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
1. 하트 보인 적 있으신 분?(1)
최악이다.
원래도 희망이라곤 없었던 아이돌 생활 6년 중에서도 오늘이 가장 최악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은찬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도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오후 8:52 1 [이거 뭐야? 너 그때 내가 한 말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
오후 11:02 1 [야 현주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치고는 꽤나 침착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으니 이쯤 되면 적응하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다.
‘이 자식은 또 뭐 하고 있길래 몇 시간째 답도 없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먹은 것도 없는 속이 더부룩했다.
가뜩이나 요즘 상태가 악화돼서 약을 추가로 처방받았었는데 반복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죄다 소용없어진 듯하다. 은찬은 주먹 쥔 손으로 가슴만 연거푸 두들겼다.
[제발 답장 좀 해라] [이번이 몇 번째냐, 진짜… 어떡할 거야?]그때 도착한 답장.
[현주인 : 아. 언제 찍혔지?] 오후 11:32기다리던 답장이 오긴 했으나, 있던 할 말도 사라질 지경이다. 그래도 변명을 한다거나 놀라는 눈치 정도는 보여줄 줄 알았는데. 이 반응은 도대체가.
‘누가 보면 지 일 아닌 줄 알겠네…….’
내 눈앞에 놓인 사태들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만 나왔다. 꼴 한번 사납다, 진짜.
***
—–
너희 팀은 망했는데 넌 좋다고 웃고 있네
관둬라 걍ㅋㅋ 연애 안 하면 죽기라도 하나 봐?
이게 다 니들이 얼굴 잘났다고 빨아준 결과임ㅇㅇ
증거 사진 타래로
x남돌 x남돌알계 x남돌연애 x돌판트친소
x칠월칠석 x현주인여친 x유토피아 x소년미
공유 3,112 인용된 글 1.2k 마음에 들어요 2,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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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무영냥 키링 공구중 / ~7월 31일)
@moo0wife
ㅅㅂ 남의 오빠 그룹은 왜 해시태그 걸어놓고 지랄ㅗ
ㄴ함둥이♡
@hamjwonnnny
같은 소속사인 게 쪽팔린다 진짜ㅋㅋ
아이돌이 스캔들만 10번이 넘게 터지는 게 정상임?
ㄴ알계
@Ykwwlmqnxo
현주인 얘는 지가 그룹 살리고 죽이고 반복함
밀당의 귀재ㄷㄷ 고무줄도 울고 감
ㄴ키키
@jooinni_kk
그래도 주인이 팬들한테 잘해줘요
고작 이런 걸로 연예인 욕먹게 하지 마세요
ㄴㄴ아무나다팜
@efdzcji8
뭐래ㅋㅋ
칠월칠석 데뷔 초부터 사생 친목질 터져서 판 개판 나게 만든 거 : 현주인
드라마 찍는다고 활동 불참 ㅈㄴ 해서 n인 지지 만들게 한 원인 : 현주인
꾸준한 스캔들^^로 유입 막고 팬덤 고인물화 만든 주범 : 현주인
결론 : 현주인이 칠월칠석 나락으로 가게 만든 일등 공신인데요
ㄴ잡덕입니다
@iamjobdeok
와 칠월칠석 망한 지가 언젠데 현주인 덕에 트리플크라운 달성하네
병크 3관왕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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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알계가 터져서 난리가 났는데도 태평한 놈을 보니 내 속이 다 터질 것 같았다.
현주인한테 스캔들이야 의식주 같은 거여서, 기사나 목격 짤이 주기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팬이 나서서 터뜨린 경우는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다.
평소에 덕질하는 계정에서 우스갯소리로 ‘스캔들이 월례 행사급인 아이돌’, ‘스캔들 하면 떠오르는 남돌 1위’라며 대놓고 한탄하는 경우를 간혹 보긴 했어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알계처럼 악의적으로 현주인의 스캔들을 다루는 팬은 여태껏 없었다.
아무리 시야를 희미하게 만들어봐도 눈앞에 놓인 글자들이 다른 내용으로 변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저 증거 사진들이 조작된 건 아닐까 하고 정신 승리를 해보려 했지만 사진 속 저 뒷모습은 현주인이 가지고 있는 한정판 재킷의 때깔이라 부정조차 못 했다.
‘이럴 때만 존나 핫하네…….’
실시간 트렌드에도 올랐잖아? 이 정도 반응을 봤던 게 대체 언제였더라. 요즘 칠월칠석 이슈 중에서 제일 핫하긴 했다.
망할. 욕도 안 나온다.
일련의 사건들로 이젠 한 꼬집 정도만 남아 있는 팬들도 저게 어그로성 구씹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먼저 눈치챘을 수도?
