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71
171. 신뢰(7)
‘사실 중요한 팩트는 알고있지만.’
백무영과 현주인은 가족관계라는 사실은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이제 ‘원래 나’라고 칭하는게 맞는지 아닌지조차 헷갈리는 칠월칠석의 나로 있던 시간 동안의 내가 현주인에게 직접 들었던 사실이니. 그리고 놈도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런 사실 따위를 들으려고 분위기를 잡은 건 아닐 것이다. 워낙 효율을 따지는 놈이기도 하고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쓸 놈도 아니니.
‘내가 궁금한 건…….’
알고 있는 걸 재차 확인 사살 하는 것이 아닌, 진짜 현주인의 ‘심정’.
‘물론 현주인이 제 머릿속을 내비쳐 줄지는 모르겠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놈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놈이 먼저 말을 해줄까?’
놈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내심 먼저 입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뻔한 사실을 재차 고백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왜 그렇게 백무영에 집착하는지나 말해보라는 그런 바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각별한 감정인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
“하아…….”
솔직한 심정을 놈의 입으로 듣고 싶다. 내가 놈의 감정을 어림짐작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런 부분만큼은 속마음 확인이나 마인드 컨트롤 같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 파악하고 싶진 않았다.
“난 네 감정이 궁금해. 진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시스템이 확인시켜 주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이번만큼은 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것만큼은 꼭.
현주인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눈빛 봐라. 뚫어지겠네. 이래서 네가 감정적이라는 말이야, 형.”
웬일로 비웃는 듯 가벼운 웃음이 아닌 눈꼬리를 휘면서까지 웃나 싶더니, 아주 마지막까지 화룡점정이다.
‘형?’
내가 형이 맞긴 맞는데. 올바른 호칭으로 불린 건데 워낙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라 사레라도 걸릴 뻔했다. 괜시리 큼,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도 그럴 게 저놈, 연기 때려치운 후부터는 형이라고 부르라 해도 쌩까고 멋대로 불렀었잖아. 예전에는 멤버들 앞에서는 그래도 성의라도 보이더니 어느 순간부턴 그것도 때려치우고. 시킬 땐 안 하더니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놀랄 만도 하지.
“뭘 그렇게 놀라?”
“너 그냥 형 소리 하지 마라. 어색하다.”
“형이라고 안 한다고 꼰대 인성질 했던 건 전생이고?”
“…이번 생이지만. 아무튼.”
할 말이 없어 입술만 축였다. 그나저나 놈이 갑작스레 형 소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본인 감정을 건드렸으니 마음이 확 풀어져서 그렇겠지. 아무리 얼음장 같은 놈이어도 제법 따뜻한 면과 감정이 있는 놈이니까.
“각별했구나?”
“의지했지.”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현주인과 진짜 백무영 선배는 내 생각 이상으로 각별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반쪽짜리 가족이기는 했어도 어떤 관계로도 간단히 정의 내리기 힘들어 보일 만큼.
‘의지라…….’
현주인의 입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감정의 종류인 줄 알았건만. 놈도 어딘가에 기댈 줄 아는 놈이었다니, 새삼스럽게도 다른 사람 같아 보일 건 뭐람.
‘내가 그렇게 의지하고 기대도 된다고 할 땐 대쪽 같더니 그게 다른 대상이 있어서 그런 줄은 몰랐네.’
가슴 한편이 울렁거려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지… 이건 서운함인가. 하지만 지금 서운함이 들 이유가 뭐가 있는지. 진짜 백무영 선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오히려 쌍수 들고 반길 소리 아닌가?
‘뭐야, 이 감정.’
괜히 손바닥으로 눈을 박박 비비다 꾹 눌러 지압했다. 역시 나는 현주인을 파트너를 넘어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이건 무릇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인데.
“말이 없냐?”
놈은 대답 없는 나를 채근했다. 표정이 살짝 굳은 것이 제 입으로 내뱉고도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렸다.
“네가 늘, 항상 집을 찾아가던 이유를 알겠어. 부모님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구나.”
어쩐지 저런 성격을 가진 놈이 집만큼은 잘 찾아간다 싶었다.
문득 현주인의 집에 놀러 갔었을 때가 떠올랐다. 현주인의 집에서 라이브 방송을 켰던 제네시스 데뷔 초, 기품 있으시고 따뜻하신 놈의 어머니와 행방을 들은 적이 없던 놈의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거겠지, 백무영과는.’
추측하기 쉬웠다. 이 정도 가정사는.
백무영과 현주인이 반쪽짜리 가족이라는 사실 하나와 현주인의 집에 방문했던 기억, 그 두 가지만으로 놈이 더 말을 얹지 않아도 인과관계를 유추하기는 충분했다.
‘현주인이 말한 의지가 어떤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충분히 알긴 알겠다.’
게다가 현주인이 지금의 백무영에게 늘 과한 적대감을 내뿜던 이유까지도. 현주인이 내 말 몇 마디를 듣고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고 했던 말뜻도 완벽하게 이해가 갔다. 내 머리에서도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형이 바뀌었으니…….”
문득 가짜 백무영, 그러니까 본체인 윤세준은 백무영과 현주인의 관계를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도 몰랐을 정도면 이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지는 않았을 거 같고. 빙의를 하게 되면 본체의 기억까지 들어오는 건가? 그렇다기엔 백무영 행세를 하고 있는 윤세준은 빈틈이 보이기에 그건 말이 되지 않는데.
“…….”
