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26
126. 자존감 지킴이
“…….”
“기쁜데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뜸을 들이는 핸드폰 건너에, 괜히 답변을 채근했다.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고.
“말하기 좀 그래?”
앞에서 매니저 형이 백미러를 향해 출발해도 괜찮냐는 듯 눈치를 보내왔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자 차에 시동이 걸렸다.
‘혹시 누군가에게 협박 같은 거라도 받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떤 놈이 우리 가을이를……! 아니면 정말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숨겨져 있다든지……!’
물론 가을이가 말하기 힘든 건이라면 충분히 괜찮아진 후 들어도 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걸.
-…….
“그럼 너 편할 때 말해줘도 돼.”
여전히 묵묵부답인 핸드폰 건너에 불안감이 고조될 찰나였다. 한 톤 낮아지고 걱정으로 점철된 가을이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겨 들려왔다.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좋긴 한데.
아, 다행이네. 일단 한결 안도했다. 그런 게 아니라니 다행이긴 하지만 뒤에 단서가 달린 걸 보아하니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닌 게 확실한 모양이지만.
“한다고 했어?”
-일단…….
“음? 내 생각에는 좋은 기회 같은데.”
-아, 역시 망설이는 거 좀 이상하지… 당연히 좋은 기회니까…….
예상하건대 지금 가을이의 자존감은 바닥을 찍는 중일 거다. 그것도 남이 뭐라고 해서가 아니고, 스스로를 저평가하며 몰아세우는 중이겠지.
‘아마 외부에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줬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고, 자기는 그 정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가을이는 항상 나에게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을이는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된다. 스스로 노력하고자 몰아붙이는 것과 자존감이 낮은 것은 천지 차이니까.
‘게다가 꼭 회귀 전 암흑기를 보냈을 때나, 갓 회귀한 후 갈팡질팡하던 때의 내 상태 같아서 마음이 쓰인달까…….’
어떤 마음 상태인지 알 것 같아서 더 안쓰럽단 말이지. 그리고 이럴 땐 몰아세우지 않는 게 좋다는 것 정도도 스스로 체득해서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럴 때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에 대해 떠올렸다.
“아니, 이유부터 들어야지. 너한테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잖아. 나라면 바로 수락했겠지만.
-…….
누군가 이유를 물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내 상태에 대해 내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으니까. 가을이라면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태일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는지, 핸드폰에서 머뭇거리는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공중파 드라마의 배경음악에 삽입되는 OST를 불러도 되나 싶어서. 대중들이 좋아해 주는 목소리는 아닐 것 같은데…….
그런데 기다리던 가을의 대답에 핸드폰을 살짝 뗀 뒤 귀를 후비고 싶어졌다.
‘내가 생각한 뜻이 맞는 건가?’
사실 저 정도까지 땅굴을 파고 있을 줄은 몰랐다. OST를 부를 실력이 안 되는 것 같아 걱정하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본인에 대해 아예 부정하고 있었다니.
‘나도 초반에 주변인들이 볼 때 저런 상태였나?’
갑작스럽게 자기반성의 시간이 찾아올 건 뭐람.
제네시스의 메인보컬로 실력도 인정받고 팬들의 사랑도 받고 있는데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저리도 최악이라니. 그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음색이 독특하기만 하면 보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보컬 실력 자체가 출중하니 우리 팬이 아닌 분들한테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받고 있는 거잖아. 가을아, 너는 보컬 스탯도 만점이라고!’
되물어보는 내 목소리에 진지함이 조금 더해졌다.
“무슨 소리야?”
-그냥… 드라마 보던 사람들 과몰입 깨지면 어떡해. 내 목소리가 깔려도 되나…….
애초에 사실만 봐도 드라마 OST 제안이 들어왔다는 건 제작사 측에서 가을이의 목소리가 극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애 자존감 어떡해!’
그러나 역시,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따라가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10초 전까지는 이해한다고 했고, 다른 말 얹지 말고 격려나 해주자 싶었는데 이렇게 이마를 짚게 되다니.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내가 지금 핸드폰에 대고 어떤 말을 해봤자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럼 가을이의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아!”
손톱을 질겅질겅 씹던 내가 깨달음의 소리를 내뱉자 백미러 사이로 날 쳐다보는 매니저 형의 눈빛이 느껴졌다.
