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18
18. 달라진 것들(2)
“…소년미 앨범을 왜 저한테 주세요?”
“그래요? 자세한 건 몰랐는데 이게 앨범이구나…….”
알바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긍정형인지, 의문형인지 모호했다. 은찬은 곧장 앨범의 맨 뒷부분을 펼쳐 앨범이 발매된 날짜를 확인했다.
[ 20xx. 08. 13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후.
이게 왜 여기 있어? 미래의 물건이 여기 와 있을 수가 없잖아. 현실감 없는 상황에 은찬은 의심을 담아 되물었다.
“몰랐다고요……?”
“소년미 정도는 알고 있죠. 그런데 제가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은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애초에 회귀한 것부터가 믿기지 않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금 제 손안에 있는 앨범을 전해준 알바생의 말 또한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지만 이건 너무…….
“그쪽한테 전해달라고 했어요.”
“저한테요? 누가요?”
“전에 일하던 알바생이요.”
알바생이라면, 혹시 그 인상은 좀 어두웠지만 잘생겼던 남자를 말하는 건가?
“잘생긴 남자분이요?”
“네, 그 오빠가 여기 자주 오는 연예인 같은 사람한테 주라고 하던데요. 얼굴도… 잘생기셨고, 일반인이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으니까. 맞죠? 연예인.”
“…….”
고작 그 세 가지 단서로 이런 물건을 전해줘도 되는 거야? 물론 이게 뭔지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이 앨범의 정체를 아는 은찬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무튼, 저는 그거 맡아두기만 하고 안에 뭐 있는지는 안 봤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 남자분은요? 이거 전해달라던 알바생분은 어디 가셨어요?”
“음… 그러게요, 알바 관두면서 저한테 맡긴 거라. 요즘 뭐 하고 살려나…….”
…어딘지 맹한 구석이 있으시네.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게 거짓말이라면 당장 연기자를 하셔야 한다.
저 알바생도 자세한 정황은 모르고 전해달라는 부탁만 받은 것 같은데, 어차피 더 물어봤자 소득이 없을 게 뻔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기에, 은찬은 아마도 미래에서 왔을 소년미 앨범을 품에 챙기고는 알바생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편의점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와 종소리가 울렸다.
‘새삼 정말 판타지 세상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 같네.’
이 앨범은 지금 시점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에게 들키면 설명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에 들켜서는 안 된다. 회귀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구석 한편에 두어야지. 이럴 때는 남 일에 참견하지 않는 리온이와 룸메이트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덜러 간 곳에서 짐을 얹어 온 꼴이 됐지만. 이 앨범이, 부디 내게 도움 되는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
은찬은 마침 울리는 진동에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진국 형]‘오늘은 매니저 형도 쉬는 날인데…….’
대충 무슨 용건인지 안 들어도 알 법했다.
“네, 형.”
-은찬아, 뭐 하고 있냐?
“밖에 잠깐 나와서 도서관 들렀다가 지금 숙소 가고 있어요.”
-그래, 그래. 형이 기프티콘이라도 좀 보내줄까? 기분 전환 좀 할래?
역시 그 논란 때문에 걱정돼서 전화한 게 맞는 것 같다. 배려가 고마운 한편, 은찬의 마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더욱 무거워졌다.
“에이, 괜찮아요! 저 밥 먹었어요.”
허기진 배가 밥 달라고 요동치고 있기는 하지만, 민폐 끼친 마당에 이런 배려까지 받을 수는 없었다.
-어어, 다행이네. 하필이면 오늘이 쉬는 날이라… 케어 못 해줘서 미안하다. 그런데 뭐, 별일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말고.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아요.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있어요! 이런 일도 있는 거죠.”
-에이, 은찬이 너 거짓말 못하는 거 너도 알지? 어쨌든 SNS 눈팅 적당히 하고. 쟤네도 저러다 말겠지. 이 바닥이 원래 그렇잖아. 괜히 혼자 땅굴 파지 말라고 전화했다.
매니저 형까지 알 정도로 내가 눈팅을 많이 했나……? 물론 시간이 빌 때마다 틈틈이 하기는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근데 은찬이 너도 이제 소년미 이야기는 자중하는 게 좋겠다. 네가 의도한 건 아니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네. 주의하겠습니다.”
가볍게 말을 건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 섞인 뜻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매니저 형의 말 중 틀린 말이 없기도 했고. 핸드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와 매니저 형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래, 그럼 숙소 조심히 들어가고… 그새 또 살 빠져 있으면 나한테 혼난다!
“네, 형. 잘 챙겨 먹을게요.”
은찬은 통화를 끊자마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액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7:05 P.M.]오전에 숙소에서 나왔는데, 어느덧 저녁이라니. 당황해서 흔들렸던 멘탈은 어느덧 진정되어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멤버들 얼굴을 보는 건 조금 걸렸다. 미안해서 어쩌지.
‘그러고 보니 백무영 선배한테도 사과드려야 하는데.’
지금 상황과 관련하여 선배를 향한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일단 나 때문에 괜히 덩달아 말이 나오는 중이니까. 선배님 입장에선 내가 상당히 민폐 후배처럼 느껴지실 테다.
‘하지만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하는 수 없지. 은찬은 자신의 SNS 구독 계정으로 접속해 무영의 계정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DM을 눌러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기 시작했다. 은찬은 숨을 깊게 훅 들이마셨다.
