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80
80화 : 헤레로 전쟁 (3)
“모두 모이셨습니까?”
“예, 남작님.”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이 항복을 거절하자 나는 곧바로 로이트바인 총독을 비롯한 독일군 장교들을 소집했다.
헤레로족은 독일에 맞서 끝까지 싸우기를 택했다.
이제 나는 그들이 내린 선택에 대한 대가를 내 손으로 직접 치르게 만들어야 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로이트바인 총독이 헤레로족이 전쟁을 택하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마하레로가 항복하길 바랐을 것이다.
로이트바인 총독은 자무엘 마하레로와는 나마족의 반란 당시의 인연으로 상당히 친분이 있었던 데다가 원 역사에서도 피의 보복을 부르짖는 독일인 정착민들에게 인종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최대한 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로이트바인이 이러한 행보를 보인 것은 어디까지나 식민지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는 목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선도 결국은 선.
애초에 그가 없었더라면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엔 반란이 수십 번은 더 일어났을 거다.
내가 카이저에게 로이트바인과 계속 총독 겸 남서아프리카 슈츠트루페 사령관직을 유지하도록 설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무엘 마하레로가 평화 대신 전쟁을 택한 이상, 헤레로족이 싸우기를 원한다면 나 또한 이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눈앞의 작전회의에 집중했다.
“루덴도르프 소령, 작전 계획을 설명하시오.”
“옛!”
총사령관을 맡은 로이트바인 총독의 명령에 참모를 맡은 루덴도르프가 기합이 들어간 채 힘차게 대답했다.
아프리카에 온 이래, 언제나 얼굴에 먹구름이 끼어 있던 루덴도르프지만, 그 또한 전투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 때문인지 지금만큼은 상당히 진중하고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긴 루덴도르프에게도 이게 처음 겪어 보는 전쟁일 테니.’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바터베르크 고원에는 약 6만 명의 헤레로족이 집결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중 민간인들을 제외한 헤레로족 병력은 최소 3,000에서 최대 6,000 사이로 추측되며 그러기에 저희 군은 바터베르크를 포위한 뒤 총 3,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총 여섯 방향에서 공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도 원 역사에서 트로타가 바터베르크 전투에서 동원한 병력의 2배가 넘었다.
거기에 예비병력이나 헨드릭 위트부이를 비롯한 원주민 용병들까지 포함하면 아군의 총 병력은 거의 5, 6천에 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헤레로족이 바터베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자무엘 마하레로는 반드시 체포해야 해요.”
내 말에 루덴도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 역사의 바터베르크 전투에서 트로타는 이것을 못 해서 헤레로족에게 승리를 거두고도 반란 진압에 실패했다.
트로타의 방심으로 남동쪽 포위망이 약해졌고, 이를 눈치챈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이 포위망을 뚫고 칼라하리 사막으로 탈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트로타는 헤레로족 포로들을 모조리 쏴 죽인 뒤, 곧바로 탈출한 헤레로족을 추격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헤레로족이 아사와 탈수, 그리고 독일군 추격대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마하레로는 끝끝내 1,000명 정도 되는 헤레로족을 데리고 남서아프리카 식민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자무엘 마하레로는 헤레로족 생존자들과 함께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인접한 영국령 베추아날란드 보호령(Bechuanaland Protectorate), 오늘날의 보츠와나로 망명했고 단 한 번의 전투로 헤레로족 반란을 끝내 큰 전공을 세우려고 했던 트로타는 분노했다.
그러곤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남아 있던 헤레로족을 보이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총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사막으로 내몰아 말라 죽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트로타도 참 어이가 없는 놈이다.
정치적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남서아프리카에 피바람을 일으키다니.
‘그냥 항복시켰으면 될 것을.’
실제로 헤레로족은 바터베르크 전투 이후 트로타에게 항복하겠다고 말했지만, 트로타는 거절했다.
그는 아예 헤레로족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도 없는데 말이다.
“이미 이에 대한 대비를 마쳤습니다. 헤레로족은 절대로 바터베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터베르크까지 진군하는 데 거리상 최소 두 달은 족히 걸릴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 사이 헤레로족이 바터베르크를 탈출해 북쪽이나 서쪽으로 도망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지요.”
내 말에 로이트바인 총독이 대신 대답했다.
“레토포어베크 대위가 이끄는 슈츠트루페 기병대와 헨드릭 위트부이가 이끄는 나마족을 바터베르크로 보냈습니다. 헤레로족이 탈출하려면 우선 그들부터 막아야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총독님. 전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세요. 지금부터 우리는 반란을 끝내기 위해 바터베르크로 진격합니다.”
“네. 남작님.”
로이트바인 총독을 필두로 장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나는 군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경례를 받아 주며 헤레로족이 있을 먼 북쪽을 바라봤다.
* * *
“추장. 정찰병이 멀지 않은 거리에서 대규모의 독일군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수는.”
“수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자무엘 마하레로는 부하의 보고에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하레로는 이 광경이 좋았다.
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 세상의 참혹함과 더러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아름다운 땅도 곧 인간들의 피로 물들어 더럽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마하레로는 독일에서 온 소년 남작의 항복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미 다른 부족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유럽에서 온 독일 군대는 아프리카의 슈츠트루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그들은 커다란 대포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총도 많았다.
헤레로족이 이들과 맞선다는 것은 마하레로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무리였다.
그렇기에 남작이 돌아간 후 헤레로족 지도부는 항복 여부를 두고 기나긴 논쟁을 벌였다.
