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54
154. 맞불 작전(4)
“…….”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혀왔다. 어떤 대답이 좋을지 완벽한 선택지가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단 시간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은 쪽이기야 하지만, 바뀐 대화의 흐름에 당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주제를 돌려 버리네.’
너무도 자연스러운 대화 흐름의 전환에 하마터면 깜빡 넘어가 답을 할 뻔했다. 뭐라고 답해도 이상할 만한 상황이라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부연 설명을 할 만큼 충분히 머리를 굴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하지 않았나. 고가의 목걸이인 줄 알았으면 사양했을 거라고. 그게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던 건가?
“착용하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심사숙고해서 고른 건데.”
내가 눈만 깜빡이고 곧장 답이 없자 백무영 선배는 아쉬운 듯 눈썹을 밑으로 내려가며 말을 덧붙였다. 모르고 보면 정말 섭섭해하는 사람이 따로 없었다. 저렇게 순간순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말을 들은 내 감정은 논외였지만.
‘그거 착용한 날 바로 사고 날 뻔했는데 끼겠냐고,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하는 말이니 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황당함을 넘어 얄밉기까지 할 정도니 말 다 했지.
나는 돌려 드릴 의향까지 있었다. 아직도 서랍 구석 한편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목걸이를 떠올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시에는 선배가 날 생각해 줘서 선물해 준 목걸이라는 사실에 내색은 안 해도 엄청나게 기뻤었지. 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테 너무 고가의 제품 같아서 못 끼겠다고. 저는 여전히 돌려 드리고 싶어요.”
아마 꽤나 질색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씁쓸한 생각을 한 뒤 곧장 삐딱한 말을 내뱉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백무영 선배는 보기 좋은 호선을 그리며 특유의 온화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받는다는 말도 안 하지 않았던가요?”
“네… 선물이라고 재차 강조하셨죠.“
“지금의 제가 진짜 백무영이 아니라도 순수한 의미의 선물이니 착용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할 수는 있잖아요.”
하여튼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신다. 감정에 호소하는 저 말에는 반박하거나 빈틈을 잡아낼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겠지만.‘
사람이 속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속으면 그건 지능의 문제다. 살짝 동할 뻔한 마음을 다잡고 심리 안정을 위해 목에 걸린 반지를 매만졌다. 그때 백무영 선배의 말이 귀에 꽂혔다.
“하긴 그 반지를 빼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예?”
순식간에 내 얼굴 표정이 굳어버렸다.
‘역시 알고 있었잖아!’
저건 내가 반지에 여러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선배는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거두고 양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꼭 한번 떠봤을 뿐이라는 듯한 표현을 하는 것같이.
“오해하지 마세요, 예민하게 구는 걸 보고 예상했을 뿐이에요.”
“…헛다리 짚으신 것 같아요, 선배.”
“은찬 씨한테는 안 통하는 게 너무 많네. 덥지 않아요? 음료라도 사다 줄까요?”
“괜찮습니다!”
지금의 백무영은 명확하게 자신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진짜 백무영이 아니라는 것조차 숨기지 않으며, 한술 더 떠 알고 있는 것들을 은근슬쩍 흘리기 시작했다.
‘보통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지.’
예상했을 뿐이라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아무리 연기가 생활화되어 있고, 연기를 섞은 태도였어도 기본에 깔린 당당함은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 지금의 백무영이 시스템과 스킬로 나의 생각을 읽을 수 없고, 마인드 컨트롤이 불가능하다면 전부 제 머리를 굴려서 낸 결론이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얼마나 예리하게 봐왔던 건지 짐작도 안 가네.’
뒷목이 오싹해졌다. 방금 전 함정원을 주변 장애물이라고 지칭했을 때 이후 처음으로.
“선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나도 천천히 운을 뗐다. 입가에 침도 못 바르고 말이다.
“그동안의 행동들에 이유가 있었네요.”
“…….”
잠시 동안의 정적이 이어졌다. 그 침묵에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울렸다. 꼭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선배에게까지 들릴 것 같았다.
“저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죠.“
‘항상 계산하며 행동하고 있었구나’라는 뜻이었음에도 백무영 선배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담담하게 답했다. 별다른 타격을 주지는 못한 것 같지만 내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눈치 정도는 준 것 같았다.
‘주제가 좀 옆으로 샌 것 같아. 이러면 페이스에 말리기 쉬워.’
지금 여기서 입을 닫으면 다시 선배의 주제로 돌아가기 쉬웠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대화의 선두를 잡아내야 했다. 재빨리 선배의 눈을 응시했다.
“이게 이야기의 목적이 아니었잖아요.”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곁다리만 짚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은찬 씨, 생각보다 제법 원칙주의적인 성격인가 봐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 함정원은… 음……?!”
순간적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멈추었다. 목에 강렬하고 찌릿한 통증이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뭐지?’
섬찟했던 고통에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깨물었던 입술을 혀를 내어 쓱 한 번 훑었다. 방금은 무리하게 뽑기를 시도하지도 않았고, 시스템과 관련된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
하지만 반지 부근에 고통이 느껴졌다면 그건 반지가 반응을 했다는 뜻과 같다. 이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 이유에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를 지워낼 수 없었다.
