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7
17. 달라진 것들(1)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만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볼 때마다 상황 하나 빠릿빠릿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답답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
그룹 소년미. 재계약 불발. 해체. 백무영. 배우.
예상은커녕 상상도 안 하고 있던 것들이라 아직 꿈속인가 싶어 허벅지만 꼬집어댔다. 엄청 아픈데. 꿈 아닌가 봐.
‘…아니, 왜?’
이해가 안 됐다. 회귀 전이랑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마주한 백무영 선배가 음방 MC를 맡았다고 하셨을 때부터 뭔가 쎄했다. 원래라면 팬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팬송과 함께 컴백 준비를 할 시기다.
바쁘실 텐데 괜히 시간을 내서 MC를 맡은 게 아니었다. 어차피 곧 해체할 거라서 개인 활동을 늘린 거였나?
‘…어쩐지 어딘가 이상하다 싶더니.’
회귀하고 나서 전과 다르게 상황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간다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다 우리 그룹도 다시 말아먹으면 어떡하지?
이미 대부분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소년미도 해체하는 마당에 우리가 잘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게 맞는 방향인 건가? 회귀 전 겪었던 경험들이 도움이 되긴 한 건가? 내가 건드려서 괜히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냐? 급격히 몰려든 불안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을은 초점이 반쯤 나가 있는 은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끙, 하고 앓았다. 가을도 아침부터 기사를 보고 놀라기는 했어도, 가을이 은찬에게 한달음에 달려온 건 비단 기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을은 은찬의 눈치를 몇 번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형, 물이라도 떠다 줄까?”
“아, 어. 고마워…….”
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그런 건 내가 하겠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가을은 문밖으로 나가면서도 몇 번이나 은찬을 뒤돌아보았다. 나중에 꼭 고맙다고 해야지.
회귀 전과 다르게 흘러가는 주변 상황과 더불어, 정말 좋아하던 그 소년미가 해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회귀한 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더 충격이겠냐고.
‘기사를 더 읽어볼 필요가 있나?’
이미 충분했다. 액정을 도배한 기사 타이틀들이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는 데다 하나 더 읽는다고 상황이 바뀌지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게 나을지도.’
혹시, 아주 혹시지만.
해체 관련 여론이 안 좋으면 백무영 선배나 소속사가 의견을 철회할 수도 있잖아? 소속사는 찢어져도 그룹 활동은 합의해서 연장한다든가… 젠장, 백무영 선배는 아이돌을 해야 한다고. 백무영 선배는 무대 위에서 제일 빛난단 말이야!
“…어?”
손톱을 까득까득 씹던 은찬이 멍한 소리를 냈다. 소년미의 해체 소식에 놀랄 게 아니었다. 더 심각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은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폈다를 반복하다 급기야 손등으로 눈을 빡빡 문질렀다.
—–
저번에 무0이 존경한다고 계속 언플했던 놈
ㅇㅇ(110.70)
그 새끼 알고서 말한 거 아니야?ㅋㅋㅋㅋ
ㅅㅂ 듣보라도 아이돌이잖아
그룹 돌아가는 분위기를 모를 리가 있냐??
ㄴ ㄹㅇ 맥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님? 안 그래도 너무 찬양하는 식으로 언급하던데? 이제 보니 바이럴 노린 게 아니라 비꼬는 거였던 듯
ㄴ 그러고 보니 말할 때마다 계속 so년미 같은 끈끈함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백퍼 맥인 거임
ㄴ https://www…tube.com/ 여기서도 존나 강조함ㅋㅋㅋㅋ 시발 장난 까냐
ㄴ ㅆㅂ 꼭 선배님들처럼 롱런하는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 ㅇㅈㄹ… 롱런 못 할 거 알고서 말했을 확률 몇?
—–
주어가 누구인지는 안 써놨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모르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어도 이건 너무 명백했다.
자연스럽게 최근에 출연했던 음악방송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대부분의 케이블 음악방송들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적었기에, 인기 가수들은 해당 프로그램 출연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덕분에 신인인 우리 제네시스도 무대 전후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은찬에게 날아들었던 질문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이나 ‘인생의 롤 모델’이었다.
목요일 생방송에서 한 번, 화요일 퇴근길에 한 번, 수요일은 비하인드 영상 찍을 때 한 번. 도합 총 세 번. 아무래도 쇼케이스 때 오버했던 것의 영향이겠지.
‘역시 자제해야 했어. 신나서 주절거리는 게 아니었는데.’
