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07
107. 노력의 전염성
“폐활량? 왜? 솔로라도 노리고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호흡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은찬이 체력이 어떻니, 얘들아?”
“좋은 편은 아니죠.”
반대쪽에서 현주인이 칼같이 끼어들어 답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은 없지만 묘하게 기분은 언짢아서 가을이를 쳐다봤는데 쓱 시선을 피하는 게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였냐……?’
그래도 연습을 못 따라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끝나고 드러눕긴 했지만. 민망스러워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선생님은 방법을 고민하는 듯 미간 사이를 좁혔다. 그러다 현주인을 쳐다보며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조금 뜬금없는 전개였다.
“주인이 넌 보컬에 욕심 없니? 음색은 좋은데 좀 아깝잖아.”
자연스럽게 현주인 쪽으로 시선이 갔다.
‘하긴.’
트레이너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실 나도 현주인의 보컬 스탯은 음색 보정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고음이 잘 올라간다거나, 엄청난 성량이 있다기보다는 노래를 부를 때 놈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다. 거기다 배우 생활로 다져진 딕션이 있으니 가사 전달력 또한 좋았고.
“전 별로. 괜찮아요.”
“아…….”
현주인은 선생님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보다도 내 쪽에서 먼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스탯이라도 강제로 올려서 노래 풀스탯 찍어버려?’
어차피 4.5가 만점이니. 한 번밖에 안 남았는데 굳이 밸런스를 지켜 차례대로 올릴 필요가 있나?
“아깝네. 묶어서 수업 방향 설정해 보려 했더니만.”
“…최대한 수업 따라가 보기는 할게요.”
‘와, 무슨 일이래?’
노력에는 전염성이 있다. 과거에는 이 명제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그 시간이 비록 7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닿긴 닿는구나.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이지만 놈은 안 지킬 말은 내뱉지도 않는다. 그건 연기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 그러니 현주인이 이런 말을 한 건, 그럴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첫 합류 소식으로 대치했을 때, 이번에는 아이돌 활동을 할 의지가 충분하다 했었나…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하네.’
현주인은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에둘러 답하기는 했지만. 뭐가 됐든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지막 남았던 마음의 문까지 움틀거렸다.
“은찬이는 일주일 동안 유산소운동 매일 1시간씩 하고 와봐. 그럼 다음 주에 알려줄게.”
“지금도 하고 있긴 한데…….”
“늘리라는 소리야. 알아듣지?”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화살촉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윽…….’
얼떨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운동 늘리기 싫은데~’
춤은 좋아도 운동은 싫단 말이지. 몸 쓰는 건 똑같아도 분야가 다르단 말이야. 팬들도 몸 두꺼워지는 건 안 좋아한다고. 대부분의 여론 데이터베이스가 그랬어. 그래도 필요한 부분이라면 이 악물고는 해야겠지만.
“넵.”
“욕심이 많은 건 좋은 거야, 은찬아.”
뒤이어 트레이너 선생님의 객관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팀 내에서는 돋보일 정도인 데다 전혀 구멍이 아니지만 솔로로 나설 정도의 완벽한 실력을 원하는 것이라면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체력의 문제점을 느낀 적은 없는데… 선천적인 문제도 있으니 부단히 노력을 해야 되려나.’
어쨌든 노력해서 안 될 건 없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몸을 쓰면 된다.
“나 너 운동하는 데 데려가 줘.”
레슨이 끝나자마자 현주인의 팔을 붙잡았다. 가을이는 주혁과의 댄스 특훈이 있어 우리와 방향을 달리했다. 현주인은 황당한 듯 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매번 멤버들이 같이 운동 가자고 졸라도 헬스장은 항상 혼자 갔다. 멤버들과 어울리는 건 언제든 좋았지만 그게 유일하게 예외인 순간이 이때였다. 헬스.
멤버들처럼 근력운동을 과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유산소로 적당히 몸 관리나 하며 한정된 체력을 춤에 안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태껏 체력에 한계를 느꼈던 적은 없었다. 끽해야 저녁 내기 팔씨름 같은 데서나 밀렸지.
‘하지만 이런 데서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러니 적당한 체력은 있어도 정확한 운동 자세나 루틴을 알 리가 만무. 이건 꾸준히 운동을 하던 놈의 도움이 필요했다. 현주인 놈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혼자서도 잘 다니잖아.
“전엔 따라오래도 싫다더니.”
“체력 좀 길러야겠어.”
