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aved Caesar RAW novel - Chapter 99
99화 : 독영협상 (1)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회담이 진행되고 있을 때, 우리 독일 제국 또한 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영국이 우리 독일 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소식을 보내왔네. 영국과 독일의 동맹일세.”
뷜로 총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헤시라스에서 아서 밸푸어가 나에게 은밀히 의견을 타진해 온 바였다.
러일전쟁 과정에서 영국은 홍차맛 모로코 위기를 터트리며 러시아 제국, 그리고 프랑스와 완전히 척지고 말았다.
그리고 포템킨 반란으로 인한 모로코 해전은 그 갈등에 완전히 쐐기를 박고 말았다.
러불동맹과 영국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였고, 영러협상은 물론이거니와 영불협상 또한 영원히 물 건너갔다.
이제 영국의 편이라고 할 만한 나라는 유럽에 우리 독일 제국밖에 없었다.
“밸푸어 총리가 직접 베를린으로 오겠다는군.”
“당연히 그쪽에서 와야죠. 아쉬운 것은 어디까지나 영국이니까요.”
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태평양 함대와 발트함대가 날아간 원 역사와 달리 함대 대부분을 온존한 러시아 제국도 모자라 프랑스라는 위협에 맞서야만 하는 영국이다.
여기서 독일 제국을 같은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영국으로선 곤란해지는 것을 넘어 괴로워진다.
우리 독일이라고 딱히 다를 것은 없지만, 모로코 위기를 일으킨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에 말이다.
“영국 놈들과 동맹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군.”
티르피츠 제독이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며 말했다.
아무래도 티르피츠 제독은 영국 해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지나치게 강했던 나머지 영국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두면 일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독님. 우리는 영국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과 같죠. 또한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영국과의 협력은 필요합니다.”
“알고 있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영국과 동맹을 맺으면 왕립 해군과 우리 카이저마리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지 않나.”
“…….”
내 생각이 틀렸다.
티르피츠 제독은 그냥 영국 해군이 아군이 되면 그들과 싸우지 못한다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뷜로 총리 또한 이미 티르피츠의 말을 예상한 모양인지 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답이 없단 소리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 답 없는 배박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슬슬 그것을 꺼내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티르피츠 제독님. 꼭 싸움만이 우열을 가리는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가 프리드리히급을 건조했듯이 계속 영국 해군보다 앞서 나가면 그만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독일만이 프리드리히급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얼마 전 영국이 기어코 프리드리히급을 진수했을뿐더러 프랑스, 러시아, 미국도 프리드리히급을 건조 중이야.”
“그럼, 기존의 프리드리히급보다 더 강력함 전함을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더 큰 주포와 더 큰 선체를 가진 신형 전함 말입니다.”
드레드노트의 최종진화형인 슈퍼 드레드노트가 이렇게 탄생했다.
영국은 다른 나라들이 드레드노트를 건조하기 시작하자 타국의 드레드노트를 압도하기 위해 1910년에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인 오리온급(Orion class) 전함을 건조했다.
‘그러면 여기선 슈퍼 프리드리히라 불러야 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진 사이, 티르피츠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흐음, 그 말은 일리가 있군. 하지만 드레드노트의 기본 개념 중 하나는 대응방어가 아닌가. 주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장갑이 더 두꺼워져야 하고, 그러면 배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한계에 도달하겠지.”
티르피츠 제독의 말도 맞았다.
그러나 이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면 굳이 중장갑을 전함 전체에 두르지 말고, 직격당하면 위험할 부분에만 대응방어를 적용하고 직격당해도 괜찮은 부분은 최소한의 장갑을 적용하면 어떨까요?”
“응?”
1912년에 건조된 미국 표준전함의 시초, 네바다급(Nevada class)에 최초로 적용된 집중방어(all or nothing) 개념이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티르피츠는 내 생각에 잠시 무언가 생각해 보더니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입가에 밝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영국에 대한 반감은 어느새 잊었다는 듯이 구석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티르피츠 제독이 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영국과 같은 배에 탄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아, 그래도 기회가 되면 항공모함은 최소 한 척이라도 만들고 싶다.
짧은 전함의 시대가 끝나고 찾아오는 것은 결국엔 비행기와 항공모함의 시대였으니까.
하인리히 왕자가 원 역사에서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중에 그쪽을 파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론, 이제야 막 동력 비행기가 짧게나마 하늘을 날게 된 지금 상황에선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그러면 어디 영국 친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볼까요.”
“그래. 그나저나 이 아메리카노라는 거 꽤 괜찮군.”
“더 드릴까요?”
뷜로 총리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메리카노를 이 세상에 전파한다는 또 하나의 계획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다음엔 파인애플 피자를 만들어서 이 세상에 전파할 생각이다.
파인애플 피자의 원조인 하와이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던 독일인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
* * *
“독일에 온 것을 환영하네. 밸푸어 총리.”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아서 밸푸어와 영국 사절단이 자신들을 환영하는 빌헬름 2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뷜로 총리와 나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며 계속 긴장을 유지했다.
회담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빌헬름 2세의 처참한 외교능력과 예상할 수 없는 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내 옆에 있는 뷜로가 몰락하게 된 원인도 데일리 텔레그래프 사건(Daily Telegraph Affair) 때 빌헬름 2세가 영국에 대해 혀를 잘못 놀려서 그런 것 아닌가.
‘당장 라이히스탁에서 조차 카이저가 퇴위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지.’
오죽하면 뷜로는 훗날 자식의 회고록에 ‘많은 독일인은 최고 국가 원수의 어리석고 유치한 말과 행동이 단 한 가지, 즉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어둡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라고 적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만큼은 조용히 있어 달라고 카이저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
오늘은 독일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날이니까.
