게 맡길 것을 약속하며 조선소들을 안심시켰다.
결국 제독들은 두손 두발 다 들은 채 항복했다.
카이저와 독일 해군의 톱인 티르피츠가 저렇게 확고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이상 반대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확실히 드레드노트는 매력적이었다.
만약 카이저의 모험이 성공한다면 정말로 대영제국의 왕립 해군을 따라잡는 것이 꿈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드레드노트는 제독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채용되었고, 빌헬름 2세는 이 모든 과정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역시 한스 녀석을 데려오길 잘했어.’
물론 만찬장에서 녀석이 자신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그 말이 맞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녀석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드레드노트.
그야말로 자신과 독일 제국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바다의 패왕.
남자라면 어찌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겠는가.
한스 고 녀석, 아주 복덩이가 따로 없다.
물론 다짜고짜 무례하게 나서는 점은 고쳐야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슐리펜도 한스를 마음에 들어 했던가.”
아니. 슐리펜 참모총장은 한스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을 넘어 군에 들이고 싶어했다.
물론 프로이센 시절을 포함해서 독일 제국군에 유색인종 장교가 존재한 적은 없지만, 빌헬름 2세는 한스라면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 옛날 러시아 제국에도 ‘간니발’이라는 흑인 장군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간니발 또한 본래 흑인 노예 출신이었지만 표트르 대제의 후원을 받아 러시아의 귀족이자 장군이 된 자.
저 하찮은 슬라브인들도 해냈는데, 더 우수한 독일이 이를 못 해낼 이유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스 녀석, 오늘 황태자랑 어딜 간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그 ‘축구’인가 뭔가 하는 공놀이를 보러 간다고 했다.
장남 녀석이 어렸을 때부터 빠져 지낸 취미 중 하나다.
“쯧. 독일 제국의 황태자라면 좀 더 고상한 스포츠를 즐길 것이지, 그런 서민들의 놀이에 빠져선.”
빌헬름 2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카이저는 아들들에겐 엄한 아버지였다.
막내딸 빅토리아 루이제는 늘 오냐오냐했지만 말이다.
카이저도 어쩔 수 없는 딸바보였다.
“좀 더 크면 정신을 차리겠지.”
카이저의 관심은 다시 드레드노트를 향해 돌아갔다.
***
“와아아아아아!!”
“프로이센! 프로이센! BFC 프로이센!”
베를린 근교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 쿠어퓌르스텐담(KurfUrstendamm) 육상 스포츠 경기장.
재작년인 1899년, 독일 최초로 잉글랜드와의 국제 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던 이 유서 깊은 축구 경기장은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음에도 관중들의 우렁찬함성과 함께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하. 이쪽입니다.”
“음. 가자, 한스.”
경기장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축구와 대한 사랑과 열정만큼은 후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관중들을 지나치며 황태자를 따라갔다.
황태자 또한 얼굴이 묘하게 흥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이 열기에 감화된 모양이다.
나와 황태자는 이윽고 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좌석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 햇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즐비한 것이 이곳은 이른바 VIP들을 위한 특별석인 모양이었다.
하긴 황태자쯤 되는 인물이 서민들 틈에 섞여서 축구 경기를 볼 순 없는 노릇이긴 하다.
체면 문제도 있고 경호에도 차질이 생기니 말이다.
“오셨습니까. 황태자 전하.”
“하하. 오늘처럼 흥미로운 경기에 빠질 순 없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자 이리 앉으시죠.”
앉아있던 사람들이 황태자를 바로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상당히 황태자를 편하게 대하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의 축구광 황태자는 평소에도 이곳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모양이다.
“음? 옆의 이 꼬마 신사분은···?”
“한스 초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그 화제의!”
사람들이 무슨 유명인을 본 것 마냥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악수를 요청했다.
사실 유명인이 맞긴 하지. 이래 봬도 신문에 얼굴이 대서특필된 몸이니까.
물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가해 보여서 데려왔습니다. 제 동생들은 아쉽게 축구에 관심이 없거든요.”
어째 내가 축구 좋아한다니까 묘하게 기뻐하던 게 그 때문이었나.
하긴 사실 어느 쪽이 특이한가 따지면 빌헬름 황태자의 축구에 대한 사랑 쪽이 특이한 것이긴 하다.
이 당시 축구는 상류층이 아닌 노동자 계급.
즉, 서민의 스포츠였으니까.
전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발전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나저나 황태자 전하. 오늘 우리는 무슨 팀을 응원하는 겁니까?”
“BFC 프로이센. 오늘의 홈팀이자 리그 챔피언이지.”
“팬이십니까?”
“팬이라고 할까 애정이야. 이 팀은 초창기엔 원래 ‘BFC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라고 내 이름을 딴 팀이었거든.”
그렇구먼.
확실히 그런 이유면 애정이 안 생길 수가 없지.
“하지만 오늘 프로이센과 맞붙을 팀도 만만치 않습니다.”
나와 황태자 옆에 앉은 신사가 속닥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대 팀도 상당히 만만치 않은 강팀인 모양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최근 남부 리그를 휩쓸고 있는 떠오르는 신예죠.”
와, 바이에른 뮌헨? 내가 아는 그 뮌헨?
세상에. 그냥 강팀 수준이 아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BFC 프로이센과 달리, FC 바이에른 뮌헨은 21세기에서도 세계 최고의 강팀으로 손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대표 명문 클럽이다.
물론 이 시기엔 그만큼 강하진 않을 테지만 말이다.
“친선경기긴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이겼으면 좋겠군.”
“동감입니다. 남부 놈들에게 질 순 없죠.”
