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02
102. 호랑이 굴(2)
“여기 투 플러스 원 제품들이 엄청 많네요.”
“행사하는 중인가 봐요… 선배, 뭐 찾으세요? 제가 가져올게요.”
“음, 그런 건 아니고요. 여기에서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 저는 괜찮아요!”
“딱히 땡기는 게 없으면 하나씩 다 사볼까요? 아, 짐은 제가 들고 갈 테니까.”
“네?”
선배는 산뜻하게 웃으며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한 손에 든 바구니에 온갖 간식과 음료를 담기 시작했다.
’배고프셨나?’
마스크를 썼음에도 뚫고 나오는 미모를 지닌 저 선배가, 한 손에 편의점 바구니를 들고 간식과 음료를 쓸어 담는 장면은 부조화스럽고도 신기했다. 말릴 이유도 없기에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선배는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서야 카운터로 몸을 돌렸다.
“전부 계산해 드릴까요?”
“네.”
백무영 선배는 카운터에 물건이 잔뜩 든 바구니를 올려두고 사람 좋게 웃었다. 당황한 듯 보이는 편의점 알바생의 얼굴에 괜히 조금 미안해졌다.
‘아?’
선배는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놓다 커피 하나를 알바생 앞쪽에 흔들었다.
“이거 드세요.”
“네?”
“이거 투 플러스 원이던데, 하나씩 다 드시라고요.”
게다가 이 행사 상품들은 내가 그 알바생에게 자주 드리던 것들이고.
편의점 행사 상품은 혼자 끼니를 해결하던 내게 과한 양이었다. 더군다나 항상 연습이나 귀동냥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던지라 입맛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새벽에도 고생하시는 편의점 알바생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나름대로의 선의를 베풀었었다. 새벽이면 충분히 배고플 시간인 데다 이 시간에 눈을 뜨고 있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남들은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은찬의 기준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커피, 젤리, 삼각김밥, 음료수… 전부 내가 자주 사던 것들이네.’
무영이 계산 중인 제품들은 전부 은찬이 그 알바생에게 준 적이 있던 것들, 혹은 은찬이 좋아해서 자주 사던 것들이었다. 눈에 익은 이유가 있었다.
‘뭐지? 이 기시감은…….’
내가 했던 행동들을 남의 재연으로 확인하고 있는 듯한 느낌.
새로 온 알바생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모양인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백무영 선배의 얼굴과 물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고는 황당한 듯 손을 내저으며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기 시작했다.
“저요? 감사하긴 한데, 괜찮아요.”
“그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셔도 되고. 전 드리고 싶어서요. 피곤하실 텐데 드세요.”
여전히 백무영 선배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외모 버프를 받아 더더욱 강한 호감을 주었다. 물론 반복적으로 바코드를 찍고 있는 알바생에게까지 그게 먹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무영 선배, 수상한 구석은 있어도 역시 사람은 좋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알바생의 입장은 달랐던 모양이다.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곧 피곤하다는 얼굴로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손님…….”
시선을 내리깐 채 기계적으로 계산하던 알바생은 선배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꼭 ‘나 퇴근하고 싶어요’라고 표정으로 외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백무영 선배가 그 말허리를 잘랐다.
“누구는 이걸 선의라고 하더라고.”
‘어?’
선배의 말에 내가 찔리는 이유는 뭘까. 갑작스럽게 찌릿한 심장에 반사적으로 눈을 껌뻑였다. 여전히 선배는 웃는 낯을 유지하며 알바생이 건네준 비닐 봉투에 물건을 주워 담는 중이었다. 물론 알바생의 몫으로 한 개씩 빼서.
“…감사합니다.”
알바생은 백무영 선배에게 대꾸하길 포기한 모양인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사에 한숨이 섞여 들렸다. 선배가 그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아닌지는 지금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이전 알바생한테 선의라며 받아달라고 하긴 했는데.’