현주인은 무어라 말을 얹으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입을 벌렸다 곧 다시 꾹 닫았다.
“무리하지 마. 몸도 별론데.”
“일상생활 무리 없다고 했다.”
“…….”
평소에는 나를 심적으로 뒤지게 굴려도 별 양심의 가책조차 없어 보이던 놈이다. 하지만 심장에 대해 아는 만큼, 육체가 무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한 모양이었다. 이쪽에 시선조차 안 주는 태도에 살짝 속이 울컥했다.
“야, 듣고 있냐? 부탁해.”
“…….”
“부탁 좀 하자. 트레이너 선생님은 빡세서 무섭고 그냥 자세만 좀 배우고 싶어서 그래. 사례할게, 꼭!”
“…….”
“주인아~ 부탁해.”
고개를 살짝 숙여 답이 없는 놈과 시선을 맞추며 되물었다. 그제야 현주인은 한숨을 팍 내쉬고 짜증스럽다는 듯 대화를 받았다. 하긴 그래야지. 성 빼고 이름만 부르니까 나 역시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니까.
“벌크업은 싫다며?”
당연한 소리다. 팬들조차 벌크업은 절대 하지 말라는 여론이 대다수기도 했고, 사람마다 포인트가 다 다른 법이다. 몸을 키워서 이득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고.
“어. 그건 안 해. 내 셀링포인트는 그쪽이 아니니까. 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다 현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몸을 셀링포인트로 잡아야 하는 건 바로 이놈 같은 부류지.
“너는 확실히 잘 먹히지만.”
SNS 속 팬들의 여론 또한 이와 같았다.
‘새끼, 확실히 몸도 좋단 말이야. 하긴 그렇게 운동을 꼬박꼬박 열심히 하는데.’
처음에는 은찬도 이해하지 못했다. 몸이야 좋으면 좋을수록 보기 좋은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운동을 몇 번 시도하긴 했었는데 그때마다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쟤는 슬랜더인 게 포인트인데 왜 벌크업 했대? 근손실 기원 정권지르기 오늘부터 들어감.’
같은 글을 몇 번 보고서야 편협했던 자신의 편견이었다는 것과 사람마다 좋아하는 체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이돌은 팬들이 좋아하는 쪽에 이미지를 맞추는 게 기본이지. 팬들 덕에 존재하는 건데.’
암암, 그렇고말고.
아무튼 그제야 현주인은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긴 모양이었다. 짧게 입술 밖으로 한숨을 훅 불어 놈의 앞머리가 들떴다 가라앉았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현주인은 운동 가방을 챙겨 들고 나를 향해 손짓했다.
“…따라와, 그럼.”
“역시 제네시스 몸매 최강 현주인~”
“토 나올 것 같으니 그만해라.”
“네네.”
입가에서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놈이라면 적당히 가르쳐 주겠지? 벌써부터 체력 길러 안정적인 보컬 톤을 유지하는 나, 고음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내가 촤르륵 머릿속에 펼쳐졌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구만. 발전이라는 건 얼마나 좋은 건지~’
나도 추리닝만 입고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던 중이었다. 숙소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현주인이 이쪽을 보며 다시 인상을 구겼다.
“왜?”
“대신 진짜 무리하는 듯싶으면 관둬.”
“과보호냐? 네 걱정대로면 진작 무대도 못 했어.”
칠월칠석 때 불면증으로 며칠을 제대로 못 자도 지방 공연 잘만 다녔던 나인걸? 넌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먹까지 쥐어가며 호언장담하는 내 모습에 놈도 말을 더 이상 얹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곤 회사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쟤 지난번에 스킬 얘기 안 했다고 삐졌었지 않나? 백무영 선배 집으로 찾아온 날 말이야. 왜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안 하지? 현주인답지 않네.’
진작 단둘이 있는 틈을 타 질책을 하든, 추궁을 하든 할 줄 알았는데. 언제 불쑥 질문할지 몰라 항시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런 준비들이 무색하게 현주인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에서 더 안달복달할 정도였다.
“왜 백무영 선배 이야기는 안 물어봐?”
“딱히 안 물어보려고 했던 건 아닌데.”
“너라면 물어보고도 남았을 것 같아서.”
“…봐.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이렇게 이실직고하니까.”
“너 맨날 나 싫다, 싫다 해도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야.”
현주인의 코웃음 치는 소리가 귀를 찔러왔다.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정확히 형용할 수는 없는 기분. 요컨대 어차피 내가 먼저 말할 거니, 굳이 물어오지 않았다- 이 말이다.
