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51
151. 맞불 작전(1)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든가…….’
분명히 할 말 있는 눈빛으로 날 째려보고 있으면서 입 다물고 있기는.
‘뭐, 지 속만 끓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등 뒤로 현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이걸 무시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모르는 척할 거지만.
‘백무영을 만나러 가야 해.’
어찌 됐든 지금 내 목적지는 단 하나였다. 현재 가장 요주의 인물인 백무영이 있는 곳. 지금으로서는 이미 세뇌가 될 대로 된 함정원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백무영을 찾는 게 나았다. 함정원은 백무영 선배를 만난 이후에 만나도 충분하다.
‘함정원 만나봤자 적의만 드러낼 텐데 대화가 될 리가 없어. 그렇다면 선배를 만나서 몇 마디 정보라도 떠보는 게 낫지. 말리지 않도록 주의하려면 기력은 좀 소모될 테지만…….’
밥이라도 잘 먹어둘 걸 그랬다. 분명히 쉽지 않은 심리전이 될 것이다. 괜히 목에 걸린 묵주반지를 확인차 여러 번 매만졌다. 엄마, 오늘도 나를 지켜주세요.
‘미리 연락을 해두어야 하나?’
백무영 선배의 소속사 근처로 위치를 설정해 어플을 통해 택시를 잡고 휴대하고 있는 마스크를 올려 쓴 뒤 곰곰이 생각했다.
다짜고짜 얘기 좀 하자면서 등장하면 선배도 많이 당황스럽긴 할 테지. 물론 선배가 톱스타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케줄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소속사 앞이기에 그럴 순 없었다. 말없이 찾아가면 선배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울 테고 대화의 기회 자체를 잡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
역시 여러모로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휴대폰을 톡톡 두드렸다.
[선배님, 오늘 이야기 좀 나누고 싶어서 방문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실까요?]‘음…….’
일단 문장을 작성해 두기만 하고 바로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뭔가 이보다 더 괜찮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오늘 무조건 보아야 내 속이 풀릴 것 같은데 이건 너무 표현이 약하단 말이지.
[선배, 시간 좀 괜찮으세요? 지금 소속사 방문할게요. 기다릴게요.]문장을 전면 수정하고서야 전송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을 다시 가방 안에 욱여넣고는 마침 도착한 택시에 올랐다. 머리로 해야 할 말들의 순서를 정리하면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기사님.”
소속사 맞은편 언저리 구석에서 하차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는 얼굴은 없었다. 아직까지 백무영 선배에게서의 답장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아야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엇.”
소속사 근처의 카페 중에 제일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저 멀리서 커다란 인영이 나타나더니 내 쪽을 향해 손을 붕붕 크게 흔들었다. 멀리서 봐도 모를 수가 없는 존재감. 변승채 선배였다.
“오, 동생 아니야~?”
“선배!”
반갑게 웃으며 선배를 반겼다. 선배는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아주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친 선배는 헤헤,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그렇게 더운 날씨가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나시 차림을 한 선배의 모습이 꼭 그의 에너지를 대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괜찮으신가 보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고생을 했던 선배가 그 일을 털어낸 것 같아 안도되었고.
“어, 그런데 여기 우리 회사 앞이잖아.”
고개를 끄덕이자 변승채 선배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소속사와 소년미 소속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기에 의문을 갖는 것도 이상할 바는 아니었다. 선배가 괜히 헛다리를 짚어 큰 소리를 내기 전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촬영 있어? 아니면 미팅?”
“아, 그냥 무영 선배를 잠깐 볼 수 있을까 해서…….”
“오, 그래? 무영이 지금 미팅 중일 텐데 왜 이 시간대로 잡았지? 그 자식, 까먹었나?”
그래서 답장이 없었던 거구나.
웬일로 백무영 선배답지 않게 답장이 안 오나 싶더니. 내가 아는 선배라면 그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한참을 끄응, 하며 턱을 매만지던 변승채 선배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나를 향해 손을 올렸다.
‘아?’
무의식적으로 반지가 걸린 목걸이 쪽을 감싸려는데 선배의 손은 내 목과 얼굴을 지나 이마에 안착했다. 그러고는 앞머리를 위로 쓱 쓸어 올리며 혀를 한 번 차곤 고개를 내저었다.
“야, 덥지? 벌써 더워졌다니까. 회사 밑에 있는 카페 가자. 형이 음료수 사줄게.”
“네? 괜찮아요! 맨날 그렇게…….”
“야, 나 마침 시간이 좀 뜬단 말이야. 어차피 프로듀싱 촬영 재개까지 시간도 존나 많고. 심심해 죽겠어. 할 거 없었는데 잘됐어.”
그렇게 말하는 변승채 선배는 이미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몸을 빙 둘러 방향을 바꾼 뒤였다. 멀리서 거대한 소년미 소속사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마 저 소속사 쪽으로 향할 셈인 듯싶었다.
“나랑 시간 좀 때우자. 괜찮지?”
고개를 들어 선배를 올려다보며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그리 오랜 시간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거 좋은 기회일지도…….’
변승채 선배는 나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이다. 게다가 백무영 선배의 측근이기도 하며 은연중에 비밀을 흘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
‘사람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주어진 키를 사용하지 않을 것도 없지. 적당히 정보를 물어보는 것이 이용하는 게 되진 않는다. 하긴 내가 뭘 해도 함정원을 이용하는 백무영 선배의 발끝만큼도 못 쫓아갈 테지만.
