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2
162. 나비효과(4)
“…나와.”
“멤버들한테 돌아가야지 어딜 가.”
“뭔 개소리야? 언제부터 팀이 다 같이 복귀했다고?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기가 차는 듯 웃음기 잔뜩 묻은 현주인의 대답에 무의식적으로 대꾸를 하던 입이 순식간에 합 다물렸다. 잠깐 느슨해졌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기분은 덤이었다.
‘아차, 그랬던가.’
반사적으로 위로 끌어 올리고 있던 광대 근육까지 움찔거렸다. 당황한 티를 지우기 위해 입꼬리를 간신히 들어 올리며 웃는 낯을 유지했다. 평소 디폴트 표정 자체가 웃는 표정인데도, 지금만큼은 입가 근육이 경련이라도 오는 것처럼 파들파들 떨리는 것 같았다.
“…겸사겸사 하는 소리지.”
이 정도면 말과 말 사이에 공백도 길지 않았고, 꽤 무난한 대응인 것 같은데.
“표정 좀 풀어라, 주인아.”
내가 이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데 표정 좀 풀어봐. 무슨 못 볼 거 본 사람처럼 정색하고 있지 말고.
‘휴… 그래도 흥미는 떨어진 모양이네.’
혼자 무난한 대응이고 자시고 호들갑을 떠는 동안 현주인은 애초에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최고의 반응이었다. 다행히도 자신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만사 귀찮아하던 이때의 현주인 성격상 이번 내 반응 또한 그다지 길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모양인 게 분명했다.
“…….”
별다른 말 없이 흘긋 나를 한 번 흘겨본 현주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나에게 무언으로 질문의 답을 재촉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번에는 긴장기 묻지 않은 웃음을 지어냈다.
“그래, 뭐 네가 같이 가준다면야 시간 낼 수 있지.”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장난을 다큐로 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시기의 나라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현주인에게 굳이 저자세로 나갈 필요를 못 느끼겠달까. 게다가 지금의 현주인은 저자세로 나가면 나갈수록 마음속에 꽁꽁 감춰진 진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클 테고.
‘그나저나 2살 위 형한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인성하고는…….’
속으론 혀를 내두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겉으로는 스마일 유지. 하긴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역시나 회귀하기 전 현주인은 정말 네가지가 없다. 대체 이때의 나는 이걸 왜 다 받아주고 지낸 거야?
“너, 무슨 속셈이야?”
긴 다리로 휘적휘적 골목 사이로 자리를 옮긴 현주인은 아까보다 격양된 얼굴로 내 표정을 샅샅이 살폈다. 덤덤한 듯한 말투이지만 그 안에 돋아난 가시를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야, 이거 내 생각보다 더 큰 사실이 숨겨져 있나 보네.’
가면을 쓰는 것이 특기인 놈이다. 아무리 조그만 틈이라도 나에게 드러낼 정도라는 건 어지간한 동요가 아니라는 뜻과 동일했다. 놈의 단단한 포커페이스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말이니까.
“속셈은 무슨…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지나 말해. 너랑 농담할 시간 없어.”
“내가 뭘 갑자기 이런다는 거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응.”
경쾌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현주인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크게 뱉어냈다.
‘이러는 이유라…….’
분명 갑자기 바뀐 내 태도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주인의 질문들에 모두 대답을 해주기엔 오히려 내 쪽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어떤 꼬투리를 잡아 상황을 역전시켜 들지도 모르니 내 태도를 전부 드러낼 수도 없었고.
“죽을 때가 됐나.”
이럴 때는 빨리 본론으로 갈 수 있게 재촉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주변에 사람 없어, 지금.”
“아아.”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음을 재차 확인한 뒤 현주인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꼼꼼한 성미의 놈은 그런 내 확인도 믿음직스럽지 않은지 주변을 확인하고서야 나에게 눈을 맞춰왔다.
“백무영 선배랑 무슨 사이야?”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직구.
아까 했던 질문을 되물었을 뿐인데 놈은 엄청난 질문을 받은 것처럼 표정을 찌푸렸다. 마치 썩은 과일이라도 먹은 것같이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하긴 이때도 나한테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싫으면 싫은 대로 다 드러내긴 했으니, 이런 유의 감정 표현은 익숙할 테고. 이 대화를 하는 중에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거라는 건 확실해졌으니, 오히려 수확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었다.
“매번 기회 날 때마다 백무영 얘기만 시답잖게 하더니 이젠 바쁜 사람 붙잡고 한다는 소리가 그 소리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대꾸한다고 들어먹을 것도 아니면서 왜 빈정거리고 그러냐. 에너지 낭비하는 거 세상 싫어하는 애가.’
물론 이런 속마음은 꾹 삼켜둔 채 말이다.
“궁금하니까 그러지.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나도 제네시스 활동을 준비하며 처세술을 많이 습득했다. 아이돌 활동을 할 때와 달리 ‘유은찬’으로서 있을 땐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 현주인 앞에서도 무덤덤하게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내적으로 현주인이 많이 편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지금 내 눈앞 칠월칠석의 현주인과 회귀 후 제네시스의 현주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이 현주인이 회귀해 나와 협력을 하게 됐고, 유대를 쌓아간 것이니. 아직 그 계기를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어찌 됐든 현주인도 그렇게 나쁘고 정이 없는 놈은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네가 멍청하지는 않으니 아무 의미 없이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물론 지금의 현주인은 뱉는 말 족족 가시가 돋아 있지만.
