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57
157. 변화(2)
“너 첫방 할 때 차고 왔던 목걸이 아니야? C사 거.”
“아, 네! 기억하시네요, 맞아요. 오랜만에 꺼내봤어요.”
“잘 어울려~ 안 좋은 기억이 남아 다시 안 차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목걸이를 칭찬했다. 이 목걸이를 찼던 날의 이야기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단번에 넘겨 버렸다.
‘티 안 날 줄 알았는데 확실히 묵주반지 차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보이나 보네.’
이왕 목걸이를 바꿔 꼈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했다. 목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다시 한번 만지작거리며 활짝 웃어 보였다. 방송 화면 속에 목 부근까지 잡히길 바라기는 또 처음이었다.
“스탠바이 준비하자!”
“네!”
바깥에서 우렁찬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주 누나를 먼저 대기실 바깥으로 보낸 후 재킷 안쪽을 들춰 반지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묵주반지는 안쪽 키체인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좋아…….’
잘 달려 있는 반지를 확인하고서 마음 가볍게 대기실 문을 나섰다. 아예 집에 묵주반지를 두고 왔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몸 안에 잘 고정시켜 모셔 왔다. 묵주반지와 떨어졌을 때 행운이 바닥난다면, 아예 몸에 지니고 있으면 된다. 잃어버릴까 염려되어 목에 달아두었던 것이니 이 방법을 자주 써먹지는 못하겠지만 백무영 선배를 한번 도발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생방송 뮤직센터! 오늘도 저 MC 세주!”
“MC 은찬이와 함께 시작합니다!”
카메라에 시작을 알리는 초록색 불빛이 들어오고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음악방송은 상체와 얼굴 클로즈업이 대부분이라 목걸이를 드러내기 효과적이었다.
“다음 무대는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는 은찬 씨가 소개해 드릴 건데요~“
“반짝반짝이라뇨! 세주 씨 자기소개 아닌가요?”
확실히 운이 좋기는 한 모양인지 오늘의 의상 또한 목선이 훤히 드러나는 셔츠였기에 목걸이의 존재를 한껏 부각시킬 수 있었다. 이 이점들을 이용해 평소보다 카메라에 더 띄기 위해 적극적으로 얼굴을 비췄다.
“말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같이 소개하도록 하죠!”
“네, 다음 무대는-!”
일부러 상체를 숙여가며 카메라에 가까이 다가가길 반복했다. 혹시 오버스럽진 않았으려나 조금 염려스러웠지만, 촬영을 마친 뒤 모두 적극적이었다며 칭찬을 반복했다.
“오늘 은찬이 컨디션 좋더라!”
“어제 잠을 간만에 잘 자서 그런가 봐요. 감사합니다.”
“뭐야, 너 잘 못 자? 잘 자야지, 은찬아~ 요즘 고민 있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부족해서… 걱정 감사합니다.”
주변 스태프분들의 칭찬 속에서 걱정스럽던 마음을 놓았다. 곧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세주 누나는 영화 촬영장으로 가봐야 한다며 급히 주변 스태프분들과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앗, 저는 이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도 먼저 자리 비워서 미안해.”
“아니에요! 다음 주에 봬요, 누나.”
누나가 크랭크인에 돌입하고 저렇게 급히 자리를 뜬 지 벌써 몇 주째였다.
‘요즘 너무 바빠 보이는데 다음에 뭐라도 챙겨 드려야 하나. 영 마음이 쓰이네.’
그때마다 헐레벌떡 사라지는 세주 누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회귀 전 현주인의 전 여자 친구라는 핸디캡이 사라지면 정말 좋은 누나라서 그런 건지.
“휴.”
현장 마무리를 도운 후 매니저 형의 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 SNS 속 반응을 살피던 얼굴에 미소가 고였다. 오늘은 MC 진행이나 외모에 대한 칭찬보다도 눈에 띄는 반응이 몇 가지 있었다.
‘오늘 은찬이 묵주반지 뺐네’라거나, ‘저 목걸이 저번에 손민수 계정에 떴던 그 비싼 목걸이 아니냐’ 같은 반응들.
‘확실히 눈에 띄었던 모양이네, 다행히도.’
상황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묵주반지를 몸에 지닌 덕분인지 지난번처럼 사고가 난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무사히 넘어간 하루에 자연스럽게 씨익 웃음이 고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남은 것은 백무영 선배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뿐이었다.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망설임 없이 문장을 작성해 메시지를 전송했다.
[오늘 선배가 주신 목걸이 해봤는데 어떤가요?]발신된 메시지를 보며 휴대폰을 쥐고 있지 않은 빈손으로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스스로가 장해 기특할 지경이었다.
‘간이 많이 커졌어, 유은찬.’
이제는 도발도 할 수 있게 되다니. 마음도 꽤 단단해지고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뿌듯함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 백무영 선배 : 역시 잘 어울리네요^^ ]‘싱겁네.’
한참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을 때 도착한 답장은 생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에 물을 왕창 쏟아부은 듯 밍밍한 반응.
아무리 여유가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 백무영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대놓고 도발하는 연락에도 이렇다 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사이 심경의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시금 오늘 오전, 숙소를 나오기 전 현주인이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지금은 백무영이 신경 쓰게만 만들어도 괜찮아.’
