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2
12. 데뷔 준비(6)
뮤직비디오랑 재킷 촬영까지 남은 기간은 3일.
사실 회귀 전에는 가을이가 유독 오작교 컨셉을 좋아했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파워풀한 컨셉을 하고 싶어 하긴 했어.’
녹음을 마친 지금까지도 가을이의 표정이 영 별로인 게 그 증거였다. 연습을 진행하면서도 쭉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고.
불만을 표할 생각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티가 안 나는 것도 아니라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감정까지 납득되는 건 아니니 이해는 하지만.
‘내가 스킬을 쓴 탓이니까… 조금 미안하네. 더 잘 챙겨줘야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작교로 데뷔하면 망하는 걸 아는데 그걸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으니까.
은찬은 멋쩍은 듯 손가락을 매만지다 막 녹음실 문을 닫고 나오는 가을을 밝게 반겼다.
“가을이 너, 표정은 영 안 좋더니? 뭐야, 완벽하잖아!”
“…일은 일이잖아.”
역시.
회귀 전에도 가을이는 칭찬에 민감했다. 내뱉는 말은 삐딱선을 타면서도 귀가 붉어진 게 내가 알던 연가을 그대로였다.
은찬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씩 개구진 웃음을 지었다.
“연가을, 노래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네가 녹음하는 거 듣다가 다음에 내 차례인 거 까먹을 뻔했어. 관계자분들도 칭찬 많이 하시더라.”
“관계자분들……? 무슨 소리야?”
“내 파트 녹음 끝나고 나오니까 계시던데? 우리 녹음하는 거 보러 오셨나 봐. 특히 최 이사님이 가을이가 이 컨셉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얼마나 칭찬하셨는데.”
“…그래?”
정확히는 ‘가을이는 이런 청량한 컨셉도 어쩜 저렇게 소화를 잘하냐’라고 하셨지만.
어찌 됐든 칭찬이니까 같은 말이라고 치자.
***
은찬은 이번 앨범 곡 녹음 중에서도 마지막 순서였다.
뒷정리를 도와드리고 인사를 하며 나오는데, 때마침 대표님의 조카이자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신 최미영 이사님이 은찬을 향해 인사했다. 다 지켜보고 계셨던 건가 싶어 좀 당황스러웠다.
‘왜 여기 계신 거지?’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최 이사님은 본인 스케줄 때문에 바쁘셔서 우리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으셨으니까. 이후 함정원네 유토피아가 데뷔할 땐 나서서 홍보를 하시긴 했어도.
상황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것도 회귀로 인한 나비효과겠거니 싶어 그러려니 했다. 그것보다는 이사님이 건넨 말들이 의아해서 유독 기억에 남았다.
오늘 녹음에 대한 피드백, 칭찬, 기대한다는 말과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 그리고,
‘그러고 보니 은찬이 소년미 팬이었지? ‘
‘네? 네.’
‘저번에 소년미 무영이랑 같이 촬영하는데, 걔가 글쎄 나한테 미닛츠 이야기를 먼저 하더라고. 너희 주목받고 있나 봐. 덕분에 데뷔 컨셉안 잡을 때도 도움이 됐어. 이거 내가 강력 추천 한 건데, 너희도 좋아하는 거 같아 다행이네~’
소년미 백무영 선배가 미닛츠를? 그 잘나가는 사람이 신생 소속사 공개 연습생들을 왜? 아니, 무엇보다 어떻게 알고 계신 거지? 이런 의문들과 함께 어떻게 회귀 전과 다른 상황이 벌어졌던 건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컨셉 선택지가 주어졌던 건가…….’
타이틀곡 오작교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게 백무영 선배가 최 이사님께 살짝 언급해 주신 것 덕분이었다니.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미닛츠를 알고 계시다니… 그렇다면 회귀 전에도 우릴 알고 계셨을까?’
