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6
166. 신뢰(2)
‘후…….’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생각을 안정시켰다. 현주인의 눈살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놈은 내가 무슨 말을 시작하려고 평소답지 않게 이런 분위기를 잡는지 의아해하는 중일 게 뻔했다.
“나 현재에 다녀왔어.”
“현재는 지금이겠지.”
“아니… 좀. 그래, 정정할게. 예전의 우리. 그러니까 다시 원래대로 잠시 돌아갔었어.”
순간적으로 ‘회귀 전’이라고 입 밖으로 낼 뻔했다. 그것만큼 그 상황을 분명하게 명시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기가 막힌 시스템. 그 단어는 절대로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할 작정인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목이 확 따끔해져 반사적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큼큼!”
목을 몇 번 가다듬은 뒤 현주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놈 또한 미간을 좁힌 채 나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거기서 너도 봤어.”
현주인의 좁아졌던 눈이 확 떠졌다. 하긴 놀라울 만한 주제긴 하지. 평소 감정에 무감각한 현주인이어도 이렇게 놀라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아직 더 놀랄 말들이 남아 있는데…….’
벌써 여기서부터 놀라면 뒷말은 어떻게 들으려고?
“들을 거야?”
“열받게 자꾸 말하다 말래?”
잠시 뜸을 들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입을 여는 쪽을 택했다.
‘아이쿠…….’
저금 더 뜸을 들였다간 현주인에게 한 대 맞기라도 할 것 같아서 말이지. 괜한 장난을 치다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너 백무영 선배님이랑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또 백무영 얘기…….”
가볍게 운을 뗀 건 아니라 생각했다. 현주인은 ‘백무영’ 이름 석 자를 정확하게 들었음에도 지겨워 죽겠다는 듯 바로 새끼손가락을 들어 귀 쪽으로 가져가며 학을 뗐다.
‘내가 하도 백무영, 백무영 하긴 하는데 저렇게까지 귀찮아할 일이냐고.’
그동안 어지간히도 듣기 싫었나 보네. 행동으로 보아하니 귀에 딱지가 앉았어도 이상할 바 없는 반응인데,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줄이야.
“너네 형제잖아.”
새삼스럽던 짧은 반성을 마치고 곧장 본론을 던졌다.
“…….”
이죽거리던 현주인의 표정이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변했다. 마치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표정으로 말을 하는 것만 같이.
‘반응이…….’
생각보다 느린 반응에 내가 되물으려 할 무렵이었다. 현주인의 굳어 있던 얼굴이 흔들리며 입꼬리가 삐죽거렸다.
‘뭔가 좋은 반응은 아닌 듯한데.’
물론 놈의 입에서 고운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경계하는 반응이 나올 줄도 몰랐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너 뭐야?”
“엉?”
‘이런, 날이 서도 너무 섰는데?’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더욱 낯빛을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너무 간을 보다 보니 되레 부작용이 온 것 같은데, 곧장 직구를 꽂는 게 더 나은 방향이었나?
“유은찬 맞는 것 같았는데. 뭐 다른 일이라도 있나? 재밌네.”
현주인은 헛웃음과 함께 조용하게 말을 읊조렸는데,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는 또 아니었다. 한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는데, 이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는 양손을 앞으로 크게 내저었다.
‘무슨 오해를 해도 저런 오해를 해!’
놈은 내가 진짜 유은찬이 아닌 같은 모습을 한 다른 누군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시스템도 있고 본인도 회귀를 한 마당에 그런 생각은 전혀 이상할 바가 없긴 했다. 하지만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이런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아 더욱 적극적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해명을 할 타이밍을 찾았다.
“엥? 나 맞아! 나 유은찬!”
“그럼 네가 어떻게 알아?”
현주인의 입으로 이 사실을 말한 적이 없으니 백무영과 형제라는 사실을 원래의 내가 알 리가 없긴 하지. 하지만 내가 칠월칠석 시절에 잠시 다녀왔다고 말을 하지 않았던가!
“현재에 다녀왔다니까…….”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답답해진 속에 괜히 주먹으로 가슴만 퍽퍽 쳐댔다.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싶지만 ‘회귀’나 ‘칠월칠석’ 같은 단어들을 직접 말하기엔 제약이 걸려 있기에 입만 몇 번 뻐끔거릴 뿐이었다.
‘답답해 죽겠네, 진짜!’
지금의 현주인이라면 내 말을 들어줄 것 같긴 한데. 워낙 놈에게 예민한 주제이다 보니 이것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네. 괜히 나서서 더 말을 이었다가는 저놈한테 의심만 더 살 것 같고.
“거기서.”
“응!”
그냥 묻는 말에나 열심히 대답하는 수밖에.
“백무영을 만났어?”
“아니.”
“그럼?”
“너.”
“…….”
최대한 눈을 반짝이며 현주인의 질문에 응했다. 그래도 눈을 순하게 뜬다고 최대한 순하게 뜬 건데, 다행히 그게 먹히긴 한 모양인지 날이 잔뜩 섰던 현주인의 예민함도 한 단계 조금 누그러진 듯 보였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에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내가 말했다고?”
하지만 사실인데 어쩌랴,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별…….”
“아, 왜. 네가 말해줬다니까.”
“어, 경계심 없는 건 똑같아서 어이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내버려 둬.”