이런 떡밥을 연속해서 던지다 보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순간이 한두 번은 온다는 말이었다. 그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잘 조합해 단서를 추측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조급하게 굴어봤자 될 일도 놓친다는 걸 지금의 백무영을 통해 반면교사로 잘 배웠지 않는가.
‘연습이나 해야지.’
미니 팬미팅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이제 완전히 마무리로 접어든 연습은 처음보다 한결 여유로워졌지만 이럴 때일수록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
가짜 백무영의 정체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위화감을 느낀 장소 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고.
모든 게 수월하게 진행되는 연습 기간이었다. 이렇게 수월하게 돌아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탈하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오히려 너무 순조로워 겁이 날 정도였으니까.
“아, 편의점 좀 다녀와야겠다.”
미니 팬미팅 리허설 이틀 전, 마침 똑 떨어진 연습실 내부의 음료와 파스들 때문에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댄스는 몸을 아껴둬야 하니 내가 다녀올까…….”
연습실에 필수적으로 구비해 둬야 할 것들이 똑 떨어질 때까지 미리 준비를 못 한 게 잘못이지- 싶어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회사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익숙한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쳐 반사적으로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알바생이 또 바뀌었네?’
여기는 터가 안 좋은지 사람이 자주 바뀌는구나- 하고 넘어갈 즈음 다시 한번 향수 냄새에 의문이 들었다.
‘익숙한데?’
코끝에 맴도는 이 향은 분명 익숙했다. 게다가 기억하기로 이 향은 길가에서 흔히 맡을 법한 흔한 향수 냄새가 분명 아니었다. 회귀 전 편의점 알바생이 쓰던 그 향수. 그리고 이전에 백무영 선배를 잠시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향.
‘……!’
본능적으로 쎄한 기분이 들었다. 1.5리터짜리 이온음료 몇 가지와 파스를 세 개 정도 바구니에 담고 카운터에 향하자마자 알바생을 향해 물었다.
“혹시 향수 뭐 쓰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카운터의 알바생은 다짜고짜 향수의 정보를 묻는 내가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곧 그 눈을 반으로 접으며 씨익 웃었다.
“이거 향 너무 좋죠!”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긴 향수 뿌리는 사람 중에 향수 정보 알려달라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 없지… 그렇고말고.’
내가 긍정하는 듯 보이자 그녀는 속사포처럼 제 향수에 대한 정보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거 저번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예인분이 오셔서 선물이라고 주고 가셨는데! 너무너무 좋죠? 좋아하는 연예인이 갖고 있는 건 다 따라 사고 싶잖아요. 그래서 제가 향수 정보도 매번 검색했는데 정보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공유할 수 있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아! 이름은 잘 모르겠고 제가 제품 한번 보여 드릴게요. 마침 여기 있어요!”
“아아, 넵. 감사합니다!”
속마음 확인조차 필요 없을 정도의 정보다. 숨기는 것 없이 사담까지 늘어놓는 그녀에게 조금 당황한 것도 잠깐, 곧 익숙한 이름이 들려와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성덕이에요. 혹시 백무영이라고 아세요?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요즘 배우로 다시 뜨고 있는데.”
“네, 네. 알죠……!”
“그분이 주셨어요! 본인이 직접 쓰던 거라고!”
“네?”
반사적으로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재정비했다. 연습 때문에 쓰고 왔던 모자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도움이 될 줄이야.
‘얼굴 싹 가리고 오길 잘했군.’
알바생이 바뀐 것도, 그 사람이 연예인에 관심이 있는 줄도 전혀 몰랐지.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얼굴을 알아보게 되면 조금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직접 줬다고?’
백무영이 준 향수, 그것도 본인이 직접 쓰던 것. 이 모든 게 우연으로 맞아떨어지기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건 분명 계산하에 이루어진 행동이다. 그것도 ‘나를 알아달라’라고 직접 어필하는 수준의. 연예인이 소장품을 직접 주고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알던 백무영 선배는 저 향수를 쓰지 않았는데.’
한창 소년미 덕질을 할 때 여러 인터뷰 매체에서 선배가 직접 사용하는 애장품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선배는 정말 남자다운 느낌이 나는 향수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금 코끝을 스치는 향기는 중성적인 느낌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톱스타 백무영이 여기까지 와 알바생한테 향수를 선물하는 것도 너무나 눈에 띄고 이상한 행동이다. 노리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아, 결제는 안 하세요?”
“아, 아! 카드로 할게요.”
퍼뜩 주머니 속 카드를 알바생에게 내밀었다. 계산을 하는 알바생에게 나는 한 가지를 더 질문했다.
“혹시 언제쯤 왔다 가셨나요?”
시기가 중요했다. 이 사람이 향수를 전해 받은 시기가 한참 전이라면 1%의 가능성이라지만 진짜 백무영 선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 아! 4일 전쯤이에요. 제가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이틀째라 기억해요.”
100% 타인.
칠월칠석 시절의 유은찬이 이 편의점을 자주 찾았다는 걸 알고 있고 이 향수 냄새에 대해 알고 있어 기억을 떠올리게끔 유도할 만한 인물. 이전 알바생이 쪽지와 소년미 앨범을 전해줬듯이 매개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
‘혹시 편의점 알바생이…….’
확신에 가까운 가능성 하나가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쳐 갔다.
가능성?
아니, 80% 정도의 확신이다.
그동안 의심했던 용의자들을 모두 머릿속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