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3
163. 나비효과(5)
희미하게 빛나더니 이내 사라진 시스템창이 있던 곳을 몇 초간 응시했다.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 달성될 목표가 있나?’
극도로 낮았던 현주인의 호감도를 확인했던 것도 좀 지난 데다 방금은 자의적으로 타인의 호감도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호감도를 통해 목표를 달성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어떠한 방법인지는 알 수 없어도 지금껏과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창이 나타난 것이었다.
‘하여튼 이 불친절한 시스템창, 지 마음대로라니까… 말 그대로 목표라는 단어 뜻대로 내가 뭔가를 하긴 한 건가?’
부정적인 생각인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제네시스와는 달리 지금의 칠월칠석은 단체활동으로서 더 이상 밟아나갈 계단이 없다. 다 같이 잘해보자 으쌰으쌰 하는 것도 이미 다 거쳐보았으니 더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건 내가 잘 알고 있고. 결국 이 상황에서는 더 이상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개인적인 활동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달성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멤버들을 향해 손길을 내밀 수는 있다. 문제는 그 손길을 받아줄 멤버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지. 아, 가을이만 빼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룹 활동으로는 들어오는 일이 없으니 아이돌로서 수명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잖아. 누군가 기억해 주고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인 건데 깨끗하게 잊혀 버렸으니.’
소규모 행사에 돈도 거의 받지 못하고 서는 무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칠월칠석을 찾아주지 않는다. 그 사실은 명백한 진실이니 씁쓸해할 것도 없었다.
‘어휴, 답이 없긴 했구나.’
달성할 목표가 없다는 사실 하나에 여기까지 생각이 닿다니. 이맘때의 내가 왜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었는지 다시금 상기되었다.
‘근데 목표 달성이 뜨긴 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하긴 퀘스트 달성도 되고, 스탯 확인도 가능한데 목표 달성이 안 될 건 또 뭐냐.
제네시스로 활동했던 때 쪽과 지금 칠월칠석으로서 무대를 마무리한 지금. 한여름 밤의 꿈이 어느 쪽이든 이제 와 납득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새삼스럽게 회귀 초에 도서관 가서 자료 찾겠다고 반나절 꼬박 새웠던 게 생각나네.’
그때는 정말 당황이 온몸을 지배해 상황 파악조차 빠르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니.
덤덤해진 걸까. 지금 느껴지는 감정에 명확한 수식어를 붙일 순 없지만 이조차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듯싶었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는 감정이다. 지금은 이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에이, 더 생각해서 뭐 해. 그나저나 현재 회차라니… 없던 수식어가 생겼네.’
그 수식어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곧 머리에 느낌표 하나가 떠오르며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 원래로 돌아온 지금을 말하는 거구나.’
회귀가 번복된 현재는 새로운 ‘회차’로 표현된다고 보는 게 제일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그럼 막 6년 전으로 돌아갔을 때는 첫 번째 회차였겠고.
‘이건 무조건 운을 올려야지.’
이런 기회는 바로 써먹는 게 이득이다. 지금 이 분배 횟수 1회의 쓰임새는 아주 분명했으니까. 눈에 띄게 저조한 능력치는 좀 살려줘야지.
‘아무리 1이어도 0보다는 낫겠지.’
원래 아예 없는 것보다 미미하더라도 뭔가 있는 게 낫다. 이건 비교할 거리도 못 된다. 암, 그렇고말고.
스탯을 상승시키기 위해 머릿속으로 스탯창을 다시 불러올 찰나였다. 생각에 잠겨 걸음이 느릿해진 탓인지 앞쪽에서 현주인의 짜증 어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음 느린 게 거북이가 따로 없군.”
“아, 가고 있어!”
멈춰 있던 것도 아닌데 재촉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발걸음에 속도를 붙이니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스탯창이 희미하게 옅어졌다.
“저러니까 춤도 제대로 못 따라왔겠지.”
성큼성큼 걸어 현주인의 근처까지 따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꽤 작지 않은 목소리로 빈정거리는 현주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고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구쳤다.
‘저게, 진짜.’
뭘 못 따라가!
짜증을 억누르기 위해 입꼬리에 힘을 주고 주먹을 콱 쥐었다.
‘그래, 이맘때쯤 현주인은 원래 인성이 터졌지.’
저건 별 깊은 뜻 없이 나를 갈구기 위해 내뱉은 말임이 분명하다고. 모두 알고 있기는 해도 저 막말에 타격이 없는 건 아니라 자꾸만 미간 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최대한 티 내지 않기 위해 연신 억지로 입꼬리만 추켜올렸다. 광대 근육에 경련이라도 올 것 같았다.
‘아오, 저 싹수없는 놈…….’
빠른 걸음으로 현주인 옆까지 따라붙었다. 그리곤 몸을 현주인 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현주인.”
“?”
똑같이 짜증이나 화를 내봤자 개싸움밖에 더 되겠나. 이럴 때 현주인을 당황시키는 법 또한 회귀 후 제대로 배워놨다고.
“아니, 네가 정말로 말해줄 줄은 몰랐어. 고마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손을 덥석- 잡자 다소 놀란 듯 현주인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
그러고는 곧장 손을 빼내려는 듯 힘이 느껴져 한 번 더 조금 힘을 쥐어 움켜잡았다. 그러자 놈은 당황한 듯 허탈한 헛웃음을 지으며 손의 힘을 풀었다.
“진짜 고마워. 믿어줘서.”
