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5
165. 신뢰(1)
수많은 울음 이모티콘들이 나열된 글들을 보며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아차차, 내가 가만히 있으면 걱정하실 텐데…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네.’
그동안 아팠던 것이 아니냐, 무리한 것이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까지.
팬들의 걱정이 녹아 있는 글들을 읽다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히든 스테이지인지 뭔지… 뭐가 됐든 시스템 때문에 쓰러지긴 한 거지만 걱정을 덜어드리는 게 급선무야.’
정말 건강상의 문제로 쓰러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는 법이다. 곧장 그룹 계정으로 들어가 팬들을 향한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전달해야 팬들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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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은찬] 지니들! 오늘 기대하고 오셨을 텐데… 행복만 드렸어야 할 자리에서 걱정 끼쳐 드려 너무 미안하고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ㅠㅠ 저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
‘너무 괜찮다고 하는 것도 곤란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가 적당하다. 회사의 입장 외에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수도 있으니 멤버 개인이 의견을 낼 때는 항상 신중해야 했다. 여러 번 생각하고 작성한 글이지만 다시 한번 눈으로 문장을 점검한 뒤 등록 버튼을 눌렀다. 글 밑의 공유수와 마음에 들어요 숫자가 빠르게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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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봄정신차려 @crazygwangchoon
억지로 괜찮다 하는거 아니지?! 애 그만 굴리고 겸사겸사 이번엔 쫌 진짜 쉬게 해라… 망할 좆소야ㅗ 어떻게 애가 쓰러질 때까지 방치할 수가 있냐고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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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봄정신차려 @crazygwangchoon
애초에 활동 끝나고 몸 상태 다들 안 좋았는데 ㅇㅇㅊ 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활동 돌리는 것부터 불안했음 그사이에 연습도 할 텐데 케어는 안 하나?
케어할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 회복할 시간을 줘서 쓰러질 일이 없었겠지 입장문이랍시고 올라온 변명문은 꼴도 보기 싫다
공유 78 마음에 들어요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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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랑 @chanranghae
후엥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런 식은 아니었어어ㅠㅠ 아픈 거 몰라줘서 미아내 맴찢… 얼른 푹 쉬쟈 내 새끼 아프지 마 은차낭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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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미남수집가 @onlySilverC
가을이가 요즘 은찬이 컨디션이 안 좋았대ㅜㅜ
울 리더 아프지 마 제발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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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니♡ @eunchannyyyy
진짜 은찬이 대신 아프고 싶다… 속상해서 눈물 나 은찬아 아프지 마ㅜㅜ너무 속상해하지도 말구 진짜 넘 걱정된다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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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중에서 몇 개는 눈에 익은 계정들이었다.
‘앞으로도 더더욱 몸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 체력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는걸.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지만 건강에는 무리가 안 가게 해야겠어.’
내 몸이 내 것만은 아닌 걸 확신하게 됐달까.
‘…피곤하다. 마치 칠월칠석으로 있던 그 시간 동안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오는 느낌.’
휴대폰 액정을 손가락으로 슥슥 내려가며 팬들의 걱정을 보고 있다 보니 저절로 눈이 감겨왔다. 이곳의 몸은 누워 있었다고 해도 정신은 하나라 정신력 소모를 한 탓인 걸까.
“…졸려.”
이놈의 몸은 왜 이렇게 의식을 잃어대는지, 매번 눈만 감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지만 밀려오는 잠을 도무지 이겨낼 수가 없었다.
‘눈꺼풀을 누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걸…….’
이 정도의 피곤이라면 조금이라도 자두는 게 체력 회복에 좋겠지. 괜히 지금 머리를 굴려봤자 답은 나오지 않고 의미 없는 피로만 쌓일 것이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조금씩 비워냈다.
***
“팔자 좋게 잠들어 있군.”
“…….”
“…흠.”
희미하게 누군가 털썩 주저앉는 소리와 동시에 침대 밑쪽이 출렁거렸다. 침대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누가 사람 잠들어 있는데 이렇게 배려 없이…….’
좀 얌전하게 앉을 것이지. 잠에서 깨며 무의식적으로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눈을 부비적거리자, 침대가 내려앉은 곳에서 비웃음 소리가 추가로 들려왔다.
“푸핫.”
“…음…….”
잠에서 깨기 일보 직전이다. 이 피곤함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마지막 반항으로 몸을 웅크리며 안쪽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딱 그렇게 다시 잠들 찰나였다.
♫♪♫
그 불청객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아.”
“깼네.”
짜증스럽게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불청객의 정체였다.
“…왜, 현주인?”
시선의 끝에는 짜증스러워 보이는 현주인이 있었다. 놈은 핸드폰을 만지다 실수로 소리를 냈다며 손을 살짝 젓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 표현했다. 진심이 담겨 있진 않았지만.
이미 완전히 깨버린 잠은 완전히 도망가 버렸다. 양팔을 위로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이 정도에 못 일어나면 그게 진짜 졸도지…….’
현주인은 대답 대신 내 모습을 샅샅이 살피며 훑어보았다. 그 눈빛이 곱지는 않았지만 워낙 디폴트가 친절하지는 않은 놈이니 지금도 그러려니 싶었다.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그러나 이상하게 현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말을 이어나가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와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아, 확실히 칠월칠석의 현주인에 비해서는 완전히 순한 맛이 되어버렸네.’
어쩌다 그 대단했던 현주인이 이렇게 됐는지. 요놈도 따로 보면 굉장히 싸가지 없는 놈이지만 원래의 현주인을 다시 보고 나니 아주 순한 양이 따로 없다.
