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94
94화 : 포템킨 반란 (2)
가장 처음 러시아 함대에서 일어난 이변을 눈치챈 것은 러시아 함대와 가장 가까이 있던 프랑스 지중해 함대 소속 장갑순양함 글롸르(Gloire)였다.
글롸르의 승조원들은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다가 귀를 울리는 커다란 포성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급히 난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도망치는 포템킨과 포템킨 주변에 이는 물보라였다.
“러시아 함대가 공격받고 있다!”
도망치는 포템킨 근처에 솟아오른 물보라에 승조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그리 외쳤다.
명백한 착각이었지만 착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프랑스 함대에는 포템킨이 반란을 일으켰단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기에 프랑스인들은 영국이나 독일이 러시아 함대를 공격했으면 했지, 설마하니 러시아 함대가 아군 전함을 공격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마주한 광경은 포템킨이 영국 함대나 독일 함대에 공격받고 있고, 러시아 함대는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혼란에 빠졌는지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의미론 혼란에 빠진 게 맞긴 했지만.
사실 프랑스인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살펴만 봐도 러시아 함대의 행동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나긴 대치 상황 속에서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낀 것은 비단 러시아 함대뿐만이 아니었고, 언제라도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땡! 땡! 땡! 땡!
“전투태세! 전투태세!”
“총원 위치로!”
곧 글롸르에서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승조원들이 갑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글롸르의 함장은 소중한 아침 식사를 눈물을 머금고 뒤로한 채 승조원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신속하게 지중해 함대의 기함인 샤를마뉴급 전함 생 루이(Saint Louis)에 러시아 함대가 공격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평소라면 칭찬받을 만한 빠른 일 처리였지만, 지금만큼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 함대가 공격받고 있다고?”
한편 글롸르로부터 보고를 전해 받은 지중해 함대 사령관, 팔마 구르동(Palma Gourdon) 제독은 눈을 찌푸리며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보고대로 저 멀리 러시아 전함 한 척 근처에서 여러 개의 물보라가 치솟아 오르는 모습이 구르동 제독의 쌍안경에 비췄다.
“Merde(썅)! 진짜잖아!”
다른 러시아 함선들도 무엇을 조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함포를 쏘고 있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저항하는 모양이었다.
영국 함대의 짓인지 독일 함대의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러시아 제국은 프랑스의 동맹.
그들이 갑자기 왜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한 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전 함대에 알려라. 지금부터 우리 프랑스 지중해 함대는 러시아 함대를 돕는다!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
“비브 라 프랑스!”
프랑스 지중해 함대 장교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구르동 제독에게 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르동 제독의 명령에 따라 프랑스 함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아침 식사가 한창이었던 영국 함대와 독일 함대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퍼엉! 펑!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제독님! 프랑스 함대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함장실에서 조용히 아침을 먹고 있던 독일 황립 해군 대양함대 사령관, 코스터 제독은 갑작스러운 포성에 방을 뛰쳐나와 곧장 함교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가 함교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것은 가만히 있던 프랑스 함대가 갑자기 공격을 시작했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보고였다.
“개구리 놈들이 우릴 공격하고 있다고? 갑자기 왜?!”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 러시아 함대 쪽에서 무언가 큰 소리가 들려오긴 했습니다만…….”
독일 함대와 영국 함대는 프랑스, 러시아 함대와 거리를 두고 탕헤르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었기에 러시아 흑해함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쪽에서 먼저 주먹을 날린 이상, 맞받아치는 것이 전장의 예의.
“전 함대에 전투 명령을 내려라. 지금부터 본 함대는 프랑스 함대의 공격에 대응한다.”
코스터 제독은 서둘러 함교로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 쓰며 전투 명령을 내렸다.
곧 베네수엘라 위기 이후 독일 카이저마리네의 자랑이자 프리드리히급의 영향으로 3년 빠르게 이름이 바뀐 대양함대의 기함,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필두로 독일 함대가 프랑스 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주포를 향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이게 대체 뭔 일인지……!”
“구축함 트래셔(HMS Thrasher) 중파! 전열을 이탈해 후퇴합니다!”
“돔빌 제독님 명령을!”
“쯧. 전 함대에 공격 명령! 피격당한 함선들은 일단 탕헤르로 후퇴하라고 해!”
영국 지중해 함대의 상황 또한 독일 대양함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제1해군경으로 영전한 존 피셔 제독의 후임으로 지중해 함대 사령관이 된 컴튼 돔빌(Compton Edward Domvile) 제독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리 명령을 내렸다.
분명 이쪽이나 저쪽이나 교전은커녕 알헤시라스에서 회담이 어떤 식으로든 끝날 때까지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터.
아무래도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에 이반들과 개구리 놈들이 더위를 먹었거나 길어지는 회담에 기어코 인내심이 바닥이 난 모양이다.
물론 이는 착각이자 오해였지만, 진상을 알 리가 없는 돔빌 제독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의 원인을 그리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펑! 퍼엉! 펑버벙!!
지중해 함대의 기함인 HMS 불워크(HMS Bulwark)를 시작으로 영국 함대마저 러프함대에 맞서 함포를 쏘기 시작하자 모로코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우발적인 교전은 순식간에 영독함대와 러불함대 간의 난전으로 진화했다.
