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23
123. ㅎㅈㅇ(1)
“뭐야?”
밥 잘 먹고 와서 이게 무슨 봉변인가.
아무리 SNS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이건 너무 우리에게 직격탄인 알계였다. 일단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두어 번 반복했다. 그리고 좀 진정을 시킨 뒤 다시 한번 자세하게 SNS 속 게시글을 들여다보았다. 이 익숙한 내용, 익숙한 구성, 익숙한 초성.
‘ㅎㅈㅇ?’
초성을 밝힐 거면 제대로 밝히든가. 나만 해도 아는 ㅎㅈㅇ이 두 명인데!
당장 떠오르는 두 명. 현주인, 함정원.
하필이면 내용도 ‘사적 연락’이어서 머리가 아팠다. 과거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오버랩 되는 상황이 여럿 있었으니까. 심지어 사고 처음 치는 것도 아니라는 말과 트러블메이커라는 단어 선택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마음을 가다듬고 연예계에서 저격을 당할 만한 ‘ㅎㅈㅇ’을 떠올려 보았다. 그럼에도 두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답글에도 달려 있듯이 사람 이름 중에서도 흔한 초성이 아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 테고.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니, 내가 현주인 옆에 얼마나 붙어 다녔는데 그럴 리가 없구만. 대체 누구야?’
이번에는 그럴 리가 없다. 제네시스 현주인은 아이돌 활동에 진심이다. 이건 단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부러 구설수 안 오르려고 약속도 안 잡고 열심히 활동하는구만. 활동한다고. 어떤 모함이냐고, 이게. 짜증 나네.’
현주인이 나에게 개차반인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현주인이 얼마나 아이돌 활동에 진심인지 알고 있다. 오늘 아침의 그 기쁜 눈빛은 거짓일 수가 없었다. 칠월칠석 현주인의 눈빛과는 아예 딴판이란 말이다. 그러니 현주인일 리가 없다.
‘내가 멤버를 믿어야지. 게다가 알계는 실명으로 올리는 것도 아닌데 막말로 누가 이런 걸 올렸을 줄 알고?’
항상 증거가 뒷받침되어 빼도 박도 못하던 칠월칠석 때와는 달랐다. 그냥 무지성 심증글 하나. 웅웅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여론을 조사하기 위해 인용된 게시글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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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 @norriiea
진짜 짜증 나게 뭐 하자는 거야 이럴 거면 이름 언급을 해 애먼 애 머리채 잡고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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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mmmmyapricot
제네시스 ㅎㅈㅇ 아니라고요~ 애먼 애 머리채 잡으러 Q&A까지 놀러 오지 마세요 ㅋㅋ
맨날 숙소 일 숙소 일 하는 놈 머리채를 왜 이렇게 잡고 싶어 하는 거야
신인한테 열등감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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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꺼솟 @RHplusMINITS
ㅎㅈㅇ 초성 두 명이잖아 지금 프싱 ㅎㅈㅇ이랑 제네시스 ㅎ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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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 @Rdfkao20xza
증거 사진 첨부해 ㅋㅋ 알아서들 판단하길.
행복한 덕질해라~
(사진) (사진)
공유 205 인용된 글 1,890 마음에 들어요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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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Rdfkao20xza 님에게 보내는 답글
프싱 ㅎㅈㅇ이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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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욕설과 의심이 뒤엉킨 인용된 글 속에 증거 사진 두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사진을 클릭해 자세히 확인했다.
‘현주인은 절대 아닌데?’
누군가의 얼굴이 배경 화면인 사진 한 장과, 연락을 하며 웃는 사진 한 장. 얼굴이 자세히 나온 것은 아니지만 실루엣만으로도 확신했다. 이건 현주인이 아니었다.
‘현주인은 거의 1.5배는 더 크지. 키도 덩치도 아니야.’
그를 증명하듯 이 증거 사진이 첨부된 게시글의 인용된 글에는 다행이라고 언급하는 현주인 팬분들이 여럿 계셨다. 대부분 우리 주인이는 아니네, 이미지 실추시킨 새끼 다 캡처했다, 왜 헷갈리게 글을 올리냐, 피해 끼친 건 어떡할 거냐. 이런 유였다.
‘아, 이 교복은?’
진상을 파악하고 싶어 사진을 확대했을 즈음이었다. 입고 있는 의상이 프로듀싱 365 출연자 전원이 입는 교복이었다. 문득 쎄한 기운이 등골을 스쳐 갔다.
‘아, 함정원…….’
100% 함정원이다.
얼마 전 인성 논란도 한번 났던 것 같은데 하필 이 시기에 이런 게 뜨다니. 이 정도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얘가 이렇게 몰이 당할 정도로 못된 애는 아닌데.’
나한테야 어떤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제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잘하는 스타일이다. 회귀 전 유토피아 때도 그랬고.
‘마음이 조급해서 예민해졌나…….’
하지만 그건 내부의 문제다. 도대체 방송 태도가 어떻길래 이 정도로 미움을 받는 거지? 첫 순위 1위라 견제를 당하는 건진 몰라도 초장부터 안티 세력을 너무 많이 확보했다. 걱정할 필요도 없는 내가 신경이 쓰일 정도다, 이건.
‘그런데 이것만으로 사적 연락을 했다고 단언할 수 있나? 명확한 사진도 아닌데.’
게다가 증거 사진이라고 첨부된 사진조차 불분명하다. 누군가의 사진이 배경 화면이고, 누군가와 연락하는 대화창의 형태가 보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희미해서 상대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함정원의 실루엣 자체도 희미한걸.
‘너무하네, 진짜.’
하지만 SNS상에선 이미 기정사실화 된 모양이었다. 한참을 찌푸린 얼굴로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형~ 방송 본다며!”