롤 모델로 백무영 선배를 꼽으면, 그에 딸려 온 ‘소년미의 어떤 점이 제일 좋냐’라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던 게 화근이었나.
‘선배님들의 끈끈함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저희도 꼭 그런 그룹이 되어서 롱런하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저기에서 말투와 어미 조금 바뀐 것 외에는 다 비슷한 대답들이었다. 뒤에 백무영 선배 얘기를 한 번 했냐, 두 번 했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대답들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칠월칠석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멤버들끼리 덜 친해서 그런 건가, 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틈만 나면 그룹에서 탈주하려는 현주인도 없겠다, 이전에 13년간 롱런했던 소년미처럼 우리 6명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말했던 건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저 게시글들의 주어는.
‘누가 봐도 나.’
왜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쇼케이스부터 이후 방송에서도 소년미 선배님, 그중에서도 백무영 선배를 존경한다고 말했던 건 나를 제외하곤 없을 터였다.
물론 저런 글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재계약은 왜 안 한 거?
-백무영이 연기를 한다고ㅋㅋㅋ
-단체로 무슨 헛바람이 들었냐
-그래도 난 개인 활동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년미와 관련된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긴 했다.
다만 누가 내 글을 한번 올린 뒤로 플로우를 탔는지 최근 몇 페이지는 나와 관련된 글이 도배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듣보 주제에 백무영 코인 타더니 은혜를 이렇게 갚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아무래도 저들의 시선에선 괘씸죄가 적용된 듯했다.
‘이거… 수습 가능한 건가?’
등골이 서늘하고 뒷목이 쎄하고. 그런 감상도 일절 필요 없었다. 그저 두 눈만 굴리며 게시글들을 읽어 내리는 거 외엔 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뭐 먹다가 걸린 것처럼 속은 답답한 와중에도 핸드폰 위로 움직이는 손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형!”
자신을 부르는 가을의 목소리에 은찬이 휙 고개를 돌렸다. 가을이는 물 한 컵을 손에 들고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핸드폰 보지 말라고 할걸……!”
문과 침대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급히 이쪽으로 온 가을은 급히 은찬의 핸드폰 액정을 제 손으로 가려 버렸다. 행동을 보아하니, 이미 이런 반응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
“괜찮아?”
은찬이 가을의 손등과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괜찮을 리가.
‘지금 우리 그룹 통째로 욕먹는 것 같던데.’
눈앞에 있던 가을의 손을 치워 버린 은찬이 잘 안 올라가는 입술을 끌어 올려 무대용 미소를 띠었다. 어차피 표정 관리가 안 돼서 다 티 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괜찮은 척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 내가 당황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건 좀 억울하긴 했지만. 리더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되겠냐고. 맏형인 내가 흔들리면 밑에 있는 동생들도 동요할 거다.
“미안해… 나 때문에 그룹 욕먹게 한 것 같네.”
“…아니, 나는 그것보단 형이…….”
“하, 애들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진짜……”
“아냐… 형이 왜 미안해.”
가을이는 나를 위로했다. 나보다 목소리를 축 가라앉히고는 빨리 물이나 마시라고 성화였다.
“다른 애들도 알아?”
“…음…….”
“…진짜 미안해.”
은찬이 고개를 팍 숙였다. 가을이의 성격상 저런 머뭇거림은 긍정의 대답이었다. 직구를 날리는 성격은 못 되어서, 곤란한 상황이 오면 포기를 해버리거나 말할 때 끝을 얼버무리는 습관이 있었으니까.
은찬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일부러 아프라고 그런 건데도 통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돌 할 팔자가 아니니까, 늦기 전에 다른 길 알아보라고 회귀시켜 준 건가.’
나 하나만 빠지면 잘 돌아갈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뭣도 없는 나만 아이돌을 안 하겠다고 했다면,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잘됐을 수도 있다.
온갖 자기 비하적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회귀를 하고, 주인공들에게만 보인다는 시스템창이 있는데도 써먹을 수조차 없었다. 온몸이 무력해 한숨만 내리 터져 나왔다.
그렇게 머리를 짚으며 끙끙 앓던 은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민폐만 잔뜩 끼친 놈이 뭐라고 걱정해 주는 가을이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미안했다.
“나 화장실 좀.”
가을이의 당황한 표정을 본 은찬은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 찬물이라도 맞으면서 머리를 식혀야 했다.
모처럼의 쉬는 날에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멤버들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게 낫지. 괜히 자신을 배려한다고 눈치 보며 불편해할 멤버들이 눈에 선했다.
“…유은찬?”
“……?”
