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74
174. 해소
‘백무영 만나는 게 뻔한 상황이니 저렇게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지. 실상을 다 아는 데다 내가 알게 된 것도 눈치챈 상황에서 현주인이 주저할 이유가 없잖아.’
무던하게 알겠다고 반응부터 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눈은 현주인의 표정을 살폈다. 놈은 아주 당당한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가을이는 뻔뻔하다고 느낄 정도로.
“푸핫.”
자신이 당연한 요구를 했고, 내가 분명히 들어줄 것임을 아는 듯한 눈길. 저 뻔뻔한 태도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이마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둘게.”
“주인이는 왜?”
“내가 리더 에스코트 좀 해주게. 충분하지?”
“뭐?”
가을이는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현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가을이의 그런 행동을 전혀 말리지 않았다. 가을이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몇 번 굴려대더니 나를 향해 서운함을 담아 입을 쭉 내밀었다.
“형, 나는!”
“가을이는 다음에 꼭 같이 가자.”
“…….”
서운함을 듬뿍 표현하던 가을이가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귀가 잔뜩 내려간 강아지처럼.
하긴 내가 가을이였어도 이 상황이 이해 안 될 법도 하겠네. 자기는 곧장 거절당했는데 현주인은 냉큼 그 자리를 꿰찼으니.
”서운한데, 조금.”
”뭔 애도 아니고…….”
“뭐라고?”
어떤 말을 해야 가을이 기분이 풀어지려나, 고민을 하던 찰나 현주인이 그새를 못 참고 득달같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방법으로.
‘헉.’
내 심장이 다 덜컥였다. 못 들을 걸 들은 것처럼 황당한 듯 되묻는 가을이의 목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재빨리 상황을 무마하는 것밖에 답이 없기에 고개를 홱 돌려 현주인을 다그쳤다.
“야, 형한테 말을 왜 그렇게 하냐? 그리고 가을이도, 사실 쟤가 백무영 선배 꼭 만나보고 싶댔어서 데려가는 거야.”
“누가……!”
“아, 그래?”
“가을이는… 나랑 듀엣 커버라도 같이 할까?”
내 딴엔 상황 설명을 한다고 한건데도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던 가을이는 듀엣 제안을 듣고서야 표정이 풀어졌다. 미소를 짓는 건 아니었지만 날카로워졌던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내 입장에서는 한숨 돌릴 일이었다.
“그거 잊지 않기다. 시상식 무대 내려오자마자 곡 선정부터 하는거야.”
“응, 할 일 생기고 좋네. 내가 가을이 음색에 버스 좀 타야겠다.”
“…….”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을이는 현주인을 몇 번 흘겼지만 이내 별이가 있던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십년감수한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상황 마무리 잘할 수 있었는데 괜히 끼어들어 가지곤.’
무슨 의도로 말을 얹은 건진 잘 알겠는데 너무 날카로웠단 말이야. 기분 같아선 현주인한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상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당연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시선들이 이쪽에 집중되었으니까.
“그럼 다녀와서 중요 내용 공유한다. 알겠지?! 연습 들어가자!”
모두 정신이 사나워져 있을 땐 연습 시작을 외치는 게 최고다. 시끄러움을 잠재울 수 있을뿐더러 효율적인 성과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 재빨리 스피커의 전원을 켰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현주인과 함께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며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엔 이런 공간에 들어와 직원분들을 마주하는 게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 같은데, 이젠 적응이 좀 됐다고 인사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현주인은 역시 자연스럽구나.’
놈의 비즈니스 스위치 ON 상태는 간만에 봤다. 젠틀하게 웃으며 목례를 건네는 놈은 아주 매너 있어 보여 평소 인성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사람은 연기를 잘해야 해.’
곧 모든 인원이 참석했음을 알림과 동시에 미팅이 진행되었다. 보조 감독님과 메인작가님의 진행하에 미팅은 빠르고 간결하게 흘러갔다.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중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미팅인 것 같았다.
그중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정보는 세 가지.
무대의상은 화려한 것은 가능하되 너무 색이 많거나 요란하지 않을 것.
음악 무대는 팀당 5분 이내로 끝날 수 있게 할 것.
음악 무대는 본인 그룹의 색을 벗어나지 않게끔 할 것.
‘대충 예상했던 것들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청사진 안에서 크게 수정할 부분은 없어 보였다. 미팅이 끝을 향할 때쯤 뒤늦게 들어온 건지 안쪽 구석에 서 있던 백무영 선배가 그제야 스태프분들께 인사를 건네며 마무리 멘트를 시작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진행 볼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대본은 열심히 연습해 오겠습니다.”
언제 들어온 건지, 기척도 못 느꼈는데.
‘잘생기긴 기깔 나게 잘생겼어.’
그래도 간만에 보는 백무영 선배의 얼굴이라 그런지 감탄은 금치 못했다. 이건 개인적인 감정과는 달리 생리적으로 나오는 현상 같은 거다. 저 얼굴의 잘생김은 거부할 수 없지.
‘오늘은 백무영 선배와의 독대를 기대하고 온 것이나 다름없는데, 언제 말을 걸지?’
백무영 선배의 얼굴을 감상하며 말을 걸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 잘생긴 얼굴이 정확히 나와 현주인의 쪽을 향했다. 아주 정확하게, 눈까지 맞추며.
“참석해 주신 가수분들도 감사드리고요.”
그 시선은 곧 주변 참석자들에게로 흩어졌지만 그가 우리와 눈을 맞춘 사실은 아주 명백했다.
‘뭐야?’
무슨 의미로 눈을 맞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말을 걸어도 내가 걸어야지, 저쪽이 저렇게 쳐다볼 건 뭔데?’ 하는 의뭉스러움에 눈살이 찌푸려지던 찰나,
“뭐야?”
