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36
136.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슨 생각 하나 했더니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군.”
“쓸데없긴. 인간적인 걱정이지. 그 몸속으로 들어간 놈도 목숨이 한정되어 있을 텐데, 그걸 계속해서 땡겨 쓰고 있을 거 아냐. 그러다 바닥나는 거 한순간이다.”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 않나?”
“어떤 사람도 자기가 언제까지 살지는 몰라.”
목숨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은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얼마나 땡겨 쓸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뜻이다. 이게 생명을 갉아먹는 대가 지불의 가장 무서운 점이기도 하고.
“뒤져 버리면 나야 좋지.”
“야, 말이라도 그건 좀 그렇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현주인은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이 내게로 턱짓했다. 나 또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굉장히 긴장한 얼굴을 하며 폼을 잡았다. 사실 그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거 오버해서 사용하면 존나 아파.”
현주인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나를 미친놈 보듯 보았다. 입가는 잔뜩 일그러졌는데 대놓고 비웃지도 않는 것이, 놈의 황당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진짜 개아프다고. 쓰러지는 게 문제가 아니야.”
근데 정말 아픈 것도 문제는 문제지. 나름 고통을 잘 참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견디다 못해 쓰러질 정도였으니. 무리하게 뽑기를 사용했을 때의 고통을 상회했던 것은 회귀 후부터 이제껏 없었다. 회귀 전의 심장 수술 직후와 비슷한 정도인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목숨 갈아 쓰고 있는 게 맞다면 진심 독하네, 지금 백무영… 보통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닐 텐데. 낯빛 하나 안 변하고.’
게다가 체력도 깎이는 판에 멀쩡한 안색을 유지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남발하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문득 백무영이 예민해진 이유 중 하나에 이것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만으로 저렇게까지 여유가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지금의 백무영에게는 목적 말고는 안 보이는 것 같아. 나한테도 조급함이 느껴질 정도잖아.’
그 여유롭던 백무영의 모습이 사라지다니. 당장 내일 죽는대도 이뤄야만 하는 뭔가가 있으니까 저렇게 구는 것이겠지.
‘나도 그 목적에 무관하지 않으니 자꾸 엮이는 것일 테고.’
좋든 싫든 그놈과 연관되어 있는 게 맞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게 엮였나 봐.’
회귀 전 나의 인간관계는 워낙 한정적이라, 모든 주변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려야 했다. 한 톨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이제는 스쳐 지나가 버린 인연들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럼 끝도 없을 텐데.
‘차라리 백무영이 제 정체와 목적을 털어놓기라도 했으면 좋겠네. 그렇다고 지금까지 했던, 아니, 진행 중일지도 모르는 모든 일들이 뚝딱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답답함을 티끌만큼 해소하는 것 정도는 되겠지.
생각이 흐르고 흐르다 여기까지 닿자 다시 짜증이 확 끓어올랐다. 하긴 본질은 함정원과 신준서 같은 애들을 건드리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해 순위를 조작하고, 나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놈인데. 내가 왜 걱정까지 해줘야 하지?
“그리고 나도 그놈 걱정은 하나도 안 돼.”
“…그놈? 푸핫, 네가 그렇게 부르는 날이 다 오네.”
“내가 궁금한 건 왜 그렇게 여유를 잃으면서까지 무리를 하느냐는 거지.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걸 텐데. 그러면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면 되는 거 아냐?”
씩씩거리던 중 머리 위로 현주인의 손이 풀썩 올라왔다. 놈은 싱긋 웃으며 내 머리를 슬슬 문질렀다.
“웬일로 똑똑해졌네. 칭찬해 주마.”
현주인의 행동이 썩 기분 좋진 않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칭찬은 귀하니까, 짜증은 일단 뒤로 털어버렸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백무영 몸에 들어와서, 원래 자기 목숨 갉아가면서까지 나에게 집착하는 이유.’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결론을 추론해 내야 한다.
내 쓸데없는 자신감이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백무영은 확실히 나에게 무리해서 집착하고 있으니. 그게 본인의 무엇과 연관이 되어 있길래?
‘게다가 현주인이 회귀한 이유에…….’
나만이 걸려 있는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백무영도 조금이나마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넘겨짚는 것일까?
“너도 뭐 아는 거 있지?”
“내가 뭘.”
계속해서 진짜 백무영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회귀 전에는 별 접점이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이름만 나오면 으르렁거린다.
‘내가 먼저 회귀했고 그 이후 연이 닿았다 해도…….’
잠시 생각의 흐름을 멈췄다. 현주인과 백무영에 대해서는 확실히 내가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아아~ 내가 회귀한 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거야? 시간 차가 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넘겨짚진 못하겠네.’
분명히 뭐가 있긴 있는데. 게다가 자기 입으로 나중에 말해준다고도 했잖아.
“나도 가만히 있는 거야. 네가 말해줄 때까지.”
스스로 입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자. 원래 친구 사이는 신뢰로 지켜 나가는 것이다. 붕우유신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지 않나.
