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40
140. 1주년 미니 팬미팅(1)
너무 감격스러워서 회의안을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소한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브이앱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니……!’
곧 1주년이 다가오기에 이벤트를 준비하려고 하기는 했다. 오늘 회의의 주제 또한 ‘어떤 이벤트를 해야 팬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까’였으니.
‘내가 아는 게 없으니까 여러 아이디어를 종합하는 수밖에 없는 줄 알았지.’
하지만 그동안 칠월칠석 활동을 하며 매년 챙겼던 데뷔 기념일에도 마땅히 이벤트라고 할 만한 것을 진행한 적은 없었기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건 많았어도 할 만한 여건이 못 된 쪽에 가깝다.
‘다 같이 머리를 모아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겸사겸사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를 모아보자고 한 거였는데.’
그래서 머리를 맞댈 생각이었다. 작은 이벤트를 진행하더라도 팬들을 생각한 마음이 여럿 뭉치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1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최소한이라도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대박이지.”
나를 올려다보는 멤버들을 향해 재차 되물었다. 그리고 핸드폰 액정 속 대표님의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하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미니 팬미팅이라니… 그동안 팬미팅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이런 제안을 회사 쪽에서 먼저 해올 줄은 정말 몰랐다. 내 입으로 대표님의 전언을 읽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멤버들에게 정보를 전할 때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장족의 발전이냐……?’
칠월칠석 때는 기껏 해봐야 연습실 하나를 빌려 직접 꾸민 벽을 배경으로 해서 라이브 방송을 켜거나, 기념사진을 올려주는 정도였다.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도 회사 측에서 허가가 나오지 않았고, 인지도나 코어 팬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 먼저 제안할 입장도 되지 못했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왜 다들 답이 없어?”
기쁜 일이긴 하지만 스케줄이 추가된 것이기에 껄끄러운 멤버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멤버들을 눈으로 한 번 쭉 훑었다. 현주인은 날 보며 숨죽여 웃고 있었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웃고는 있으나 어떠한 말을 얹지는 않았다.
‘대표님 말씀 전부를 읽어줘야 하나?’
아무래도 내가 정보를 더 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너무 간결하게 말했나 싶어 아차 했다. 그때 주혁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디서요?”
“G대학교 소극장…이라고 하시네. 대관도 가예약 잡아두셨대.”
순간 주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나오는 주혁이의 표정이다.
“저희 좌석 찰까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악의 없는 순수한 질문이긴 한데.
‘이런, 현실적이네.’
너무 현실적인 방향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며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도 맞다.
‘뭐랄까… 기뻐하는 기색보다 현실성을 먼저 보는 게 조금 아쉬운 느낌……?’
하긴 다른 멤버들은 회귀한 것도 아니니 나와는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 나야 회귀 전이 워낙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어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런 부분부터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챙기는 멤버가 있는 것도 다행인 거지, 뭐.’
섭섭함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위아래로 맞대 꾹꾹 문질렀다. 입가가 일자로 쭉 펴지며 미묘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고 메시지를 다시 확인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수요 파악도 되었고 그리 넓은 데가 아니라 괜찮다고 하시네.”
“아하.”
“더 궁금한 거 있어?”
“아뇨. 그냥 자리 남을까 봐 걱정되어서 물어봤어요.”
‘그럼 아마 초대석 뿌리시겠지……?’
유토피아의 첫 팬미팅 당시 수요 예측에 실패해 자리가 꽤 남았을 때도 주변에 초대석을 뿌렸으니까.
‘팬들이 그 앞에 앉아서 박수 열심히 쳐줬던 기억이 떠오를 건 또 뭐냐.’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현재에 집중하자.
“내가 볼 때 지금 그런 걱정을 할 건 아닌 것 같아.”
“하긴 그렇죠.”
정확히는 수요 파악이 완료되어 가예약까지 해두었다는 말만 하셨다. 이제 멤버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내가 대표님께 답변만 드리면 직원분들이 예약을 진행해 주실 터였다.