몇몇은 마하레로처럼 저들이 관대한 조건을 내밀었을 때 항복하는 것이 부족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된다 여겼지만, 몇몇 이들은 아예 유럽에서 병력이 더 도착하기 전에 독일군에 큰 타격을 입혀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하자 말했다.
그리고 부족원들은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헤레로족 내에선 아직도 슈츠트루페와 싸운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해 독일군을 내심 얕보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마하레로는 너무 위험한 길이라며 어떻게든 이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결국, 부족의 논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졌고, 논쟁에 종지부를 짓기 위해 자무엘 마하레로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의 선택 하나로 헤레로족은 살수도, 죽을 수도 있었다.
“항복이 싫다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수도 있다.”
마하레로는 주전파를 향해 마지막으로 그리 말했다.
다른 부족이라면 평생 살던 땅을 떠나자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수 없겠지만, 헤레로족은 이 땅의 토착 부족이 아니었다.
헤레로족은 가축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다.
그렇기에 부족의 생명줄인 가축만 있다면 헤레로족은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떠나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영국인들의 지배 아래 있는 베추아날란드에 친분이 있는 부족들이 있다. 그들에게 가면 우리를 받아 줄 것이다.”
영국 또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자신들을 내쫓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터베르크를 떠나자는 말에 주전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곳을 함부로 떠났다가 독일인들에게 부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소. 게다가 이곳 오하마카리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차라리 여기서 버티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게다가 베추아날란드의 부족들이 우리를 받아 주리란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백, 또는 천 정도라면 모를까 수만에 달하는 부족원들을 그들이 과연 환영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우리가 이 땅에 왔을 때 나마족을 비롯한 토착 부족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말이 떠나자는 것이지 독일군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잖습니까. 전 겁에 질려 꼬리를 만 원숭이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주전파들의 연이은 말에 마하레로는 미간을 좁혔다.
결국, 항복도 도망치기도 싫으니 독일군과 싸우자는 소리였다.
“잠시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
가슴이 답답해진 마하레로는 부족원들에게 그리 말한 채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내 머리가 맑아지자 이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억지로라도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부족의 분열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부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전파들은 자신 없이도 독일군과 맞서려고 들 것이다.
그들이 가진 독일에 대한 증오는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자무엘 마하레로란 인간은 설령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라 해도 같은 헤레로족이 허무하게 죽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마하레로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비록 최악의 선택일지라도.
“우리는 싸운다.”
“!!!”
돌아온 마하레로의 말에 부족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상념에 잠겨 있던 마하레로 또한 기억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며 눈을 떴다.
그의 주변엔 어느새 헤레로족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마하레로는 짧게 말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와아아아아───!”
1904년 6월.
바터베르크 고원, 헤레로족을 비롯한 나미비아의 부족들은 오하마카리라 부르는 땅에 수만에 달하는 헤레로족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들의 목소리는 군대와 함께 바터베르크로 행군하고 있던 한스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 * *
“……아무래도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군요.”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 함성은 분명 헤레로족의 것.
그들 역시 우리가 온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총독님. 제가 알기론 본래 이 주변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합니다.”
“짐승의 본능은 민감하다네. 그것들도 아는 거지. 곧 이 주변에 인간들의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을.”
나는 부하의 질문에 로이트바인 총독이 대답에 귀를 기울이며 옆에서 계속 말을 몰았다.
아버지와 달리 말을 잘 타는 것도 모자라 어른이 되고도 승마 대회에 양학을 했던 빌헬름 황태자를 졸라 승마를 배워 두길 잘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 뙤약볕에 병사들처럼 내 발로 아프리카 초원을 행군해야 하는 건 아닐지라도, 심하게 덜컹거리는 저 보급 수레에 물건처럼 실려 지난 두 달 동안 멀미로 고생을 했었을 것이다.
“오셨습니까. 남작님. 그리고 총독님.”
“레토포어베크 대위.”
바터베르크 주변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헤레로족을 견제했던 레토포어베크 대위가 말 위에 오른 채 경례를 올렸다.
다만 레토포어베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엔 처음 보는 나이 든 흑인이 나를 흥미로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은?”
“아, 남작님은 아직 그를 만나 보지 못하셨군요.”
내가 그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눈치이자 로이트바인 총독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쪽은 헨드릭 위트부이. 나마족의 추장으로 저와 맺은 계약에 따라 독일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헨드릭 위트부이입니다. 이 땅의 부족들 사이에서도 이미 소문이 자자한 남작을 드디어 만나 보게 되는군요.”
로이트바인 총독의 소개에 헨드릭 위트부이가 유쾌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위트부이 추장.”
나는 그의 손을 거리낌 없이 맞잡고 손을 흔들었다.
흑인의 악수를 거절하지 않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헨드릭 위트부이.
이미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자주 언급된 나마족의 추장.
훗날 나미비아의 지폐에도 얼굴이 실린 독일 제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자 나미비아의 국가적 영웅이다.
물론, 지금은 독일 제국의 편에 서서 독일군의 용병으로 헤레로족과 싸우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부디 계속 같은 편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
“레토포어베크 대위. 헤레로족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나?”
“예. 솔직히 몇 번 정도는 탈출 시도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헤레로족은 탈출은커녕 바터베르크에서 농성을 하며 아군과 싸울 생각을 굳힌 모양입니다.”
“허. 자무엘 그 친구도 참…….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군.”
로이트바인 총독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그래. 정말 안타깝다.
평화롭게 끝낼 수 있었음에도 결국은 피를 흘려야 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시다.”
바터베르크 전투(Battle of Waterberg).
헤레로 전쟁을 결정지을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