“지금 몇 시더라. 기다려 봐. 아, 아직 저녁이네. 너, 자지 말고 숙소에서 세수 다시 하고 기다리고 있어. 나랑 맛있는 것 좀 먹으러 나가자.”
-어차피 아까 레슨 다녀오느라 씻었는데…….
“아니지, 조심해야 하니까 시켜 먹을까? 너 일단 먹고 싶은 거 다 생각해 놔.”
-혀엉…….
“알았지? 끊는다?
-아, 알겠어.
결정했다. 가을이를 칭찬 감옥에 가두기로!
이런 건 ‘가을이 보컬의 대단한 점’ 같은 걸 조목조목 따져서 이야기해 줘봐야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럴 땐 옆에서 누가 어떤 말을 해줘도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나가는 법이니.
‘이럴 땐 그냥 옆에서 둥가둥가 해주는 게 최고지. 우울한 생각을 할 틈이 없도록.’
그럴 땐 무논리로 칭찬만 냅다 들려주는 게 낫다. 상대방이 우울해할 땐 역시 맛있는 걸 먹여주고 편안하게 해주며, 고운 말만 해주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법이다.
‘이것도 예전 주혁이같이 상태가 심각해지면 안 먹히니까 지금 바로 해줘야 해.’
가을이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처럼 그래도 주변에 의지하고 싶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래도 우리 가을이가 스스로를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마음이 좋지 않은걸.
“매니저 형…….”
아까부터 두다다다 이야기를 내뱉는 나를 백미러를 통해 곁눈질하던 매니저 형이 내 목소리에 몸을 움칫했다. 급격히 텐션을 올려 신나게 말을 내뱉다가 곧바로 다운된 나를 보면 저럴 반응이 나올 법도 하지. 그 증거로 잘 당황하지 않는 매니저 형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깃들었다.
“어엉. 무슨 일 있어?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가을이 보컬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내 의도를 파악한 매니저 형은 핸들을 쥐고 있던 한 손을 휘휘 내저으며 즉답했다. 통화의 내용을 대충 파악한 모양이었다.
“뭘 질문까지 해? 메인보컬인 데다 인정도 받고 있잖아. 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겼어?”
“아뇨. 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문제인가 봐요.”
“엥?”
하지만 통화 내용을 듣지 못해 정확한 내용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매니저 형을 붙들고 한참 동안 한탄을 늘어놓았다.
“가을이가 자신감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발!”
가을이 보컬이 좋지 않냐는 질문과, 목소리가 독보적이지 않냐는 그런 유의 질문들. 귀찮을 법한데도 매니저 형은 그 시원시원한 성격답게 이런 나의 질문에 모두 호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의 어리광을 받아준 형 덕분에 걱정스러웠던 마음은 전부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맥주랑 음료수랑… 그리고 먹고 싶다는 거 다 시켜줘야지. 잔고 얼마 있더라. 이 정도면 몰빵하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어디 보자… 배달 어플… 이번 달엔 더 이상 안 시키려고 했구만.’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배달 어플을 뒤적거렸다. 메시지창엔 이미 가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의 후보군이 나열되어 있었다. 번뜩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거 다 시켜주면 되잖아?’
먹고 싶다는 건 맛이라도 보고 싶다는 뜻. 가을이는 분명 나에게 메뉴 선택권을 넘겨준 것일 테니 나는 그 선택권을 행사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전부 시키는 걸 택할 거고. 가을이 만의 만찬을 차려주는 거다.
‘다른 애들도 와서 협조해 달라고 할까…….’
문득 무뚝뚝한 놈이 칭찬 한마디 하고 가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곧장 현주인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놈이니 그 칭찬이 레어한 만큼 효과 또한 나의 몇 배일 테니까.
[ 오늘 가을이 칭찬 좀 많이 해줘 ㅡㅡ ] [ 현주인 : ??ㅋㅋ ] [ 장단 좀 맞춰봐 너도 연가을 보컬 좋아하잖아 ]거의 통보하듯 메시지를 보내두고 음식 주문도 완료했다. 총 5가지의 만찬이 숙소에 차려질 예정이었다.
‘현주인 말대로 진짜 VIP 되겠네.’
마침 떠오른 잔소리에 속이 뜨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멤버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지.
물론 그 배달 음식들을 거실 테이블에 쫙 차려놓는 모습을 보던 오늘의 주인공 가을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형… 내가 먹고 싶은 걸 보내긴 했지만 그걸 다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어. 형보고 하나 고르라고 선택권을 준 건데.”
