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52
152. 맞불 작전(2)
“이게 내 거 샷 추가고, 이게 네 거다.”
“감사합니다.”
변승채 선배는 곧 잔을 내려두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선배를 흘끔 올려다보며 음료를 한 입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선배가 한 입 마시고 나서야 나도 커피를 쭉 빨아 마셨다. 시원한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이 정신을 맑게 깨웠다. 이왕 말할 거 잘해보라고 각성을 시켜주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여긴 왜 행차하셨다냐?”
“여쭤볼 게 좀 있어서요. 너무 무례하긴 했죠, 제가.”
“뭘 그렇게까지.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말해봐. 이 형님이 대답해 줄 수도 있잖아.”
입꼬리가 잔잔하게 올라갔다. 이런 흐름이라면 오히려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더욱 수월할 수도 있겠다. 갑작스러운 느낌도 들지 않을 테고.
“에이, 선배한테 여쭤보기에는 좀 그래요.”
“뭐? 야, 왜! 무영이 놈한테도 말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나한테는 말을 못 해!”
“아… 그래도 좀 그런데…….”
“당장 물어봐. 뭐든 답해줄 테니까.”
역시. 오히려 변승채 선배에게 운을 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데.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잖아요.”
“안 그렇다니까. 날 아직도 몰라?”
“그럼…….”
흘긋 선배의 눈치를 살핀 뒤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고장 난 인형처럼 그러고 있으니 선배는 어지간히 답답하긴 한 듯 잔 속의 커피를 반이나 단번에 들이켰다.
“무영 선배랑 정원이랑 많이 친한 것 같아서요. 그에 관련된 주제라서… 괜찮으세요?”
“아, 그 프로듀싱 나오는 너희 소속사 후배?”
“넵.”
간결하게 답을 한 뒤 미어캣처럼 고개를 바짝 추켜들어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몇몇 손님을 제외하고 앉아서 대화하는 손님은 전무했다. 그래도 연예 소속사 내부에 있는 카페니 주변에 듣는 귀가 많을 수도 있다. 특히나 변승채 선배는 목소리가 큰 편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서 나쁠 것 없었다. 구석 자리에 앉은 게 신의 한 수였다.
“많이 친한가요?”
“흠, 왜?”
빨대를 입안에 물고 굴리던 변승채 선배의 눈길이 내게 고정되었다. 선배의 부산스럽던 행동이 일순 멈칫했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더더욱 표정 관리에 신경 쓰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뭐야. 너 질투하냐? 후배 사랑 넘어갈까 봐?”
“네, 뭐… 그런 거죠.”
뭐야.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나 싶어 깜짝 놀랐네. 괜히 허탈해서 기운이 쭉 빠졌다.
“푸하핫! 귀엽긴, 짜식.”
선배는 내 어깨를 감싸듯 팡팡 치며 웃기 시작했다. 저 가벼움이 선배의 특징이자 장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긴장했던 자신이 조금 어이없어졌다. 적당히 허허 웃으며 장단을 맞추자 선배는 팔을 거두고 제 가슴팍에 팔짱을 끼며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선배가 골똘히 할 말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방금 선배가 치고 지나간 팔뚝을 매만졌다.
‘조금 아픈 것 같기도…….’
선배의 기다란 속눈썹이 여러 번 팔락거렸다.
“엉. 많이 친한 것 같긴 하던데? 쉴 때마다 자주 붙어 있기도 하고.”
“아, 자주 붙어 다니세요?”
“어.”
변승채 선배는 랩 수업을 할 때만 촬영에 참여한다. 방송상에 나오는 건 비중이 크지 않은 것 같더라도 합숙 중에는 매일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테니 믿어도 되는 증언인 것이 확실했다.
‘변승채 선배가 남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는 해도 자신에게 엮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까지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야. 그런 선배가 보기에도 친해 보인다는 거면…….’
내 생각보다도 자주 붙어 있다는 뜻이겠지.
