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29
129. 탈출
[우왕좌왕 공포감에 질려가는 사람들 앞에 플레이 되는 한 영상.모두 일어났는가?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가면을 쓴 남자의 이해하기 힘든 제안!
살고 싶다면 목숨을 건 게임에 응해야만 한다. 당신은 이곳에서 잠들 것인가, 이곳을 탈출할 것인가?]
컨셉에 대한 설명이 적힌 소책자를 읽다 절로 몸이 흠칫 떨렸다.
‘당연히 나가고 싶지. 저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생각한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진짜 큰일 났네.’
코믹한 컨셉이나 탐험하는 컨셉도 존재하는데 왜 하필 이 방인가. 다른 흥미로운 주제 다 던져두고 왜 하필 스릴러, 호러 컨셉인 거냐고.
‘난이도는 두 번째 문제고 컨셉부터가 난리다, 난리.’
괜히 묵주반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현주인이 나는 과정은 어땠는지 몰라도 결과는 항상 좋은 편이었다는데. 혹시 이것도 그런 축에 속하는 거냐고. 전혀 반갑지 않아.
“겁나 흥분된다.”
“뭐?”
“이왕 하는 거 이 정도 난이도는 되어야 풀 맛이 나죠. 형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요!”
“…….”
착잡함과 공포로 사색이 되어 있는 나와는 달리 옆의 별이는 얼굴이 완전히 상기된 상태였다. 흥분되었다는 본인 표현에 딱 맞는 얼굴. 입꼬리도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얼굴은 살짝 붉어졌으며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이, 정말로 이 방 탈출을 고대하는 중인 듯했다.
‘듬직하다고 해야 되나, 이걸…….’
감정에 충실하고 잘 놀라길래 이런 것도 싫어할 줄 알았더니 의외의 모습이긴 하다. 저 마르고 얇은 등이 넓어 보이는 날도 올 줄이야. 별이 옆에 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말아야지.
***
“으악!!!”
“아, 진짜 깜짝이야. 형 때문에 더 놀라는 것 같아요. 이번엔 왜요? 뭐 찾았어요?”
방해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입장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그 다짐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제일 안쪽의 방에 입장하자마자 입구 쪽 트릭을 건드려 소리를 빽 질러 버린 게 시작이었다. 긴장을 바짝 하고 있던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상한 소독약 냄새까지 나……!’
뻣뻣하게 굳은 몸은 자꾸만 여기저기에 있는 트릭을 건드렸고, 툭 튀어나온 물체들에 깜짝 놀라 새로운 문을 열어버리는 등 온갖 방 안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별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형 덕분에 지금 문 열 수 있는 증거 다 찾았어요. 진짜 개웃기다… 이거 다 찍히는 거 알죠?”
“내 이미지는 대체 왜 이런 건지 모르겠네~”
“뭐, 귀엽잖아요~”
푸하핫, 하고 웃어버린 별이는 내가 얼떨결에 찾은 증거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옆에 쪼그려 앉아 벌렁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별이가 문의 비밀번호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엄청 어려운데? 이걸 어떻게 해석하는 거야?’
별 5개의 난이도가 허세는 아니었던 듯 추리 난이도 또한 상당했다. 웬만한 방 탈출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 방에서 탈출을 하기는 힘들 듯싶을 정도로.
‘뭐라는 거야?’
보통 증거들을 수집하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겠구나’ 정도는 예상이 가기 마련인데 이건 감도 안 잡혔다. 내가 머리만 벅벅 긁는 동안 별이는 열심히 비밀번호와 금고를 맞추더니, 기어이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동시에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울렸다.
“열렸어?”
“엉. 가요! 조심해요. 형은 쫄보니까.”
“와, 여기는 뭔데 더 스산해……? 악!”
“으하핫!”
열린 문을 통해 한 문턱을 넘자마자 안쪽 방이 드러났다. 그래도 초입부라고 조금은 빛이 있었던 전 방과 달리 지금은 아예 어두컴컴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물체와 장식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정도였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 휴대용 손전등을 받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게 낫겠군.’