띠링♪-
[현주인 : 뭐, 우리라면 평소처럼 묻히겠지.] 오후 11:40‘우리 중에서 너만 아직까지 유일하게 관심받고 있거든?’
평소였으면 며칠 동안 인터넷을 끊은 채 적당히 마음 수련을 하고 털어버렸을 텐데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정신력은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은찬은 침대 시트를 세게 움켜쥐고 미간 사이에 주름을 박았다. 몇 시간 전 일이 자꾸 생각났다. 구겨진 얼굴이 펴질 새가 없었다.
***
“아, 다음에는 춤 꼭 보여 드릴게요, 약속! 아니면 이따 보이스 메시지 보낼 테니까 그거 꼭 들어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근처 연습실에서 소속사 후배 함정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찬은 반사적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부럽네…….’
아마 연습실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나도 매년 이때쯤이면 라방을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매니저님한테 가능한 일정을 물어봐도 답조차 듣지 못했다.
데뷔 6주년인 만큼 최소한 멤버들은 다 같이 모였으면 했는데.
씁쓸한 마음에 SNS 구독 계정에 접속해 은찬의 그룹명인 ‘칠월칠석’을 검색해 봤지만 오늘 올라온 글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데뷔일에 조롱도 안 올라오잖아.’
—–
7.7 데뷔라고 칠월칠석임? 네이밍 개구림
ㄴㅇㅇ 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음. 역시 좆소는 좆소임.
ㄴ컨셉도 개구린 데다가 지뢰밭인데 누가 좋아하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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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그리워질 줄이야.
어긋난 관심이어도 일단은 나를 향한, 그리고 우리 그룹을 향한 관심이었다.
그렇게 보기 싫었던 반응이 오늘처럼 그리울 수가 없었다. 무관심보다는 욕이 낫다고, 최신 글이 2주 전인 것보다야 실시간으로 조롱이 올라오는 게 백 번 천 번 낫다.
데뷔일 당일에도 축하해 주는 이들은 몇 없었고 내는 앨범마다 족족 말아먹어 적자 신세를 못 벗어나는 탓에 망돌이라 불렸지만, 그래도 은찬은 항상 그룹과 관련된 기념일들을 챙겼다.
오늘은 데뷔 6주년이니만큼 회사에 오기 전, 오전 7시 7분이 되자마자 셀카와 함께 자축 글을 SNS에 올렸다. 물론 헛짓거리였지만.
[x은찬] 7월 7일 7시 7분!!이런 행운의 날에 데뷔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까치분들에게 좋은 일들만 있길 바랄게요ㅎㅎ♥
조만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은찬이 얼굴 보고 힘내세요 ><
그래도 오늘은 우리 데뷔일이니까.
이렇게 뭐라도 한다면 누군가 ‘축하한다’ 한마디 정도는 해줄 거라는, 되도 않는 기대를 했었다.
‘차라리 기대를 안 했으면 실망도 안 했을 텐데.’
글을 올린 지 8시간 정도가 지난 지금, 현재 글의 토탈 공유수는 겨우 412.
그마저도 인용글이 300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얘네 아직도 해체 안 했냐는 인용글의 공유수가 훨씬 더 많았고, 은찬의 구독 계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비공개 계정들의 인용글도 뭐… 보나 마나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을 터였다.
‘칠월칠석이라는 이름은 볼 때마다 구리다’, ‘그래서 현주인은 뭐 하냐’ 같은 거.
‘엄마, 나 이제 아이돌로서 유통기한은 끝났나 보다. 이제 뭐 하지?’
괜히 울적해진 마음에 오른손에 낀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안할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유품으로 남기고 간 반지를 이렇게 습관처럼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플라시보 효과지만 그러면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것 같아서.
눈앞에서 함정원의 라이브 방송 현장을 보기에는 영 꺼려져 연습실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아무리 은찬이 축하받지 못하는 기념일의 당사자라지만, 라이브 방송 중인 후배의 바로 옆 연습실에서 연습할 정도로 멘탈이 강하진 못했다.
‘저거 다 들릴 게 뻔해. 안 듣는 게 낫다고.’
부러움을 넘어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댈 게 분명하다.
혹시 비어 있는 연습실이 있나 싶어 주변을 머뭇거리는데, 안에서 함정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오늘 우리 칠월칠석 형들 데뷔 6주년이거든요. 지금 마침 은찬 형 연습실 밖에 있는데, 불러올까요? 어차피 할 일도 없을 텐데…….”
그리고 익숙한 그룹명과 내 이름이 함께.