“어디 불편해요?”
“아닙니다.”
그런 내 모습을 내려다보던 선배는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그러고는 목을 연신 매만지는 나의 손을 붙잡으려는 듯해 손을 탁 소리가 나게 뿌리쳤다. 선배는 내쳐진 손을 허공에 몇 번 쥐었다 펴더니 양팔을 접어 팔짱을 꼈다.
‘방금 뭣 때문에 반지가 반응을 한 거지?’
눈살을 찌푸려 가며 생각을 해보아도 짚이는 가닥이 없었다. 이건 뭐 짐작이 가는 구석이라도 있어야 추측을 할 텐데, 그런 부분이 하나도 없으니.
“괜찮아요?”
괜히 이러면 눈앞의 백무영 선배가 의심이 간단 말이다. 반지가 무엇 때문에 반응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동안 나에게 해를 끼치려는 행동을 했던 백무영 선배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네, 괜찮습니다! 멀쩡해요.”
게다가 방금까지 적대시하고 있던 사람이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서 좋을 건 하나 없다. 이미 뿌리친 손은 어쩔 수 없으니 표정이라도 밝게 지어야 했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휘휘 내저었다.
‘속마음 확인 스킬이 나올 리가 없고… 다른 거라도 딱 한 번만 확인해 보자.’
양 무릎을 붙잡고 지지하고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백무영 선배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호감도와 스탯을 다시금 확인하려고 했다.
[ Error! ] [ Error! ]여전히 시스템은 전부 에러가 떴다. 그 거지 같은 에러 화면만 두 번이나 조우했다.
[ system : 시스템 충돌로 인해 금일 호감도 열람 횟수가 모두 소멸됩니다. ]‘젠장…….’
이번에도 역시나 무언가에 가로막혀 전부 튕겨져 나가는 느낌. 게다가 호감도 열람 횟수마저 전부 소멸됐다. 백무영 선배의 호감도를 확인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 짜증만 났다. 그때였다.
“소용없을 거예요.”
백무영 선배가 꾹꾹 참는 것처럼 억눌린 듯 웃었다. 마치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전부 보고 있던 사람처럼.
“뭘 안다고……!”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퐁퐁 솟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예의고 버릇이고 다 때려치우고 하나하나 따지고 싶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세세하게 말해보라고,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내가 회귀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구는 거냐고, 진짜 백무영 선배는 어디 갔냐고.
‘…진정하자.’
하지만 그랬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게 안 봐도 비디오라 입술 안쪽 살을 깨물어가며 심호흡을 했다. 두 번 정도 크게 숨을 내뱉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은찬 씨도 저한테 안 보이거든.”
이게 눈이 안 보인다는 뜻은 아닐 테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아주 잠시 동안 응시했을 뿐인데 내가 시스템을 사용한 건 또 어떻게 눈치챘지……?’
물론 백무영 선배 또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에 빠르게 눈치챈 거겠지만. 그렇다면 백무영 선배 또한 스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게 나같이 호감도 확인이나 스탯 확인은 아닐지라도.
“뭐가 안 보이…….”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알다시피 한가하지가 않아서요. 은찬 씨가 좀만 더 살갑게 대해줬다면 시간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자꾸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고 섭섭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떠보자 싶었는데, 백무영 선배는 더 이상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중간에 말을 잘라먹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그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함정원의 감정을 갖고 노는 중인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단지 나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니 충분하긴 했다. 사람을 한 번에 몰아가면 탈이 나는 법이었다. 궁금했던 점을 적당히 접고 한발 물러날 때였다.
“저한테 그렇게까지 집착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대체.”
“집착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이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힌트를 하나 주자면.”
백무영 선배의 입술 모양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곧 시끄러운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는 뒤에서 변승채 선배 특유의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댔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변승채 선배가 손을 크게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너희 언제 들어오는 거냐, 매니저 형 나한테도 전화 왔다!”
“…아, 가야지.”
나는 봤다. 백무영 선배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싹 굳었다가 돌아오는 걸. 아주 미세한 찰나의 순간에 혀까지 차며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곧 원래의 온화하고 생기 있는 얼굴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혹시 들었어?”
“뭘?”
“…아니야.”
곧 이쪽까지 다가온 변승채 선배를 향해 백무영 선배가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변승채 선배의 얼굴에 백무영 선배는 나를 향해 슬쩍 눈짓하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은찬 씨, 조심히 돌아가세요. 아, 택시 잡았으니까 여기 앞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조심히 가라, 후배야~!”
“아, 넵.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데 여전히 귓가가 근질거렸다. 마음속은 무슨 돌덩어리라도 하나 얹은 것처럼 이곳에 방문하기 전보다 무거워졌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찝찝한 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선배들이 시끄럽게 사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숙였던 허리를 들고는 입가 주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아, 이럴 때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라던 놈이 떠오를 건 또 뭐냐?’
손에 쥔 휴대폰을 여러 번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