‘…근데 쟤랑 나랑 친구인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는 현주인을 보자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앞에서는 연기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말한 놈인 만큼 지금의 모습 또한 진심으로 편해 보였다. 현주인이 진심인 모든 순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친구라는 증거 아닐까.
‘뭔가 우월감 드네.’
한참을 돌아왔지만 말이다.
“알고 있어. 고맙다.”
“고마운 거 알면 됐고.”
일부러 현주인 어깨를 툭 친 뒤 앞으로 지나쳤다. 그러자 현주인은 내 뒤로 바싹 붙어 아까처럼 머리를 헝클이며 짧게 웃었다.
“유은찬, 많이 컸다. 나한테 여유 부릴 줄도 알고.”
“네가 모르고 있던 것 같은데 내가 원래 형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인적 드문 이 길거리엔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만이 기척의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초여름의 밤공기가 눅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습기는 있지만 바람은 쾌적하고 시원했다.
‘좀 약해져 있어서 그랬던 거지.’
쓰고 나왔던 모자를 푹 눌러썼다.
“됐어. 돌아가자.”
먼 길이 아닌 데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문득 컴컴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야, 현주인.”
졸지에 같이 멈춘 현주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놈을 바라보지 않고 물었다.
“우리 무슨 사이냐? 그냥 동료라기엔 좀 더 끈끈한 것 같은데. 동반자? 협력자?”
“…진짜 별생각을 다 하네.”
“그냥 친구라고 하자.”
왜냐면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저놈과 내가 서로 친구라고 지칭하는 날이 올 줄이야.’
역시 사람 사는 일 모르겠단 말이지.
그날 밤은 여러 감정으로 인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역시 한번 찾아왔었던 불면증은 심리적으로 약해져 있을 때마다 나를 불쑥불쑥 찾아오곤 했다. 지금은 백무영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과 내 주변인들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머리를 굴리며 새벽을 지새웠다.
***
‘수면유도제라도 먹을걸. 미련하게 밤을 새워 가지고…….’
센치함에 취했던 새벽과 달리 여파는 아침에 찾아왔다. 샤워 후 욕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다 후회의 후폭풍을 제대로 맞았다.
‘아씨, 푸석한 것 같기도 하고……?’
원체 뭐가 나거나 건조한 피부가 아니라 사실 이전까지는 피부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신경 쓰고 나니 여러 가지가 눈에 띄는 것 같았다. 마치 손톱 옆 거스러미의 존재를 자각하고 나면 거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다음부턴 어떻게든 눈 꾹 감고 있어야지. 오늘은 뭐든지 치덕치덕 발라봐야겠다.’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오늘이 화보 촬영 날이기 때문이었다. 문밖에서 현주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나올 건데?”
얼굴을 매만지다가 몸을 슬쩍 떨었다. 욕실 한편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자마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다니?
“지금 나간다, 나가!”
‘그냥 욕실 문 두드리면 될 걸, 굳이 소리를 질렀어야 하냐…….’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급히 벗어두었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지각까지 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은찬 씨, 피부가 왜 이렇게 좋으세요~”
“하하…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다행이네요. 그때 선물해 주신 제품들만 썼는데 그 덕분인 것 같아요.”
“엇,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과장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진짜예요!”
얌전히 앉아 컨셉에 어울리는 화장을 받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 계약서의 최종 날인본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독 특이했던 조항 하나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제7조 아티스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에 을은 갑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고 갑은 을에게 위약금 금 300,000,000원을 일주일 내로 지급한다.
‘사회적 물의라니…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 조항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계약한 아티스트가 이런저런 이유로 파장이 큰 사건을 일으키면 계약된 회사들마저도 피해를 보는 경우를 여러 번 보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조항이 계약서에 끼기 시작했는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왔다. 괜히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현주인을 한 번 흘겨보았다.
‘안이 좀 소란스러운데?’
투명함이 컨셉인 첫 번째 안에 따라 간결한 화장을 마치고 촬영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환한 조명과 많은 꽃들이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와, 대박……!”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입을 벌린 채로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보았다. 벽면에 장식된 풍선들은 우리 이름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옆을 꽃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주문 제작된 케이크 하나와 다과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입사할 때도 이 정도 환영은 못 받은 것 같은데?’
눈을 빛내며 돌아다니는 나와 달리 현주인은 이미 익숙한 상황인 듯 곧장 비즈니스 모드를 ON으로 한 채 산뜻한 미소를 곁들인 감사 인사를 사방으로 발사 중이었다.
“이거 저희를 위해 이렇게 준비해 주신 거예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양손을 맞잡고 감동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동시에 팔꿈치로 옆에 있는 현주인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야, 이것 봐. 진짜 최고다…….”
“원래 이 정도는 해주시는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말고 적당히 받아들여.”
“아니지. 너무 감동인데 어떻게 적당히 받아들여?”
나는 연신 여기저기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현주인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마땅한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너 근데 잠 못 잤냐?”
“어.”
“왜?”
“너 때문에.”
순간 현주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