저거, 지금 나한테 경계심이 없다고 하는 핀잔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경계심이 없다고 한탄하는 말인 거지?
‘니가……? 경계심이?’
황당했지만 지금 말을 얹으면 난리가 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하여튼 현주인은 말을 헷갈리게 하지는 않는다. 말싸움을 할 생각이 없다면 괜한 감정 소모를 하기 싫어 말을 배배 꼬지 않는 성격이니까. 지금 저 황당한 발언의 속뜻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
현주인은 무언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몇 번이고 나를 흘겨보는 걸 보아하니 대답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맞아.”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달라.”
그리고는 잠시 동안의 침묵 후, 그 정적에 걸맞을 만큼의 폭탄 발언을 내던졌다.
‘성이 같지는 않길래 대충 한쪽 부모님이 다를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말해줄 줄은 몰랐네.’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기에 제법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오히려 현주인 쪽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까지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뭐야. 이것도 들었냐?”
“아니… 너한테 처음 들었어.”
“그래?”
그렇게 자세하게 물어볼 만한 시간도 없었고, 그쪽 현주인은 경계가 워낙 강해서 더 파고들 수 없었다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다른데? 그쪽 현주인은 백무영이 입방아에 오르는 게 싫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그냥 백무영의 이름 자체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말을 꺼내긴 꺼냈으니 대화를 이어가기는 해야겠는데, 이 주제를 굳이 오래 끌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게 온몸에서 티가 난다.
“근데 그 새끼 얘기는 뭐가 중요하다고 지금 꺼내는 거지?”
현주인이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건, 그 감정을 숨겨야 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는 말이니까.
‘아주 질색을 하는구만. 어머니가 다른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아무래도 지금 백무영 선배가 자신이 형제라고 생각했던 진짜 백무영이 아니라서 그렇겠지. 알맹이가 다르니까.’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의 현주인은 백무영 선배를 내 생각보다도 더 꺼리고 있다는 것.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순한 감정이다. 이름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싫어한다는 것보다는 혐오하는 쪽에 훨씬 가깝다.
‘쟤도 그동안 혼자서 속앓이를 많이 했겠어.’
말로만 날 믿게 되었다고 하지 말고 이런 고민이나 좀 털어놔 주지. 하다못해 내가 백무영 선배가 우상이라고 나불거리던 걸 그만두었을 때라도, 아니면 빙의된 다른 존재라는 걸 알았을 때라도. 그랬다면 현주인의 불편한 마음도 한결 덜 수 있었을 텐데.
‘고집만 세가지곤.’
아마 지금도 내가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 녀석이다. 엄청나게 불쾌해 보이는 현주인의 얼굴을 슥 몇 번 흘겨보고는 턱을 연거푸 매만졌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스쳐 갔다.
“이건 내 섣부른 추측이긴 한데, 말해도 돼?”
“언제부터 허락받고 나불거렸다고.”
“나불거리… 시비 좀 걸지 말아봐.”
현주인은 결국 말을 이어가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지금 네가 예민한 주제에 대해 얘기 중이니 저 정도 까칠함은 내가 넓은 아량으로 용인해 주겠다- 이거야.
“너 회… 윽, 커헉, 쿨럭!”
“모자라긴… 학습 능력이 없냐.”
‘회귀하기 전엔 선배랑 사이가 좋았어?’라고 말하려 했는데!
아까 경고성 통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통증이 목을 덮쳤다. 마치 타는 듯한 작열통에 얼굴을 찌푸리고 연신 쿨럭여 댔다. 쯧, 하고 혀를 찬 현주인이 내미는 물을 받아 마시며 목의 통증을 진정시켰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선배와 사이가 좋았어?”
아직 완연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현주인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이거, 내가 더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저놈의 무언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영 모르겠단 말이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해야 조그만 반응이라도 나오겠지 싶다.
“지금이 더 질색하는 느낌이길래. 그래도 그때는 꽤나 챙겼던 것 같아서.”
“…쓸데없이 눈치가 늘었네. 귀찮아졌어.”
“맞았다면 다행이고.”
말을 이어가기 위해 찔러본 방향이 정말 다행히도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더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내심 안도하며 침대 끄트머리의 현주인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이제 긍정의 답을 들었으니 다음 순서는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눌 차례.
“1인실은 이래서 좋네~”
주변 신경 안 쓰고 민감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보통 편한 정도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며 대화의 운을 뗐다.
“다른 사람인 건 애초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그런 내 의도를 단박에 파악한 듯 현주인은 무덤덤히, 표정의 변화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훅 대화에 들어선 놈의 태도에 오히려 내가 조금 당황할 뻔했다.
“그, 그래?”
“그래.”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현주인의 모습은 어딘지 공허해 보이기도 했고,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했다.
“모를 리가 없지, 말 한두 마디만 섞어봐도 알아. 그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지금의 백무영이래도.”
현주인이 말을 이어가도록 조용히 놈의 말을 경청했다. 괜히 말을 얹었다가 대화의 갈래가 다른 쪽으로 빠지는 건 나도 원치 않았으니까.
“가족이니까.”
그 말에 놈의 태도를 단박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냉혈한처럼 보이겠지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집착하는 면도 갖고 있는 놈이니까. 그리고 그 범주에 가족이 포함되지 않을 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