과거에 소년미 선배님들 실물을 영접한 건 음악방송 대기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듯 마주친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은찬은 긴장한 탓에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를 버벅거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에 선배를 뵙게 된다면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
이번 생도 과거처럼 흘러간다면, 소년미 선배님들의 다음 정규앨범과 우리 데뷔곡 활동 시기가 일주일 정도는 겹칠 거다. 이번에는 말 더듬지 말고 인사 제대로 하는 거야, 유은찬.
그와 동시에 ‘내가 공개 연습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선배가 ‘유은찬이라는 애도 있구나’ 하고 알아주셨을 테니.
그래도 최 이사님께 먼저 말을 꺼내실 정도라면 제네시스가 데뷔했을 때 뮤직비디오 한 번 정도는 봐주시지 않을까? 그럼 나도…….
‘…또 쓸데없는 기대 하고 있네. 꼭 이러다 일을 망치지.’
일단 데뷔부터 무사히 마치고 나서 생각하자. 데뷔 이외의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
제네시스 멤버들은 차근차근 베일을 벗어가는 중이었다.
첫 타자가 비공개 연습생이었던 나였고, 오늘 자정에 올라온 마지막 멤버가 주혁이였다.
미닛츠 중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게 현주인과 서주혁이었으니, 제네시스 티저도 주혁이를 마지막으로 공개하는 게 맞다. 팬이 아니더라도 주혁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꽤 많았으니까.
[아, 그 방송에서 눈매 사납고 춤 잘 추던 걔?]보통 이런 식으로.
데뷔는 엎어졌을지언정,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 시작부터 파이널까지 부동의 1위라는 타이틀이 어디 가진 않았다.
덕분에 케이팝에 관심이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주혁이를 알음알음 다 알고 있기도 했고. 회귀 전에도 주혁이는 6번째로 티저가 나왔던 터라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칠월칠석 때와 다른 점이라 하면, 마지막 멤버가 7번째 현주인이 아니라 6번째 서주혁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이야.
“하아…….”
대기실에 앉아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은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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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TS Ent. @MINITSneighbor
2×0707 GENESIS Release !
제네시스의 마지막 멤버를 공개합니다 😀
x제네시스 xgenesis
xAreYou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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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무나다팜
@efdzcji8
ㅅㅂ 서주혁 드디어 데뷔함?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ㅠㅠㅠ 역시 존버는 승리한다
그 미친X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
ㄴ 현주인데뷔존버중
@Rskdfod2dka
??? 마지막……? 얘네 글 잘못 올린 거 아님?
뭔 깡으로 데뷔조에 현주인이 없음? 실수겠지ㅋ
…
ㅆㅂ농담하지 말고 현주인 내놔 김광춘 미친놈아
ㄴ 잡덕입니다
@iamjobdeok
뭐야 현주인 어디 있음?
나 걔만 기다렸는데?
6명이 끝이야?
아니 나머지가 싫다는 건 아닌데ㅎㅎㅋ…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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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정에 안 보길 잘했다. 그때 봤으면 쪽잠도 못 잤을 게 뻔했다.
가뜩이나 오늘은 제네시스로서 진행하는 첫 촬영 날인데 잠 못 자서 일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 반응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잘 안 되네.’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덕분에 현주인이 대중들에게 익숙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른 멤버의 티저를 공개하는데 현주인만 찾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현주인도 배우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앞으로 제네시스로 활동할 우리 여섯 명에게도, 그리고 배우로 활동할 현주인에게도 결코 좋은 반응은 아니다. 맘 같아서는 편지라도 써서 보내 드리고 싶었다.
현주인은 지금 웹드라마 잘 찍고 있고요.
앞으로도 배우 외길을 걷고 싶다고 했답니다.
다들 배우 현주인의 선택을 존중해 주시고 꽃길을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현주인이 인지도 좋고 압도적으로 잘생긴 외모는 맞지만 이렇게 아쉬워할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예상보다 반응이 더 격하잖아. 은찬은 심각한 얼굴로 들여다보던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뒀다. 계속 쳐다보고 있다간 앞으로 있을 촬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으니.