“먹고 싶은 거면 다 맛은 보고 싶었던 것 아냐? 오늘은 다 먹어. 얼른 먹어.”
“아니, 나 이러면 살도 찌고…….”
“내일 운동해. 너 살찌는 체질도 아니잖아.”
가을이는 단호한 내 답변에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더니 한숨을 폭 내뱉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손 틈 사이로 비치는 얼굴빛이 조금 붉어진 게 눈에 띄었다.
‘엄청 감동받은 모습인데, 저건.’
그러더니 가을이는 내 옆으로 다가와 포장 푸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가을이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거렸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꼬리가 괜히 씰룩거렸다. 손을 뻗어 가을이의 어깨를 탁탁 토닥이다 허공을 향해 큰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 나는 역시 연가을 목소리 들어간 노래가 제일 좋더라.”
말이 혼잣말이지, 옆에 당사자를 두고 하는 만큼 다 들으라고 한 소리지만. 게다가 마침,
“야, 주인아, 우리 이전 타이틀곡 중에 역시 하이라이트 부분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갑자기?”
“아무리 생각해도 어쩜 그렇게 청량하면서 아련한 목소리가 같이 나올 수 있나 싶어.”
“뭐… 그렇지.”
“그리고 수록곡 중에는 얘 목소리 많이 들어간 게 최고라니까. 봐봐, 나 음원 재생 순위 1위인 거.”
“…보컬이 좋으니까 결과도 좋은 거지.”
“역시 그렇지?”
아까 언질을 준 덕분인지 현주인도 이런 내 발언들에 곧잘 응수해 주었다. 덕분에 가을이의 표정은 절찬리로 부끄러움에 물드는 중이었지만.
“형… 제발…….”
입에 다코야키 하나를 넣고 우물거리던 가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귀 끝까지 새빨개진 모습에 너무 잘 보였다.
‘싫어하는 건 아니구만.’
정말 싫어했다면 정색을 했을 거다. 이건 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부끄럽지만 기분이 싫지는 않을 때 나오는 가을이의 반응이었다. 오랜 시간 붙어 있던 만큼 가을이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가을이가 좋아하는 게 또… 아, 맞다.’
가을이를 한참 놀리다, 핸드폰을 꺼내 음원 파일 하나를 재생시켰다. 곧 가을이의 손이 날아와 내 핸드폰의 스피커를 틀어막았다.
“엥, 미친 거 아니야? 애니메이션 OST가 이렇게 감미로울 수 있다고?”
“형! 그 음원은 어디서 났어?”
“아, 이거 팬들이 추출해 준 거 다운받았지.”
“아, 진짜……!”
“저도 한 입만 먹어도 돼요?”
“다 먹어… 어차피 다 못 먹어.”
“저한테도 연락 왔어요.”
“응?”
소란 때문인지 리온이 또한 방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시끄럽다고 하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리온이는 음식 몇 개를 입에 쏘옥 넣더니 가을이를 향해 건조하게 말을 건넸다.
“편곡해 달라고. 형한테 잘 맞게 해줄게요.”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실력 알잖아요.”
그것도 정말 기특한 말을.
“…….”
가뜩이나 내려간 가을이의 눈꼬리가 더욱 밑으로 쭈욱 하강했다. 눈썹과 눈꼬리, 입꼬리까지 싹 밑으로 내려간 덕분에 순한 인상이 한결 더 울상으로 변모했다.
‘우와, 효과 직빵이네.’
정말 울려고 하는 표정이 아닌 건 잘 알지. 가을이는 리온이의 말에 심히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반복하다 울컥이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던 가을이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알겠어… 다들 고마워.”
“아, 오늘 그날인가? 프요일?”
“아…….”
가을이의 표정에 다시 어두움이 스쳤다. 잠깐 입을 닫아야 했나 싶었지만 이내 괜찮아졌기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입 꾹꾹이를 하던 가을이가 천천히 먼저 입을 열었다.
“한번 볼까? 오늘 등급 재평가라던데.”
“…응! 궁금하긴 해.”
먼저 말을 꺼내줄 줄은 몰랐는데, 의외다. 가을이는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프로듀싱 365가 막 시작했을 채널로 변경했다. 순식간에 TV 속 화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어, 뭐야?”
이미 순위 발표식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위권의 순위 발표가 진행 중이었는데,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원의 등급이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