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25
125. ㅎㅈㅇ(3)
본업도 잘하고, 진행도 잘하고, 얼굴도 잘함…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듯. 다작해 주세요, 언니… 우와, 어떡해… 저 진짜 열심히 해야겠어요~!”
댓글을 읽어 내려가며 입술을 내밀고 미간을 모으는 누나는 감명받은 얼굴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도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확실히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새로운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좋은 댓글들뿐이었다.
‘누나, 정말 행복해 보이네.’
평소에 표정 관리가 능숙한 누나에게서 행복의 기운이 저 정도로 흘러넘칠 정도라면 정말 기분 좋다는 뜻이다. 나도 옆에서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끔 적절히 호응했다.
특히 누나는 ‘언니, 행복 비타민 같아요’라는 말에 제일 기뻐하고 있었는데 내심 공감했다.
‘잘 모를 때 칼같고 거리감 있는 누나라고 생각했던 게 오판이었던 것 같아.’
사람은 뭐든 겪은 대로 생각한다지만 그동안 현주인의 전 여자 친구라는 타이틀에 갇혀 생각한 걸지도. 칭찬은 주변 사람들까지 감화시키는 매력이 있다더니, 편협한 시각에 대한 자기반성까지 하게 될 줄이야.
“모두들 절 이렇게나 사랑해 주시는지 몰랐어요. 어떻게 이 마음을 보답해 드려야 할지…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누나는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럼 MC 은찬으로 자연스럽게 토스해 볼게요’ 하며 차례를 넘겼다. 카메라와 스태프분들의 주목도 내 쪽으로 돌아왔다.
‘한번 볼까… 그런데 트리위키는 데뷔 초에 읽고 안 읽었는데, 바뀐 게 있으려나?’
트리위키는 모든 사용자가 내용을 편집할 수 있어 팬들이 문서를 자유자재로 수정하는 게 가능했다. 덕분에 활동 연차가 쌓일수록 내용이 줄거나 늘어나기도 했으니 내가 모르는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확인을 못 했어.’
데뷔 초에 비해 어떤 내용들이 추가됐을지 몰라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태블릿의 화면을 밝혔다.
“그룹명 제네시스……! 그룹명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사실 칠월칠석이었습니다. 우와, 이런 것까지 기재되어 있네요?”
간결한 프로필 밑의 시작부터가 압권이었다. 은찬은 인터넷상에 까발려진 본인의 옛 그룹명 후보를 보고 추억에 잠긴 듯 눈이 촉촉해졌다. 스태프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은찬도 곧 눈을 둥그렇게 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이건 저희끼리 찍었던 자체 콘텐츠에서 살짝 언급하고 넘어갔던 건데 꼼꼼하시다.”
입을 틀어막으며 안타까운 듯, 눈썹을 내리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던 은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반응일 수밖에 없겠지.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건 TMI인데, 저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룹명을 고민하던 중에 때마침 저희 사장님 자차가 보여서 그걸로 해달라고 말씀드렸죠.”
회상을 하듯 태블릿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급박하게 머리 굴린 것치고 괜찮은 결과가 나왔지.’
말을 이어가던 은찬이 무언가 떠오른 듯 정면의 카메라를 급하게 응시했다.
“하핫, 맞아요! 예명도 원래 직녀가 될 뻔했는데… 주인이가 견우였어요.”
곧 더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작교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 없겠다. 어차피 이건 예전 칠월칠석 이야기기도 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던 스태프분들 중 반절은 이미 그마저 행동하기를 포기한 듯했다. 눈썹까지 찌푸린 채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것조차 효과음으로 넣을 생각이었는지 이미 음향 감독님은 마이크를 옆 스태프분들 쪽으로 슬쩍 움직였다.
“마저 볼게요.”
처음부터 이렇게 강렬한 내용이 나오다니, 다음부터는 뭐가 나와도 의연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음부터는 나도 짐작할 만한 무난한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사실 무난하다기보단… 다 그럴 것 같았다는 느낌?’
멤버들의 별명들과 그 별명들이 붙은 계기. 룸메즈, 무해조, 화보즈처럼 나와 멤버 조합에 따라 붙은 명칭들과 그간 출연했던 프로그램들. 그리고 간략한 연습생 일화 등등.
‘잠깐이라도 언급하고 넘어갔던 것들은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네. 나도 말했던 걸 까먹었던 것까지…….’
나도 사람인지라 기억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멤버들과 가볍게 대화하면서 지나갔던 것들은 자연스럽게 까먹었는데 글로 기재된 것들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온갖 감상이 맴돌았다. 이렇게나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어서 행복한 감정과 그만큼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더더욱 언행에 조심해야겠다는 긴장감까지.
“지니분들, 저희 정말 아껴주고 계셨군요…….”
어쨌든 약간의 장난기가 가미되었지만 애정이 어린 글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뭉클해진 마음을 감싸 안은 은찬이 아까 세주가 그랬듯 눈썹을 쭉 밑으로 내린 채로 태블릿 화면을 밀었다. 그러자 다음 페이지 댓글들이 나타났다. 은찬이 천천히 하나하나 따라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 제네시스 나오고 그룹명부터 이건 좀 싶었는데 보다 보니까 괜찮은 듯.”
“그냥 그런 청량돌 데뷔한 줄 알았더니 이건 숨겨진 보석이었음.”
“멤버들 조합이 좋아서 자꾸 보게 됨.”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거 보고 입덕했어요!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일부러 강약을 살려 댓글대로 읽어봤다. 확실히 스태프 측에서 검열을 한 것인지, 전부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칭찬 댓글들이었다.