“알잖아. 내가 선배 많이 존경하는 거.”
“언제 사람 뒷조사까지 했어?”
“하하.”
“흥신소에 부탁이라도 했냐? 소름 돋게.”
“…….”
입을 일자로 꾹 닫았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내 반응에 현주인도 곧장 말을 이어가지 않고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
“…….”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그 순간, 현주인의 머리 위에 반가운 글씨가 깜빡거렸다. 스탯 확인 이외에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아 정말 도움이 되는걸까 싶던 찰나 기가 막힌 등장이었다.
[ 히든 이벤트 달성 ! ‘경멸 어린 시선’ ] [ system : 호감도 –50% 달성! 1회성 스킬 ‘속마음 확인’을 지급합니다. ]물론 그 내용까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건 좀… 저 시스템이 사람 상처 입히네.’
아까 현주인의 호감도를 확인했을 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이렇게나 하락했다니. 플러스, 마이너스의 한도를 모르기야 했지만 이렇게 직접 숫자를 확인하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이 정도 수치라면 계속해서 비꼬는 현주인의 말투 또한 납득이 가기는 한다.
‘그래도 날 아주 버리진 않았나 봐. 이런 슬픈 내용으로도 1회성 스킬을 주는 걸 보면… 타이밍도 딱 좋았어. 지금 당장 확인하자.’
씁쓸한 입안을 다시며 현주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빨리 속마음을 읽어야 했다.
[뭐 어디다 말할 기회도 없는 놈이니 괜찮겠지.]머릿속에 울린 놈의 목소리는 꽤나 슬픈 내용이었지만 반박할 거리 하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운이 하나도 없어서 타이밍 못 맞춰 나올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어째 씁쓸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는 확실히 얻어낼 수 있겠다 싶어 한편으론 안도감도 들었다. 저렇게까지 낮잡아 보고 있는데 굳이 숨길 이유도 없으니까. 요컨대 지금의 나는 친구도, 동료도, 그 흔한 인터뷰 기회조차 없으니 어디다 말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뜻인데.
‘앗, 말한다.’
멋쩍은 웃음을 짓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현주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형인데.”
그리고 옅은 공기 소리가 끼얹어진 목소리로 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가볍게 내뱉은 말치고는 엄청난 내용이라 반사적으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빌 뻔했다. 지금 살짝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뭐라고?
“…응?”
형? 내가 아는 형? ‘형제’ 할 때 형? 가족관계라는 말인 건가?
“형이라고. 친형은 아니지만.”
꼬리를 물고 수없이 늘어지는 물음표의 향연과 도저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에 당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떠보듯이 물어봤기 때문에 아주 처음 듣는 소리인 것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엑?’ 하고 놀랄 뻔했으니까.
‘진정해야 돼.’
날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변하려는 표정을 붙잡았다. 그러다 보니 기껏 나오는 반응이라야 전형적인 공감 같은 것도 아니었고, 고개나 끄덕이는 하잘것없는 것이었다.
“…아.”
“알고 떠본 것 아니었나?”
“아, 맞아. 대충 눈치로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확실하게 말해줄 줄은 몰랐어.”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넘겼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표정 관리에 집중했다. 놈의 날카로운 시선에 순간 섬찟할 뻔했지만, 무사히 잘 넘겼다. 지금은 정보 처리보다 현주인을 대응하는 게 최우선 사항이었으니까.
“…뭐, 굳이 숨길 이유도 없기야 하다만, 밖에 퍼져서 좋을 것도 없으니 입 닫고 있어.”
“말 안 해. 그냥 너한테 확인받고 싶었어.”
“어차피 말할 곳도 없을 테지만.”
“…….”
속마음에서 끝날 만한 생각이 아니었던 건지 굳이 입 밖으로 내고야 마는 현주인의 말에 고정돼 있던 입가 근육이 진동했다.
‘끝말만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꼭…….’
굳이 말 안 해도 되는 건데 기어이 말을 하고야 말다니. 놈의 성격도 역시 알아줄 만하다니까.
“안 오냐?”
“갈 거야!”
대화가 종료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현주인은 말없이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또다시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질러 가는 놈의 뒤를 쫓아 걸음을 빨리했다. 그 뒤를 쫓으며 머릿속으로는 방금 습득한 정보를 정리해 갔다.
‘백무영이랑 현주인이 형제라고?’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몇 가닥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야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회귀 후의 현주인이 왜 백무영을 혐오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그저 막연히 나의 회귀 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겠거니- 하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무슨 막장 드라마 같군.’
내 생각보다도 어마어마한 비밀인데, 흥미진진하기보다는 급격하게 머리가 차가워졌다. 하긴 이곳에서의 현주인은 백무영 선배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는 해도 대놓고 적대시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회귀 후의 현주인이 백무영 선배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보이는 반응과는 극명하게 대조될 정도였으니까.
그때, 시스템창이 나타나며 눈앞이 한 번 더 반짝였다.
[ system : 목표 달성! 추가 스탯이 지급됩니다. ] [ system : 현재 회차 스탯 분배 최대 횟수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