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69
169. 신뢰(5)
“뭐야? 불쾌하게.”
“사람 몸을 보고 불쾌하다니?”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심이다. 옆으로 툭 떨어진 상의를 손으로 옮겨 치우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 좋아서 지 앞에서 벗는 줄 아나.’
서로 남자 몸 봐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한단 말인가. 그건 내 쪽에서도 극구 사양이다, 사양.
억울한 마음에 가슴팍을 더 앞쪽으로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운데 죽 그어진 흉터를 연신 가리켰다.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기 위해 숨을 한 번 고르고 인내해, 비교적 차분하게 말은 이어갈 수 있었으나 손짓에 실린 힘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내 수술 자국 보라고. 설마 수술 자국 보는 게 좀 그래? 그런 거라면 다시 입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럼 자세히 봐봐!”
“네 상처 자국을?”
“그래.”
입술을 슬쩍 깨물면서 말을 이었다. 내 짜증이 전해지긴 한 건지 놈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는 와중에도 내 흉터와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기를 두 번 정도 반복하더니 시선을 내 얼굴에 멈춰놓고는 고개를 내젓기는 했지만.
“뭐 좋은 일이라고. 감기 걸리기 전에 옷이나 입어.”
“네- 네-”
수술 자국을 보여주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는 옷을 입어줄 수 있지. 옆에 살짝 밀어두었던 환자복 상의를 집어 양팔을 꿰어 넣고 위에서부터 단추를 채워갔다.
‘말로만 내 수술 자국과 운이 연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각인이 빠르다니까. 봐봐, 저 당황한 얼굴. 이제 저놈의 저 정도 감정 동요는 나도 눈치챌 수 있다고!’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 말로 백번 지껄여 봤자 입만 아팠을 수도 있다. 확실히 눈으로 각인을 시켜준 덕분인지 현주인은 아랫입술을 조금씩 깨물면서도 진중한 태도를 유지 중이었다. 내 행동에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진지한 얘기를 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인식된 모양이었다. 그 덕에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들도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잠깐 과거 시절로 돌아갔다가 왔다고 했지?”
현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내 운은 0이었어. 반지가 없을 때의 나와 같이.”
이건 현주인도 명확하게 아는 사실. 반지가 내 별 5개짜리 운의 증거라는 것. 반지를 뺐을 때 사고를 당할 뻔했던 경험도 있으니 이건 놈에게도 ‘불확실한 것’이 아닌 명확한 ‘사실’로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심장 수술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그 선명한 자국이 증명하듯이.”
“…….”
“하긴 네가 지금은 제일 잘 알고 있기야 하겠지.”
회귀 전에는 가을이에게만 말했던 나의 상처를 회귀 후 지금 현주인이 먼저 꺼냈었다는 것. 현주인의 회귀에 대한 의심도 이 흉터 덕분에 불을 지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함께 화보 촬영을 했던 당시에도 내 흉터를 배려해 줬던 놈이다. 놈은 대답 없이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번 현주인의 침묵은 긍정…….’
계속 말을 이어보라는 무언의 표현이다.
“내 추측인데 나는 타고나길 운이 만점이었을 거야.”
“……?”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지금껏 깔았던 밑밥들은 현주인도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고, 지금 꺼낸 건 새롭게 던진 주장이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네. 눈빛 빛나는 것 봐. 궁금해하기는 하는구나.’
물론 아직은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이니 현주인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곧장 헛소리 말라면서 부정적인 소리는 안 하는 걸 보니 인내심이 꽤 늘었네.’
서론 깔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재촉이 없는 것만으로도 놈의 상승한 인내력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지. 놈은 꽤나 진중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심장 수술로 인해 운을 다 쓴 것 같아.”
‘어라?’
솔직히 조금 놀랄 줄 알았는데. 현주인은 영 미동이 없었다. 하다못해 동공의 흔들림이라도 있을까 싶어 놈의 눈을 살펴보기까지 했는데, 그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이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해서 손바닥을 펼쳐 놈의 눈앞에서 설설 흔들어 보였다. 가만히 있던 현주인은 내가 손을 흔들자 그제야 인상을 찌푸렸다.
“안 놀라?”
“왜 놀라야 돼?”
“짐작했어?”
“아니.”
“근데 왜?”
“납득이 되는 이야기잖아.”
납득이 되는 이야기라면 별로 놀랍지 않다는 뜻인가?
“재미없네.”
“우.와- 너.무.놀.라.운.데?”
“…그만해라…….”
‘하여튼 얄밉기로는 세상 1등 먹겠다니까…….’
그래도 심장 수술로 인해 운을 다 썼다는 사실 정도면 꽤 놀랄 줄 알았는데. 마치 장난치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던 어린애처럼 왠지 모를 실망감이 살짝 피어올랐다. 이게 장난은 아니다만.
‘에이…….’
정확히는 반응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뭔가 김이 빠져 버렸다. 좀 더 놀라줬으면 얼마나 좋나.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 입장에서 더 흥미가 붙어서 나불거릴 텐데.
“그때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수술이 성공했던 게 행운이었어. 거기다 운을 다 끌어 쓴 거 같아.”
저 현주인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 것 같기도 해서, 기대를 내려놓고 그냥 말을 이어갔다. 방금 전보다 말투에 감정이 빠져 건조하게 말이 뚝뚝 끊어졌다.
“그 수술은 그 당시 기술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수술이었거든.”
“개연성이 있어.”
놈은 ‘있을 법한 이야기고’ 하고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설 줄거리 듣는 듯한 반응이네…….’
