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3
13. 두 번째 시작(1)
“주인…이요?”
“응, 현주인. 왜? 별로 안 친해?”
안 올라가는 입술을 겨우 끌어 올린 은찬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안 친한 게 문제가 아니고 너무 갑작스럽잖아!’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면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싶어 다시 되물어봤지만 도리어 확인 사살밖에 안 됐다.
‘괜히 틀어지지나 않으면 좋을 텐데. 불안하게…….’
현재 제네시스 티저 공개 후 SNS에서 보이는 반응들을 떠올려 보면 이후 나올 말들은 안 봐도 뻔했다.
같이 데뷔조 연습하던 애 떨어뜨려 놓고 MC 시킨다며 싫어하는 사람, 역시 현주인은 배우보단 아이돌이었어야 한다며 화를 내는 사람, 그리고 현주인 없는 그룹이 잘될 것 같냐며 악담을 퍼붓는 사람까지.
물론 내가 부정적인 반응 위주로 떠올린 거긴 해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엔 우리 그룹의 인지도가 부족해 크게 기대되진 않았다.
‘지금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더 크니까.’
게다가 이건 이미 확정해 놓고 통보하는 말투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을 더 한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주인 본인이 배우의 노선을 선택한 만큼 굳이 엮일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없던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은찬이 마뜩잖은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기 바쁠 때, 최 이사는 중요한 말을 까먹기라도 한 듯 손바닥을 부딪혔다. 그 소리에 바닥을 보고 있던 은찬도 최 이사 쪽을 바라보았다.
“아! 멤버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주혁이랑 이선이가 주인이랑 같은 학교 다닌다고 들은 것 같은데 친구들 서프라이즈 시켜주자고. 짠~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놀라겠어? 그 장면 클립 따면 콘텐츠도 될 테니 일석이조지. 그리고…….”
결국엔 리더니까 혼자 알고 있으란 소리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말씀하지 않고 밖으로 불러내서 조용히 전달하신 거구나. 은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길게 늘어지던 최 이사의 말끝이 일축됐다. 확신이 가득한, 자신감 있는 어조다.
“……?”
“주인이는 인기도 있으니까.”
현주인이 있으면 기존 현주인 팬들도 관심을 갖게 될 테니 홍보하기에는 편하다는 말이지.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현주인으로 인한 홍보 효과가 크긴 할 테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게 내가 싫다고 해서 바뀔 사안도 아니긴 하지.’
이럴 땐 수긍하는 방법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현주인은 배우답게 딕션도 좋고 대본도 잘 외웠으니까 진행을 매끄럽게 보긴 할 거다.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도 곧잘 하고, 멤버들끼리 친분도 있으니 확실히 쇼케이스 MC를 맡기기에는 최적의 인물이다.
‘그래도 외부에서 섭외할 수는 없었던 건가.’
신생 소속사지만 나름 투자를 잘 받았으니 돈이 없지는 않을 텐데.
같은 소속사인 현주인이 맡는 게 관심을 끌거나 기사를 내기에도 편하긴 하겠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괜히 미닛츠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나오거나 다른 애들이 빛을 못 보게 되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기우겠지?’
점점 다운되는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일단은 수긍해야 했다.
어차피 이제 아이돌과 배우로 갈라진 마당에 현주인의 개인행동이 우리 팀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을 테고.
“넵.”
“그래, 좋아!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 얼른 다시 들어가 봐. 쉬어야지.”
표정에서 내키지 않는 게 티가 났을 법한데도 최 이사님은 되레 은찬의 등을 두들겨 격려하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과거에는 최 이사님이 유토피아를 전담으로 맡으셨으니, 이런 격려를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최 이사님께서 격려해 주시는 거라면 대표님이 밀어주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씩 개었다. 회귀한 거,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형, 어디 다녀와?”
“그냥 화장실 좀…….”
“내가 아침에 다녀오라 그랬지, 으.”
“뭐라는 거야! 그나저나 개인컷 다 찍었어?”
대기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끔 닫는데, 별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중인지 별의 핸드폰 화면에 전투 장면이 띄워져 있었다.
“응, 이야, 표정연기 어렵더라!”
유독 뾰족한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는 별이는 전형적으로 개구진 얼굴이었다.
[ 홍별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칠월칠석 때, 저런 털털한 면 때문에 별이를 귀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스탯창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끼도 많았고.
구김살도 없는 편이라 본인 감정에 솔직하게 구는 모습이 친근하게 와닿았는지 많은 팬들이 별이를 친숙하게 받아들였다. 종종 말실수 같은 자잘한 사고를 쳤는데도 이후 유튜버로 전향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성격 덕이 컸다.
‘솔직히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선은 지킬 줄 아니까 고맙지.’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우리 중에서 제일 잘했으니까 시청자 또한 잘 사로잡은 것일 테다.
“너 곧 죽겠다.”
물끄러미 별이를 내려다보던 은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너 지금 지나가는 몬스터한테 엄청 맞고 있는데, 별아.
“뭐? 아악! 안 돼! 안전한 곳에 뒀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제야 제 캐릭터 상태를 확인한 별이는 꽥 비명을 내질렀다. 말 안 해줬으면 그냥 죽을 뻔했나 보네. 별이는 오리처럼 입술을 내민 불퉁한 얼굴로 방금까지 맞고 있던 캐릭터를 몇 번 조작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이어진 말은 안도라기보다는 약간 짜증이 묻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딸피로 살렸어…….”
“…축하해?”
“으우…….”