“으으…….”
그때, 반대편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은 은찬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을 옮기자, 가을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리쉬고 있었다.
“…은찬 형, 나 이 머리 안 어울리지 않아? 역시 이런 컨셉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까부터 거울만 들여다본다 싶더니, 아직도 그러고 있었네.
가을이는 어제 밝은 연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생애 첫 염색이었던 모양인지, 어제부터 하도 어색해하길래 계속 칭찬을 해주었는데 아직까지도 새로운 자신의 모습과 내외하는 중이었다.
칠월칠석 때는 활동하는 6년 내내 이 연갈색 머리만 고수했던 가을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흑발 연가을보다 이쪽이 더 익숙했다. 가을이 너 이제 여기에서 키랑 덩치만 좀 커진다고.
‘내 눈에는 이게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게 이미지랑 딱이잖아. 원래도 소위 말하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머리색까지 연갈색이 되니 마치 골든레트리버 같았다. 이쪽이 이미지나 컨셉 잡기에도 좋아 보이고.
“찰떡이라니까. 너무 잘 어울려서 멀리서부터 멍하니 봤다고.”
“…놀리는 거지?”
“이게 형 말을 못 믿네? 난 진짜로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회귀 전에도 가을은 팀 내에서 인기가 상위권이었다.
당연했다.
수요층이 뚜렷하기도 했고 딱히 사고 치는 일 없이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잘했으니. 보컬 능력이야 워낙 뛰어났고. 그러니까 자신감을 좀 가져도 좋을 텐데.
‘칠월칠석 때는 가을이한테 많이 기댔으니까 이번엔 나도 의지할 수 있는 형이 되어줘야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귀하기 전 최근 2년 정도는 가을이에게 기댔던 기억밖에 없어서, 가을이는 이보다 더 띄워줄 수도 있다. 솔직히 6년까지 버틴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가을이가 없었다면 더 일찍 아이돌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가을이 형, 이제 형 차례라는데요.”
“아, 응. 갈게.”
방금 막 개인 촬영을 마친 주혁이 가을에게 다가와 스튜디오 쪽을 가리켰다.
가을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앞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추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워 보이지만 잘 해내겠지. 과거에도 그랬듯이.
‘연가을 파이팅……!’
속으로 가을이에게 응원을 보내던 은찬의 옆으로 주혁이 와 앉았다. 촬영이 힘들었는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라 옆으로 자리를 좀 더 내어주자 주혁이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형, 고마워요, 저 눈 좀 붙일게요…….”
은찬은 품고 있던 쿠션을 주혁에게 내밀었다. 앨범 재킷 촬영이 끝난 뒤에는 뮤직비디오 촬영이 남아 있으니, 잠시라도 쉬려면 지금이 기회다.
다만, 촬영 일정이 빡빡했기에 대기실에 모여 있어야만 했다. 고로 조용할 틈이라곤 없었다.
“주혁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멤버들 중 가장 말 많은 놈이 올 줄이야. 그새를 못 참고 이선이 이쪽으로 다가와 주혁의 옆에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담당 선생님한테 이것저것 요청하는 거 같더니, 수정 메이크업이 벌써 다 끝난 모양이다.
[ 도이선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전부 다 평균 이상인 게 이선이답다.’
“…넌 내가 잠깐 쉬는 것도 못 보겠냐?”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고 그래? 너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거지.”
불쑥 제 앞으로 다가온 이선의 등장에 주혁은 몸을 뒤로 슬슬 물렸다. 졸지에 제 어깨에 닿는 주혁의 무게감에 은찬도 자연스럽게 그 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얘네는 붙어 있기만 해도 티격태격해서 굳이 끼고 싶지 않았는데.’
슬쩍 바라본 주혁의 얼굴이 종잇장 구겨지듯 찌푸려져 있었다.