“…뭐야, 소름 끼치게.”
“흐흐.”
“뭔데……?”
그런 내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현주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이유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 재밌네.’
나한테는 그것마저 구경거리였지만. 이렇게 순해진 현주인인데 못 받아줄 이유도 없었다.
“야!”
“……?”
냅다 현주인을 크게 불렀다. 역시 난 그래도 이쪽의 현주인이 더 좋아. 이렇게 반가운 마음부터 드는 걸 보니.
“왜.”
반가워서 그런다, 반가워서.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또 이상한 눈빛으로 훑어볼 게 뻔하니까.
“아니야.”
“…싱겁긴.”
적당히 활짝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놈도 김이 샜는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고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그 모습이 꼭 고장 난 로봇 같았다.
‘대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저러는 거지?’
할 말이라면 내 쪽이 더 많을 텐데. 저쪽의 현주인에게 듣고 온 사실을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고. 물론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 성급하게 행동하지는 않을 거지만.
“할 말 있어?”
“…….”
현주인은 여전히 말할 듯 말 듯 애매하게 굴었다. 놈답지 않게 망설임으로 1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럴 땐 적당히 분위기를 끊어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나도 할 말 많은데 가만히 있는 거니 너도 적당히 해라.”
“갑자기 왜 난리야?”
결국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는지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던 놈은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현주인은 아예 주제를 돌려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래도 말해주려고 운 뗀 걸 보면 다음에는 말해주겠네.’
원래는 그 잘난 포커페이스를 쭉 유지하면서 어떤 사실이라도 절대 입 밖으로 낼 생각조차 안 하던 놈이다. 지금 무슨 말을 듣지 못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말을 할 의지라도 보였다는 게 나에게는 아주 감격할 만한 사실이기도 하니.
“아.”
그때 현주인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맞췄다.
“유은찬, 주머니는 봤어?”
“주머니?”
놈의 말을 듣고 병원복 상의의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판판하게 느껴져야 할 주머니 쪽에서 무언가 자그마한 물체가 느껴졌다.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물체를 꺼냈다.
“어?”
반지였다. 미니 팬미팅 무대를 위해 잠시 빼두었던 반지. 몸에서 잠시 떨어뜨려 놓은 탓에 현재 여행까지 하고 오게 만들었던 그 반지. 아마 행운 몰빵의 역할을 해주고 있을 아주 중요한 반지.
‘다행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것처럼 반지를 소중하게 쥐었다. 앞으로 이게 없었으면 또 어떤 불행이 닥쳤을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목걸이 줄까지 이상 없이 달려 있어 곧장 목걸이를 차며 현주인을 향해 물었다.
“내 반지가 왜 있지?”
“내가 찾아서 올려뒀다. 중요하잖아.”
“너… 정말…….”
“뭐가.”
반지가 중요한 역할인 것을 언급해 두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다가 챙겨주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현주인은 ‘나’와 ‘타인’의 이분적 구분이 확실한 놈이다. 그런 놈에게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일은 전혀 신경을 쓸 범주가 아닐 텐데, 이렇게 직접 챙겨주기까지 할 줄이야.
‘정말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했구나… 드디어 사람 구실 하는구나, 우리 주인이가…….’
라는 뒷말은 그냥 속으로 삼켰다. 또 뭐라고 할 게 분명하지. 그것도 절대 한마디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아까 스탯이 만점이었구나.’
정신이 없어 눈치채진 못했지만 깨어날 때부터 병원복 주머니에 쭉 들어 있었던 듯했다. 그러니 눈을 뜬 뒤 바로 확인했던 스탯에서도 행운에 이상이 없었지.
‘역시 엄마 유품… 엄마는 대체 이걸 어떻게 갖고 계셨던 거야.’
목에 걸린 반지를 매만졌다. 이제야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지고, 허전함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절대 몸에서 떼놓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나저나 우리 회사 돈으로 어떻게 1인실을 했대……?”
한참을 반지에 대한 생각을 한 뒤에야 병실의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튼이 쳐져 있긴 하지만 살짝 보이는 바깥 풍경이 널널하고 이상하리만치 주변이 조용했다. 우리 회사가 투자를 잘 받기는 했어도 아직 온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룹의 멤버에게 1인실을 턱턱 내줄 만한 회사는 아닌데.
‘그게 한두 푼도 아니고…….’
게다가 난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쓰러졌을 뿐이잖아.
“내가 했어.”
“엑?”
그냥 던졌던 말인데 돌아온 현주인의 대답에 사레라도 들릴 뻔했다. 아마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물을 뿜었겠지.
‘돈을 아주 물 쓰듯이 쓰는구만……!’
순식간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갚을게, 나중에.”
“그럴 능력이나 되면 말해라.”
“넵…….”
놈이 지 딴엔 나를 많이 생각해 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평소에 나 아니면 타인이었던 현주인 맞냐고.
‘그냥 말할까.’
함께 회귀를 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특별한 동반자라는 존재인 건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 정도로 나를 특별 취급 하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나의 오해였던 모양이다. 현주인 기준에서는 엄청난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나?”
“왜.”
그러니 말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시스템에 대해서도 다 말한 마당에 잠시 원래 세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들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고. 이야기를 해야 함께 생각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니 플러스가 되면 됐지, 결코 마이너스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온 것들, 그리고 내가 한 추측과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들.’
한 번 짧게 숨을 고르고 정면으로 현주인을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