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1
11. 데뷔 준비(5)
“데뷔는 청량하게 가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 너희 나이대에도 어울릴 거라고 하고. 이게 그 초안인데 놀이공원 캐스터 알지? 그런 느낌으로.”
웬일이지? 설명만 들었는데도 느낌이 좋다. 이렇게 좋은 선택지가 새로 주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청량이라고 해서 마냥 밝고 활기찬 느낌이 아니라… 으음, 그냥 설명만 들어서는 모를 테니 일단 데모곡부터 들어봐라.”
은찬은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대표님이 보여주시는 패드 위에는 이번 곡에 대한 간략한 컨셉 PPT가 띄워져 있었다. 무난하고도 완벽해서 이상할 지경이다.
과거랑 다르게 컨셉이 하나 더 있다길래 솔직히 기대하기보단 긴장했는데, 이건 칠월칠석 데뷔곡인 오작교와 비교 선상에 두는 게 미안할 정도다.
딱 데뷔 초 남자 아이돌그룹이 향유하기 좋은 청량함과, 전체적으로 색을 다양하게 사용해서 심심하지만은 않은 몽환적인 느낌까지.
이렇게까지 마음에 쏙 들 수가 없었다.
‘대표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프로듀싱 능력은 영 아닌 것 같아.’
원래 직급마다 잘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기 마련이니까. 대표님은 회사 운영만 잘하시면 되지.
갑자기 왜 이런 선택지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이 정도면 이번에는 아이돌로 성공해 보라고 하늘이 날 도와주는 게 틀림없다,
“어때?”
컨셉부터 맘에 쏙 들었는데 데모곡을 듣고 난 뒤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대표님, 제가 싫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다고 의견을 물어보세요.
무조건 이 컨셉으로 해야 된다! 이거라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다!
“뭐… 제네시스에는 남자다운 게 어울리겠다 싶은데. 너는 어때?”
“두 번째가 좋아요!”
“응?”
“대표님, 저는 무조건 이쪽 청량한 컨셉이 좋아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잘해볼게요!”
“…흐음, 글쎄… 솔직히 나는 네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좋아요, 정말!”
은찬이 눈을 빛내며 양손으로 대표님의 손을 꼭 붙들었다.
조금 무례한가 싶기도 했지만, 손이라도 붙들지 않으면 대표님이 하늘로 날아가실 것 같았다.
그렇게 대표님 손을 붙든 채 눈을 빛내고 있던 순간이었다. 눈앞에 회귀한 첫날 보았던 시스템창이 다시 등장했다.
대표님과의 짧은 거리 사이에 등장한 시스템창에 화들짝 놀란 은찬은 급히 대표님을 붙들고 있던 손을 떼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눈앞의 시스템창을 읽어나갔다.
[ 업적 ‘들었다 놨다’ 달성! ]* 일정 기간 내, 호감도 변동 수치 100 이상 충족 *
[ 축하합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지금부터 ‘뽑기’ 시스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건 또 뭐야?’
시스템에 적응이 좀 됐나 싶었더니 새로운 게 또 나타났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갑작스레 이런 화면이 떠도 처음만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황당할 뿐이지. 은찬은 제 앞에 나타난 시스템창의 글자를 재빨리 읽어나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청량으로 밀어붙였을 때 대표님 꽤나 당황하셨나 본데……?’
근데 이게 축하할 일이야? 저게 –100%를 찍은 거라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잖아.
얼결에 업적 달성을 해서 뽑기 시스템인지 뭔지를 얻긴 했지만, 아이돌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 번거로운 게 늘어났을 뿐이다.
‘뽑기라…….’
별이가 게임하면서 특정 캐릭터를 뽑겠다고 돈을 퍼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소위 ‘가챠’라고 하는 것 같던데.
심심할 때 눈팅 하던 SNS에서도 게임 캐릭터나 무기를 뽑아야 해서 현질했다는 말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냥 로또 같은 확률 싸움 아냐?’
운이 좋으면 되잖아.
‘내가 운이 좋은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제법 받아들이기 쉬운 기능이라 은찬도 곧장 사용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눈앞 시스템창의 글자를 다 읽은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시스템창의 페이지가 옆으로 넘어갔다.
“은찬아?”
“아!”
그와 동시에 행동을 멈춘 은찬이 걱정스러웠는지 대표님이 이름을 불러왔다. 뭔지는 몰라도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
[획득 가능 스킬 리스트](스킬 레어도 – 획득 확률)
[전용] ★5 – 0.00001 %★5 – 0.0001 %
★4 – 1 %
★3 – 10 %
★2 – 33 %
★1 – 55 %
[ system : 모든 스킬은 획득 시 1회 사용 후 다시 반환됩니다. ]-현재 유은찬 님의 뽑기 사용 가능 횟수:1
—–
상황이 급박해서인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해도 대강 눈치로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상황으로 보아 지금 나는 ‘업적’을 달성해 이 뽑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듯했다.
[ 주의! 뽑기를 진행하신 후, 사용한 횟수는 절대 반환되지 않습니다. ]* 이 안내는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어어, 그래.’
애초에 환급이고 뭐고 할 생각도 안했는데. 빨리 돌려.
순간적으로 숨이 차올랐으나 아주 잠시뿐, 은찬의 눈앞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화면이 나타났다.