남의 이야기, 그것도 자서전 속 팩트만 찾는 사람처럼 놈은 사실에 집착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뭐, 현주인에게는 남의 얘기인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어쩜 저렇게 한 톨의 공감조차 없냐.
‘그래도 대화가 빨리 진행되는 건 맞긴 하네.’
감정을 빼고 사실만 나열해 가니 더딜 줄 알았던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재빨리 진행되었다.
그래, 이번에는 재촉 안 하는 현주인 정도에만 만족하자. 저놈이 여기까지 바뀐 것도 사람이 달라진 정도다. 욕심은 끝도 없다더니 그 말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지만.
“이 반지는 보정 같은 거야.”
“…….”
“내 운의 보정.”
“…….”
현주인은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쯤, 나도 찬찬히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시스템들로 사람들의 스탯을 확인한 결과, 타고나길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스탯을 부여받는다. 그 스탯이라는 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라서, 누구는 없이 태어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만점짜리 무언가를 부여받고 태어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눈앞의 저 잘난 얼굴을 가진 현주인처럼.
일종의 ‘재능’.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능력에 남들보다 조금 나은 얼굴만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회귀 후 스탯을 조회했을 때는 평균을 상회하는 스탯들 덕에 그 자존감 낮은 생각은 접어둘 수 있었지만.
회귀 전 항상 하던 생각이 있었다.
‘왜 항상 세상은 나에게만 이렇게 각박할까?’
같은 행동을 해도 결과치는 항상 최악이었다. 내 실력과 환경만을 탓하기엔 운이 너무 없었다. 사소하게는 일상생활에서 그랬고, 크게는 사고를 당할 뻔하고. 손대는 족족 성공하는 것은 없었으며 일상을 파괴했다. 삶을 한탄해 본 적은 셀 수도 없다.
그래서 회귀 후에는 없던 것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없던 운을 줄 테니 한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
‘사실은 그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것을 돌려준 거였네. 목숨을 대가로 잃었던 걸, 다시 목숨을 대가로 돌려준 건가?’
나에게도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만점짜리 재능 하나가 존재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운이었다는 것이고. 어릴 적 큰 수술을 감행하며 죽을 뻔한 목숨을 살리는 대가로 운이 소진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의 유품으로 지니고 다녔고, 다른 건 몰라도 꼭 지니고 다니란 말은 뚜렷하게 기억나.”
엄마에 대한 다른 기억들은 흐릿하면서도 그 목소리 하나만큼은 선명한 이유. 회귀를 하며 들었던, 중성적이고도 따뜻한 목소리. 분명히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하고 편안한 목소리가 반지를 꼭 챙겨 다니라며 강조했던 이유.
“수술이 끝나고, 엄마가 해주셨던 말이니까.”
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목소리가 엄마는 아닐 거야.’
아무리 기억이 흐릿하다 해도 엄마 목소리를 기억 못 하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젊은 시절 들어본 적이 있던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였다. 그리고 당연히 한 번도 없다. 묘하게 엄마를 닮아 익숙하지만 절대 엄마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생판 남의 목소리라기엔 너무나도 마음을 충족시켜 주던 그 목소리.
“하아.”
머리를 굴리는 속도가 빨라지자 머리가 슬슬 아파왔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으며 한숨을 내쉬자 그제야 가만히 있던 현주인이 입을 열었다.
“…네 기억이 확실한가? 어릴 때 기억은 흐릿하기 마련인데.”
“그래도 5살이면 당시 강렬했던 기억들이 다 사라질 만큼 어리지도 않지.”
어린아이의 기억이 커서도 남게 하고 싶으면 여행도, 경험도 4살 이후부터 시키라는 말이 있다. 그렇듯 죽을 고비를 넘겼던 수술이라면 기억 속에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기억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어.”
현주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내 확신에 찬 주장을 납득하는 모양이었다. 놈은 더욱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닫았다.
‘내 이야기를 듣는 것뿐인데 본인 판단이 들어갈 일이 뭐가 있지? 그냥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긴 아까웠다. 나 또한 과거로 돌아갔었던 기억을 세세하게 상기시키며 다시금 기억의 회로를 짚어갔다.
‘그나저나 칠월칠석 시절로 돌아갔을 때, 다시 제네시스의 유은찬으로 돌아올 수 있는 퀘스트가 백무영과 현주인의 관계를 눈치채는 거였다니.’
다시 생각해 보면 어딘가 이상했다. 내 운에 대한 정보를 깨닫는 것으로 다시 회귀 후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복형제의 연관성을 깨닫자마자 회귀 후로 다시 돌아오게 되다니.
‘열쇠가 나에 대한 것도 아니고, 참…….’
혹시 날 회귀시켜 준 게 엄마나 할머니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현주인까지 덤으로 얹어준 데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으니 나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끄응.”
현주인과 달리 나는 생각 정리가 쉽지만은 않았다. 차라리 반지가 다시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묘하긴 하네.’
회귀라는 기회가 주어진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째 생각을 거듭할수록 명쾌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개 속으로 점차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냐.
‘백무영 선배가 단순히 빙의되었다는 것 정도로 넘기면 안 되는 문제인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의 갈래로 접어들 때쯤 현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 덕에 집중이 파삭 깨져 버렸다.
“납득했다.”
“그래?”
“그런데 납득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냐. 내가 겪은 일인데!”
괜히 심술이 솟아 토라지듯 말을 툭 내뱉었다. 놈은 아랑곳 않고 턱을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