“…야, 지금 나랑 은찬 형 쉬는 거 안 보여?”
‘아니, 주혁아… 나는 끌어들이지 말아줘.’
회귀 전, 이 둘 사이에 끼어서 중재했다가 뼈도 못 추렸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야…….
“주혁아, 한 번만 봐봐. 진-짜 중요한 거야.”
“…뭔데.”
“오늘 나 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하, 너무 새삼스러운가. 근데 헤어, 메이크업, 의상 다 받고 나니까 평소보다 더 잘난 거 같아. 이따 재킷 사진 결과물도 장난 아닐 텐데.”
“또 그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리 가기나 해. 너 무거워.”
“무슨 소리야. 저번엔 나보고 살 빠진 거 같다며!”
“…됐고. 비키기나 해.”
“침묵은 긍정이라던데~ 아, 은찬 형, 저 어때요? 메이크업 쌤도 저 오늘 스타일링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시던데.”
“아, 응. 뭐, 이선이야 항상 잘생겼지.”
얼결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은찬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다. 빈말도 아니고.
칠월칠석 때도 현주인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빛을 못 받았을 뿐 이선이도 잘나긴 잘났다. 현주인이 좀 더 선이 굵은 정석 미남 쪽이라면 이선이는 예쁘장한 꽃미남 계열에 가까워서 그 수요층이 조금 한정적이었을 뿐이다.
사실 그것보다도 이선이가 입을 열면 조금 깨는 경향이 있어서 과묵한 현주인 쪽이 더 잘 먹혔던 게 아닐까 싶지만. 그런 이선의 성격과 이번 컨셉이 잘 어울렸으니 이렇게 신나 할 만도 했다.
‘이선이는 애초부터 이런 밝은 컨셉 위주로 가야 했어.’
이선은 놀이공원 캐스터 컨셉을 말 그대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중이었다.
지금의 이선은 정말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선이 맞춤 컨셉을 선택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키 180이 훌쩍 넘는 남자에게 하늘색 반팔 셔츠와 스카프, 남색 반바지가 이렇게 들뜸 없이 잘 어울릴 줄이야. 거기다 반짝거리는 금발까지 더해져, 마치 하나의 세트 같았다. 스타일리스트 실장님께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냐?
‘물론 저 얼굴이 완성이겠지만.’
회귀 전에는 주로 현주인과 어울리는 파워풀하고 어둡고 무거운 컨셉을 잡아서 전체적으로 더운 느낌이 강했다. 이선이와 현주인의 이미지는 거의 상극이었으니, 회귀 전 이선이가 빛을 못 볼 만도 했다.
“나도 우리 결과물 기대돼.”
…괜히 울컥하는데? 우리 애들도 청량한 컨셉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왜 그간 그런 요상한 컨셉만 해와서 빛을 못 본 건지. 다시 생각해도 억울했다.
“으악!”
“뭐, 뭐야! 주혁아, 왜 그래?”
“서주혁, 좀 보라니까. 여기 이거, 메이크업 쌤이 점 강조해 줬어.”
주혁이 왜 갑자기 냅다 소리를 지르나 했더니, 이선이 주혁의 앞으로 얼굴을 쑥 내밀고 있었다. 제 왼쪽 눈 밑의 점을 가리키는 자세가 거의 머리로 박치기라도 할 것 같았다.
제3자인 내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울 정돈데, 주혁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쟤네는 맨날 저러고 놀다가 싸우면서도 잘 지내는 게 진짜 신기해.’
하긴 과거에도 주혁이가 다쳐 활동 중단을 했을 때, 본인이 간호하겠다며 이선도 활동 중단을 선언했을 정도니까. 그 사이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독하긴 할 테다.
주혁은 당황스러움과 어이없음이 뒤섞여 기묘해진 얼굴로 이선의 어깨를 밀며 짜증을 냈다. 문제는 이선이 밀리지 않는 탓에 오히려 주혁이 뒤로 밀리는 모양새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쪽으로 더 붙어온다는 소리였다.