묘하게 자꾸만 과거의 장면들과 엮이는 것 같다면 내가 예민한 건가.
‘하, 별 잡생각이 다 드네.’
선배가 시스템이나 회귀 같은 것에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알바생 문제까지 엮는 건 논리적 비약인가?
‘아니… 어느 정도 연결 고리가 있을 수도 있겠어.’
그 당시 그 알바생에게 했던 나의 행동들과 같은 행동들이 이상한 기시감이 들긴 하지만.
너무 넘겨짚지 않는 선에서 납득 가지 않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했다.
‘최소한 그 남자 알바생과 커넥션은 있다고 봐야 하나.’
그 음울한 분위기의 알바생이 근무할 때, 백무영 선배는 소년미로 최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중이었다. 어떤 월드 투어에서도 표를 매진시키는 저력이 있을 정도로.
‘선배가 회귀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
그 알바생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니 이 점은 유의해 둬서 나쁠 것 없겠군.
“은찬 씨, 가죠.”
여러 가정들을 세워보는 사이, 계산을 마친 백무영 선배는 한 손에 짐을 한 아름 든 채 활짝 웃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알바생은 이 잠깐 사이 10년 정도의 피로를 단번에 맞은 듯 피곤해 보였다. 백무영 선배가 먼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찬 또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서 방문해야겠네… 저분에게 나는 구면인 데다 앞으로도 봐야 할 얼굴일 테니까.’
편의점을 나설 때였다.
“은찬 씨가 남을 잘 챙기긴 했죠. 가끔 그걸 오지랖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전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해요. 사람들이 너무하지.”
백무영 선배의 한마디에 반사적으로 걸음이 멈추었다. 편의점 문이 닫히는 소리와 그로 인한 바람이 뒤통수를 스쳤다.
‘뭐야, 이 뚱딴지같은 소리는?’
어떻게 백무영 선배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아는 거지?
선배와는 회귀 후, 이번 생에서 처음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이다. 아무리 연예계 소식통이 빠르다지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있는 듯 없는 듯 금세 사라져 버렸던 칠월칠석의 나다.
‘…챙기긴 했죠, 라니. 과거형이잖아. 지금 나에 대한 소문이라면 굳이 저렇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어.’
지금을 이야기하고자 한 거라면 현재형으로 말했을 것이다. 당황해 버린 탓에 눈을 깜빡이는 것을 까먹었는지 눈시울이 시리기 시작했다. 미간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저 확신에 가까운 어조는…….’
분명 본인이 보고 듣고 겪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말투다. 어찌 보면 일부러 들으라고 의도해서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선배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선배는 나와 눈을 맞추곤 반쯤 눈을 접어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예민한 건지, 확실히 선배가 나를 자극하고 있는 건지. 저 완벽한 얼굴 뒤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선배.”
“네?”
“…아니에요. 선배 고민 있으시다면서요! 얼른 가요!”
“그럼 갈까요?”
무언가 말을 하려다 그냥 입을 닫았다. 생각을 덜 한 지금, 괜히 어설프게 질문하는 건 좋지 않았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현주인 때처럼 허를 찌르거나, 대놓고 직설적으로 물어보든가.
확실히 이상했다. 여전히 물증은 없으나 선배에 대한 의심은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곧 빵- 하고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
[ Error! ] [ system : 시스템 충돌로 인해 금일 호감도 열람 횟수가 모두 소멸됩니다. ]‘젠장… 또 소멸이야.’
혹시나 싶어 택시에 있는 동안 백무영 선배의 호감도와 스탯을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에러가 났다. 그나마 지금이 밤중이라 다행이었다. 호감도 확인 횟수는 자정이 되면 리셋되니까.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충격이 덜했다.
‘으… 너무너무 어색했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괜히 선배를 훔쳐보다 눈이 마주쳤던 걸 생각하니 다시 입이 말랐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던 모양인지 선배는 나와 눈을 맞춰왔다. 그리고 곧장 웃어주셨는데, 민망함과 죄송함은 내 몫이었다.
