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8
168. 신뢰(4)
“너랑 단둘이 얘기 좀 진득하게 해보려고 남은 건데, 불만이 많네.”
“뭘 진득하게 얘기해. 그만 진득하자.”
“하…….”
현주인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한술 더 떠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기까지하는 놈의 행동은 나를 더더욱 머쓱하게 만들었다. 괜히 헛기침을 내뱉어 목을 가다듬으며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너는 말이 너무 많아.”
그런 나를 잠깐 지켜보던 놈은 체념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혼잣말인 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거리가 가까운 만큼 분명히 나 들으라고 한 말일 터다.
‘맞는 말이긴 한데… 맞는 말이어서 은근 사람 짜증 나게 하네…….’
게다가 그냥 한 말이라기엔 말에 굉장히 뼈가 있잖아. 원래 사람은 팩트를 들었을 때 더 상처를 입는 법이라고. 진짜 멍청한 사람한테는 멍청하다는 말 안 하는 게 예의인 거 몰라?
“쳇.”
“찔렸나.”
“그래, 너무 찔려서 할 말을 잃었다!”
입을 빼쭉 내밀고 툴툴거리고 있자니 현주인이 작게 웃었다. 괜히 이 주제에 대해 더 붙잡고 있어봐야 좋을 게 없을 듯싶어 화제를 전환할 만한 주제를 찾았다.
“근데 내 퇴원은 언제야?”
이럴 땐 상황에 관한 주제만큼 좋은 건 없지. 게다가 매니저 형에게도 듣지 못했던지라 궁금했던 부분이니 사실상 생산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침대 끝자락에 있는 현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 어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안정만 필요한 거 아니야? 몸도 멀쩡하다 보니 계속 여기 누워 있긴 답답한데.”
가만히 앉아 있자니 좀이 쑤셔왔다.
‘그래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몸이라서 그런지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네.’
평소 밖에 돌아다니는 걸 아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막상 가만히 있을 환경이 주어지니 이렇게나 어색하다. 스케줄이 없더라도 연습은 꼬박꼬박 해왔던 탓인지, 아니면 움직이는 게 몸의 디폴트가 되어버린 건지.
‘계속 쉬고 있다 보면 몸이 굳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연습을 게을리하면 춤선에서 곧장 티가 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걱정이 가장 크게 드는 걸 보니 정답은 전자였던 걸지도.
이 부분은 주혁이에게 좀 더 의지해도 되겠지. 부탁하면 타박을 할지언정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알려줄 애다.
“3일만 있어.”
“3일……?”
심각한 내 앞에 내려진 날짜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길었다. 끽해야 내일까지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주 얼얼하다.
‘3일이나 여기 있어도 돼?!’
무려 3일이라니!
현주인의 대답에 멍하니 고개를 주억이다 눈을 부릅떴다. 문득 여러 스케줄들이 뇌리를 스쳐 갔다.
‘라디오 게스트… 아, 이건 다음 주였나? 뮤직센터 대본 리딩도 있고, 예능 게스트 미팅도 가봐야 하는데… 하, 미치겠네.’
MC를 보거나 녹화를 해야 하는 굵직한 스케줄들은 다행히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부 하나하나 소중한 스케줄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고 앞으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하는.
‘이래도 되나……? 내가 빠지면 그 빈자리는 어떡해.’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내가 끼칠 폐들도 걱정이었다. 나 하나만 쏙 빠진다고 뚝딱 해결되는 문제라면 마음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내 행동 하나에 따라올 스태프분들의 스케줄 변동이 현실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금껏 절대로 1분도 지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건데.’
그래서 더더욱 마음 한편이 뭔가 얹히기라도 한 듯 불편해졌다. 일부러 도망친 것은 아니라지만 불편을 끼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하…….”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여러 문제들을 떠올리니 속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다. 여기 누워 있어서 아픈 게 아니라, 그에 따라 하지 못할 부수적인 일들 때문에 더 머리가 아픈 느낌이고. 관자놀이 지압이라도 해야 할까?
“이미 너 쓰러졌다고 공지 나간 상태고, 매니지에서 스케줄 관리해 둔 상태야. 뭘 신경 쓰는지는 알겠는데 지금은 나서봤자 해결될 거 없으니 생각 말고 쉬어.”
“엇.”
“어떻게 머리 굴리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쉬라고.”
내 얼굴에서 생각이 읽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현주인은 눈가에 힘을 팍 주고 있던 내 어깨를 슬쩍 밀었다. 잡생각에 빠져 있던 탓에 몸에 힘이 빠져 있던 건지 맥없이 푹 침대에 쓰러졌다. 베개에 머리가 안착되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래도 되나…….’
다시 몸을 일으킬 생각이 들진 않았다. 눈꺼풀을 몇 번 꿈뻑이며 천장 불빛을 보다 현주인을 바라보다를 반복하다 마른세수를 했다.
‘하여간 매번 옳은 말만 해서 사람 할 말 없게 만든다니까, 저 자식은.’
하긴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현주인의 말도 틀린 거 하나 없긴 했다. 지금 내가 번잡하게 여러 걱정을 한다 한들 병원 안이라는 지금의 상황이 당장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이미 공지도 나갔고 스케줄 관리까지 완료된 상황이라면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뜻이다. 마음이 불편한 것과 현실 상황은 별개이니까.
걱정과 민폐를 끼쳤단 사실에 변함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이 나에게도 훨씬 이득이다. 미안한 마음은 추후 현장에 복귀한 뒤 충분히 표현해도 늦지 않다. 아니, 그 순서가 옳다.
