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0
160. 나비효과(2)
[은찬아.]눈앞이 온통 컴컴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을 뜨려고 애를 쓰는데도 눈꺼풀은 끝에 추라도 매단 듯 도무지 떠지지 않았다.
‘뭐야……?’
캄캄한 눈앞. 이명이라도 들리는 듯 웅웅 울리는 귓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마치 이전에 겪어본 상황인 것처럼 모든 것이 익숙했다. 게다가 마치 누군가의 품 안에 있는 듯 편안하고 포근한 공간의 느낌까지도.
[유은찬.]목소리의 주인이라도 확인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겨우 실눈을 떴다. 그 사이로 밝은 빛이 확 새어 들어왔다. 동시에 막연히 웅웅 울리는 듯 들리던 목소리 또한 그 목소리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보다 선명해졌다. 여전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누구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중저음의 온화한 목소리. 분명히 이전에도 들어봤던 목소리지만 누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누가 저렇게 자꾸 말을 거는지, 이번에야말로 물어보고 싶은데. 도대체 누구야?’
이번에는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입을 열어 물어보려고 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끙끙 앓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던 때였다.
[그걸 잃어버리면 어떡해? 빨리 눈 떠!]온화하던 목소리가 거세게 소리쳤다. 귓가를 찢을 것 같은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들며 눈이 번쩍 떠졌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헉!”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번쩍거리는 조명이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눈동자만 재빠르게 굴려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다음으로 들어오는 건 싸늘한 얼굴의 관객들과 조용한 객석, 그리고…….
‘무대 위?’
방금 무대를 마친 건지 힘들어 보이는 멤버들의 얼굴. 그래도 고개를 돌리자마자 멤버들의 얼굴이 보이니 당황했던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잠시 쓰러지기라도 했었나?’
내가 무대를 하다 쓰러져서 관객들의 반응이 이리도 싸늘한 것이고?
“…뭐예요?”
“아……?”
우선 눈치를 보다 멤버들의 동작에 맞춰 뒤늦게나마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주혁이의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냈다.
‘서주혁이 예민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였던가?’
예민한 것도 예민한 거지만 지금은 아예 찬바람이 쌩쌩 불잖아. 이건 마지 회귀 전의 주혁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응? 그리고 지금 이 포즈는 뭐야?’
게다가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포즈 또한 제네시스의 안무가 아니었다. 손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 검지와 엄지 사이로 객석을 보는 안무는 짠 적이 없으니까.
‘묘하게 올드한데…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하지만 어색하기보다는 묘하게 익숙한 듯 기시감이 느껴지는 엔딩 포즈.
“멍하게 뭐 하고 있어요? 빨리 비켜줘야지.”
“…도이선?”
“뭐야, 갑자기. 그나저나 잘 아는 사람이 그러네. 형~ 저희가 오래 끌고 있으면 욕먹어요.”
“어? 어어, 그래.”
“…리더가 먼저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뭐라고?”
“아니에요.”
이선이, 주혁이와 나눈 짧은 대화마저도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정도로 차가운 애들이 아닌데?’
우선은 무대 뒤로 내려가는 멤버들을 후다닥 쫓았다. 캄캄한 무대 뒤로 가는 와중에도 냉랭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게다가 이 공간은…….
‘확실히 미니 팬미팅의 백스테이지가 아니잖아?’
분명히 다른 공간이다. 내가 이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지는 않았다. 이 낯선 공간을 따라가면서 멤버들의 의상과 얼굴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사뭇 다른 멤버들의 분위기와 아까 입고 있던 의상과는 전혀 다른 의상. 화이트 톤의 청량하고 깔끔한 인상이 강했던 의상이 아니었다.
‘이건… 칠월칠석 때 같은 옷이네.’
와인색과 검은색이 주로 쓰여 무척이나 답답해 보이는 색감에 레자 소재까지 더해져 답답함의 끝을 달리는 의상. 거기다 인이어마저 통일성이 없어 하나의 그룹이라는 느낌이 덜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로 촌스러운 스타일링의 콜라보라니! 게다가 이게 눈에 익은 의상이라는 것조차 나를 짜증 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와.”
이건 칠월칠석으로 활동했던 때의 의상과 꼭 같았다. 제네시스일 적, 대표님이 하고 싶어 했던 예전의 그 올드한 컨셉!
‘어째 다들 예전 같냐… 혹시……?’
그러고 보니 회귀 후 간만에 봤던 풋풋했던 얼굴이라기보단, 다들 한결 어른 티가 풍겼다. 막내인 리온이마저 그런 티가 났고, 가을이 또한 부끄러움이 많고 아직 덜 컸던 제네시스의 가을이가 아닌 키와 덩치가 큰, 예전의 모습이었다.
‘하, 아니겠지… 말도 안 돼…….’
이 모든 상황이 가리키고 있는 결과는 하나였다. 눈앞의 광경을 믿고 싶지 않아 양 손등으로 두 눈을 벅벅 비벼보았다. 천천히 눈을 떠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됐다. 무대 뒤로 넘어졌다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다니.