옆에서 머릿속으로만 하던 생각이 그대로 육성으로 들려왔다. 순간 내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은 줄 알았다.
‘깜짝이야.’
현주인은 헛웃음을 내비치며 불쾌함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중이었다. 보는 눈이 많은지라 괜히 이목 끌어 좋을 건 없다.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현주인을 팔꿈치로 툭 쳤다. 진정하고 다시 비즈니스 미소라도 지으라는 뜻으로.
“…….”
놈은 다행히 그런 내 사인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잔뜩 짜증스럽게 입가를 구겨내더니 곧 고개를 홱 돌리고는 얼굴 표정을 원래대로 바꿔냈다.
‘휴…….’
이쪽을 쳐다본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무튼 백무영이 자리를 완전히 뜨기 전에 말을 걸어야 했다. 급히 휴대폰 메모장을 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먼저 가도 돼.]그러고는 완성한 문장을 현주인에게 보여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 참석했던 인원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나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빠른 인사를 돌리곤 현주인에게 말했듯 화장실이 있는 복도 쪽으로 뛰쳐나갔다.
‘후… 이 정도면 백무영보다 빨랐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켜 메신저를 열었다. 액정 위의 [백무영 선배] 다섯 글자가 참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감상에 잠길 틈 같은 건 없으니 빠르게 메시지를 전송해야 했다. 백무영 선배가 이 미팅 자리를 떠나기 전에 만나야 했으니까.
[죄송한데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5분이면 됩니다!]문장을 다듬지도 않고 냅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의외로 읽지 않음을 알리는 숫자가 금세 사라졌다.
[ 백무영 선배 : 오랜만이네요. 어디서요? ]이렇게 간결하고 반가운 답변이 있는가!
답장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내가 있는 위치를 백무영 선배에게 찍어 보냈다. 백무영 선배는 10분 정도 지난 뒤에 내 쪽으로 도착했다. 악연도 인연이라고, 이렇게까지 반가울 일인지.
“보고 싶었어요.”
“와, 이거 감동이네요.”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백무영 선배는 영혼 없는 듯이 박수를 치며 대꾸했다. 이 정도 서론은 주고받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빠른 진행이 나쁠 이유는 없으니 곧 생각을 털어버렸다.
“어디 조용한 곳을 가야 할 것 같은데…….”
“아,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좋겠죠?”
“아, 네. 그렇죠.”
머뭇거리던 난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무영 선배는 나를 보고 ‘잠시만요’라고 하더니 무언가를 허공에 중얼거렸다. 곧 시끌벅적하던 주변에 적막이 감돌았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똑같은 곳에 서 있음에도 다른 공간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스템을 발동시킨 모양이었다.
‘공간을 만든 건가? 시간을 멈췄나?’
시스템에 시간을 멈추는 기능은 없다. 윤세준에게만 다른 능력을 부여한 것은 아닐 테니 갖고 있는 능력을 섬세하게 활용한 것일 터.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멀쩡했던 백무영 선배의 눈이, 붉어졌다.
백무영 선배는 마인드 컨트롤을 넓은 범위로, 섬세하게 조작해 이 근처에 사람이 오지 않도록 막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백무영 선배는 스스로 운이 바닥이라고 했었다.
그 짧은 사이에 5성인 마인드 컨트롤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돌렸을 테니 또다시 어마어마한 목숨을 깎았을 테고.
“이것도 시스템으로 만든 상황인가요?”
“시스템은 잘 사용하면 활용처가 무궁무진하죠. 은찬 씨도 나랑 사용하는 종류는 같은 것 같은데, 활용은 아직까지도 서투른가 봐요.”
“무리하고 계신 거 같은데.”
“…….”
물론 내가 완벽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맞겠지. 하지만 시스템을 과하게 사용하는 백무영 선배의 지금 상태를 보고 있자니 내 선택이 더 옳은 쪽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곧 쓰러질 것 같은데.’
언뜻언뜻 스쳐 가는 힘겨워 보이는 얼굴이 보기 좋지만은 않다. 눈이 마주친 상대에게만 걸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니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인원에게 사용하고 있는 중일 거다. 절대 멀쩡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텐데.
“괜찮으세요?”
“이것도 선물 같은 능력인데 사용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죠. 아무튼 은찬 씨가 걱정을 다 해주시고… 하하, 무슨 말 하실지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이럴 땐 요점만 빨리 물어봐 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보니 힘에 받쳐 저러는 건 알겠지만 굳이 빈정거리기까지 해야 하나?
‘와… 말투.’
잘생겼다고 생각했던 거 취소.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고, 저 몸도 걱정되긴 하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지.
“제가 기억하던 세준 씨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핫.”
“어쩌다 백무영 선배 몸에 가게 된 거예요?”
서론 없이 훅 들어온 말에 당황했는지 백무영 선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더 말을 늘여봤자 소용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인지 고개를 살짝 내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찬 씨가 저와 같은 능력을 쓰는 이유. 저랑 같은 이유일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뭐, 본인도 자살 시도를 했다는 뜻인가?
괜히 되물어봤자 좋은 말도 아닌지라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구겨지는 것까지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운이 좋게도 비어 있던 몸이 이거였죠.”
“몸이… 비어요?”
몸이 비어 있다는 뜻은 윤세준이 빙의될 수 있도록 영혼이 비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백무영 선배는 몸만 두고 어디로 갔던 건가?
“씨발,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뭐?”
“아.”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씩씩거림에 멍하니 윤세준의 말을 곱씹던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코너 앞, 열 발자국 정도 뒤쯤에서 현주인이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
어떻게 현주인은 백무영의 마인드 컨트롤에 안 걸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