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42
142.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1)
역시 나의 생각대로 지니들은 다양한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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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다팜 @efdzcji8
갑자기 뭐야? 셋이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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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 @wpeirilmaIsun
다음 활동 이 셋이서 유닛 하는 듯…
ㄴ @wpeirilmaIsun 님에게 보내는 답글
아, 그러네 유닛인가?
ㄴ 서니 @wpeirilmaIsun
아직 데뷔 1년 안 됐는데 유닛 데뷔 할 거 같진 않고… 뭐든 나 기대해도 되는 거지?
ㄴ @wpeirilmaIsun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ㅋㅋㅋ1주년 기념 뭐 해주려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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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 @norriiea
ㅋㅋㅋ아니 완전 의외의 조합인데 친해지길 바라 또 하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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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lalala12la
본격 연가을 기 빨리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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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방랑자… @iwantnewoppa
유은찬 뭐야 셋이서 연애하나요?
ㄴ@iwantnewoppa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이런 발언 자제 부탁드립니다…
케이팝방랑자… @iwantnewoppa
뭔 말을 못 하게 하네 ㅋㅋㅋㅋ개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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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이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었다. 반년 넘게 팬들과 호흡을 맞춰가다 보니 이제 우리와 생각의 결이 비슷해진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척하면 척이냐. 회사에서는 팬들 다 눈치챘다면서 너무 스포한 거 아니냐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놓고 스포한 건 아니기에 말만 잘하면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나한텐 회사도 회사지만 팬들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기에 연습 전 SNS 반응을 확인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활동기이니 심심할 지니들에게 즐길 거리를 꾸준하게 제공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소스가 하나라도 있으면 우리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팬들은 즐거워하는 걸 많이 봐왔으니까.
“쟤네는 벌써 연습 시작했어?”
“서주혁 의욕이 불타던데.”
“오호… 그렇구나.”
기분 좋게 휴대폰을 엎어두고 자리로 돌아왔다. 옆 댄스 연습실에서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연습실이 보컬 연습실이라 방음이 잘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저쪽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도 얼른 정해보자.”
보컬 무대야 따로 안무 맞출 것이 없으니 저쪽보다는 여유가 있겠지만 빨리 결정해서 나쁠 건 없었다. 모든 건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진행했을 때 최선의 결과를 내는 법이라고. 게다가 한 달밖에 없으니 시간이 완전히 널널한 것도 아니고.
“컨셉은 정했잖아.”
“곡 정하는 게 진짜긴 하지.”
‘웬일로 의견도 다 내고…….’
현주인의 의견 표출에 입술을 빼쭉이며 의외라는 표정을 해 보이자 놈은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민망하긴 한가 보지?’
리더인 내 입장에서는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멤버들이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하면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겠지만 그만큼 일에 열정이 있다는 뜻과 상통했으니까.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부딪히지 않고 성장하는 법은 없다는 걸 이번 현주인과의 일로 인해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래, 한번 정해보자! 너 생각해 온 거 말해봐.”
이럴 때는 우쭈쭈 해주는 게 낫다. 현주인이 보기와는 달리 이런 칭찬에 은근히 약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보면 확실히 나보다 나이 어린 모습들이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한 곡을 콕 집어 하고 싶다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는 이런 분위기의 잔잔한 곡이 제일 나은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건 너무 잔잔하지 않아? 팬미팅에서 잔잔한 곡 부르면 분위기 갑자기 처진다고. 그럴 거면 우리 수록곡 부르는 게 나아.”
“내가 방금 말한 거 듣긴 했어요?”
방심하던 사이 필요 이상으로 말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 살짝 찌푸려진 가을이의 표정 또한 지금 가을이가 어떤 감정인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 감정이 읽혔을 정도니까.
‘음…….’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내 쪽으로 불똥이 튀거나 상황이 커질 수도 있기에 이럴 땐 말 한마디를 조심해야 했다.
“들었어. 그런데 말이 안 되니까 하는 말이지.”
“뭘 모르나? 보컬적 성량을 보여주려면 이게 낫죠, 형.”
“우리가 저번에 정했던 컨셉에 부합하지 않잖아. 나는 이 선배 그룹의 5번 트랙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니죠, 그건…….”
이건 토론을 빙자한 자존심 싸움이나 다름없다.
‘확실히 가을이도 보컬에 대해서는 양보 없네.’
특히나 웬만하면 수긍해 주는 가을이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저 자존심 세고 자기 생각을 굽힐 생각 없는 현주인의 갈등이라면 더더욱.
‘끼어들 때인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건 좋지만 싸우면 곤란하지.’
그래도 리더란 감투가 있는 데다 명색이 맏형인데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친구들끼리 서열이라는 걸 나누는 것도 웃기지만 내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인 건 맞으니까. 누구 하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끼어드는 것이 좋겠다.
“언성 높아지면 혼난다, 둘 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쳇.”
다행히 내 생각이 잘 먹혀든 모양이다. 연가을과 현주인 사이에 일부러 몸을 끼워 넣어 적당히 흘리듯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는데, 그 덕분인지 둘은 혀를 차면서도 입을 꾹 닫아버렸다. 가을이는 그런 내 모습에 많이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이미 어제 컨셉을 정했는데 이제 와서 바꿀 필요는 없지.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럼 이제 상황 마무리를 할 만한 말을 얹어볼까. 활짝 웃으며 양팔을 뻗어 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원래 정했던 컨셉대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둘은 내가 팔을 거둘 때까지 대답이 없었다. 현주인은 여전히 언짢아 보였고, 가을이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뭐, 내가 제 편을 들어주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긴 하겠지.
