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58
158. 변화(3)
“봉투 드릴까요?”
“아, 네.”
마스크 속 입가에 웃음이 잔뜩 고였다. 이렇게나 간단한데 이전에는 용의자로 생각도 못 했다니, 자신의 모자람에 개탄을 할 정도였다. 아직 백 퍼센트 확정된 범인은 아니지만 지금껏 추론했던 모든 인물 중 이쪽이 가장 가능성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꾸벅 인사를 건네며 커다란 봉투 두 개를 건네받았다. 구름에 가려졌던 것처럼 깜깜한 부분이 확 걷힌 것같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연습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부스터라도 달린 것처럼 빨라졌다.
‘그런데 이 정도면 자기를 눈치채 달라고 나한테 떠먹여 주는 수준이긴 하네.’
이제야 ‘오랜만에 뵙겠네요’라고 적혀 있던 쪽지가 이해된다. 지금의 백무영 안에 들어 있는 게 회귀 전에 보았던 편의점 알바생이라면 전부 설명이 되는 일이다. 오랜만에 보는 것도, 이곳에는 앞으로도 없을 소년미의 재계약 기념 앨범을 전해준 것도, 나를 알고 있던 것도.
‘전부 무리는 아니지.’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직접 떠볼까? 이건 알아달라고 외치는 수준인데 모르는 척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나?’
알아달라고 다 흘리고 다니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하지만 당장 미니 팬미팅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므로 무사히 스케줄을 마친 뒤 떠보기로 마음먹었다.
[ 전 편의점 알바생이야. ]핸드폰을 들어 현주인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내 메시지에 너무 부연 설명이 없었던 모양인지 현주인은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입술을 꾹꾹 맞대 흘러나오는 헛웃음을 참아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근거는?
핸드폰 너머로 조급한 현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연습 중에 필요한 물품들 사러 잠깐 나온 건데, 얘도 지금 연습 중 아닌가? 주변에 멤버들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현주인이 주변 신경을 안 쓰는 위인이기는 하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못 듣게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을 돌려서라도 한번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지금 연습 중 아니야?”
-…….
“주변에 멤버들 없어? 애들 앞에서 얘기를 할 순 없잖아. 거의 다 왔어. 좀만 기다려.”
차마 신경 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핸드폰 너머에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여튼 주변 신경 안 쓰는 건 여전하다니까.’
현주인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어서 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 연습실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희미하지만 연습실 바닥에 운동화 끌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곤 했으니. 핸드폰을 빠르게 주머니 안으로 넣고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음?”
그렇게 헐레벌떡 연습실에 도착했는데.
“다 어디 갔어?”
도착한 연습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비어 있다는 말은 아니고, 정확히는 현주인 혼자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뭐지?’
그렇게 전화를 끊고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아직 연습실 내부에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방금 전까지 연습을 하고 있던 것도 사실인 듯했다. 현주인이 어리둥절하게 눈을 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는 날 한 번 스윽 쳐다보더니 답했다.
“다른 애들은 전부 큰 연습실에서 동선 맞추고 있어.”
“아, 그래? 그래도 끝나기 전에 타이밍 맞춰 잘 왔네.”
‘연습실을 옮겼구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골랐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현주인도 몸을 일으키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곧 나에게 시선이 꽂혔다. 이제 말을 해보라는 뜻이겠지.
“간결하게 알려줄게.”
검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운을 떼기 위해 입술 사이를 벌리자마자 목에 무언가 걸리기라도 한 듯 말문이 턱 막혀왔다.
“…아.”
“왜.”
“생각해 보니 간결하게는 안 될 것 같아.”
“하?”
내 반응이 황당했던 모양인지 현주인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걸 어떻게 말로 추려. 메시지로 보내줄게. 연습 끝나고 읽어.”
말이 활자보다 정리가 덜 되어 보이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지금같이 어떠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활자가 낫다. 말을 횡설수설해 버리면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생각이 꼬이기 마련이고 어떤 정보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그에 반해 활자는 어설픈 문장이라도 정보를 꾹꾹 담아두면 전달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래도 최대한 팩트만 넣어서 말해줘야지.’
옆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는 현주인을 뒤로하고 꿋꿋하게 한 자 한 자 문자를 작성해 나갔다.
[ 회귀 후 편의점 알바생이 전해주었던 소년미 앨범과 쪽지, 회귀 전에 근무하던 배우 지망생 알바생이 전해준 모양이야. 지난번 여자 알바생이 회귀 전에 근무하던 알바생과 찍었다던 사진과 기억이 사라진 것도, 마인드 컨트롤이라면 가능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알바생이 뿌리던 향수를 지금의 백무영 선배가 직접 전해주었어. 진짜 선배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름. ]최대한 간결하게 전달해 준다던 것이 어째 구구절절 말이 길어진 느낌이다만.
“우선 연습에 집중하자!”
생각보다 길어진 타이핑에 괜히 현주인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이 정도면 중요한 내용은 전부 들어갔으니 알아서 보겠지.
“뭐 해? 안 와?”
“같이 가!”
