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73
173. 결
“…왜 다들 대답이 없지?”
“말이 되나.”
“응?”
그동안 가만히 있던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다지 좋은 어감은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중간 시상식?”
“응, 왜? 싫어?”
이번에는 눈 커진 가을이의 질문.
‘아, 또 자기방어식으로 반응했네… 애들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대놓고 말한 것도 아닌데.’
또 혼자 넘겨 짚어버렸다.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내뱉고 살짝 움찔한 나는 중구난방으로 앉아 있는 멤버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훔쳐보았다. 눈이 커진 것도 같고, 놀란 것도 같긴 한데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
뜻을 알 수 없는 짧고 묘한 정적이 연습실 내부를 압도했다.
‘뭐지? 다들 부담스러워서 무대 꾸리기 꺼려지는 걸까? 하지만 무르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인데… 차라리 애들을 설득하는 게 낫겠지?’
예전이었다면 멤버들이 무대를 부담스러워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슬그머니 취소 이야야기를 먼저 꺼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에게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더군다나 멤버들에게도 플러스가 되면 됐지, 절대 마이너스가 될 커리어가 아닌데.
“다들 부담스럽더라도 내 생각엔 이 무대 잘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무나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니까. 너희들 생각은 어때?”
부정적인 답변만 아니면 좋겠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몇 명의 고개가 저어졌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하나- 싶어 입가가 씰룩일 때쯤 리온이의 입이 열렸다.
“그럼 뭐부터 하는 게 나을까? 연말 무대는 아니니까 편곡은 필요 없지?”
“서야지. 무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서주혁, 또 욕심만 앞섰네~”
“넌 무슨 말 한마디마다 태클 좀 안 걸 수 없냐?”
“뭐부터 준비하면 좋을까, 형?”
“와, 대박. 이제 우리 완전 잘나가는 거 아님, 이 정도면? 그치?”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전혀.
‘괜한 걱정을 했네.’
멤버들은 나의 걱정과는 달리 골똘히 무대 구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자의 방식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표정들에서는 들뜸과 기대, 그리고 긴장감이 옅보였다. 걱정했던 것 같은 감정들은 전혀 아니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멤버들이 웅성거리는 걸 찬찬히 지켜보았다.
“시상식이면 좀 간지 나게 가야 될 거 아니야.”
“근데 우리가 아직 무거운 컨셉은 없는데.”
“아, 무겁게 만들어봐야지! 거기서 팔짝팔짝 뛰게?”
“하하하, 주혁아. 너가 믹싱할 거야?”
“…리온이는 다 할 수 있잖아.”
이선이가 급격히 조용해진 주혁의 어깨 위를 감싸며 ‘그렇지, 너 말고.’ 하고 낄낄거렸다. 꼭 아이들을 보는 삼촌이라도 된 것처럼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난 답이 없길래 내키지 않는 줄 알았더니.”
“응? 아니야. 아마 애들도 놀라서 그랬을걸. 나도 그렇고.”
턱을 괸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가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을 기대하고 내뱉었던 말은 아닌지라 바로 답변을 떠올리지 못하고 가을이 쪽을 뒤늦게 쳐다보았다. 나와 눈을 맞춘 가을이는 그 온화한 얼굴로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형, 기분 안 좋아?”
“아냐. 우리 파이팅 해보자…….”
기분이 안 좋기는. 기분이 너무 들뜨니까 말도 함부로 못 얹고 지켜보고 있던 건데.
고맙지만 정말 쓸데없는 걱정에 피식 바람 빠지듯 웃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러고는 파이팅을 하듯 좌우로 휘휘 흔들었다. 말 뒷머리에 악센트를 못 줘서인지 내가 듣기에도 뭔가 맥이 빠지는 파이팅이었지만.
‘뭐, 어쨌든 가을이는 웃어줬으니까.’
역시 가을이는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더라도 내 의중을 다 파악한다니까.
“은찬 형이 제일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현주인이 또 밉살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새를 넘어가지 않고. 형- 소리를 하길래 현주인의 목소리를 흉내 낸 다른 멤버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그런 만약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놈은 웬일로 장난기 어린 표정이었다.
“그냥 너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사서 걱정은.”
“그러니까…….”
‘괜히 더 말 얹었다가는 꼬투리만 잡히겠지?’
입을 앙다물고 눈만 치켜떠 놈을 올려다보자 놈은 푸핫- 하고 크게 웃더니 이선이와 주혁이 근처로 가버렸다. 정말 시비만 걸러 온 거냐고.
‘아니, 대화하다가 내 말은 어떻게 듣고 시비까지 걸러 온 거야?’
그렇게 촉 세워 괴롭히는 것도 참 정성이다, 현주인.
* * *
아무튼 시끄러웠던 공지 날과 달리 무대 준비와 의견 교환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큰 편곡 없이 원곡으로 진행하겠다는 리온이의 의견은 멤버 모두의 의견으로 일치됐다.
‘깔끔하게 제네시스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게, 하지만 실수 없고 완성도 높게 진행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지. 연말 무대나 가요 무대라면 편곡을 넣었겠지만 시상식에서 번잡스럽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리온이의 편곡 실력을 못 믿는 것이 아닌, TPO에 맞는 선택이었다.