‘기억 속의 백무영 선배라면 장난스럽게 웃어주셨을 텐데.’
본인을 앞에 두고 무례한 생각이긴 하지만 미련이 쉽사리 지워지진 않았다. 원래 저렇게 감정 없는 눈으로 웃는 사람이 아닐 텐데.
꼭 그동안 존경했던 백무영 선배가 정말로 환상이었던 것 같잖아.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네? 아, 아뇨. 너무 잘생기셔서…….”
“가만 보면 은찬 씨, 이 얼굴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급하게 선배를 훔쳐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얼굴을 뚫어져라 보던 걸 선배에게 들킨 게 민망했다. 얼굴이 홧홧거렸다.
“은찬 씨, 술 좋아해요?”
“네? 술이요? 아, 저는 괜찮아요! 선배 드세요!”
“하핫.”
‘감히 선배랑 단둘이 술을 마신다니’라는 본능이 제일 먼저 앞섰다. 두 손을 흔들며 거절하는 모습에 선배는 작게 잔웃음을 흘렸다.
“맥주 좋아하던 것 같았는데.”
“네? 승채 선배가 말씀해 주셨어요?”
“네. 승채한테 들었죠.”
거짓말.
변승채 선배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주로만 달렸다. 서로 맥주는 배가 부르다며 기피했고, 그 결과 변승채 선배한테 의견 맞는 놈은 오랜만이라며 호감을 얻었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백무영 선배는 변승채 선배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나에 대해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계신 거지?’
그냥 찍어 맞혔다기에는 아까부터 납득 가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회귀 후 알게 된 백무영 선배는 머리가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가 좋아진 것 같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원래 내가 알던 소년미 백무영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지금의 선배는 이렇게 그냥 말을 던져볼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대하는 이 행동들에도 필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배, 주변에 저를 아는 분들이 좀 많으신가 봐요.”
“은찬 씨를? 아직 은찬 씨가 그 정도 위치는 아니죠.”
‘윽…….’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이렇게 속이 쓰리냐. 백무영 선배의 뒤에서 머쓱하게 뒷머리만 만지작거렸다.
“하하, 그렇죠… 그냥 말씀하시는 것들을 들어보면 전부 저랑 찰떡이어서.”
“연예계 이 정도 굴렀으면 대충 사람 보는 눈 정도는 길러져요. 아, 와인 괜찮아요?”
“네…….”
“집에 몇 개 있긴 한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다. 맨입으로 상담하는 것보다는 술 한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겠죠?”
백무영 선배는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며 나긋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곧 도어락 해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꼭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느낌이네.’
선배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널찍한 현관에 신발을 벗으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회귀 전 현주인네 오피스텔도 엄청 좋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비교가 안 되는구만.’
현관 쪽에서도 보이는 한강 뷰는 꼭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부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사세였다.
‘집 진짜 짱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감각적인 집 안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거실 쪽에서 오프너로 코르크를 따던 백무영 선배가 경쾌한 목소리로 날 불러왔다.
“아, 그리고 이번에 TOP100 진입 축하해요.”
“선배가 축하해 주시니 감회가 더 새로워요… 이번엔 곡이 좋아서 다들 알아주셨나 봐요.”
“하긴 곡 정말 좋더라고요. 같은 팀 멤버가 작사랑 작곡을 했던가… 그렇죠?”
“네. 같은 팀인 게 행운이에요. 이번엔 타이밍도 잘 맞았던 것 같고, 인지도도 많이 오른 것 같고요.”
“지금 은찬 씨는 참 운이 좋아. 그 반지 덕분인가?”
선배가 알아주셨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방글거리던 차였다. 하마터면 더 조잘거릴 뻔했다. 선배가 반지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면.
‘반지 간수 잘해.’
그 순간, 현주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재생됐다. 회귀한 현주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배가 이 반지에 대한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