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05
105. 생목 라이브(1)
‘쟤 저러면 얼굴에 금방 주름질 텐데. 저 버릇을 지적해야 되나. 얼굴이 생명인 앤데…….’
반사적으로 놈의 주름진 미간 사이를 검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얼굴이 재산인 앤데 이렇게 버릇 들이면 좋지 않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얼굴 하나는 국보급이니까.
“너 그런 말 안 했어.”
내가?
“그랬었나?”
“너 눈에 하트나 별 보인다는 것밖에 얘기 안 했다. 그리고 내가 백무영 조심하라고 했지 않나? 그 반지 자는 사이 없어졌으면 어쩌려고.”
현주인의 질책에 눈알만 도르륵 굴렸다. 지적해 오는 사항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선배의 시스템 건은 그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안 했던 것 같긴 하다.
“…빨리 숙소 가서 씻고 레슨이나 나가.”
“오늘 레슨 없는데?”
“연습해, 그럼.”
이미 내가 마음을 돌린 마당에 숨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을 뿐. 아무래도 외박하다 잡혀 오는 길에 이런 무게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순 없지 않은가.
‘표정이 뭔가 짚이는 게 있는 것 같진 않은데.’
다행히 현주인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내젓고선 대화 주제를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는 모양새가 조만간 다시 물어보겠지- 싶지만.
“올, 네가 웬일이냐?”
어쨌든 내가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저쪽에서 딴소리를 해주면 이득이지.
할 말은 많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자. 어쨌든 지금 다른 걸 다 제치고 봐도 현주인 이놈의 태도는 놀랄 노 자긴 하다.
‘정확히 입장이 반대가 됐네.’
회귀 전엔 내가 외박하던 놈을 쫓아다니는 형국이었는데. 지금은 하루 말없이 외박했다고 현주인이 쫓아올 줄이야. 회귀 전의 나라면 상상이나 했었을까, 이런 상황을.
“뭐?”
“아냐.”
세상 살아봐야 안다더니, 딱 그 말이 맞다. 왜 스스로 그걸 던지려고 했었는지, 참.
***
어제 연습실에 도착하고 나니 멤버들의 장난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물론 가을이야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별이나 이선이는 ‘형, 혹시……?’ 또는 ‘역시 밀회가 맞았어’라며 헛소리를 하기도 했으니까. 그 말도 안 되는 의혹들에 술 먹어서 뻗었다고 일일이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것도 일이었다.
분위기를 적당히 수습한 후, 오늘을 위한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안무 대형뿐 아니라 라이브 연습까지 맞춰야 했기에 평소보다 2시간은 더 박혀 있었으니까.
“오늘은 사녹 없이 라이브 방송인 거 알고 있지?”
“뭐, 항상 라이브긴 했는데~”
오늘의 음방은 사전녹화가 없는 완전한 라이브 방송이었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 시작 일주일 전. 최대한 관심을 끌어야 할 때였다.
‘긴장되네.’
이 특수성 때문에 다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리허설까지 확인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무사히 끝낼 수 있겠지.
‘목걸이 문제없고.’
행운의 상징도 이상 없으니까.
사람의 촉이라는 게 어디까지 맞는 것일까. 나는 사는 동안 운이 없는 편이었기에, 촉이라는 것도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쪽이었다. 전부 내가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기분이 좀…….’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의 영역이라고 여겼었다. 안무 시작 전 스타팅 포즈를 취하면서도 시선을 내리깔아 여러 번 목걸이가 걸린 부분을 확인했다. 목걸이와 인이어가 교차된 부분도 문제가 없었다. 이유 모를 불안함은 실체가 없었다.
‘라이브는 멘탈… 괜찮아, 유은찬. 라이브는 멘탈이야.’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우리 그룹은 음악방송의 정확히 중간 차례였기 때문에 MC가 소개 멘트를 해주시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다는 점.
♬♪♬♪-
MC의 소개 멘트가 끝나고 곧 전주음이 울려 퍼졌다. 나도 곧 음악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같은 공기 밑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 [변하지 않을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라고]앞쪽에서 이선이 파트를 진행 중이었다. 주혁이와의 페어로 등을 맞붙였다가 떨어지는 안무였다. 곧 큰 보폭으로 무대 사이드로 빠진 이선이 앞으로 나오는 리온이와 손을 맞춘 뒤 사라졌다.