안 보이면 또 이것저것 건드리기 십상일 테니까.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데 별이가 곧장 손전등을 켰다.
‘음?’
눈앞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제대로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진짜! 진짜 짜증 나!”
“오우, 형 목청 장난 아닌데요?”
“으아아…….”
내 눈앞에, 정말 정확히 바로 앞에 거꾸로 매달려 피 칠갑이 되어 있는 사람 모형이 있었다. 하필 이 끔찍한 걸 딱 눈앞에 마주하다니! 반사적으로 별이의 허리를 꼭 껴안고 등 뒤에 바짝 붙어 걸었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아니… 도움 안 돼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전 원래 이런 거 좋아해서.”
도무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별이 뒤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그 뒤에 바짝 붙었다. 시끄럽고 짜증 날 법한데도 별이는 방 탈출에 여념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를 그다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듯했다.
“풉…….”
“왜 웃어…….”
민망함에 조용하게 별이를 따라 웃었다. 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가짜 피가 흥건한 부분을 샅샅이 뒤졌다.
“근데 은찬 형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재밌어요, 끌끌.”
이 무서운 공간에서 여유까지 부려가면서.
‘추리류 좋아한다더니 그에 관련된 거면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나 봐. 하긴 몰입을 잘하는 타입이긴 했지. 그게 랩이나 게임에만 국한된 줄 알았는데 이런 면도 있었구나.’
멤버 중에서 유독 잘 놀라던 별이인데도 지금만큼은 정말 돌부처가 따로 없었다. 증거물을 찾고, 실마리를 해결해 나가며 다른 퍼즐이 풀리는 걸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있으면 지금 이 공간이 어떤 식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공포영화를 볼 때마다 난리를 치곤 했으니 무서운 걸 잘 보는 타입은 아니고, 정확히는 흥밋거리에 몰입을 잘하는 쪽.
“근데 너 진짜 잘하네.”
“제가 성적은 안 좋아도 이런 건 잘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이런 게임을 많이 하기도 했고.”
“게임?”
“넹. 블랙룸 시리즈나, 회색 시골 이런 거?”
곧장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주 타당한 이유다.
‘아하…….’
하긴 어릴 때부터 이런 유의 게임을 좋아했다면 흥미로울 법도 하다.
“안 무서워?”
“원래 추리류는 거의 살인사건이에요. 알죠? 뻔해, 뻔해~”
요컨대 많이 본 패턴이라 익숙하다는 말이네.
‘그래도 잘하는 건 잘하는 거야. 많이 본다고 해서 다 잘하는 건 아니니까.’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실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 저것도 별이의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이것도 끼에 포함되는 부분인가?
아무튼 별이 뒤를 쭈뼛쭈뼛 따라가며 증거 수집 정도만 도와주다 보니 어느덧 별이는 마지막 문제 앞에 서 있었다. 이번 문제는 퍼즐이었기에, 별이는 동물 모양으로 배열된 무늬들을 맞추는 중이었다. 갑자기 별이가 고개를 홱 들더니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뭐지?’
장소가 장소인지라 긴장감이 돌았다.
“헉, 30분밖에 안 남았네. 다른 애들이 먼저 나왔으면 어쩌지?”
걱정한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내심 안도했는데, 내가 당황했다는 건 비밀이었다.
“30분이나 남은 거 아냐?”
“제 목표는 탈출이 아니라 일빠거든요.”
별이 쳇, 하고 입을 한 번 빼죽였다. 그러더니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고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기쁘게 외쳤다.
“됐다!”
곧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이 컴컴한 방 안에 새어 들어오는 바깥의 공기와 빛이 굉장히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괜히 양손을 기도하듯 맞붙잡으며 천천히 별이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아~”
아까 출발했던 공간의 근처에 다다라서야 깊게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안에 1시간도 채 있지 않았음에도 온몸의 기가 쪽 빨린 기분이었다.