변승채 선배는 나와 커넥션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런 선배 앞에서조차 숨길 생각이 없었던 거라면 말 다 했다. 백무영 선배라면 변승채 선배의 기억을 지울 수도 있었을 테고, 카메라 앞에서 티가 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이건 단순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보게 하려고 그런 것 같아.’
예전의 나라면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하며 넘겼을 테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보고 들은 증거가 너무 뚜렷했으니까. 함정원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고 함정원을 피해자라고 치부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백무영 선배에게 다가갈 의지가 있었으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 함정원이 직전 순위 발표식에서 4위를 하지 않았다면 마음이 더 불편할 뻔했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들어봐봐.”
“넵, 말씀하세요.”
검지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쳐가며 머리를 굴리던 변승채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볼 때마다 둘이 붙어 있기는 했던 것 같다. 보통 네 후배가 먼저 쪼르르 달려가긴 하지만. 뭐, 무영이 놈이 부르기는 했겠지. 내 앞이라 그런가?”
“정원이가 먼저요?”
“어.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둘 사이에 관심이 많아? 존나 세세하게 알고 싶어 하네. 얼씨구, 정말 질투해? 네가 백무영 친동생도 아니고. 너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혹시 다른…….”
“아무래도 소속사 후배다 보니 방송 볼 때도 정원이 위주로 살펴보거든요. 어떻게 하나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방송상으로도 엄청 친밀해 보이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얼마나 가까운지 궁금했어요.”
“아~ 그런 이유라면 그럴 수 있지.”
원래 둘러대기용 거짓말을 할 때는 적당한 진실을 섞어 말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 양심에 찔릴 것도 없었다.
‘말 한마디 잘못할까 봐 쫄리네, 정말.’
다행히 무난히 넘어갔지만 대화하다 삐끗하기라도 하면 그땐 두 배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 적절히 대처를 하는 게 관건. 이럴 땐 내 쪽에서 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답이다. 변승채 선배가 말이 많으신 타입이라 천만다행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한 것 같긴 해.”
“…….”
“무영이가 후배한테 그렇게 먼저 들이대는 건 처음 보긴 하네. 걔 성격이 활발한 편이기는 했어도 원래라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 정도 노력은 안 들이거든. 친구라면 모를까, 그것도 일로 얽히기도 한 한참 어린 애한테는.”
“아하……? 그럼 특별한 경우인가 보네요.”
“말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너도 알다시피 주변에 먼저 다가오는 후배 놈들이 많잖냐.”
“그, 그렇죠?”
“그러니까 그렇다고.”
지금 변승채 선배의 말 중에 걸러 들을 말은 단 하나도 없다. 정보의 소거는 추후에 해도 늦지 않다.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
물론 선배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이맘때쯤 속마음 확인 히든 이벤트가 나와주면 좋으련만. 스킬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오로지 심리전으로만 끌고 가는 건 역시 에너지 소비가 보통 큰 게 아니다.
“아, 요즘은 조금 달랐던가?”
“뭔가 달라진 부분이 있으세요?”
“확실히 우리 활동할 때랑 지금 배우 활동 할 때랑 다르긴 하지. 내가 저번에 너한테 섭섭하다고도 얘기했잖냐. 이놈의 입이 방정이라.”
“하핫…….”
취하셨을 때 이야기했던 거라 기억 못 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전부 기억하고 계셨구나. 하긴 이 얘기를 해주실 때까지는 만취가 아니었던가.
‘지금부터 더 집중해야겠군.’
변승채 선배가 예전부터 말을 했던 바이다. 소년미 활동을 할 때와 지금 배우 활동을 하는 백무영 선배의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비단 나만이 느끼고 있는 게 아니고 최측근이 여러 번 느낄 정도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맞잖아.’