“쯧… 관통당했네.”
“간파당했다겠지.”
“아, 나도 알아! 밈 모르냐?”
“…인터넷 좀 그만해라.”
어떻게 보면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야기해 봐.”
회사가 있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현주인의 발걸음에 맞추며 입을 달싹였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술 상대 해드렸는데.”
“…수울? 묵주반지 간수나 잘해라. 백무영이 부른다고 쪼르르 가지 좀 말고.”
“그건 다 이유가 있었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으셨길래?”
놈의 표정이 와장창 구겨졌다. 하긴 입이 닳도록 거리를 두라고 말했던 현주인인데 황당할 만도 하겠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말리면 안 된다. 손을 가볍게 말아 쥐고 입가에 댄 채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잘못한 거라곤 선배 집에서 신세 진 것밖에 없으니까.
“이번에 MC 맡으시면서 부담감 크신 것 같더라고.”
“그 새끼, 그것도 연기야.”
“어. 나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확실히 내가 알던 선배가 아니니까.”
“……?”
이번에도 백무영 찬양을 들을 줄 알았던 건지 현주인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내 입에서 이런 의심 묻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현주인은 아무 말 않고 들고 있던 운동 가방을 휙 어깨 뒤로 넘겼다.
“꼭 내용물을 갈아 끼운 것 같아.”
그래, 확실히.
그 편의점 알바생에 대해 아는 것도 미심쩍다. 그건 편의점 알바생과 나 둘만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선배가 알 수가 없다.
가능성은 단 두 가지.
첫째로 편의점 알바생과 선배가 막역히 아는 사이라 내 얘기를 나눴다.
두 번째는…….
‘회귀라기엔 성격이 다르지.’
정말 알맹이가 바뀌었다. 판타지 용어로 ‘빙의’라고 하던가.
“…흐응, 들어가자.”
현주인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때마침 회사 내 지하에 위치한 헬스장 앞에 도착했다. 내가 말해놓고는 다시 머리에서 내용이 정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가령 두 번째 가정이 맞다면, 진짜 선배는 어디에 간 거지?
***
‘주, 죽는 줄 알았다…….’
현주인의 코치는 내 생각보다 더 빡셌다. 기초체력 하나는 든든한 줄 알았는데, 그건 나에 대한 과대평가였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연습할 때 벅차다는 느낌은 없어도 왜 끝나기만 하면 드러눕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3시간 동안 안무 딴 것보다도 힘들어.’
정수기 옆에서 속절없이 밀려 나오는 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벌크업은 안 된다는 의사가 강력하게 피력된 덕분에 현주인이 헬스장에 도착해 계획했던 것보다는 운동이 많이 줄어들었다.
‘제대로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니까 버피 70개랑 러닝 머신만 뛰어. 앞으로 버피는 개수 늘려라.’
그래 봤자 평소 설렁설렁 뛰던 내가 하던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이었지만.
게다가,
‘10분 더.’
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러닝 머신 위에 올라탄 나를 향한 종용이 지금까지도 귀에 웅웅 울렸다.
‘지금은 저놈 목소리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도망칠 것 같아.’
타이밍 한번 좋게 뒤에서 저벅이는 발소리와 그 자비 없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엄살 떨지 말고 씻기나 해. 뭐냐. 너 때문에 나도 제대로 못 하고.”
“나도 열심히 한 거거든?”
놈은 그사이 제 몫의 운동도 다 끝낸 모양인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자비 없는 놈… 살살 해달라니까…….’
회귀 전이긴 하다만 배우 스케줄 외 각종 개인 스케줄, 그 틈에 술도 마시고 스캔들도 터뜨릴 수 있었던 체력의 근원은 저거구만.
“야, 같이 가……!”
무릎을 짚고 있던 양손을 털고 상체를 일으켰다.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는 놈이 새삼스럽지만 참 경이롭긴 했다. 미친놈.
‘스킬 얘기도 곧 할 것 같은데, 대화 나눌 때 지뢰 주의해서 나쁠 건 없으니 선호도 파악 한번 해볼까.’
전용 스킬이라 했으니 내심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지난번처럼 호감도 등락 같은 스킬만 아니라면 일단 뭐가 나와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한 번만 부탁한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쓰여줘.’
확률까지 나와 있는 마당에 랜덤인 걸 알면서도 묵주반지를 매만지며 되뇌었다. 곧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그 밖으로는 샤워실로 먼저 들어가는 현주인의 뒷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