“아, 갈게!”
방 밖에서 가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엎어두고 거실로 향했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좀 신경 쓰이긴 하네.’
까놓고 회귀 전 날 앉혀두고 조롱거리로 만든 애인 데다, 엄밀히 말하면 남이다. 멤버도 아니고, 비즈니스 상대는 더더욱 아니고, 이미 신뢰도 0%에서 시작한. 게다가 난 회귀를 했으니 이전 일들은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속이 넓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향한 실체 없는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게 누구든.
‘나도 많이 힘들었으니까.’
옳지 않은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
짜증스럽게 소파에 앉자 옆에 있던 가을이 캔 사이다를 까며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은찬 형, 맥주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앗, 까먹었다.”
“으휴, 가져와 줄게. 기다려.”
“땡큐땡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손이 허전한 것도 잊고 있었다. 곧바로 일어난 가을이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 안쪽에 넣어두었던 맥주 한 캔을 들고 옆으로 와 앉았다.
“오오, 시작한다.”
곧 백무영 선배의 등장과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반사적으로 눈가가 움찔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표정을 관리했다.
“뭐 하러 이걸 보냐? 시간 아깝게?”
“그러게나 말이다. 맞는 말인 듯.”
때마침 부엌에 나와 있던 현주인이 방송 시작 멘트가 들리자마자 짜증스럽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 맥주나 홀짝거렸다.
“이거 볼 시간 있으면 그 잘하는 라이브나 켜든가. 차라리 소통하는 게 낫지.”
“주인아… 형은 감격이다.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지랄… 말 건 내가 잘못이지.”
현주인은 질색하며 방 안으로 사라졌다. 사생활 관리도 하고, 연습도, 무대도 열심히 하고. 심지어 팬들까지 신경 쓴다. 저놈 입에서 팬과 소통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건 당연히 감복할 만한 일이다.
‘현주인이 개과천선했는데 초성 같다고 현주인 이름 들이민 놈들 누구냐고. 다 나와보라고.’
어쨌든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지난주 미뤄졌던 순위 발표식과, 조 편성 이후 컨셉 평가 연습 과정을 담아낸 것 같았다. 순위가 높은 연습생이 있는 조가 우선적으로 원하는 곡을 선택하고 리더 격의 연습생이 파트를 분배했다. A등급인 함정원은 소년미 선배님들의 곡을 선택했다. 하긴 나 같아도 저걸 선택했겠지.
‘쟤 표정이 왜 저래.’
조에서 리더를 맡은 함정원은 1위였던 만큼 카메라에 많이 비춰졌는데, 그때마다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적극적이었던 행동도 조금 위축된 듯 보였다.
‘하긴 지난번에 나한테 전화한 걸 보니 핸드폰 쓸 수 있겠지. 그럼 여론도 봤겠구나.’
말도 틱틱대고 싸가지 없는 성격이지만 은근히 멘탈은 약하던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밖에서 저러고 있으니까 좀 기분이 이상하네…….’
우울해 보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함정원은 할 말은 다 하고 있기는 했다. 파트를 분배하는 중에도 조원들의 음색과 능력을 잘 구분해 냈다. 문제라면 그 모습이 너무 권위적이고 예민하게 비쳐지고 있다는 것.
‘저거는 좀 악편 아냐?’
악성 편집, 줄여서 악편. 촬영한 분량의 풀 영상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장면들을 짜깁기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인데, 방송을 계속 보고 있자니 함정원이 꼭 바로 그 악편을 당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쟤 자기 욕심 많긴 해도 대놓고 안 된다거나 미쳤냐거나 짤 놓을 성격은 아닌데. 과해.’
아무리 예민하기로서니 저렇게까지 성격파탄자 같은 느낌은 아닐 텐데. 게다가 징징거리거나 제 이득 취하려는 거면 또 모를까, 권위적인 성격은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 저놈 성격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투성이였다.
“쟤 저런 성격 아니지 않았어?”
“…예민해졌나?”
가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려고 넌지시 물었다. 가을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정적 후에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 함정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상하게 느낄 법한 방송이었다.
‘성격 이야기는 안에서 돌고 있긴 하던데. 날이 서 있는 것도 맞긴 하겠지.’
마침 연습생들이 조원끼리 파트를 분배하고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백무영 선배가 등장했다. 품 안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맛있겠다.”
“뭐야, 저게? 피자?”
백무영 선배는 사람 좋게 연습생들을 불렀다. 아마 식단 관리의 지옥 속일 연습생들에게 백무영 선배의 선물은 기쁘기 짝이 없는 듯 순식간에 많은 인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구석에 비치는 함정원의 표정 또한 눈에 띄게 밝아졌다. 곧 연습생들과 백무영 선배의 활기찬 대화의 장이 연출되었다. 흡사 미니 인터뷰장 같았다.
그때, 은찬의 눈앞에 어떤 장면이 카메라에 찍히듯 각인되었다.
“응?”
“왜?”
“아, 아냐.”
연습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백무영 선배가 함정원을 구석으로 부르는 모습이었다. 함정원은 아주 밝아진 얼굴로 백무영 선배의 뒤를 쫓았다. 다른 연습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지라 아주 구석에만 잡혔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두 명인지라 발견하는 게 쉬웠을지도.
‘따로 부르는 것 같은데?’
곧 또 다른 조 연습 장면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더 이상 볼 수는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흠… 뭐지? 정말 함정원 챙겨주시는 건가?’
함정원이 전화를 해 백무영 선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굉장히 자랑하듯이 이야기를 했기에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이후 백무영 선배는 함정원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니, 저 장면이 눈에 안 들어올 리가. 하지만 이상했다.
‘무엇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