그리고 현주인도 잠금화면에 도착한 내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확인한 뒤 척척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건 미니 팬미팅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눌 문제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놈과 말하지 않아도 의견이 통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
팬미팅 전날 연습 시간에는 모든 멤버가 말이 없었다. 모두가 긴장감 가득한 기류에 말을 얹지 않기도 했으며, 피곤함도 한몫했을 터니까.
“아, 어깨가 좀 굳었네…….”
하지만 정작 미니 팬미팅 당일인 오늘은 긴장감이 어제보다 덜한 모양이었다. 공기를 짓누르는 기류는 여전했지만 멤버들은 서로서로 한두 마디씩 장난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물론 주혁이를 툭툭 건드리는 이선이가 시발점이었다.
“서주혁, 긴장했냐?”
“시끄럽게 굴지 말고 준비를 하든가 목을 풀든가 해.”
“아니, 난 네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풀어주려고 그랬지. 까칠하게 나오기는.”
“…….”
“네네, 알겠습니다.”
주혁이는 대기실에 들어와서부터 긴장 때문인지 반복적으로 손톱을 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선이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틱틱거리며 대화를 받아주는 주혁이와 전혀 기죽지 않고 몇 마디를 더 얹는 이선이의 대화 소리가 대기실 안을 가득 채웠다.
“자주 헷갈리는 마무리 손동작이나 반복하고 있어봐.”
“네, 선생님~”
옆에서 알짱거리는 이선이 거슬렸는지 주혁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직접 이선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제야 이선이도 주혁이의 말대로 마지막 손동작을 반복해 연습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실거리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얼음장 같던 분위기는 좀 풀렸네.’
둘의 티격태격이 한바탕 지나가자마자 다른 멤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나라도 나서야 하나 싶었는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형, 집중 안 되니까 게임 소리 좀 끄고 해주세요.”
“어? 아, 미안! 신경 못 썼어. 끌게, 끌게.”
조용히 헤드셋을 끼고 있던 리온이 옆자리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핸드폰 게임을 하던 별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휴…….’
사실 내심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던 중이였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린 것에 아마 내가 제일 안심했을걸. 차마 웃지도 못하고 멤버들이 떠드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손바닥만 비비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회귀 전부터 이 멤버대로 단독콘서트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비록 미니 팬미팅이지만 단독으로 우리끼리 무대를 꾸려갈 수 있다니 신기하네. 잘 마쳐야 할 텐데.’
그렇게나 고대하던 상황이 눈앞이라니. 긴장감에 어깨가 짓눌릴 것만 같았다. 무대를 무사히 마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도 팬들 앞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는 법이니까.
“…….”
겨우겨우 입꼬리나 올리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손바닥에서 긴장 때문에 식은땀이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옆에서 불쑥 가을이의 갈색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오늘 말이 없네. 긴장돼?”
“…….”
다짜고짜 머리부터 들이밀고 본 가을이의 모습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몇 초간 그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어째 점점 더 강아지 같아지는 것 같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방금 전까지 가슴이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조금은 그 긴장이 완화된 듯했다. 세팅이 된 가을이의 머리를 만질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살짝 옆으로 밀어냈다.
“당연히 긴장되지… 식은땀 날 것 같아.”
“손 줘봐.”
가을이의 말대로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가을이는 펼쳐진 내 손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마치 지압하듯이 양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게 긴장 푸는 데 좋더라고. 나 데뷔 초부터 손 주물거리고 그랬잖아.”
“아, 그랬지… 진짜 효과가 있는 것 같네.”
날 생각해 주는 마음이 참 예쁜데 마음이 놓이지 않을 리가. 긴장한 기색을 눈치채고 이렇게나마 노력해 주는 걸 보니 역시 가을이가 속이 깊다 싶었다. 가장 의지하게 되는 친구인 이유를 새삼스럽게 확인한 기분이었다.
“호들갑 떨고 있네.”
한참을 손을 마사지하는데 옆에서 지나가던 현주인이 비웃음 섞인 한마디를 내뱉으며 지나쳤다. 웃고 있던 입꼬리에 슬쩍 경련이 왔다.
‘저 새끼 또 산통 깨고 있네…….’
지가 나서서 이런 기특한 행동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불만만 얹고 가기는.
뭐가 불만인지는 모르겠다만 얼굴 찌푸려서 좋을 것 없기에 삐걱거리는 입술을 움직여 대답을 건넸다.
“스타일링 잘 받는다, 주인아~”
물론 기껏 던진 칭찬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이제 됐어, 가을아. 고마워.”
가을이 덕분에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이 기분으로 기세를 몰아 대기실 안의 멤버들이 전부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무사히 끝내고 회식하자!”
‘그래, 무사히 마치고.’
각자 끼리끼리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로 주목되었다. 물론 스태프 형 누나들까지도. 순식간에 쏠린 여러 개의 눈동자에 조금 뻘쭘해지려던 때, 대기실 바깥에서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네시스,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사운드체크부터 들어갑니다.”
“네!”
“넵!”
그제야 멤버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키득거렸다.
‘다행히 다들 아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없네.’
이제는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는 것만 생각할 때였다. 서로를 향한 장난 섞인 응원을 나누면서 대기실 바깥으로 나섰다. 넓지 않은 소극장이었지만 백스테이지로 향하는 길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