“SMS 비텔스바흐(SMS Wittelsbach) 소파! 전투에는 지장 없습니다!”
“순양함 끌레베르(Kléber) 중파!”
“인트레피드(HMS Intrepid)에서 화재 발생!”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기함의 함교에서 피해 보고가 빗발쳤고, 전투가 시작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심각한 손상을 입고 뒤로 물러나는 함선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포템킨은 정작 혼란을 틈타 기어코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드, 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Двенадцать апостолов) 침몰!!!”
지중해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던 전투의 열기는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후속함이자 독일의 두 번째 프리드리히급 전함, SMS 도이칠란트(SMS Deutschland)가 일제사격으로 러시아 전함 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를 격침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 모든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과 러시아 장교들은 머리를 감싸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 *
“젠장! 젠장! 젠장!”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는 평화로웠던 아침 풍경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는 듯이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로코 앞바다를 향해 핏발 선 눈으로 연신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자신의 명령이 있기도 전에 탈주하는 포템킨을 향해 함포를 쏜 함장들을 당장 총살대로 보내고 싶었다.
그 성질 급한 멍청이들은 멋대로 함포를 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주제에 포템킨까지 놓치고 말았다.
물론, 포템킨이 빗발치는 포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포템킨이 흑해함대가 보유한 전함 중에서도 최신형 전함이라 성능이 뛰어났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지금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에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미친 짓을 당장 멈춰야 한다!’
포템킨도 포템킨대로 문제지만, 지금은 눈앞의 전투를 멈추는 것이 더 급했다.
전황이 유리하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는 영독함대에 밀리고 있었다.
원인이야 불 보듯 뻔했다.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비롯한 카이저마리네의 프리드리히급 전함들 때문이었다.
영국도, 프랑스도, 러시아도 아직 프리드리히급을 건조하는 중이었지만, 가장 먼저 프리드리히급을 선보이며 전 세계 해군력을 한순간에 제로로 만들어 버린 독일 제국은 그새 프리드리히급을 4척이나 더 뽑아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비롯해 원 역사와 달리 드레드노트로 건조된 도이칠란트급 1번함 SMS 도이칠란트, 3번함 SMS 포메른 3척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함대를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이 이상 교전이 지속되었다간 흑해함대는 조금 전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비참하게 가라앉아 버린 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흘린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물을 더 흘리는 것만은 막아야만 했다.
“계속 교전을 멈추라는 신호는 보내고 있나?”
“예, 옛! 하지만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전투 때문에 정신이 없는지 계속 우리 신호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돌아 버리겠군.”
부하의 보고에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눈을 질끈 감았다.
틀렸다. 그 어떤 함대도 자신과 러시아 함대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
타국 함대가 즉각 교전을 멈추도록 할 방법이.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떴다.
“지금 즉시 전 함대에 백기를 내걸라고 신호를 보내라.”
“예?! 제독님, 설마 항복하시겠다는 겁니까?”
함교에 있던 장교 전원이 제정신이냐는 듯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을 바라봤지만, 제독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
불명예스러운 일이고 본국에서도 온갖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이것 말고는 교전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목숨을 걸고 싸웠겠으나 이딴 말도 안 되는 일로 함대를 전멸시킬 순 없다. 이딴 말도 안 되는 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안 되고!”
“그건 그렇지만…….”
“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아직 이 자리에 모인 4개국 함선 중 격침된 것은 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와 구축함 몇 척 정도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이 난장판이 4개국 간의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펄럭~
결국,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명령에 따라 전투가 시작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흑해함대의 모든 함선이 백기를 내걸었다.
러시아 함선들의 마스트에 걸린 백기를 발견한 영국과 독일, 프랑스 함대는 방금까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것이 거짓말이었단 듯이 멍청한 얼굴로 교전을 멈추었다.
“백기를 걸다니, 우린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는데!”
물론 러시아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구르동 제독과 프랑스 함장들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과 러시아 함대의 비겁함(?)에 분통을 터트렸다.
어쨌든 전투의 열기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4국 함대는 각자 뒷수습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지금 러시아 전함 하나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걸 막으려고 하다가 이 난장판이 벌어졌다고요?”
“……부끄럽게도 그렇소.”
“하나님 맙소사…….”
그러나 뒤늦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으로부터 사태의 진실을 알게 된 코스터 제독과 돔빌 제독, 그리고 구르동 제독의 얼굴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새하얗게 질렸다.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분노한 구르동 제독이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멱살을 붙잡고 프랑스어로 온갖 욕이란 욕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태로 인해 프랑스 지중해 함대는 러시아 흑해함대 다음으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기 때문이었다.
할 말이 없었던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참혹한 표정으로 그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코스터 제독과 돔빌 제독은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우리 이제 어쩌죠?”
“어쩌긴 어째요. 우린 다 X됐소.”
돔빌 제독이 영혼이 빠진 목소리로 묻자 코스터 제독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모든 진상이 알헤시라스에 전해지자 4개국 대표들은 말 그대로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