‘어제 죽어라 맞춰본 보람이 있네.’
몸을 낮춰 한 바퀴 돌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내 파트다.
‘응?’
무대 중앙으로 나오자마자 하이라이트 안무를 삼각꼴로 만들어 목을 잡고 있던 팔을 앞으로 뻗고 입술 옆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고는 파트 소화를 위해 입을 벌렸는데,
“입안의.”
‘어?’
“……?”
소다처럼.
뒷 파트가 먹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목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뭐야? 마이크 아까는 잘 나왔잖아?’
마이크의 송출이 끊긴 것이다.
‘큰일 났다.’
인이어에도 MR만 들려올 뿐, 내 목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다. 인이어 밖으로 내 생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어떡하지?’
이 상황을 알아챈 건지, 대형의 옆에 있던 멤버들의 시선 또한 이쪽으로 쏠렸다. 더군다나 팬석에도 당황의 정적이 이어졌다. 지금은 라이브 방송 중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방송으로 나가는 중이었고, 카메라는 돌아가는 중.
‘나는 지금 센터야. 이 무대는 멤버 모두의 무대고. 그런 무대를 망칠 순 없어.’
그러니 다시 올 내 파트 전까지 빨리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액션을 취해야 했다. 모든 판단은 멜로디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몇 초 내로 빠르게 내려야 했다.
‘아, 젠장… 모르겠다. 어떻게든 노랫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래서 목소리의 크기를 높였다. 마이크가 없어도 주변에 최대한 들릴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높였다. 영상에도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좋은 거고. 하지만 무리하게 볼륨을 높였으니 목에 무리는 올 것이다. MC를 맡은 음악방송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자꾸 거슬리고.”
당황한 티가 나지 않게 신경 쓰며 안무를 이어갔다. 표정 하나에도 연습 때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더울 때는, 시원하고, 언제든지 신경 쓰이게~”
다행히 멤버들은 내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음 파트였던 가을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와 서 파트를 진행했다. 나도 목소리를 높여 이어나갔다.
“너의 옆에서 언제나 톡톡 튈 거야.”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
“당연하지만 당연한 건 없어.”
무대 뒤쪽으로 빠질 때까지 목청을 높였다. 주혁이와 아이 컨택을 하고 나서 안쪽으로 옮길 때에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잠깐 사이지만 주혁이가 웃고 있었으니, 꽤 괜찮게 상황을 무마한 듯싶었다.
‘오늘 모니터링은 꼭 해봐야겠네.’
다시 팬석에서 응원 구호가 들려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내 마이크만 문제였다는 점일까. 내 파트를 제외하면 다른 멤버들의 라이브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만 최대한 무대에 피해를 주지면 않으면 됐다.
“그건 너일 거야.”
마지막 파트를 완창하며 바닥에 앉았다.
“와아아아-!”
곧 라이브 MR이 끊기고 팬석에서 박수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엔딩 포즈를 위해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최대한 밝게 웃었다. 오늘 마이크가 안 나온 사람 같지 않도록.
‘와, 진짜 힘드네.’
고작 한 번의 무대를 소화했을 뿐인데도 평소의 두 배 정도 숨이 차올랐다. 아마 생목으로 파트를 소화한 게 큰 이유겠지. 방송에 목소리가 잡혀야 한다는 일념으로 노래를 불렀더니 긴장이 풀린 지금에야 영향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장이 뛰는 것도 두 배 정도 빨랐다.
“감사합니다~”
다 같이 간결하게 고개를 숙인 뒤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으악, 물!’
목이 너무 말라 백스테이지로 뛰다시피 내려와 물부터 찾았다. 매니저 형이 들고 있던 생수 500ml를 받아 들어 단숨에 원샷으로 마셔 버렸다. 목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찬물이 단비같이 느껴졌다. 옆으로 이선이 다가왔다.
“와우, 생목 라이브 장난 아니던데~ 상황 판단 개빠르더라고요, 형?”
“사운드를 비게 할 순 없잖아…….”
“옛날 은찬 형이면 얼탔을 것 같은데, 솔직히 좀 놀랐어요.”
“하하… 목 아파, 근데.”
