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4
164. 나비효과(6)
‘왜 아무 말도 없지?’
처음 회귀 당시와는 달리 이번엔 그 온화했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적막 속,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귀가 먹먹할 뿐이었다. 그 흔한 이명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내심 기대했는데.’
몇 번 듣지도 않았지만 그 온화했던 목소리는 꼭 마음속에 각인된 것처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했던 터인지 번쩍 뜨인 눈이 어색하고도 조금 얄미웠다.
“으…….“
적지 않은 시간 쓰러져 있다 눈을 뜬 건지 빛의 영향은 엄청났다. 하얀 조명이 눈틈 사이로 스미자 눈부심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척였다. 그제야 옆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의사 쌤~!”
“이진국… 형?”
이 우렁찬 목소리는 얼핏 들어도 매니저 형이었다. 눈 감고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곧장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매니저 형이 나를 품에 와락 부둥켜안았다.
“형… 숨 막혀요.”
온몸에 닿는 뜨거운 체온에 슬쩍 몸을 뒤로 뺐으나 여전히 매니저 형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래도 쓰러졌던 몸이라 그런지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밀어낼 여력도 없었다.
‘형… 힘 완전 세.’
그저 허허 웃으며 어깨와 상체에 느껴지는 압력을 온몸으로 느낄 뿐이었다.
‘그래도 나 쓰러졌던 입장 아니었나?’
이렇게 세게 껴안아도 되는 거냐고. 이러다 다시 문제 생기는 거 아닌가?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어디 욱신거리는 곳도 없는데… 이렇게 격하게 반겨주실 일인가?’
물론 쓰러지긴 했지만, 그것은 정말 원래의 유은찬을 겪게 하려는 매개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몸에 전혀 타격이 없는 것을 보니.
“저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냥 힘이 조금 빠져 있는 것 빼고는 아픈 곳도 없었으며, 문제가 느껴지는 곳도 없었다. 하다못해 시스템을 과도하게 사용해 쓰러졌을 때는 일어난 후에도 그 여파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는 것을 보니 몸 어딘가가 안 좋아 쓰러진 건 확실히 아닌 듯했다.
“저 완전 괜찮아요, 형… 놔주셔도 괜찮은데.”
“은찬아! 괜찮냐? 그러게 내가 평소에 밥 좀 많이 먹으라고 했거늘 이 자식이 맨날 안 먹더니, 아이고……!”
“저 진짜 아무렇지 않다니까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을 족히 열 번은 반복한 것 같다.
‘정신력이 소모되긴 한 건지 별거 아닌데도 짜증이 나려고 하긴 하네…….’
아니, 의사가 괜찮다고 한 거면 몸 상태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말 아닌가?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상황에 슬슬 웃는 것에도 한계가 오려던 찰나였다.
“그래, 그래. 그래도 이럴 때 못 쉬면 더 큰일 날 수도 있어. 다시 누워.”
“앗!”
상체 일으킨 지 얼마나 됐다고 매니저 형은 침대 쪽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 예상하고 있던 힘이 아니라 비틀거리듯 침대에 몸이 푹 떨어졌다. 하얀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내가 곱게 누운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이 마음에 쏙 드는지 매니저 형은 그제야 웃으면서 내 어깨까지 이불을 올려주었다.
‘형도 진짜…….’
걱정되는 건 알겠다만 이건 과보호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자꾸 허전한 느낌이 드네.’
현실감각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그럼에도 옆구리 한쪽이 시린 것도 같고, 앓는 이를 빼지 못한 것과 같은 허전함과 찝찝함이 자꾸만 곁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찝찝함의 정체를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5초 정도?
매니저 형의 모습을 지켜보며 평온함을 느끼던 것도 잠깐, 정신이 번쩍 들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무대는?’
방금까지도 아직 꿈속 같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우, 씨… 깜짝이야. 어디 아파?”
매니저 형의 놀람과 당황이 섞인 얼굴에 곧장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곳에서 알아 온 정보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제네시스의 유은찬인 현재로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면 당장 눈앞의 일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미니 팬미팅에서 쓰러졌던 것 때문이었으니, 그 무대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가장 먼저 알아야 했다.
“그럼 나는 물 좀 사 올게.”
“저, 형.”
“엉?”
“팬미팅은요? 저 얼마나 누워 있었어요?”
멤버들, 그리고 팬들에게 걱정을 끼쳤을 것은 기정사실이다. 지금 내가 여기 누워 있는 걸 보니 미니 팬미팅을 진행 중이었던 현실이 증발한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로 인해 파생될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하니까.
“팬미팅 잘 끝났어, 인마. 걱정하지 말고…….”
“팬들은요? 놀라지 않았어요?”
“놀랐지.”
“아……!”
“우리가 더 놀랐어, 인마.”
“그, 그렇죠. 죄송합니다.”
“뭔 사과를 하고 그러냐? 아픈 건 넌데.”
“…….”
입을 다물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도저히 편한 마음으로 이곳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편하게 조성된 병원 침대가 가시방석이나 다름없게 느껴질 정도의 마음의 짐이라니.