핸드폰 게임을 뭐 제대로 해본 적이 있어야 적당한 말을 해줄 텐데. 핸드폰 게임 같은 건 잘 모르고 끽해봐야 남들 다 하는 게임이나 피시방 가서 몇 번 해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던 위로가 아니었는지 별이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촬영은 어땠어?”
“당연히 완전 찢었지. 형, 나 아무래도 연예인 체질인 것 같아. 관심받는 거 왜 이렇게 좋지?”
“…푸흡.”
“웃겨? 난 진심인데?”
은찬이 웃음을 터뜨리자 별이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한결같기도 쉽지 않은데.’
하여튼 긍정적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칠월칠석이 하향세를 타다 재기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별이는 우울해하기는커녕 팬들과 소통했던 기억을 살려 유튜버에 도전했다.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도 팬들과의 소통 창구를 제일 잘 활용했던 멤버답게 시청자의 의견 수용도 잘했고, 거기다 몇 안 되는 예능에 출연할 때도 분량 확보를 잘하던 성격인 만큼 웃길 줄도 알았다.
‘이선이가 말로 능글맞게 상황을 잘 넘어가는 편이라면 별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편이랄까…….’
그게 또 보다 보면 귀여워서 차마 미워할 수 없는 타입이었다.
“뭐야. 왜 내 말 씹어? 은찬 형, 잘생겼으면 다야? 어? 그런 거야?”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 왔어?”
“이런 건 타고나야 돼.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지.”
지금 내 앞의 별이는 여전히 왈왈거리는 중이지만.
은찬은 다시 게임에 열중하는 별이의 옆에 앉아 뭘 할까 고민하다가, 제네시스에 대한 반응을 확인할 겸 SNS에 접속했다.
‘SNS 반응 확인하는 것 좀 줄이긴 해야 되는데.’
아무리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영향을 꽤 크게 받으니까.
그렇지만 대중의 반응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된다고. 바라봐 주는 팬이 없으면 아이돌도 없어!
‘…날 잡고 팔로잉 정리를 해야 될 수준인데?’
현주인 때문에 심란한 와중에, 접속하자마자 기가 막히게 현주인 관련 게시글이 맨 위에 있다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으면서도 그걸 넘기지 못하는 나도 참 나였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주인의 팬계정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냥 내가 과하게 신경을 쏟아서 그런 거지. 이제 정말 현주인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아야지.
물론 내 눈앞에 있는 이것까지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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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
@jooinnni_kk
촬영 중인 주이니 발견!
갑자기 오는 비에 스태프들 비 맞지 말라고
우산을 건네주는 우리 천사.
드라마 기대하고 있으께
오늘도 수고했어♥
x현주인 x나인틴나인틴 x배우현주인
공유 80 인용된 글 3 마음에 들어요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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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미친봄정신차려 @crazygwangchoon
? 해시 뭐야? 배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주인이 아이돌 할 거거든요?ㅋㅋ
ㄴkiki @jooinni_kk
본인이 아이돌 안 하겠다는데 그러는 것도 진짜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요?
배우님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어덕행덕 합시다~
ㄴ미친봄정신차려 @crazygwangchoon
뭐라는 거야 진짜ㅋㅋ
주인이 미닛츠로 연습생 활동 한 건 아시죠?
그건 아예 부정하시는 건가?
님 입덕한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ㅠㅋ
과거 아카이빙이나 한번 훑고 오시는 거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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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현주인 드라마 촬영 목격담이 제일 상단에 떠 있길래 클릭했을 뿐인데…….
은찬은 제 눈앞에 펼쳐진 토론의 장에 그저 눈만 크게 끔뻑였다. 요컨대, 현주인 배우파와 아이돌파가 싸움 붙은 현장인 것 같았다.
‘키키 님,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키키 님 말씀대로예요. 은찬은 자연스럽게 목격담을 올린 팬의 편을 들었다. 저도 진심으로 현주인의 배우 길을 응원합니다! 키키 님, 파이팅!
은찬이 SNS상에서 팬덤 간 싸움을 목격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팬덤 외부든 내부든 틈만 나면 시비가 붙고 어그로가 끌렸으니까.
가만 보면 정말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게 대다수였는데, 이번만큼 공감되는 논제가 또 없었다. 한쪽에 공감을 할 수 있다니. 은찬은 항상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쪽이었는데 말이다.
은찬은 ‘현주인 배우파’를 속으로 응원하며 스크롤을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또 현주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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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주인
@kurominii
광춘아… 현주인 어디다 꽁쳤냐
아이돌 사업 하고 싶은 거 맞지?
좋은 말 할 때 내놔라
광춘이네 보따리 풀라고ㅋㅋ
아직은 믿어줄게 진짜 제발ㅅㅂ @MINITS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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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춘이네 보따리……?’
생전 처음 보는 단어네. 우리 소속사 계정을 뒤에 태그해 둔 걸 보니, 아마도 대표님께 말하는 거겠지.
“으음…….”
은찬은 핸드폰 화면을 잠금으로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다리던 데뷔 소식이 아니라 아쉬운 현주인 팬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래도 현주인 본인이 그동안 하고 싶어 했던 배우 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우리 제네시스 또한 그룹 멤버로 6명이 공개되었는데 이런 반응들이 지속된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현주인이 없는 우리는, 온전한 그룹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같잖아.’
기분이 좋지 않으면서도 이들에게 우리 6명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돌이니까… 무대에서 증명하는 게 제일 빠르겠지.’
우선 첫 무대부터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쇼케이스 D-30.
은찬은 주먹을 꽉 쥐었다. 두 번은 망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