“하,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괜찮다면서요?”
“구라야. 허세 좀 부렸어…….”
역시 허세는 도움이 일절 되지 않는다. 오늘도 괜히 허세를 부려 벌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트라우마 극복은커녕 우당탕거리고만 나왔으니.
‘분량은 채웠으려나 걱정이네…….’
이제야 돌아가던 카메라 떠오르다니, 고개가 저절로 내저어졌다. 중간부터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걸 신경도 못 쓰고 별이 뒤에만 붙어 다녔다. 그래도 별이가 엄청난 활약을 했으니 다들 별이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을까 싶긴 하다.
“엇,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촬영을 시작했던 공간에 도착하자 먼저 탈출한 모양인지 탐험 컨셉의 방에 들어갔던 현주인과 가을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을이가 우리의 등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별이는 옆에서 으악, 하며 아쉬운 소리로 쪼르르 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으아아, 먼저 나와 있었어요?”
“둘이 하니까 금방 끝나더라고.”
“에이, 내가 일 등 할 줄 알았는데!”
둘이 어떻게 협력을 한 건지 궁금했지만 성격상 문제 해결은 잘했을 듯싶었다. 그러니 지금도 일 등으로 나와 있는 걸 테고.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내가 남 생각할 때는 아니긴 하다. 아직도 맥박이 너무 빨리 뛰어서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끝 쪽 자리로 가 자리를 잡았다.
“하, 힘들었다~”
곧 로맨스 컨셉의 방에 들어갔던 이선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등장했다.
“어, 이것밖에 없어요? 나 꼴찌는 아니네. 엥, 서주혁 없네?”
“그러고 보니 아직 주혁이와 리온이가 안 나왔네.”
“둘은 일찍 끝낼 줄 알았는데.”
“이거 봐, 하핫. 서주혁 이 자식, 매번 나한테 센 척하더니 이런 건 또 못해요. 완전 놀려줘야지.”
마지막으로 겨우 나온 꼴등은 주혁이와 리온이었다. 무덤덤하고 차분한 둘이라 일찍 끝내고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하긴 둘도 난이도는 낮았지만 호러 컨셉의 방이었나.’
공포영화를 볼 때도 별 감정의 동요가 없는 둘이라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추측이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표정이 사라진 것을 보니 다들 생각보다 크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서주혁~ 왜 이렇게 늦었어??”
이선이 주혁을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붙였다. 순식간에 주혁의 새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시끄러워. 너야말로 그런 쉬운 곳 들어가 놓고 먼저 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리온이, 괜찮아?”
“문제없어요.”
“그런데 너희, 일찍 끝낼 줄 알았는데… 의외네.”
주혁과 리온이 사이에 무언의 눈빛이 오갔다. 그러던 둘은 목을 매만지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지기가 좀 그래서.”
둘은 부끄러운 듯 조용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 심정을 백번 이해했다. 나도 모르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까지 전부 수거했다. 이후에는 기가 쪽 빨린 우리 셋 이외의 스태프분들과 직원분, 멤버 몇 명이 함께 들어가 뒷정리를 도와드리며 카메라를 찾아냈다.
‘중도 포기자가 없던 게 어디야?’
방 탈출 카페 직원분의 부탁에 사인을 하고, 방 탈출 기념 방문 사진까지 찍은 뒤 가게를 나왔다. 지금껏 찍은 자체 콘텐츠 중 영상이 제일 궁금한 콘텐츠였다.
***
“…….”
“헐, 진짜 신기하다. 리온이 표정 굳은 것 봐. 개웃겨.”
저녁은 거실에 배경음악 겸 공중파 예능을 틀어두는 시간이다. 그 앞에서 각자의 취미 생활을 하던 별과 리온이 동시에 TV 화면에 집중했다. 하던 핸드폰 게임을 중지시킨 별이의 말대로 리온의 표정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뭐지?’
덩달아 나의 관심도 거실의 TV 쪽으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