흘긋- 현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은 이것까지 물어볼 타이밍은 아닌가?’
애초에 현주인이 먼저 알아냈다면 말을 했었겠지. 확실하지 않으니 입을 다무는 것이겠거니, 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내가 생각한 바를 지금껏 현주인이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건 어차피 내가 떠볼 수 있겠어.’
다른 건 몰라도 윤세준에 관련된 일이면 현주인까지 갈 것도 없다. 놈은 어차피 다시 나에게 접근해 올 것이 분명하니까. 지금은 말을 돌릴 타이밍이었다.
“그나저나 용케 티가 안 났네. 내가 그렇게 팬이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
“진짜 백무영은 연기를 못했는데도.”
“하긴 진짜 백무영은 연기 더럽게 못하긴 했지. 지금 근본 모를 놈과는 다르게.”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가짜 백무영에 대한 적대감이 아주 뚝뚝 흘러 나온다.
‘백무영 선배 팬 활동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정말 잘숨겼네. 그래도 이전의 나, 현주인과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았다곤 해도 같은 멤버였는데.’
백무영 선배에 대해서라면 1부터 10까지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나. 게다가 매번 상처만 받는 악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현주인과 같은 멤버로 엮여 있던 나. 그런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면 정말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겠지 싶었다.
“서로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도 했어.”
“너도 마음고생 심했겠구나.”
무슨 사정으로 그랬는지는 그들의 사정이니 더 묻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지금 드는 생각은, 현주인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일 뿐.
‘진짜로 형이 보고 싶어서 그랬구나. 그런 놈을 잠시나마 수상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네.’
내가 방송에서든 사석에서든 백무영 얘기만 꺼내면 과민 반응 할 만했네.
‘마냥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완벽히 반대일 줄이야.’
이렇게 놈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나와 현주인, 이 둘이 회귀한 이유는 명확했다. 현주인은 대외적으로는 나의 꿈인 아이돌로서의 성공을 돕고 개인적으로는 나의 정신 속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는 형이 바뀌어 외로웠을 현주인 옆에서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
현주인이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준 마당에 나라고 못 해줄 것 없었다.
‘널 붙여준 이유가 있네.’
이번에는 속에서 싸함 대신 뜨뜻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그것에는 굳이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입꼬리만 끌어 올렸다.
“말해줘서 고마워.”
“정말 비밀이 없군. 사람 사이엔 적당한 비밀이 있어야 관계가 유지되는 법인데.”
“난 좋은데? 든든하다. 파트너 같아서.”
“…….”
적당한 비밀이 있어야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는 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거리를 둬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가타부타 말할 것도 없으니 놈을 향해 개구지게 웃어 보였다. 놈은 그런 날 보더니 이마를 짚으며 작은 한숨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생각해.”
홱 돌아간 놈의 얼굴 끝, 빨개진 귀 끝에서 심정이 전해져 온다. 평소 표정 감추는 일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끝장나는 연기를 해대면서 지금은 저렇게 솔직할 수가.
“큭.”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정 숨길 새도 없었거나, 그럴 필요를 못 느꼈거나. 어느 쪽이 됐든 나로서는 재밌는 일이었다.
“나 간다.”
뭐,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도 놈을 쪽팔리게 만든 것 같긴 하지만.
“가려고?”
“스케줄 있어서.”
“안 피곤해? 더 쉬다 가지. 다른 침대도 있고. 겸사겸사…….”
“너도 몸 이제 멀쩡한 것 같은데 적당히 쉬고 나와라. 제네시스 활동 뒷전으로 둘 건 아니지?”
“아니야.”
‘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높아졌다.
내 개인 사정 때문에 제네시스 활동이 뒷전이 될 수는 없지. 중요도가 동일 선상까지 올라갈 수는 있어도 개인 사정이 1순위가 될 수는 없다.
“나도 네 생각처럼 그러려고 했어.”
애초에 회귀를 한 것부터가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싶어서인걸. 어떻게 후순위가 될 수 있겠는가. 언제나 늘 그렇듯, 나에게는 팀이 1순위다. 시스템 같은 건 팀의 성공을 위한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기도 하고.
“그래, 숙소에서 보자.”
내 대답에 현주인은 흡족한 듯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놈은 미련 없이 병실 문을 열고 사라졌다. 이 안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와 상황들은 신기루였던 것처럼.
“하핫.”
꼭 숙제를 남기고 떠난 것 같잖아. 가짜 백무영의 기억을 확인해 보라는.
* * *
나는 매니저 형과 몇몇 멤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다. 모두의 걱정이 쏟아졌지만 내 의지가 워낙 확고했기에 꺾을 생각까지는 못 한 모양이었다.
“…그럼 무리하지 말고 숙소에라도 누워 있어.”
그 정도의 핀잔만 들었을 뿐.
그 걱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연습을 했다. 간만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조금 무뎌진 춤선에 기름칠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살살 움직이고 있던 중이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 안녕하세요!”
연습실 안으로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최 이사님이었다.
“이번에 제네시스 중간 시상식 특별 무대에 설까 하는데, 은찬이 생각은 어때?”
최 이사님은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서론 없이 본론을 내비치셨다. 당황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광대 근육은 위로 솟았고, 입가에는 환하게 웃음이 고였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사님?’
너무 답이 뻔한 질문. 그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최 이사님의 얼굴에도 못 말린다는 듯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꼭 서고 싶어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백무영의 탈을 쓴 윤세준을 떠볼 기회까지 생각보다 빨리 손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