이미 활동을 끝낸 곡들을 이어 붙이는 정도의 수정이 필요했고, 리온이는 이 작업을 반나절 만에 완성시켰다. 이미 활동을 끝냈던 곡들이어서인지 안무 디테일을 맞추고 대형을 더욱 완벽하게 하는 건 주혁이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나 멤버 개개인들 또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무대를 꾸려갔다. 컨셉부터 사소한 디테일 하나까지 멤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리더 감투를 쓴 건 나지만 멤버들이 주도적으로 맡아서 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네.’
비 오듯 온 얼굴을 적신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숨을 몰아쉬던 중이었다. 무릎을 짚고 벅찬 숨을 몰아쉬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곧장 몸을 일으키고 다시 손뼉을 치며 연습을 주도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나, 둘.”
허공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음악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반사적으로 리듬을 타며 스텝을 옮기던 중,
“자, 잠깐만. 미안.”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찌릿하는 느낌에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서서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멤버들의 궁금증 어린 눈빛들이 내 쪽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요 근래엔 연습하느라 시스템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심지어 반지도 몸에 지니고 있다. 시스템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나타난 가슴의 통증에 당혹감이 몰려들었다. 물론 그때처럼 숨을 못 쉴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 작은 통증조차도 느껴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설마 쉬는 시간 없이 연습했다고 그런 건가?’
숨이 차서, 몸에 무리를 줘서. 정말 순수히 어릴 적 수술의 여파인 것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칠월칠석 때는 여태껏 이런 통증이 없었다. 회귀 덕분에 지금 신체 나이는 22살. 칠월칠석 27살 유은찬보다 5살이나 어린데도.
‘그때보다 연습량이 많긴 하지.’
절대적 연습량 자체가 아직 비할 바는 못 되지만 1회 연습 시간에는 차이가 났으니까. 스스로 나를 다잡으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때 날 부르는 현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은찬.”
‘하긴 쟤는 내 모든 사정을 알고 있으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겠구나.’
허리를 곧게 펴고 놈을 향해 미소 지었다. 곧 찌릿했던 가슴 쪽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이제 됐어. 다시 해.”
손에 낀 반지에 입을 맞춘 뒤 다시 대형 속으로 들어가 준비 자세를 취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일부러 몸짓 하나하나에 장난기를 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주인은 짜증스럽게 한숨을 뱉었지만.
“…하.”
뭐, 다른 애들은 신경 안 쓰게 됐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
하루하루 연습에 매진하다 보니 사전 미팅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뜻은 진행 MC인 백무영 선배를 마주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뜻과 동일했다.
“사전 미팅? 다 같이요? 아니면 리더만요?”
나야 사전 미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멤버들은 모르고 있던 듯했다. 짜장면을 후루룩 먹던 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듯 물어왔다. 뭐, 옆에서 함께 밥을 먹던 멤버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몇 명은 영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
‘스케줄표에 나와 있을 텐데, 안 봤나? 바빠서 못 본 건가.’
살짝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활동 휴식기이기도 하니, 고정 프로그램이 없는 애들은 활동조차 없다.
‘중간 시상식 무대만을 바라보고 연습에 매몰되어 있을 시기라 그런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네.’
한창 활동 중에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화를 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을 시기이기도 하니.
“그건 우리 재량인 듯한데.”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져 보였을 수도 있겠지. 멤버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 지금은 내가 결정을 해야 할 때였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
어차피 모두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다 같이 가봤자 시간 낭비밖에 안 된다. 멤버들은 연습할 시간을 뺏기고 스태프분들은 우리 모두를 챙겨야 하니 일이 늘어난다. 굳이 서로에게 좋을 것 없는 상황이라면 나 혼자 멤버들의 의견을 추려 사전 미팅에 다녀온 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이 베스트다.
‘게다가 혼자 가야 백무영과 마주쳤을 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테니.’
이런 걸 오히려 잘됐다- 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겠지?
“우르르 다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내가 다녀올게. 그 시간에 연습을 하고 있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부족한 내 연습 시간은 수면 시간을 깎아 채우면 되니까.
“흠.”
현주인의 못마땅한 눈빛이 따갑게 박혀왔다. 다른 멤버들은 수긍을 할 것 같았는데, 현주인이 어떻게 나올지가 의문 포인트긴 했다. 순순히 알았다고 할 것 같진 않은데.
“형 혼자 다 안 해도 돼. 우리들한테 좀 같이 하자고 의지해도 좋은데.”
그때, 가을이의 따뜻한 말이 날아왔다.
‘가을아……!’
꼭 가을 햇살 같잖아. 마음 한편 불안하고 부담스러웠던 부분들이 전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을이의 응원을 받아 백무영을 독대할 때도, 시상식이라는 큰 행사의 사전 미팅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감동이야…….’
하지만 백무영의 정체는커녕 내가 백무영 선배의 광팬이라고 알고 있을 가을이와 동행할 수는 없었다. 사전 미팅은 무사히 마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은 해결하지 못할 테니까.
“이건 내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그래. 가을아, 고마워. 너밖에 없다, 진짜~”
“매번 걱정돼, 형.”
“기특한 강아지…….”
가을이를 꼭 껴안기 위해 촉촉해진 눈으로 가을이를 향해 다가갈 때였다. 옆에서 삐딱하게 서서 지켜보던 현주인이 내 앞을 딱 가로막았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은 큰 놈이 내 앞에 서니 꼭 기로를 가로막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놈은 뜸 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가 같이 갈게.”
아, 역시. 왜 그 말을 안 하나- 기다렸다, 주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