역시 원 플러스 원, 주혁이 또한 티슈를 챙겨 와 나에게 건네며 한마디를 얹었다. 주혁이에게 받아 든 티슈로 이마에 밴 땀을 찍어 닦았다. 저 멀리서 가을이가 스타일리스트 누나에게 인이어를 건네주며 걱정을 건넸다.
“그러네. 쇳소리 나네. 괜찮아?”
그냥 평소보다 성대를 많이 사용한 정도니 괜찮다. 평소보다 무리를 한 건 맞지만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니까. 적당히 고개를 주억거리자 대기실 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리며 엄청난 목소리가 귀로 내리꽂혔다.
“은찬아!!!!!!”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뻔했는데, 나만 시끄럽게 느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어우, 시끄러워…….”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며 매니저 형이 다시 등장하자 리온이 귀를 막으며 구석으로 사라졌다.
“목 괜찮냐? 마이크는 갑자기 왜 안 나왔는지 깜짝 놀랐다!”
“당연히 괜찮죠! 어차피 원래 라이브인데 그냥 볼륨만 키운 건데요. 형, 근데 어디 갔다 왔어요?”
“지금 웃음이 나와! 음향 관계자분이 부르셔서 한번 보고 왔다. 어휴, 진짜! 이것들이 제대로 일 안 하고 뭐 하는 건지~”
제 일처럼 투덜거리는 매니저 형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황에 맞게 행동한 것이지만 걱정을 끼쳤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매니저 형이 유독 오버를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내일도 음방인데… 어우! 오늘 입 꾹 닫고 따뜻한 물 마시고 있어. 형이 데워줄게! 딱 기다려!”
“괘, 괜찮은데…….”
어설프게 웃으며 형을 말려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매니저 형은 이미 지갑을 챙겨 들고 매점이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간 뒤였다.
‘쓰러진 것도 아니고 저렇게 오버하실 건 없는데…….’
인이어를 빼며 그 뒤를 황망하게 쳐다보는데 그제야 리온이 다시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근데 저도 대처 능력에는 좀 놀랐어요. 이거 누가 클립이라도 땄으면 좋겠네요. 그럼 인지도 형성에도 나쁘지 않을걸요?”
역시 이성적인 막내다.
‘사실 나도 무대 내려와서 그 생각 하긴 했는데.’
‘무사히 끝냈다’라는 안도와 동시에 ‘좀 잘한 것 같은데?’ 하는 자뻑 그 어딘가의 생각. 그 생각에 깊게 도취되기 전에 목마르다는 본능이 바로 밀려들어서 후다닥 대기실 쪽으로 뛰어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민망하군.
리온이의 말대로라면 일단 노래가 잘 송출되었어야 했다. 자잘한 실수 없이 라이브와 무대를 잘 마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게 방송에 잘 나갔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정리하자마자 봐야겠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잘 나왔으면 좋겠는데.
“제네시스 대기실이죠?”
그때, 매니저 형이 열고 간 대기실 문 앞에서 스태프 목걸이를 건 직원분이 기웃거렸다. 재킷을 벗어 스타일리스트 누나에게 건네 드리곤 곧장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직원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저희 음향팀에서 마이크를 더 잘 확인해야 했는데,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당황하셨을 텐데 죄송해서 어떡하죠…….”
아.
어쩐지 아까 매니저 형이 직원분들께 다녀왔네 어쩌네 말씀하시더니 이 문제로 음향팀이 모였던 모양이었다. 방송은 계속 진행해야 하니 아마 막내분을 보내신 것 같은데, 영 표정이 좋지 못해 내 마음까지 불편했다.
‘물론 방송사 측에서 실수한 건 맞지만 일단 무대를 잘 끝냈으니 굳이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잘 끝났으니까. 굳이 사람 하나를 갈구거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 대표로 사과하러 오신 분은 말단임이 분명하니 더더욱 말을 얹고 싶지 않았고.
“앗, 괜찮아요. 무대에는 문제없었잖아요.”
“최대한 소리 잡아내기는 해서, 방송에 은찬 님 목소리가 안 나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더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최대한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돌아 가는 직원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나보다 키도 한 뼘 정도 작았던 것 같은데 유독 그 긴장한 표정이 눈에 띌 정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