‘…그래, 지금 새로 알아낸 정보가 많아서 이것들을 맞춰보고 싶기도 해.’
이럴 땐 여러 갈래의 생각을 하나로 통합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온 상황을 이해하고, 그 이후 들은 정보들을 취합하기도 해야 했으니. 일단 정신을 집중시키려 애썼다.
“…음.”
“쉬라니까 왜 또 표정이 진지해져?”
“놔봐, 지금 생각 중…….”
“또 픽 쓰러져서 스케줄 중에 폐 끼치지 말고 쉴 땐 쉬라고.”
“아니, 이번에 내가 쓰러졌던 데는 다 이유가……!”
“그래, 알겠어.”
놈은 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여 댔다.
‘들어먹을 거 같지가 않군.’
저기다 대고 내가 쓰러졌던 이유가 분명하니 뭐니 변명을 하기엔 씨알도 안 먹힐 게 분명해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왈가왈부 입씨름할 체력도 없었기에 지금은 차라리 생산적인 대화를 빨리 해버리는 게 나을 성싶어서.
“너, 얘기하자고 여기 남아 있는 거라 했지?”
“그래.”
“그럼 본론부터 바로 얘기해도 되겠네?”
현주인의 건조했던 얼굴에 흥미가 비쳤다. 이제야 들을 태도가 된 게 분명했다.
“너도 결국 백무영 선배 때문에 여기로 돌아온 거지? 선배가 없어져서 찾으려고. 소중한 가족이잖아.”
“…뭐… 그것도 있겠지만…….”
놈은 ‘소중한’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 번 미간을 좁히며 움찔하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현주인은 내 쪽을 흘긋 보더니 몇 초간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풋.”
그러고는 실소를 터뜨리며 작게 주먹 쥔 왼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하여튼 저게 진짜…….’
놈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나도 확실히 기력이 빠지긴 빠진 모양인지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불 밑으로 한 번 주먹을 콱 쥐고는 굳은 입가 근육을 끌어 올려 찬찬히 웃었다.
“왜 또 코웃음이야? 대답이나 해주지.”
저 반응은 분명히 부정은 아닌데. 그렇다고 긍정도 아닌 게 아주 애매하기 짝이 없단 말이야. 분명히 백무영 선배 때문에 온 건 맞는데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 같기도 하고.
‘다른 이유… 혹시 나 때문은 아니겠지? 자살 시도를 한 건 맞지만…….’
혹시나, 하던 생각을 고개를 털어내며 떨쳐 버렸다. 현주인이 내가 그렇게 된 이후로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만 나 때문에 회귀를 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진 않았으니까. 놈이 새삼스럽게 죄책감이라도 갖고 나한테 미안해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내가 헛생각을 다 하네.”
“뭐?”
“아무것도 아니야.”
얼굴 앞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나를 현주인이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넌 짐작 좀 했나?”
“나? 뭘?”
딜레이가 걸린 사람처럼 한 번 되묻고 나서야 놈의 질문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제 방식대로 말하는 버릇은 평생 가도 못 고칠 성싶었다. 놈의 그런 화법에도 이제는 완벽히 적응한 줄 알았는데, CPU가 과부하 걸린 날에 로딩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하여간 주어 없이 말하는 버릇 못 고치지. 한 번에 말하면 두 번 말 안 하고 서로 좀 좋아?’
놈은 뭘 되묻는냐는 듯 턱짓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네 반지에 대해서.”
“아아.”
‘반지 끼고 있는 건 언제 확인했대?’
아까 주머니에 반지가 들어 있던 걸 확인하자마자 손가락에 끼웠었지. 목걸이로 차고 있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에 끼고 있었는데 바로 눈치를 채다니. 눈썰미 한번 좋다니까.
“계속해.”
존재감을 다시 인식하고 나니 간만에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어색해 반지 부근을 매만졌다. 놈이 무슨 말을 하려고 운을 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도 놈이 말을 이어갈 것을 종용했다.
“네 운이 반지 때문인 건 알겠고, 그게 네 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알겠고.”
“엉, 기억력 좋네?”
“과거… 아니, 미래인가. 아무튼 그 당시 넌 운이 지지리도 나빴는데 지금은 운이 좋은 이유가 그것 아니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냐?”
“그것도 그렇지.”
“그럼, 뭐 신선한 건?”
새로운 정보를 듣고 싶다는 뜻이구나.
‘뭐, 추론할 시간도 안 주고 새로운 정보를 달래.’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놈에게 남은 목적이 그것이라면 나도 떠오르는 것들을 밖으로 내비칠 수밖에 없겠다. 다만 명확한 결론으로 전달해 주고 싶었는데, 중구난방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게 될 것은 조금 아쉬웠다.
‘대화하다가 새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겠구만.’
놈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도달하는 결론도 있을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같이 이야기하는 게 훨씬 나은 답이 되겠지.
‘그래도 얄미운 건 얄미운 거니까, 조금 놀려볼까?’
너무 곱게만 설명해 주는 건 재미가 없지 않나. 임팩트 있는 방법을 사용하면 놈의 집중도도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백날 말하는 것보다 눈에 각인시켜 주는 게 결과적으로도 훨씬 좋을 거고!
씨익-
놈을 골려줄 생각을 하니 아주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입가를 최대한 끌어 올려 짓궂은 웃음을 짓고는 곧장 몸을 일으켜 병원복 상의의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뭐 하냐?”
그리고 내 예상대로, 옆에 있던 현주인은 거의 기겁하듯이 상체를 뒤로 물렸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맨 밑, 끄트머리에 있는 단추까지 푼 뒤 시원하게 상의를 벗고 옆으로 훅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