황태자와 신사가 그리 말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어디든 지역감정은 있는 법이다.
특히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북부와 뮌헨을 중심으로 한 남부 간의 갈등, 그리고 서부 라인란트와 동부 프로이센 간의 갈등은 상당히 유명한 편이니까.
반짝───!
“음…?”
방금 반대쪽 관중석에서 뭔가 내 쪽을 향해 반짝인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아───!!
“와아아아아아!!”
-지금부터 베를린의 패자 ‘BFC 프로이센’과 남부의 떠오르는 신성 ‘FC 바이에른 뮌헨’ 간의 친선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양측 선수들을 열렬한 환영의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들이 일제히 기립하며 손뼉을 쳤다.
입장하는 선수들을 향한 힘찬 박수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울려 퍼졌다.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별거 아니겠지.
이왕 온 거 오랜만에 좀 즐기자.
***
삐이이이익───!
-아! 여기서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며 전반이 종료되었습니다! 스코어는 1:1, 양측 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승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역시 챔피언다운 기량의 BFC 프로이센 선수들이었습니다만, FC 바이 에른 뮌헨도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며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 반에도 상당히 격렬한 싸움이 일어날 것 같군요.
-아~그거 기대되는군요. 자, 그럼 휴식 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후우~박빙이군. 박빙이야.”
“예. 특히 뮐러 선수의 슛이 들어갈 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축구의 매력이지. 동생 놈들은 이 맛을 모른다니까.”
빌헬름 황태자가 흥분으로 인한 열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해맑게 웃었다.
확실히 손에 절로 땀을 쥐게 만드는 명승부였다.
‘아, 이럴 땐 치킨을 뜯어야 하는데! 나중에 궁정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한번 만들어달라 해볼까···윽?’
갑자기 느껴지는 배에 격통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장 트러블이 일어난 모양이다.
“황태자 전하. 저 잠시 변소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음? 그래.”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하자, 황태자를 경호 중이던 험상궂은 얼굴의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날 향해 다가왔다.
프로이센 비밀경찰(Preußische Geheimpolizei).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가비밀경찰과 러시아 제국의 오흐라나와 함께 반동분자와 빨갱이에게 가차 없기로 유명한 카이저의 사냥개.
그 악명높은 게슈타포와 슈타지의 원조들 되시겠다.
“혹시 모르니까 같이 갔다 와.”
‘내가 애냐?’라고 말하기엔 애 맞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비밀경찰의 뒤를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비밀경찰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중후하고 기계 같은 목소리.
내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적이었으면 무서워서 숨도 못 쉴 것 같다.
쏴아아아아───!
볼일을 보고 나자 시원하게 내려가는 물소리.
여기가 수세식 화장실이 존재하는 시대여서 참 다행이다.
‘만약 중세 시대였으면···. 어후, 생각하기도 싫네.’
팍!
“으?”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려고 하는 순간,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눈이 부시도록 밝은 섬광이 내 두 눈에 작렬했다.
뭐야? 습격? 하지만 누가 날?!
“이봐! 당신 뭐야!”
“예? 아니, 전······으아아악!!”
쿠당탕!
내가 눈뽕을 당해 눈을 못 뜨는 사이, 소리를 들었는지 분노한 목소리의 비밀 경찰이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큰 소리와 함께 낯선 비명이 들린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날 습격한 정체불명의 인물은 곧바로 제압된 모양이다.
“으으···.”
“괜찮으십니까?”
“예. 일단은요.”
이제야 시야가 돌아온 눈을 살며시 뜨며 앞을 바라보니 비밀경찰이 당장 누구하나 잡을 것 같은 얼굴로 웬 말라깽이 남자의 팔을 꺾은채 바닥에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어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물건이 굴러다니고 있다.
“카메라?”
현대에서 쓰이는 것과는 모양이 다르지만 분명 카메라였다.
옆엔 작은 전구가 달려있었는데 내 기억에 의하면 아마 플래시용 전구일 거다.
방금 들었던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섬광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끄으으···.”
말라깽이 남자가 팔이 꺾이는 고통에 신음을 냈다.
아무래도 날 해치려던 것이 아니라 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내 허가도 없이 말이다.
“아니, 뭐 하는 사람이길래 다짜고짜 남의 사진을 찍으려 드는 겁니까?”
“그, 그게······.”
“똑바로 대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당신을 붙잡고 있는 건 프로이센 비밀경찰이거든요.”
“비, 비, 비밀경찰?!”
내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래도 몰랐던 모양이다.
“예. 당신도 프로이센 비밀경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아닙니다! 전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럼 누구신데요?”
“기, 기자입니다. 무슈(Monsieur)!”
기자?
거기다 무슈?
“프랑스인?”
“네, 넷. 맞습니다!”
남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일이 재밌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작가의말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축구는 본래 서민들의 스포츠였습니다만, 빌헬름 황태자는 당시 고귀한 신분으론 매우 이례적으로 초기 독일 축구의 열성적인 후원자였습니다.?
또한 빌헬름 황태자는 1908년에?/Kronprinzenpokal(/황태자 컵)이라는 독일 최초의 축구 컵 대회의 탄생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이 황태자 컵은 나중에?Landerpokal(지역 컵)로*?*이름이 바뀌어 아직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컵 대회로 남아있습니다.
여담으로 작중 등장하는 쿠어퓌르스텐담 육상 스포츠 경기장은 독일 최초의 축구 경기장으로 1899년, 잉글랜드와 독일 간의 최초의 국제 경기가 열린 장소 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독일은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에게 13:2로 패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