‘처음 회귀했을 땐 말이 되는 상황이었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기회가 아니라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가. 이번에는 아이돌로서 성공해 보라고 기회를 받은 줄 알았는데. 하긴 애초에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게 현실일지도.
‘제네시스로서의 그 짧은 기억이 너무 좋았는지 자꾸 어른거리네, 하하.’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원래의 현실에 빨리 적응을 해야 하는데, 제네시스로서 성장하던 기억이 너무나 뚜렷해 그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건 내 멘탈을 온전하게 돌려주기 위한 이벤트 같은 거였다든가?
“형, 무슨 일 있어?”
옆에서 내 얼굴을 살피던 가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원래의 가을이네…….’
회귀한 후 보았던 20살의 어린 가을이가 아닌, 원래의 가을이. 키도 크고 몸도 자라고 부끄러움도 완전히 벗은 원래의 연가을. 역시 한결같이 친절하고 착한 가을이다.
“아, 아니. 오늘 스케줄은 어땠어……?”
“아아.”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가을이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가을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곧장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현주인이 나를 한 번 내려다보곤 냉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나는 오랜만에 무대 서서 좋았…….”
“이런 스케줄은 왜 잡아 온 건지 모르겠네.”
차갑다 못해 갈라지기까지 하는 놈의 목소리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틱틱거리긴 해도 많이 온건해진 놈의 모습만 보다가 간만에 이런 모습을 보니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거 할 거면 앞으로는 부르지 마. 찾아오지도 말고.”
“하여튼 말을 해도… 형, 신경 쓰지 마. 난 다 같이 서서 좋았어.”
“어, 응… 고마워.”
거의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놈은 혀를 한 번 차더니 앞으로 휙 지나가 버렸다. 저 뒷모습을 보는 것도 워낙 익숙했던지라 딱히 상처받지는 않았지만, 가을이는 못마땅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음?’
그나저나 이런 거 할 거면 부르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라니.
내가 한창 현주인을 쫓아다녔던 시기였던 건가?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 언제인지 정확히 감이 안 잡히네.
“얘기 좀 해.”
현주인을 붙잡아 이야기를 나누면 지금이 어느 시기인지 정도는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무조건 현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현주인이 언제 회귀를 했는지, 무슨 이유로 한 건지, 이 시기의 백무영 선배와 무슨 인연이 있는 건지 나는 전혀 아는 게 없었으니까. 어떤 단서든 내게 마이너스가 될 게 없었다.
“어?”
완전히 좋은 생각이었다. 놈에게 넌지시 질문을 해댈 생각에 푹 빠져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 현주인의 팔을 붙잡았다.
“……?”
놈은 멈칫하더니 작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불쾌한 듯 대놓고 미간 사이에 힘을 팍 주기도 했으나 나는 굴하지 않고 재차 놈을 불렀다.
“야.”
“할 얘기 없어.”
돌아오는 냉랭한 대답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말 예전 같네.’
심지어 현주인은 옷깃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을 팍 쳐내기까지 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현주인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씁쓸하게 한쪽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진짜 말도 안 된다, 하하…….’
현주인이 저러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신경 쓸 일이 아니긴 하다만, 요 근래 감정적으로 교류를 좀 했다고 속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었다. 씁쓸한 입안을 한 번 축였다. 뒤통수에서 가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하!”
“형, 무슨 문제 있어?”
“아냐… 가을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그리고 테이블 위에 고이 놓여 있던 핸드폰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6년 전의 핸드폰이 아닌, 내가 회귀 직전까지 쓰던 바로 그 핸드폰이었으니까.
[20XX년 4월 21일]게다가 메인 화면을 터치해 시간을 확인해 보니 6년이 흘러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직전, 칠월칠석의 리더로서 앞날을 두려워하던 바로 그해.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데뷔 기념일에 막막함을 못 이겨 나쁜 선택을 했으니 그보다는 앞선 시기다. 하지만 별다를 바는 없지. 과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아마 방금 전은 지역 행사 무대에 올랐을 때였던 것 같았다. 칠월칠석으로 다 같이 섰던 마지막 무대였다.
‘반지를 못 챙겨서? 뒤로 넘어져서? 이렇게 갑자기?’
제네시스로서 팬분들을 만나는 미니 팬미팅 자리가 코앞이었는데. 무대 뒤 공간으로 넘어졌을 뿐인데. 어쩐지 아픈 느낌이 안 든다 했지.
“…….”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스탯 확인.’
그러다 문득 시스템은 여전한지 궁금해져 내 스탯부터 확인했다.
[ 유은찬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확인이 가능하잖아?’
다행히 시스템은 아직 사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행운 스탯이 절망적일 정도로 낮다는 것? 어쨌든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행운 스탯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었구나.
‘현주인 호감도 확인해 보자.’
시스템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 보았으니 다음은 호감도였다. 저 멀리에서 뚱한 얼굴로 겉옷을 벗는 현주인을 응시하며 호감도를 확인했다.
[ ♡ -5% ]‘마이너스?’
원래는 플러스 중에서도 꽤 높은 수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진짜!’
정말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었던 가정을 이제 확신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건 100%, 아니, 5000%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시스템을 갖고. 그동안 잘 맞춰왔던 퍼즐들을 한순간에 엎어버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