“에이, 왜요~ 형 진짜 잘생겼어요. 칠월칠석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데려올게요!”
그러니까 저 앙큼한 후배는, 지금 아무 예고도 없이 날 불러서 자기 라이브 방송에 출연시키겠다는 소리다.
‘예전 일이긴 하지만 우리 팬들 사이도 딱히 안 좋았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급하게 자리를 피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연습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은찬 형!!”
“어, 어?”
“형, 라방 같이 해요! 에이, 그렇게 싫은 티 내지 말고요! 축하해 준대요, 제 팬들이.”
“…친절하네.”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어느새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함정원은 그대로 내 팔을 붙잡고 끌어당겨 제 옆에 앉혔다.
그저 하하, 하고 작은 웃음밖에 내뱉지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아파왔다.
‘얘 또 이러네…….’
라이브 방송 앱이 켜져 있었으니 여기선 거절을 하기도 애매했다. 은찬은 마른침을 삼킨 뒤 떨떠름한 얼굴로 마지못해 빈자리에 엉덩이를 욱여넣었다.
오랜만에 보는 라이브 방송 화면과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댓글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겨우겨우 웃는 게 다였다.
이건 뭐… 나 엿 먹이려고 여기 앉혀둔 건지, 본인 재밌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간 함정원의 행동을 보면 절대 좋은 의도는 아닐 거다.
이건… 인생 최대의 굴욕이라고 칭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매번 빠르게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던 라이브 방송은 10분이 10시간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아 식은땀까지 흘렀다.
“그럼 저희 칠월칠석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마자 함정원이 연습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팔 사이로 고개를 묻자마자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아, 이런 게 바로 비참하다는 거구나.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달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하루라도 빼먹지 않던 연습을 포기하고 택시를 불렀을 만큼.
***
이게 바로 오늘 낮의 일이다.
그 이후로 은찬은 숙소의 불을 끄고 창문 밖의 햇빛에만 의존한 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차라리 잠을 자면 좀 나을 텐데, 지독하게 은찬을 괴롭히는 불면증은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계약 언제 끝나더라…….”
은찬이 허공에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이돌은 내 길이 아니었나 봐.
아이돌이 되고 싶어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에 상경했던 고등학생 유은찬은 이미 다 말라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을 관두게 되면 뭘 할 수 있지?
할 줄 아는 거라곤 춤, 노래.
그게 다였다.
이럴 시간에 빨리 국비 지원 받아서 전문직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멤버 현주인의 알계가 올라온 걸 발견한 것이다.
조금 전, 비록 비참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기 있는 후배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으니 언급이 늘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접속했던 SNS 구독 계정에서.
“현주인 얘는 진짜 6년 내내 사고 안 치는 날이 없냐…….”
1 [내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은 현주인 너랑 같은 팀을 하겠다고 나섰던 거야]
오전 12:24 1 [됐다, 잘 자라]
“…전부 다 지겨워.”
1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오전 12:24 1 [됐다, 잘 자라]
그러니까, 지금은 가히 아이돌 인생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줘도 모자라지 않았다.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
갑작스레 벨 소리가 울리며 통화가 걸려왔다. 현주인과의 대화창이 떠 있던 액정 위에는,
[우리 할머니]아직 미처 지우지 못한 저장명으로 수신 화면이 뜨는 중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4년이나 됐는데?’
그사이 누가 할머니 번호를 쓰고 있는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한테 전화를 걸 확률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은찬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괜한 기대감에 떨려오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뭐야… 장난 전화인가?’
은찬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하필 전화가 와도 이 타이밍에, 하필 할머니 번호로.
그때였다.
-잘 지내고 있죠?
중성적이면서도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나긋한 말투에 놀란 은찬이 곧장 입을 떼었다.
“누구세요?”
-…….
그 이후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 5분가량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는데도 별 소득이 없자 은찬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하필 이런 상황에 장난 전화라니. 아예 날 잡았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받은 전화였지만 역시나. 울적함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 할머니… 둘 다 보고 싶다.’
손에 끼고 있던 묵주반지를 뺀 은찬은 그대로 반지에 입을 맞추고는 한 손에 꼭 쥐었다.
“그냥 이대로 평생 잠들면 소원이 없겠네.”
은찬은 불면증으로 처방받았던 수면제 5일치를 단번에 입으로 털어 넣고 그대로 물과 함께 목구멍 속으로 흘려 보냈다. 이후 일은 일어나서 책임지면 된다. 일단 잠에 먼저 드는 게 우선이니까.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이런 미래가 되도록 두진 않을 거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떠올리며 이제는 의미 없는 후회를 했다. 이건 만화나 드라마가 아니니 시간을 되돌리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눈앞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