단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에드워드 7세 폐하께서는 이 자리에 오시지는 못하셨습니다만, 저에게 말씀하시길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들이 다시 뭉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허허, 그런가?”
“예. 또한 폐하께서야 말로 빅토리아 여왕 폐하의 손자분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분이시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다행히 아서 밸푸어가 눈치껏 알아서 카이저의 얼굴에 금칠해 준 덕분에 나와 뷜로 총리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에드워드 7세가 그런 말을 했다고?
말도 안 된다. 그냥 밸푸어가 카이저 듣기 좋아하라고 한 말이 틀림없었다.
“크흐, 크흐흐. 외숙부의 뜻은 잘 알았다고 전해 주게.”
“물론입니다. 폐하.”
아서 밸푸어의 입에 발린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귀까지 걸린 채 함박웃음을 짓는 빌헬름 2세.
그래, 누가 말했든 무슨 상관인가. 빌리가 만족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이지.
어쨌든 우리 카이저가 입가에 웃음꽃을 피운 채 흡족한 얼굴로 자리를 떠나자 이제 실무자들의 차례가 되었다.
뷜로 총리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 그리고 나는 밸푸어 총리와 랜즈다운 후작을 비롯한 영국인들과 마주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할까요?”
“예. 이번에는 부디 지난번처럼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요.”
뷜로 총리가 먼저 운을 띄우자 밸푸어 총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난 영독동맹 이야기를 꺼내며 말했다.
밸푸어 총리와 영국인들이 걱정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나 또한 진심으로 그때처럼 이번 논의가 파탄 나지 않길 바라니까.
‘그랬다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고생했던 내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거야.’
그때는 나 진짜 울지도 모른다.
세상 그 누구보다 서럽게 울 자신이 있다.
“우선,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우리 영국은 이번 독일과의 협정이 군사적 의무를 지닌 동맹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크흠.”
밸푸어의 말에 뷜로 총리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헛기침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나야 영국 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기에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영불협상 때도 영러협상 때도 이거 군사동맹 아니라고 말했던 영국인데, 우리 독일이 상대라고 딱히 다를 것은 없을 테니까.
“러시아와 프랑스를 지나치게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영국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밸푸어 총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지만 영국의 속셈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삼국동맹과 러불동맹 간에 전쟁이 터졌을 때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할 생각이겠지.’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을 망설였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벨기에가 침공당하자 영국이 바로 참전했던 것처럼 영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만들 만한 일들은 무궁무진했기에 내가 보기엔 사실상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식민지 문제부터 시작할까요?”
어느 지역을 양보할지, 그리고 양보하는 대신 무엇을 줄 것인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지만, 세계 정책이란 이름으로 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는 독일 제국에 있어선 반드시 영국과 합의를 봐야만 하는 문제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 사회 시간에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베를린-비잔티움(콘스탄티니예)-바그다드를 잇는 독일 제국의 3B 정책이었다.
3B 정책은 세계 정책의 핵심이자 카이로-케이프타운-콜카타를 잇는 영국의 3C 정책과 충돌했기 때문에 반드시 영국과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우선,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먼저 영국에 당근을 던졌다.
“우리 독일 제국은 수에즈를 포함하는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의 영국의 권리를 인정하겠습니다.”
또한, 독일은 유사시에 영국이 이집트를 합병하고, 페르시아를 영국의 영향권 아래 넣는 것을 묵인하기로 약속했다.
혹여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할까 긴장한 얼굴이었던 밸푸어 총리는 그제야 한숨 돌리며 나름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국 또한 오스만 제국과 그 영토에서의 독일의 권리를 보장하겠습니다.”
밸푸어 총리의 말에 뷜로 총리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의 얼굴이 눈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짧은 제안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매우 컸다.
드디어 독일 제국의 숙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3B 정책을 영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원 역사에서 3B 정책 자체가 1914년에야 겨우 영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가 얼마 안 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리 기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뷜로 총리 또한 아까 밸푸어 총리의 말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드디어 녹은 듯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몇 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흐뭇한 얼굴로 아서 밸푸어의 손을 잡았다.
“이것으로 양쪽이 만족할 만한 합의에 도달한 것 같군요.”
“동감입니다. 아, 체임벌린 말고 밸푸어 총리님께서 지난 동맹 건을 맡으셨으면 진작에 좋게 끝났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자리에 없는 체임벌린을 까며 뷜로 총리가 칭찬을 아끼지 않자 아서 밸푸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양국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쓴 보람이 있었다.
“수고했네, 남작. 자네가 정말 큰 역할을 했어.”
“과찬이십니다. 리히트호펜 외무장관님.”
드디어 큰 고비를 넘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나를 칭찬했다.
“이걸로 나도 한시름…… 쿨럭쿨럭!”
“외무장관님?”
“크흠, 아무것도 아니네. 가벼운 감기라도 들린 모양이야.”
“이런, 날도 추운데 조심하셔야죠.”
내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그에 대해선 잘 모르니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의 건강에 부디 이상이 없으면 좋겠는데…….
“그럼, 서명하고 이만 논의를 마치도록 하죠.”
“물론입니다. 공식으로 발표할 때가 기다려지는군요.”
뷜로 총리와 밸푸어 총리가 협정서에 서명하자 그 뒤를 이어 랜즈다운 후작과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을 비롯한 회담 참석자들이 부지런하게 펜을 놀렸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협정서 가장 밑부분에 적으면서 공식적으로 독일 제국과 대영제국의 동맹, 독영협상이 이 세상에 탄생했다.
며칠 후, 1905년 새해에 독영협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포츠머스 조약의 여파는 가볍다고 생각할 정도의 커다란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