어쨌든 확실하게 해두어 나쁠 것 없으니 변승채 선배의 호감도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선배의 호감도를 확인하고자 선배를 잠시간 곧게 응시했다. 곧 선배의 머리 위로 분홍빛 네온사인이 떠올랐다.
[ 변승채 ♡ +40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호의적인 변승채 선배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꽤나 높은 수치다. 저번에 비해 호감도가 상승하기도 했으니 슬쩍 떠봐도 무리는 없을 듯싶었다.
“그럼 제 음료는 제가 살게요…….”
“야, 난 남는 게 돈이야.”
“…….”
이게 내 최소한의 양심이었건만.
“내 돈 내가 쓴다는데. 불만 있냐?”
“…없습니다.”
저렇게 말씀을 하시니 내가 말을 얹을 건 없을 듯싶었다. 변승채 선배는 위풍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중이었다.
“같이 가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변승채 선배를 따라 소속사 내 사내 카페로 쫄래쫄래 쫓아 들어가던 때였다. 우웅- 주머니 안쪽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 현주인 : 별일 없지? ]백무영 선배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현주인이었다.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고개가 갸웃 한쪽으로 기울였다.
‘웬일로 내 걱정을 해주고…….’
참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 현주인이 언제부터 남 걱정을 해주는 놈이었지. 너무 예상치 못한 반응이어서 헛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 무슨 일ㅋㅋㅋㅋ ] [ 현주인 : 그냥. 있으면 바로 말해라 괜히 사람 헛생각하게 만들지 말고 ]금세 도착한 답장에 미간 사이가 좁아졌다.
‘걱정이야, 아니면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이야?’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탓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문자 그대로 해석했겠지만 하필 또 상대가 현주인이라서. 의뭉스럽게 돌려 말하는 버릇이 있는 놈이니 속내를 파악하려면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헛생각하게 만들지 말라는 뒷말까지 붙었으니 더더욱.
아까 놈을 뒤로하고 나올 때 등 뒤로 느껴지던 시선이랑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지.
[ 그런 거 없어~ 너한테는 아무것도 안 숨기지 ] [ 현주인 : 됐고 어디 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을 테니 필요하면 전화해 ]짜증스럽게 도착한 답장에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흐음…….’
얘 내가 백무영 보러 온 거 눈치챘구나. 하여튼 백무영에 관련된 일이라면 안 그래도 빠른 눈치가 더 칼같아진다니까.
‘웬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화하래?’
놈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되어줄 의향이 넘친다는 뜻이다. 물론 비단 내 걱정 때문만은 아니고 백무영이 끼어 있으면 앞으로의 상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 많이 착해졌다 주인아~ ]그렇다고 현주인이 내게 호의가 쌓일 대로 쌓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못한다. 예전이었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지 안중 밖이었을 테니까. 키득거리며 답장을 보내고 놈에게서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이, 후배님!”
“넵!”
카운터 앞쪽에서 변승채 선배의 커다란 목소리가 날 불러왔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로 팍 집어넣었다.
“뭐 마실 거야? 폰 볼 거면 고르고 봐. 답답하니까.”
“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엄청나게 좋은 소속사 사내 카페라 그런지 메뉴 또한 많았는데, 그 메뉴판을 한 번 정독하는 데에도 눈동자를 꽤 굴려야 했다.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래 봤자 선택은 정해져 있지만. 괜히 얻어먹는데 비싼 것 고르기도 좀 그렇고, 이럴 땐 아메리카노가 제일 무난한 법이다. 변승채 선배는 황당한 듯 웃음기 섞인 말투로 장난을 걸어왔다.
“다이어트하냐?”
“그냥 지금은 깔끔한 게 땡겨서…….”
“난 또 얻어먹는다고 싼 거 고르는 줄 알았지.”
“하핫.”
완전히 정곡이십니다.
할 말이 없어졌다. 입에 지퍼라도 채운 듯 핫핫, 하고 몇 번 어색하게 웃어댔다. 그러자 변승채 선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카운터 안쪽의 직원분께 당당하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아아 한 잔이랑 아아 샷 추가로 사이즈업 해서 주세요.”
“뭐예요! 선배님도 결국 아메리카노 드시면서!”
“걍 한 소리다, 인마. 선비 새끼.”
발끈해 언성을 높이는 내게 변승채 선배는 크게 푸하하 웃더니 진정하라는 듯 어깨를 두들겼다. 곧 내 양어깨를 붙잡고 근처 자리로 이끌어 자리에 앉히더니 진동벨을 손에 쥐고 흥미롭게 눈빛을 빛내왔다.
“그래서, 여기는 왜 왔어?”
“아.”
아무래도 선배에게는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무영이 새끼, 사람 불러놓고 시간도 못 맞추고. 에잉… 쯧쯧.”
역시 변승채 선배는 말 한마디를 해도 리액션이 크다. 혀를 내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선배의 모습에 입이 조금 써졌다. 너무 직구로 들어가면 안 될 상대다.
“아니에요. 제가 멋대로 찾아온 거예요.”
“엉? 왜?”
궁금증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선배의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부러 다시 되묻지 않도록 발음 하나하나 신경 쓰며.
“정원이가 소속사 안에서 잘 안보이길래 혹시 여기 오기라도 한 건가 싶어서요.”
“아?”
“앗, 제가 다녀올게요!”
“아냐. 앉아 있어라. 내가 가깝다.”
마침 진동벨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크게 진동했다. 선배는 곧 당황한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