“2 대 1인 거지? 주인이 의견은 우리 단독 콘서트 하게 되면 꼭! 하자. 내가 지금 머리에 새겨놨어.”
“…….”
다행히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무난하게 상황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현주인이라도 별수 있겠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니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겠지. 물론 현주인의 의견이라고 잊을 생각은 없고, 아까 말한 대로 우리가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된다면 꼭 의견을 반영한 무대에 세워주고 말 것이다.
‘현주인이 본인의 의견을 저렇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게 얼마 만이냐.’
회귀 전에 아이돌로 활동하기 싫다고 똥고집 피웠던 게 아직 내 눈앞에 생생하다고. 그리고 정말 배우 활동에만 매진했을 만큼 고집 센 놈인데 이쯤에서 물러나 준 것도 기특하잖아. 저런 애한테도 갱생의 여지가 있을 줄이야.
“한 소절 불러볼래?”
흥분했던 마음을 가다듬었는지 다시 차분해진 가을이가 현주인에게 물었다. 현주인은 눈썹을 잠시 꿈틀거렸는데 이내 표정을 다시 고치더니 가을이가 들려주는 노래의 한 소절을 조그맣게 따라 불렀다. 표정 없던 가을이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음색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 실력 많이 늘었네.”
동시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고였다. 그동안 현주인이 열심히 보컬 연습을 하고, 스탯을 올리기까지 한 노력의 결과를 메인보컬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보컬 선생님이랑 가을이에게 통과받을 정도면 말 다 했지.’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방긋 웃으며 현주인에게 눈을 맞추자 놈의 안면 근육이 움찔거렸다. 저거 분명히 민망해서 저러는 거다.
“가을아~ 주인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너 주의 깊게 안 봤구나?”
“…혀엉…….”
가을이는 손을 내저으며 그런 거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좋아! 연가을 인정도 받았으니 이미 세팅은 끝났네. 이거, 완전 나 버스 타는 거 아니야?”
“버스는 무슨 버스야. 형 없으면 화음 안 맞아…….”
“너 또 겸손 떠네. 내가 그러지 말랬지?”
“아…….”
가을이가 준비해 온 악보를 꼼꼼하게 엘자홀더에 넣어 챙겨 들었다. 미리 공부까지 하고 온 모양인지 가을이가 준 악보에는 형형색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전부 노래 부를 때 보다 수월히 부를 수 있도록 하는 도움말과 하이라이트 부분을 정성스럽게 표시해 둔 것이었다. 눈앞의 가을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우리 이 정도면 엄청 수월한 스타트다. 좋은데? 무대 구성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되겠어.”
현주인도 별 대꾸가 없었고, 가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년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지금, 삼천포로 빠질 시간 따위는 없다. 유닛 연습뿐만이 아니라 전체 연습도 진행해야 하니 더더욱. 스타트가 이리도 수월하니 연습도 여유롭게 진행될 것이란 직감이 왔다. 팬들에게 여유 있는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팬미팅 공지도 금주에 업로드된다고 했지. 티켓팅도 당장 다음 주로 잡아놨다고 했고…….’
내가 생각해도 빡빡한 스케줄이긴 하다. 보통은 팬미팅에 관련된 공지를 한 달 반 전 정도에 올리고, 티켓팅을 한 달 전에 진행한다.
‘뭔가 얼레벌레 진행되는 것 같단 느낌이 있네.’
그에 비하면 상당히 빠르고 급조된 느낌이 있다. 공연 당사자인 나조차도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팬들이 다급하다고 느끼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팬들 반응이 괜찮으려나? 그래도 1주년 기념 팬미팅이니 좋아하셨으면 좋겠는데.’
데뷔 후 1주년을 기념하는 만큼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제네시스뿐만이 아니라 지니들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공연으로 꾸미고 싶었다. 티켓팅 때부터 기분이 상한 채로 무대를 진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기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추후에 확인해 봐야겠네.’
이럴 땐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그를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회사 측에서 결정한 걸 내가 어찌할 순 없으니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단독 콘서트는 아니지만 단독 첫 팬미팅이다. 그동안 데뷔 기념일을 라이브 방송이나 SNS로 때웠던 날들을 생각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이다. 기다리던 제네시스의 단독 무대를 최고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의지가 불타올랐다. 주먹을 콱 쥐자 반사적으로 목울대가 울렸다.
“이만 정리할까?”
이미 가을이나 현주인 두 명 모두 짐을 정리하는 중이었지만 예의상 마무리 멘트는 쳐야 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보컬 연습실 문을 여는 동생들 뒤를 쫄래쫄래 쫓아 나와 문을 닫으려던 찰나였다. 귓가에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파고들었다.
“제 말은 안 듣냐고요!”
얼굴이 구겨지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인 걸 보니 멤버들 중 누군가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됐든 인상 찌푸릴 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이 상황만은 막으려고 한 건데.
“깜짝이야…….”
제 말은 안 듣냐니. 때마침 보컬 연습실 안에서의 작은 다툼이 생각날 건 뭐람.
‘뭐지, 이 데자뷔?’
개성 강한 여럿이 모이면 의견 충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건 좀 심각해 보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들을 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글쎄? 네가 내 말 안 들은 거 아니고?”
연습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선명히 들려오는 말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복도까지 들려오는 언성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의 분쟁이라는 소리다. 딱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의 방향을 큰 소리가 터져 나오는 연습실 쪽으로 틀었다.
“가려고?”
“가봐야지.”
“오지랖이야.”
“…….”
하지만 발을 떼려는데 곧 현주인에 의해 제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