“그런 거 아니라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악수를 하듯 손을 붙잡고 휘휘 흔들었다. 현주인은 여전히 짜증이 넘실거리는 듯 잡히지 않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저런 사소한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신경 썼을 거라면 애초에 이렇게 행동하지도 않았겠지.
“걱정하는 일 없게 할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비밀이 새어 나갈까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다시 한번 짚어주자 놈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악수를 풀며 눈을 싱긋 웃어 보였다. 눈가가 반이 접혀 시야가 좁아졌다.
“이렇게 귀찮게 들러붙을 줄 알았으면 상대도 안 하는 건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돌아 차 쪽으로 향하는 거 봐. 진짜 짜증 났으면 장소가 어디건 나한테는 짜증 팍팍 냈을 새끼가…….’
현주인은 솔직한 표현에 약하다. 스스로 피곤할 법도 한데 그것도 아닌 척하면서. 애도 아닌데 띄워주면 내심 좋아하는 면이 있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잘생겼다거나 잘한다는 칭찬은 많이 들어서 무덤덤하지만 그만큼 솔직한 표현에 약하더라고.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하는 것들. 그렇게 생각하면 안쓰럽긴 해. 자기에게 솔직한 사람이 어지간히 없었던 거니까.’
물론 진심이 묻어난다는 전제하에. 사회생활 경력이 길다 보니 상대방의 가식 여부 파악 또한 기가 막히게 캐치하는 놈이라 정말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는 화법을 보여야 먹히는 방법이었다.
“귀찮게.”
그래서 현주인의 혼잣말에 조금 움찔했다.
‘아, 좀 뚝딱였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한다고 말했는데 어색함이 튀어나오진 않았으려나 모르겠네. 언짢은 기색보다는 민망해하는 것 같은 기운이 더 커서 다행이었지만.
‘아닌가?’
나 혹시 연기가 좀 는 게 아닐까 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머쓱한 듯 뒷목을 만지작거리는 현주인을 지나 팔을 뻗어 차 문을 열었다.
“안 타?”
“먼저 타~”
‘우리 톱스타분 먼저 앉혀 드려야지.’
현주인을 따라 카니발 안쪽 자리에 앉아 차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보는 차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가을이와 별이밖에 없네.’
그나마도 둘은 뒷좌석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퇴근을 한 모양인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이맘때쯤의 칠월칠석은 원래 이런 그룹이었다. 다 같이 무대 위에 오른 몇십 분 전이 신기할 정도로.
“…….”
눈을 세차게 깜빡이며 눈앞에 아른거리던 감성을 지워냈다. 지금은 아까 미처 배분하지 못했던 스탯을 올려야 할 때였다.
‘스탯 확인!’
카니발에 시동이 걸리며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속으로 내 스탯창을 되뇌며 불러냈다.
[ 유은찬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다시 확인한 스탯창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편파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머지는 지금 봐도 밸런스가 나쁘지 않은데 저 아예 전무한 행운 스탯은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무조건 운이지!’
어차피 4.5점의 능력은 만점으로 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분배 가능한 부분 또한 행운밖에 없다는 뜻. 부여받은 스탯 분배 횟수를 곧장 행운에 투자했다. 이번에는 이미 해금이 되어 있었던 모양인지 자물쇠가 풀리는 형상이 나타나지 않고 곧바로 비어 있는 별표가 생겨났다.
[ 유은찬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이제야 좀 구색이 맞네…….’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스탯창을 눈앞에서 지워냈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자고 있는 두 명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지금 현주인한테 말 걸어봤자 짜증만 돌아올 테니 가만히 있는 게 낫겠다.’
이동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멍때리며 시간을 죽일 바에야 잠시 눈이라도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침 무거웠던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감자 캄캄했던 눈앞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
‘분명히 눈을 감았는데 눈이 부시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눈을 크게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다기엔 외부에서 느껴지는 충격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실눈을 떠 상황을 살펴보려 했지만 눈꺼풀은 그사이 본드라도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비행기가 갓 이륙한 것처럼 주변이 웅웅거렸다. 무언가 막에 둘러싸인 듯, 혼자가 된 것 같은 상황에 어안이 벙벙할 때였다. 섬광이 사라져 이제는 컴컴해진 눈앞에 펜 하나가 나타나 빠르게 글씨를 새겨갔다.
[ 히든 스테이지 목표 달성 ! 복귀하시겠습니까? ]펜촉의 움직임을 따라 잔상을 열심히 좇았다.
‘복귀?’
그 물체는 두 문장을 완성해 냈는데, 곧 굵고 밝은 글씨가 여러 번 반짝였다. 지금껏 여러 당황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었고, 한 시간 전만 해도 이제는 무덤덤해졌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었는데. 그것이 무색하게 빠릿빠릿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저 미간 사이를 꿈틀거리며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 사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자 문장 하나가 더 나타났다.
‘뭐야?’
그저 몸을 움직인 것밖에 없는데 내가 언제 사인을 했어?
그 자그마한 고개 끄덕임이 동의로 인식됐던 모양이었다. 허공에 적혀 있던 문장들 밑에 나의 사인과 똑같은 사인이 덧칠해져 있었다.
“하!”
기가 막혀 크게 실소를 내뱉었다. 그렇군. 다시 21살의 유은찬으로 돌아가라는 거구나.
‘이거 확인하라고 여기로 보낸 거였어?’
곧 눈앞이 다시금 번쩍였다. 꼭 회귀를 처음 했던 그 당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