‘얘들아… 형 뒤에 공간이라고는 벽밖에 없는데… 안 보이는 건 아니지?’
그래, 내 목소리 따윈 안 들릴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이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건가? 그래도 내가 형인데……?
“미친놈아, 너 때문에 의자 밀리잖아. 좀 비켜!”
“아니, 한번 보라니까? 안 그래도 메이크업하면 눈 밑 점 가려지는 거 아쉬웠는데 이거 살려보자고 하시면서 강조해 주셨어. 예쁘지?”
“치우라고, 씨……!”
주혁은 기어이 팔을 뻗어 이선의 얼굴을 밀어냈다.
‘이선이 방금 메이크업 수정 받고 오지 않았나?’
효과는 확실한 것 같았지만. 덕분에 벽에 눌려 반건조 오징어 신세가 될 뻔한 걸 겨우 면했다.
“앗, 메이크업한 건데 만지면 어떡해!”
“어쩌라고? 다짜고짜 얼굴 들이민 네 잘못이지.”
핸드폰 액정으로 얼굴을 비춰보던 이선이 작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선이 살짝 시무룩한 듯한 표정을 짓자, 주혁은 조금 미안했는지 잠시 눈을 좌우로 흘기며 이선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 이선의 풀어진 단추 근처의 주름을 손으로 툭툭 치며 슬쩍 뒤로 밀어냈다.
“옷이나 잘 입어.”
“응!”
이런 솔직하지 않은 화해의 제스처에 금세 표정을 푸는 이선도 이선이지만. 가만 보면 주혁도 참 별나다 싶었다.
이선이야 주혁이 중3 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부터 주혁을 동경해 왔으니 그렇다 쳐도, 주혁은 아니었으니까.
‘뭐, 3년 내내 같은 반 친구였으니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저 둘과 현주인이 다니는 예술고등학교는 입학할 때 과를 정한 뒤 졸업할 때까지 반이 그대로 쭉 이어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사이가 가까워질 만도 했다. 심지어 회사도 둘이 같이 들어왔고.
주혁도 처음엔 들러붙는 이선의 행태에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이제는 완벽히 적응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저 둘은 칠월칠석 때도 세트처럼 붙어 다녀서 간혹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싸웠나 싶을 정도였다.
“꺼져, 이제.”
“넵. 메이크업 쌤한테 주혁이가 지워 버렸으니까 수정해 달라고 해야지.”
“…하…….”
그 둘을 보고 있던 은찬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다를 게 하나도 없네, 얘네는.
“은찬아, 이리로.”
“아, 네!”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최 이사가 은찬에게 손짓했다. 은찬은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대기실 밖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시지?’
대기실 안에 들어와서 말씀하실 법도 한데, 굳이 나만 따로 불러내서 하실 이야기라.
‘멤버들에게는 아직 얘기하면 안 되는 사안인 건가?’
애초에 최 이사님이 우리 앨범에 참여하신 것 자체가 처음인지라 짐작 가는 것도 없었다.
은찬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최 이사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너희 쇼케이스 말이야.”
“아, 네!”
쇼케이스라면 7월 7일? 그때 뭐가 더 있나?
“그날 노래랑 뮤직비디오 풀리고 오후 7시에 시작하거든. 알고 있겠지만.”
“네.”
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소속사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통은 오후 6시에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한 시간 뒤인 7시에 쇼케이스를 시작하곤 하니까. 우리 소속사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날 쇼케이스에 특별 행사 MC를 넣으려고 해.”
‘MC?’
은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칠월칠석 때는 진행자 없이 쇼케이스를 진행했었다. 멤버들끼리 자체 토크를 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는데 진행자가 따로 있다면 좀 더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을 테니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그거 주인이가 할거야.”
“…네?”
주인? 내가 아는 주인이라곤 한 명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