어느 순간부터 다른 백무영 선배가 된 건지 시점을 명확히 특정할 수는 없다만 초반부터 티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이건 슬슬 자신을 숨기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뜻과 같지. 게다가 카메라 앞에서도 함정원과 붙어 다니며 나를 도발할 정도라면 궁지에 몰려 있는 것 같다는 나의 추측과 일맥상통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촬영할 때도…….”
“다른 장면은 나도 모르지.”
“아, 하긴 선배는 랩 레슨만 하시니까……!”
“응. 그러니까.”
손으로 한쪽 뺨을 반복해 쓸었다. 손바닥의 감촉이 볼에 닿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흠.’
조금 더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아니면 여기서 스탑을 해야 하나.
좀 더 대화를 해서 캐고 들어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변승채 선배에게도 의심을 살 가능성이 있다. 변승채 선배에게는 다음에 또 물어보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인간적인 반감을 사고 싶지도 않기에 꽤나 갈등이 되었다. 그때 선배의 입술 사이가 다시금 떨어졌다.
“함정원 군이 무영이 놈을 많이 좋아하긴 하더라.”
“아, 진짜요?”
이크, 너무 영혼 없이 대답했나.
“대답이 그게 뭐냐? 팬싸 하는 다른 새끼들처럼.”
‘티 났구나…….’
웃어 넘기셔서 다행이지. 예의 없게 느끼셨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더욱 주의해야지.
“너희 소속사 애들이 우리를 존나 좋아하나 봐, 큭큭.”
“아하하… 역시 저를 존경한다고 언급했던 애답게 롤 모델까지 똑같은가 보다…….”
선배가 다혈질이고 욱하는 면이 있기는 해도 주변인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좋은 이유는 이런 부분에 있었다. 사소한 부분은 넘겨 버릴 수 있다는 점.
‘다행이네.’
속으로 안도하던 중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눈동자만 밑으로 굴려 휴대폰 잠금화면의 알림을 확인했다. 메시지 하나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잠시만요!”
“어, 봐.”
잠금화면인지라 발신자와 내용이 보이지 않아 급히 눈앞의 선배에게 양해를 구한 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곧 얼굴 인식으로 잠금이 풀리자 메시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 백무영 선배 : 아, 이미 왔겠다. ]곧 눈앞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렇다거나 저렇다는 의미가 없는 답장이었다. 알겠다는 동의도, 이유를 물어보는 질문도 아니었다.
‘네, 뭐 이미 도착해 있기는 하죠.’
어쨌든 이곳에 온 목적은 백무영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이니 카페에 변승채 선배와 있다고 답장을 하려던 찰나였다.
“무슨 얘기 해?”
코끝에 백무영 선배의 향수 냄새와 나지막한 목소리가 훅 끼쳐 온 건. 그 기척을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다 못해 몸이 굳어버렸다. 지금 선배를 바라보기 위해 목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목에서 망가진 고철 덩이처럼 끼긱 소리라도 날 것 같았다.
“아, 미친! 깜짝이야! 기척 좀 내고 등장해! 네가 고양이야?!”
그건 변승채 선배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변승채 선배가 빽 소리를 지르자 백무영 선배는 그런 변승채 선배의 어깨를 꾹 누르듯 토닥이기 시작했다.
“미안. 많이 놀랐나 보네.”
“존나 놀랐어. 어떻게 티도 안 내고 오냐?”
“은찬 씨가 좀 보자고 했는데 어디 있을지 몰라 일단 건물부터 찾아다녔네. 너까지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는 건 일부러 말없이 날 찾아내려고 답장을 늦게 했다는 소리잖아. 등에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왜, 내가 있으면 안 되냐~ 내가 여기 가이드 해준 건데.”
“아니, 잘했다는 뜻이야.”
“맞냐?”
“그래, 그래서 목적은?”
곧 변승채 선배에게 고정되어 있던 백무영 선배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이제는 정말로 예비 심리전 따위랑 비교되지 않는, 진짜 심리전을 해야 할 때였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