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1
161. 나비효과(3)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장렬히 전멸한 행운 스탯이었다. 지독히 저조하게 타고난 운을 별 5개로 만들어주었던 묵주반지마저도 기가 막히게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긴 하지만. 부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다니, 꼭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스탯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처음 보네… 하하.’
텅 비어 있는 별 한 개조차도 없고, 말 그대로 ‘마이너스’다.
지금껏 여러 사람들의 스탯을 확인해 보았는데도 마이너스, 즉 아예 0은 처음 보았다. 하필 그게 스킬 사용 당사자인 나라니, 새삼스럽지만 놀랍기도 하고.
‘시스템도 사용 가능하고, 행운 스탯을 제외한 다른 스탯들도 기존에 올려두었던 상태와 동일해.’
얼떨떨한 기분과 소란스러운 주변 상황에도 최대한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원래로 돌아오며 달라진 점은 묵주반지를 두고 온 것 하나뿐이잖아. 그 하나로 행운 스탯이 바닥나 버린 것이니 지금 상황 역시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렇다면 이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게 아니라…….’
아무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연결되어 있네. 지금 이 상황마저도.’
과거로 회귀했던 일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꿈을 꾼 것이거나 환상 속에 갇혀 있던 것도 아니다. 지금 시스템과 스킬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명확한 증거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이런 시스템들도 사용이 불가해야 앞뒤가 맞다. 회귀해 제네시스로 데뷔를 했던 일들이 전부 없던 일이 되려면 최소한 이도 저도 못 하는 일반인의 상태가 되어야지.
‘하지만 명백하게 현주인의 호감도를 보았어.’
그것도 이 시기의 나와 현주인 사이의 관계가 납득 갈 만한 수치. -5 정도면 감지덕지하다고 생각하지만 회귀 전 30까지 끌어 올렸던 호감도와는 확연히 대조되니까.
“하아…….”
단시간 내에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임시방편으로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던 찰나였다. 가을이가 몸을 가까이 들이대며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형, 괜찮아? 컨디션 안 좋은 거 아니야? 요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더니…….”
“응? 나?”
“형, 거울 좀 보여줄까?”
꼼꼼히 안색을 살피며 물어오는 가을이의 걱정스러운 얼굴은 사뭇 진지해서 되레 내 쪽이 더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이맘때 가을이의 호감도가 몇이더라?’
타인에게 저 정도의 걱정을 드러내다니, 보통의 인성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 속으로 가을이의 호감도를 보여달라고 되뇌자 곧 가을이의 머리 위로 호감도가 나타났다.
[ 연가을 ♡ +60% ] [ system : 금일 호감도 열람 가능 횟수 (3/5) ]호감도를 확인하자 가을이의 행동이 완전히 납득되었다.
‘시스템 사용되는 원리도 같네. 차감되는 것도 똑같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을이를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아아, 괜찮아.”
웃음 속에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했는데도 가을이는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연신 걱정스러움을 내비쳤다.
‘그나저나 의지하는 사이기는 했어도 팬도 아니고 동료 사이인데 이 정도의 호감도라니…….’
서로 의지를 많이 하긴 했지만 수치적으로 증명을 받은 기분이라 온몸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회귀를 하고 제네시스 데뷔 전에도 유독 다른 멤버들에 비해 호감도가 높은 편이기는 했어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덤덤하고 희미해졌지만 이맘때쯤의 나는 아마 불면증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도 가방 한편에 들어 있는 약 봉투가 그 증거 중 하나이고.
‘좀 웃기네. 새 목표를 갖고 나아가느라 이때 힘들었던 것도 잊혔다는 게. 초심이라도 되찾아보라고 다시 돌려보내 준 건가…….’
말 그대로 힘들어하던 게 금방 잊힌 것이 웃기게 여겨질 만큼 약에 의존하던 때다. 가을이는 그런 내 사정을 모르지 않으니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에도 걱정해 주는 것일 테고. 그러니 더더욱 가을이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얼굴에 끼인 근심 걱정들을 걷어냈다.
“괜찮아, 정말.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약은 잘 챙겨 먹고?”
“그럼! 나 잠시만, 현주인하고 할 말이 있어서.”
“현주인? 왜?”
현주인이란 이름을 언급하고 가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순수한 걱정밖에 없었던 방금 전과는 달리 분위기마저 싹 변한 듯한 느낌. 26살이 된 지금의 가을이는 성장까지 끝나 덩치도 무척이나 커졌으니 그 위압감도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경계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가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안심시키듯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잠깐이면 돼.”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 뾰로통한 표정을 거두지 않는 가을이를 뒤로하고 앞서 나간 현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큰 보폭으로 놈과의 거리를 따라잡은 뒤 큰 목소리로 놈의 등에 대고 외쳤다.
“야.”
“……?”
짧고 간결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
‘오랜만에 보네, 저 대놓고 경멸하는 듯한 표정. 회귀했을 때 현주인은 선녀네, 선녀야.’
문득 갓 회귀했을 때 당시의 현주인이 생각나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런 현주인한테 익숙해져 있다 보니 그때 현주인한테도 지레 겁먹었잖아. 내가 갓 회귀했을 때는 현주인도 회귀하기 전이었을 테니 당시의 현주인이었을 텐데 말이지.’