‘그래도 미니 팬미팅인데 이걸 멤버들한테 언질도 안 주고 진행하시다니… 조금 독단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나름 생각해 주신 거겠지. 대표님, 예전에는 팬미팅이고 뭐고 절대 안 들어주셨으니까…….’
갑작스럽긴 했다. 가예약을 했다는 내용과 날짜만 전달해 주신 걸 보면 팬미팅 진행 구성은 우리더러 짜라고 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팬미팅 진행할 건데 어떻냐는 말 한마디만 미리 말씀해 주셨어도 이런 당황은 보이지 않았을 터다. 분명 좋아했을 테니까.
‘당장 다음 달이기도 하니 좀 촉박하긴 하지.’
내일부터는 연습에 돌입해야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스케줄들이 예상되기에 멤버들의 생각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저!”
방금 전까지 손톱을 보며 다른 행동을 하고 있던 별이가 갑자기 번쩍 손을 들었다.
“팬미팅이면 지니들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겠네요?”
“응. 그렇지!”
“와~ 대박이다. 그리 넓은 데가 아니면 소수 정예로 하는 것 같고 더 좋겠다!”
광대가 위로 봉긋 솟았다. 별이다운 긍정적인 반응이다. 앞으로의 스케줄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얹힌 섭섭했던 마음이 비 온 뒤 갠 것처럼 화사해졌다. 그래, 내가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책임감을 가지고 멤버들과 함께 으쌰으쌰 하면 되는 걸 가지고.
“전 그런 거 너무 좋아요!”
“소수 정예…….”
별이가 싱글벙글 주변 멤버들에게 맞죠, 맞죠- 하고 말을 걸었다. 차분했던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티켓팅… 지니들 많이 힘드려나?’
물론 주혁이가 말한 대로 좌석이 매진될지부터나 걱정하는 게 좋겠지만.
“그럼 다들 좋긴 한 거지?”
어차피 대표님이 스케줄로 픽스를 해두신 거면 무조건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안건은 한 명이라도 탐탁지 않아 한다면 연습 과정에서 삐걱이기 마련이라,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초장부터 긍정적 의견을 받아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확답을 확실히 듣고 가야 한다고.
“응. 좋아.”
여태껏 가만히 있던 가을이가 리온이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선이는 평소처럼 빙글거리고 있었고 주혁이는 더 이상 말이 없는 걸 보아하니 긍정일 터였다.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문을 해소하고 갈 타입이니까.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대표님에게 ‘확인했습니다’라고 간결한 답장을 전송했다. 대표님의 확인은 빨랐고, 확정을 알리는 답장이 도착했다.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이디어 회의만이 남았다.
‘내가 팬미팅을 하는 날이 오다니. 숙소에 돌아가면 반지에 입이라도 맞춰야겠어.’
라이브 방송을 고민했던 것에서 순식간에 스케일이 커졌지만 팬들을 직접 본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고양되었다.
“우선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전에 외부 MC를 초청할지, 내부에서 우리끼리 진행할지 정하면 될 것 같아. 혹시 진행하고 싶은 사람 있어?”
무에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나갈 땐 헷갈리지 않도록 가장 큰 아웃라인부터 잡아야 한다. 멤버들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의견을 물었다.
‘역시 없으려나?’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선이가 현주인 쪽을 빤히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키득였다.
“주인이가 쇼케이스 진행도 했잖아요.”
“이선이가 말을 잘하는데.”
“윽…….”
“학교에서 진행도 봤었거든요, 형.”
이선이는 현주인에게 MC를 맡기려고 했던 모양이었으나, 주혁의 끼어듦으로 인해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나서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격이다.
‘학교에서 진행을 봤었다니. 체육대회나 축제 같은 거 말하는 건가? 이건 모르던 사실인데, 잘됐네. 나도 정 지원자 없으면 현주인한테 부탁해야 하나 싶었는데.’
현주인은 우리의 데뷔 쇼케이스도 진행했을 만큼 딕션이 좋고 진행 경력도 있으니까. 하지만 본인이 내키지 않아 하는 부탁을 하기에는 마음이 걸렸고 역할을 몰아주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이렇게 거들어주면 나야 좋다. 주혁의 말을 받아 자연스럽게 이선이를 향해 질문을 토스했다.