‘우리를 보겠다고 그 자리까지 좋은 마음으로 와주셨을 텐데, 쓰러지기나 하다니…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
차라리 미니 팬미팅을 모두 마친 후에 쓰러졌으면 좋았을걸. 모든 일들이 내 마음처럼 진행되는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원망스러웠다.
“아무튼 지금은 걱정하지 말고 좀 누워 있어, 나 물 좀 사 오게.”
“아, 넵!”
매니저 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장 몸을 다시 침대에 뉘였다. 이 이상 매니저 형을 붙잡았다간 잔소리에 남아 있는 기력마저 뺏길지도 몰라.
“어엉~ 다녀올게.”
쾅-
그제야 매니저 형은 특유의 개구진 웃음을 짓더니 병실 문을 닫았다. 저 경쾌한 문소리를 듣자 깊고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
긴장이 풀려 몸에 힘이 쫙 빠지는 모양인지 몸조차 침대 밑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디에서 쌓아둔 피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느껴지는 피로감이라니.
‘형이 떠난 틈을 타 잠시…….’
그나저나 갑작스럽게 눈을 뜬 곳이 병원이라니. 내가 쓰러진 후에 병원으로 옮겨질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주변인들을 얼마나 당황시켰을까. 일어났을 일들이 짐작 가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현재에 잠시 다녀온 건데도 그 현재에는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니.’
머릿속도 복잡했다. 지금 시점에서 미래인, 즉 칠월칠석으로 활동하던 현재의 나로 활동할 때는 제네시스로 활동했던 지금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계속해서 불쑥불쑥 생각이 날만큼.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
[ 히든 스테이지 목표 달성 ! 복귀하시겠습니까? ] [ 사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재회귀를 하기 전 보았던 마지막 두 문장이 눈앞에 여전히 아른거렸다.
일단 그곳에서 히든 스테이지를 겪으며 얻어 온 정보부터 분석해야 했다.
‘그 문장에 따르면 내가 다녀왔던 현재가 히든 스테이지였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나는 진짜 현재를 다녀온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 의해 조작된 곳에 다녀왔다는 말인 것 같은데.
‘겨우겨우 0이었던 행운을 올려두었는데 말이지…….’
아마도 행운 스탯 상승이 달성 조건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것도, 이번에 행운 스탯 없이 스테이지를 진행했던 것도. 모두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목걸이…….’
무대 위에서 쓰러졌을 당시, 아마 반지를 몸에서 떼어두어 그렇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 다행히 정보를 얻고 돌아왔으니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되었지만 반지를 몸에서 떼어두지 말라던 목소리를 더욱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그럼 목걸이 없이도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런 일을……?’
그렇다면 나의 인격적인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일이 벌어졌었다는 뜻인데. 그 자체로는 영 납득 가지 않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이 나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줬을까, 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스탯이 어떻게 되지? 이것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머릿속으로 스탯 확인에 대한 말을 되뇌자 눈앞에 곧장 스탯창이 나타났다.
[ 유은찬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원래대로잖아? 정말 다행이다…….’
그 당시의 내가 싫은 건 아니다만, 혹시 행운 스탯이 깎인 상태 그대로일까 봐 살짝 걱정한 것도 맞기에 내심 안도되었다.
‘아, 그럼 혹시 내 몸 어딘가에 반지가 다시 돌아와 있는 건가?’
지금껏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던 몸을 여기저기 뒤져보려고 몸을 뒤척였을 때였다.
“윽.”
확실히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모양인지 스탯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왔다. 급격이 띵해져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때마침 문이 다시 벌컥- 하고 세차게 열리며 매니저 형이 나타났다.
“은찬아~! 형 왔다! 물 마실래?”
“…네, 타이밍 너무 좋네요.”
“뭐야? 기다렸냐?”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 매니저 형에게서 받아 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몸살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으슬으슬하던 몸이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
“감사합니다.”
“너는 일주일 정도 휴식기를 갖는다고 공지문을 올려둔 상태이니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내 물 마시는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매니저 형은,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이미 공지문 처리가 완료되었구나.’
아마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간 휴식을 취한다고 올라와 있겠지. 회사에도 폐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계속 안쓰러워할 테니, 매니저 형을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 형은 이제 다른 애들 스케줄 때문에 가봐야 해.”
“아! 얼른 가보세요, 형. 눈 떴을 때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뭘! 넌 진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쉬어라.”
“체력 회복도 일 중 하나인걸요…….”
지금 무리해서 움직이면 다음 활동에도 지장이 가게 될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정도도 모르고 어리게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지금 쉬어서 체력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추후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지금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니까.
“엉! 안녕!”
내 반응에 매니저 형은 개운한 얼굴을 하고 사라졌다. 주변에는 급격하게 적막이 내려앉았다.
“후…….”
정말로 피로가 단숨에 몰려왔다.
‘SNS에 글부터 올리고 눈 좀 붙일까… 걱정하고 계실 텐데.’
구독 계정에 접속하자마자 예상대로 팬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오늘은 좋은 공연을 선사해 팬분들게 좋은 기억만 남겨주고 싶었기에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