조용히 목을 가다듬으며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낸 뒤 현주인이 뒷목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모습을 조용하게 지켜보았다. 지금 꼴을 보아하니 나랑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한마디 더 덧붙여 줘야겠지.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를 몇 번 더 흘긋 쳐다보던 현주인은 우악스럽게 아랫입술을 깨물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마 내가 한 번 참아준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저런 태도를 보아하니 확실히 회귀하기 직전의 현주인은 아닌가 보네. 놈도 이유가 있어서 회귀를 한 것일 테니, 저런 태도를 보일 수는 없지. 지금의 놈은 그냥 원래의 싸가지 없던 현주인인 것 같은데.’
지금 눈앞에 있는 현주인이 나에게 협조적인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던 현주인이 아니라 적대감밖에 없는 현주인이라면 오히려 정보를 캐내기는 쉬울 수도 있다. 회귀 후에 보았던 현주인이 나에게 아직은 말해주지 않았던 바로 그 정보들을.
‘그렇다면 확실하게 좀 찔러볼까…….’
왜 회귀를 마음먹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떠보기는 힘들겠지. 나에 대한 호감도가 마이너스인 지금, 본인 심연 속의 고민거리를 말해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백무영 선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거다.’
원래대로 돌아왔다면 소년미도 무사히 재계약을 마치고 건재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타인이 빙의해 있던 백무영이 아닌 원래의 백무영이란 소리. 내가 지금 알아내야 할 것들이 분명해졌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
“내가 너 쫓아다녔어?”
“…하아, 무슨 귀찮은 말을 하려나 했더니 상상 이상이군.”
“대꾸하기도 귀찮은 거면 단답식으로 대답만 해도 돼.”
짜증스럽게 미간을 좁힌 현주인이 나를 흘긋 한 번 흘겨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노려보듯 내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시할 심산은 아니고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의미였다.
“너희 오피스텔 호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회귀하기 전의 내가 현주인을 쫓아다니며 헷갈린다고 매번 묻던 바로 그 질문. 경계심을 무너뜨리기 위한 초석이었다. 물론 시기를 보아하니 이맘때쯤이면 아예 놈을 포기해 자주 묻진 않았겠지만.
“906.”
“906호지?”
“…….”
현주인과 거의 동시에 답을 내뱉었다. 놈은 이번엔 티가 날 정도로 얼굴을 구기더니 나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보내왔다.
“스토커 같은 새끼… 좀 꺼져.”
“아니, 난 지금 너한테 뭐라 안 할 거야. 그렇게 적대시하면 나도 마음에 상처 입는다?”
하지만 지금의 놈이 나를 이렇게 대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바도 아니었다. 특별히 당황할 것도 없지. 이맘때쯤의 나는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지경으로 자존감이 박살 나 있었기 때문에 현주인은 나의 대꾸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리 와봐.”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했고.
‘다행이네.’
한편으로는 아예 관심도 안 주면 어쩌나 싶긴 했는데 다행이었다.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나선 것이 현주인의 흥미를 조금이라도 끈 모양이니. 엄지손가락으로 공터 쪽을 가리키며 따라오라는 듯 턱짓하는 놈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뒤에서 가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어디 가게?”
“응?”
가을이는 계속 나와 현주인을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계심을 풀풀 풍기며 연신 현주인을 흘긋거렸다.
“얘기 조금만 하고 올게.”
“…그럼 기다릴 테니까 다녀와.”
“그래? 그럼 금방 올게.”
기다린다는 말까지 했으니 최대한 용건만 보고 빨리 와야지. 가을이의 적대감 어린 걱정을 뒤로하고 안심시키듯 손을 흔들었다. 옆에서 현주인이 ‘꼴값 떠네’ 하고 비웃었지만 일말의 타격도 없었다. 그저 놈을 따라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뭐 때문인데? 활동? 정산? 개인 활동?”
“…….”
어느 정도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현주인은 지쳤다는 듯 먼저 말을 걸어왔다. 사람 없는 곳으로 잘 찾아온 건지 고개를 휙휙 돌려 좌우를 살펴도 인적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 정도로 인적이 드물면 굳이 에너지 낭비할 필요도 없겠네.’
서론이 길 필요도 없다. 곧장 본론을 내비쳤다.
“너, 백무영 선배랑 무슨 사이야?”
“뭐?”
“둘이 아무 사이 아닌 거 아니잖아.”
일부러 떠보는 듯이 물어보지 말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자. 그게 맞든 틀리든.
속으로 되뇌고 있던 대로 곧게 질문을 던졌다 싶어 속으로 흐뭇해하던 때였다. 지친 듯 표정 없던 현주인에게서 헛웃음과 함께 낮게 깔린 목소리로 욕이 짓씹혔다.
“…하, 씹.”
세팅된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현주인은 한참 동안 바닥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추켜올려 나를 노려보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놈의 시선을 받아내자 그 얼굴 위엔 야생동물 같은 경계심이 가득 떠올랐다.
“야.”
포커페이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놈인데, 예나 지금이나 내 앞에서 굳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은 똑같네.
“형한테 야가 뭐냐…….”
“좋아할 거면 혼자 좋아해라, 미친 새끼처럼 나한테까지 지랄하지 말고.”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이미 감정이 넘실거리는 놈을 굳이 더 건드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한 발 물러섰다. 분위기를 유하게 바꿔보고자 했는데 놈은 곧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또 욕은 왜 하고 그래~ 윽.”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어디서 들었어?”
“…뭐?”
거리가 너무 가까워진다 싶더니, 현주인이 내 멱살을 추켜잡았다.
‘…이래서 지금까지 말 안 해주고 계속 나중으로 미뤘구나.’
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을 하는 건지 더욱 궁금해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