“그래? 이선이가 해볼래?”
“꼴좋네. 마음씨 좀 곱게 먹어라.”
“그냥 장난이지이…….”
이번에는 현주인이 거들었다. 옆에서 주혁이 축제 때 볼만했다- 하고 말을 얹는 걸 보니 축제 진행을 맡은 모양이었다. 등등했던 이선이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해보겠습니다… 재밌게 할 자신은 없지만.”
“이선이는 잘할 것 같아.”
“하하…….”
마지못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저 모습. 주혁이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이선이답지 않게 꽤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건 드문 모습인데.
‘어찌 됐든 저 셋이서 끝장을 볼 것 같으니 나는 말만 좀 거들어주면 되겠네.’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웃음기를 숨겼다. 장난기 어린 셋의 대화 사이에 적당히 끼어들자 이선이는 질렸다는 듯 이마를 감싸 쥐었다.
“순서 정한 뒤 대본부터 짜면 될걸?”
“할게요, 해. 이렇게 된 거 완벽히 해드려야겠네.”
체념 섞인 너털웃음 후에 현주인과 서주혁의 비웃음이 끼어들었다.
‘이선이도 워낙 말은 잘하니 괜찮겠지.’
게다가 이런 멍석을 깔아주면 또 거절할 애는 아니다. 서주혁과 엮인 일만 아니라면 성격 자체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 스타일이고.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던 MC 결정이 수월하게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기대된다, 야. 그럼 다음은…….”
큰 순서를 잡아가기 위해 주제를 넘기려던 차였다. 책상 끝 쪽에 앉아 조용히 의견을 듣고 있던 리온이 운을 뗐다. 오늘 처음 듣는 리온이의 목소리였다.
“제가요.”
“응?”
회의 시작부터 쓰고 있던 안경을 위로 추켜올리던 리온이 아까부터 끄적거리던 종이를 내려다보며 찬찬히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했는데 첫 팬미팅인 만큼 굳이 튀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무난하게 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하거든요.”
“…….”
아까 계속 종이에 뭔갈 끄적인다 싶더니 아이디어를 적던 것이었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리온이의 말을 경청했다. 리온이는 얼굴 앞쪽으로 쏠려 내려오는 앞머리를 귀에 꽂아 넘기고는 말을 다시 이어갔다.
“제일 기본은 무대와 토크의 반복이죠. 시간이 허락된다면 게임 몇 가지를 넣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저희 타이틀곡을 3곡 정도 보여 드리고 토크를 진행한 뒤에 멤버끼리 유닛으로 무대를 보여 드리는 건 어떨까요? 커버댄스든, 수록곡이든. 유닛은 뭐, 나이로 잡아도 되고 포지션별로 나눠도 되고, 그냥 좋으신 대로 해도 되겠고요.”
“…….”
“…좋아.”
나뿐만이 아니라 주혁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고였다. 벌떡 일어나 리온이의 근처로 가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보아하니 아주 흡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리온아, 그 짧은 사이에 그 기획을 어떻게 한 거야……?”
“그냥… 그냥 되던데요.”
“너 없으면 진짜 그룹 안 돌아갈 뻔했다. 대단해.”
“과찬을…….”
사람이 없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는 걸 보니 쑥스러운 듯했다. 이렇게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니 확실히 진행이 수월하다.
‘기획이나 아이디어에는 확연히 리온이를 따라갈 만한 머리가 없잖아.’
이에 대해 고민을 하려고 머리를 맞댈 생각이었는데, 너무 잘됐네.
한번 길이 뚫리자 다른 애들 입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리온이가 언급했던 유닛 무대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내가 손뼉을 치며 제안했다.
“우리가 7명이니까 3, 4로 나누고 단체로 수록곡 무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보컬, 댄스로 하는 건 어때?”
“무난하네요. 댄스는 제가 안무 따서 가르쳐 드리면 될 것 같아요.”
다행히 환영받는 느낌. 너무 착착 진행되어서 짜릿할 지경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