찬물로 씻고 나오자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높이, 익숙한 인영이 은찬의 옆을 스쳤다. 맏형이라 나한테 유은찬이라고 호칭할 멤버는 없는데, 하는 의문과 함께 뒤돌아본 은찬의 얼굴이 슬쩍 구겨졌다.
“네가 왜……?”
현주인이었다.
얘도 분명 나한테 존댓말을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마주쳐서 놀라기라도 한 건가? 자세히 보니 현주인의 표정이 좀 굳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은찬 형! 저희 학교 끝나고 주인이 연기 레슨 전까지 시간이 비어서. 잠깐인데 숙소에 같이 있어도 되죠? 시끄럽게는 안 할게요.”
“맞아요. 주인이 완전 얌전히 있다 갈 거래요.”
은찬의 물음에 대답이 없는 현주인 대신, 방금 현관 쪽에서 들어온 주혁과 이선이 상황 설명을 했다. 저 셋이 친하니까 이해 못 할 만한 상황이 아니긴 한데…….
‘나 때문에 그룹이 망하게 생겼는데 현주인이 숙소 놀러 오는 게 대수냐… 난 참견할 자격도 없다.’
평소였다면 떨떠름한 반응이라도 보였겠지만, 지금 은찬에게는 다른 것들이 더 우선이었다.
은찬은 대충 고개만 주억거리고는 잠시 나갔다 온다며 숙소를 나섰다. 오늘따라 멤버들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미안했다.
***
머리라도 식힐 겸 무작정 걸어 나온 은찬의 종착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이었다. 그냥 눈앞에 건물이 보이길래 온 건데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생각 정리를 하기엔 딱이었다.
‘그나저나 뭘 읽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뭘 읽어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올 텐데. 은찬은 도서 검색대 앞에서 고민을 하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회귀’, ‘타임 슬립’, ‘시간 여행’ 같은 단어들을 연달아 검색했다.
반쯤은 현실도피였다. 이렇게 뭐라도 해야 빠르게 제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소설, 에세이 등 여러 가지 리스트에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추리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젠장……!’
당연하게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점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외계인에 타임머신 같은, 과학적으로 증명도 되지 않은 걸 가져다가 그럴듯하게 써놓은 책이 대다수였으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참고가 될까 싶어 읽었던 판타지소설의 주인공들은 갑작스러운 회귀에도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문제가 될 만한 일들도 미리 처리해서 사이다를 빵빵 터뜨려 줬다.
그러니까, 나와는 전혀 달랐다.
‘…기운 빠져…….’
소득이 없었다. 여전히 책과는 친하지 않았다. 심지어 계속해서 글자를 읽어댄 탓인지 눈앞이 어지러웠다.
하긴 회귀했다고 내 인생이 소설처럼 잘 풀릴 리가 없는데. 애초에 주인공이 나라는 보장도 없잖아. 책을 고르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에 기대감이 없진 않았는데, 이쯤 되면 그냥 난 엑스트라 중 하나였던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나 나오는 시스템을 줬겠지.’
유은찬, 주제 파악 좀 하자.
***
삑-
“만 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네 캔에 만 원인 맥주를 양손 묵직하게 들었다.
‘그 알바생이네.’
평소처럼 회사 근처 편의점에 왔더니, 여전히 카운터에 있는 여자 알바생이 자꾸만 흘긋거렸다. 저번에는 사람이 바뀐 것에 대한 의아함뿐이었지만 이번에는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어 시선을 피했다. 저 사람도 소년미 팬이라 날 안 좋게 보고 있는 건가.
은찬은 얼굴의 반을 덮은 마스크를 괜히 위로 끌어 올렸다. 모자라도 쓰고 올 걸 그랬다.
“저기요.”
결제를 마치고 은찬에게 카드를 건네주던 알바생이 말을 걸었다. 은찬이 화들짝 놀라며 정면을 보았다.
“네?”
날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거.”
은찬을 불러 세운 알바생은 상체를 카운터 밑으로 푹 숙이더니 무언가를 찾아 은찬에게 건넸다. 얼결에 카운터 위로 내밀어진 직사각형 형태의 물건을 받아 든 은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당황스러움에 자신에게 건네진 물건과 알바생의 얼굴을 반복해 번갈아 봤다.
알바생이 건넨 건, 다름 아닌 소년미의 앨범이었다.
“…이게 무슨…….”
그것도 지금 이 시기엔 나올 수가 없는, 회귀 전에나 볼 수 있던 ‘순조롭게 재계약을 마친’ 소년미가 팬송과 함께 발매했던 그 앨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