[ ★5 마인드 컨트롤 – 1분 동안 상대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거 사기 스킬 아니야? 사람 마음을 이렇게 갖고 놀아도 돼? 게다가,
‘…첫술에 5성이 나온다고? 신규 유저 전용 이벤트 같은 건가?’
보통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인물들 따라잡으라고 이런저런 혜택 같은 걸 주기도 하니까.
아무튼 지금은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했고, 이것저것 가리고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은찬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밑져야 본전이고, 지금은 청량 컨셉이 간절하니까 한번 써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은찬이 대표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무조건 청량 컨셉이 옳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거창한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 ‘오작교’ 컨셉만 아니면 되니까. 이사님이 제안하셨다던 두 번째, 청량 컨셉으로 결정해 주세요.
그때였다.
“역시 은찬이 네 말대로 후자가 나은 것 같다. 최 이사가 보는 눈은 있지.”
어?
주어진 스킬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먹힐 거라고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런데, 청량 컨셉에 호의적이지 않던 대표님이 진지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시다니.
“…그렇죠?”
은찬이 슬쩍 떠보듯 되묻자 대표님은 급기야 첫 번째 컨셉이었던 오작교 PPT 파일을 태블릿에서 삭제했다.
“어, 첫 번째는 누가 기획했더라? 아, 난가? 아무튼 후자로 가자. 내가 미쳤었지. 고민할 걸 해야 하는데.”
이렇게 효과가 잘 먹힐 줄은 몰랐는데.
[ system : 1분 경과되었습니다. 스킬 효과가 사라집니다. ]당황스러웠다. 은찬이 멍하니 대표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은찬을 흘겨본 대표님은 은찬이 감격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물어왔다.
“…그렇게 마음에 드냐?”
이럴 땐 그렇다고 해야지.
“대표님, 진짜 최고예요. 저 진짜 빨리 활동하고 싶어요.”
대표님은 고개를 살짝 돌려 은찬의 눈을 피했다.
‘영혼이… 없었나?’
어쨌든 상황은 해결했다. 마침 운 좋게도 5성이 나와줄 줄이야.
동아줄은 잡았으니 이제 그걸 타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결국 잠이 하도 안 와서 3시간 정도밖에 못 잤는데도, 지금은 피로가 싹 날아간 기분이었다,
“은찬이 네가 귀여운 소리를 다 하고 별일이네. 그럼 우선 A&R 팀장한테는 이 컨셉으로 전달할 테니까, 오후 회의에서 다른 멤버들 의견 들어보고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다시 얘기하자. 컨셉 초안 파일 메시지로 보내줄 테니 네가 애들한테 미리 설명해 줘도 좋고.”
“네!”
은찬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역시 데뷔곡은 정석대로 청량이 최고지.
청량하고 상큼하게 데뷔해서 이후에 ‘소년에서 남자로 돌아온’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게 남자 아이돌의 정석 루트 아닌가. 멤버들이야 어떻게든 설득할 의지가 차고 넘쳤다.
왜, 그런 아이돌계 명언도 있지 않나. 실력이 거지 같으면 무대 위에서만 거슬리지만, 컨셉이 거지 같으면 24시간 거슬린다고. 그러니 멤버들도 싫어할 수가 없지 않겠어?
***
대표실의 문을 닫고 나와서야 아까 놓쳤던 뽑기 시스템의 세세한 부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업적을 달성하면 뽑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무슨 게임 같잖아. 하트랑 별도 보이는 마당에 이제 와서 이상할 거야 없지만.’
방금 뽑기 시스템으로 획득한 스킬에 대해서만 설명해 주는 걸로 봐서는 해당 스킬을 획득해야 설명을 볼 수 있는 듯했다.
’다른 스킬들은 어떻게 좀 써먹을 수 있으려나?’
오늘은 다행히 저 말도 안 되는 확률의 5성 스킬이 나와 도움을 받기는 했다만, 나머지는 무슨 스킬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뭐, 밑도 끝도 없는 호감도보단 나은 것 같네.’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는 뽑기 시스템이었지만 그렇다고 마구 돌릴 욕구가 들진 않았다. 저런 거에 홀리면 그냥 도박이랑 다를 바 없잖아? 사행성 조장이 이런 거라고.
어차피 지금은 뽑기 사용 가능 횟수도 0이다. 어떠한 업적을 달성해야 주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도 않으니.
***
대표님과의 독대를 마친 은찬은 개인 보컬 레슨을 받은 뒤, 곧바로 멤버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예정된 오후 미팅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A&R 팀장님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팅이나 연습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게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닌지라 그다지 당황스럽진 않았다.
문을 조용히 닫고 들어온 은찬은 고개를 숙여 팀장님께 인사를 하고 난 뒤 주변 멤버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들 확인했어?”
“네.”
멤버들이 주목하고 있는 태블릿 속에는 컨셉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참고 이미지들이 띄워져 있었다. 오전에 대표실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자료 같았다.
‘컨셉이 하나니 따를 수밖에 없겠구나.’
은찬은 팀장님이 넘겨준 태블릿을 받아 들고 멤버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이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다른 멤버들에게 전달된 건 오로지 청량 컨셉뿐인 것 같았다.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중에 오작교 컨셉을 원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첫째, 현주인의 존재는 일단 보류. <<CLEAR!!
둘째, 그룹명 칠월칠석만은 피한다. << CLEAR!!
셋째, 데뷔곡 컨셉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 CLEAR!!
이렇게 된 김에 우리 제네시스, 단독콘서트에 꼭 서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