‘확실히 내가 직접 찾아볼 때처럼 가감 없진 않네… 분위기 올리려고 만드신 코너가 맞구나.’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지막 댓글.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고도 무대를 완성했던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워낙 강렬한 기억이어서인지 그에 따라오는 평가들까지 하나하나 인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말 아프긴 했는데. 고생도 고생대로 하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건 좋네.’
무대를 끝까지 완수했다는 책임감에 대한 뿌듯함이나, 그에 따라오는 칭찬에 대한 건 그러려니 하더라도 그 태도에 영향을 받았다는 댓글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연습을 더욱 열심히 하고,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며 원동력이기도 하고.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넣고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성공해서 자동차 광고 찍어라… 합작해…….”
마지막으로 댓글 하나를 읽었을 땐 정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광고주분들, 보고 계시나요? 저희 꼭 성공하겠습니다!”
그나저나 SNS 확인을 자주 하는 편인 데다 익숙한 사이트들이었는데, 못 본 댓글들뿐이었다.
‘인터넷을 자주 봐서 그런지, 조작하신 게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너무 좋은 의견만 있길래 ‘혹시 우리를 위해 좋은 댓글만 직접 쓰셨나?’ 하는 의심도 아주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몇 초 만에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말투가 너무나도 실감 났기 때문이다.
‘칠월칠석 때는 매번 확인해도 봤던 것들밖에 없었는데, 인지도가 올라간 게 확실히 실감 나네.’
내가 놓칠 만한 의견들도 많아졌다는 증거이니 좋은 징조임이 분명하다.
걱정으로 시작한 촬영의 끝은 감동이었다. 힐링 시간이 따로 없었다. 제작진들의 의도에 딱 부합하게 열정이 충만해졌다. 사실 우리 둘의 열정을 더 끌어내기 위해 마련한 코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고하셨습니다~! 은찬 씨랑 세주 씨, 고생했어요.”
“코너명 본인 등판… 아, 너무 웃겨요. 아이디는 박제 안 시킬 거죠?”
“반쯤 가리고? 아무튼 두 분 다 리액션 실감 나게 해주셔서 다행히 영상 잘 딸 것 같아요. 좋네요.”
뮤직센터 관계자분의 카메라로 세주 누나와 사이좋게 뮤직센터 계정 업로드용 투샷을 찍고 촬영을 마무리했다. 하얀 배경 속 핑크색 의상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세주 누나는 오늘도 스케줄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나도 주변 정리를 어느 정도 도와드린 뒤 스튜디오를 나섰다.
‘음? 가을이?’
그제야 뒤늦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가을이로부터의 부재중전화가 2건이나 찍혀 있었다.
‘무슨 일이지?’
보통 한 번 걸고 받지 않으면 메시지를 남겨두지, 두 건이나 부재중전화를 남겨둘 애는 아닌데. 물음표를 품고 그제야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 가을이 : 형ㅜㅜ 나 드라마 OST 제안 들어왔어! 어쩌지? ]드라마 OST 제안이라니. 너무 좋은 소식 아닌가?
나마저도 우와, 하며 웃음부터 고이는데, 정작 당사자인 가을이는 얼마나 기쁠지 가늠조차 안 간다. 너무 잘됐다며 바로 답장을 보내기 위해 자판을 치는데, 전송을 누르기 전에야 메시지 뒷내용이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뭐가 어쩌지라는 거야?’
당연히 좋은 일일 줄 알았는데, 가을이에게는 고민할 만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보통 개인 활동이 들어오면 좋아하는 게 기본적인 반응이었다. 회사 계약서상 별다른 말이 없으면 개인 활동은 1/N 정산에 들어가지 않아 오롯이 본인 차지였으며 인지도 또한 올라갔으니까. 게다가 이번 OST 건은 가창력을 인정받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마… 내가 아는 가을이 성격으로는… 부담감 때문이려나.’
가을이라면 아무리 애교 연습을 하고, 무대 위에 서더라도 혼자 무언가를 해내는 데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멤버들과 함께하고, 나에게 의지도 많이 했었으니까.
“형, 저 왔어요!”
“아, 미안미안. 전화 좀 받고 있었어.”
“에이, 그럴 수도 있죠. 안전벨트 멜게요.”
주차장 구석에 주차되어 있는 차 문을 열고 매니저 형에게 목례로 인사를 건넸다. 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안전벨트를 매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가을이와의 대화창을 띄웠다. 아직 아까 써두었던 메시지를 전송하지 못했다.
‘그래도 회귀 전에는 이런 기회조차 없었는데 잘됐지.’
숨겨져 있던 가을이의 가창력을 대중들이 알아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내가 더 들떴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리 기뻐 보이지 않으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고. 무슨 사정인지 들어나 보자 싶어 통화 목록 중 부재중전화로 인해 빨갛게 띄워진 가을이의 이름을 눌렀다.
♩♫♪♫
착신음이 얼마 울리지 않았는데도 가을이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했었어?”
-혀엉…….
예상대로 시무룩한 목소리였다.
‘얘 지금 긴장했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건 가을이가 부담에 짓눌렸을 때 나오는 특유의 목소리였다.
‘월말평가 때나 데뷔 초에도 꼭 이랬지.’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춤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 그랬고. 이번에도 같은 유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럴 땐 오히려 내 쪽에서 밝게 나가는 게 적절한 해답이었다.
“왜 그래? 기쁘지 않아?”
-기쁘지. 기쁜데…….
가을이가 대답에 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