—–
안녕하세요, 백무영 선배.
그룹 제네시스의 유은찬입니다. 우선 이런 비공개 계정으로 연락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한 마음에 이렇게나마 연락드려요… 저번 방송 때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직접 만나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통화도 괜찮습니다. 편하실 때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010-xxxx-xxxx
—–
메시지의 내용 중 오타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은찬은 눈을 꾹 감은 채 비행기 모양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걸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접점이라면 회사의 최 이사님인데 스케줄 때문에 해외에 계시니 어떻게 만나 뵐 수도 없고.
‘솔직히 백무영 선배가 DM을 확인할 일은 0에 수렴하니까 늦어도 다음 음악방송에서는 꼭 사과드려야지.’
그런데 그때 뵐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만약 MC 대기실에 찾아갔는데 거절하시면?
“하아…….”
사과 하나 제대로 못 건네는 위치라니.
괜히 잘못 없는 땅만 틱틱 차면서 걸어가다 숙소 앞에 도착한 은찬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숙소 앞에 10~20대로 보이는 여자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바닥에 앉아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저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사생팬……?’
지나가는 행인이라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은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왜? 왜지? 아직 제네시스는 사생팬이 붙을 정도로 인기 있는 편이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언급이 많이 되기는 했어도 그게 팬이 붙을 만한 일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저 얼굴들…….’
왜 이렇게 익숙한가 했더니. 은찬은 사색이 된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근처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주머니 속에 넣은 핸드폰이 진동을 하는데도 받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 사람들, 칠월칠석 때도 있었다. 그것도 똑같은 인원 구성으로. 그래도 그때는 데뷔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일찍?
뭐가 됐든 저 사생팬들이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칠월칠석이 나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한 원흉. 칠월칠석의 연관검색어에 ‘사생팬 친목’이 꼬리표로 붙게 된 시작이었다.
***
칠월칠석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형!”
“어?”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현주인과 별이가 은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현주인은 꽤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형, 그래서 어쩔 거야.”
나를 다시금 부르는 현주인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숙소 앞에 있는 쟤네 어떻게 할 거냐고.”
“…난, 난 모르겠어. 형들이 정해줘. 난 둘 의견 따라갈래.”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무시해야지.”
은찬은 뭘 묻냐는 듯 단박에 답했다. 옆에서 별이의 ‘어엉?’ 하는 당황 어린 감탄이 들려왔지만 은찬은 가차 없었다. 현주인만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현주인, 홍별, 유은찬.
셋은 칠월칠석 숙소 근처 막다른 골목길에 옹기종기 숨어 있는 중이었다. 집 앞까지 찾아오는 사생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것이 지금의 토론(을 가장한 말다툼) 주제였다.
“내가 괜히 나오자고 했나 봐… 미안.”
“됐어. 사과하지 마.”
별이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던 은찬은 별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툭툭 치며 위로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배달음식을 시키기엔 금일 식비에서 오버됐었고, 하필 숙소 안의 라면까지 똑 떨어진 상태였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건지 별이는 베란다 창문으로 건물 주변을 살피더니,
‘지금처럼 사생팬 없을 때 편의점 다녀와야 돼! 이러다 뱃가죽 달라붙겠어, 나 말라죽어…….’라며 신발을 챙겨 신기 시작했다. 이에 혼자 보내기는 걱정되어 따라 나온 은찬과 자기도 살 것이 있었다며 합류한 현주인까지.
겨우 집 앞 편의점 가는데 이게 무슨 유난이냐 싶겠지만, 그즈음 칠월칠석의 숙소 앞에는 사생팬 무리들이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나갈 엄두를 못 내는 상태였다.
그래도 평소에는 매니저 형이 사생팬들을 집에 보내거나 쫓아내 주기라도 했는데, 하필 그날은 매니저 형도 쉬는 날이었고.
‘…그냥 숙소에 있어야 했어.’
나올 때까지는 문제없었는데, 하필 딱 돌아올 때 숙소 앞에서 저러고 있는 건 뭐냐고. 은찬이 깊게 한숨지었다.
“어차피 저 사람들, 한두 번 저래? 무시하고 곧장 가는 게 나아.”
“…하, 그냥 내가 달래서 보내고 올게.”
“뭐? 야, 그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주인이 사생팬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은찬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당연히 닿을 리가 없어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 현주인 아님?”
키가 큰 것도 죄라니. 나름 은찬과 별이 옆에서 몸을 잘 숨기고 있던 현주인을 발견한 사생팬 무리 중 일부가 이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딴짓을 하고 있던 일행들에게 알렸다. 동시에 이쪽으로 몰리는 시선에 은찬의 얼굴이 슬쩍 찌푸려졌다.
‘이래서야 무시하고 가기도 애매해지는데.’
곱게 가주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
“내 말 맞지? 쟤네 아까 나가는 거 보였다니까.”
“그러게. 눈 존나 좋다, 너. 얘들아~ 어디 갔다 와?”
“…젠장.”
옆에서 칫,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현주인이 굳은 얼굴을 하고 짧은 욕지거리를 씹어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현주인은 곧장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 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자는 연기자다…….’
이 상황에서도 표정 관리라니.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한편,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은찬이 한숨을 쉬었다. 별이는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으니 일단 은찬이 나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으음? 은찬이 너 보러 온 거 아닌데?”
“맞아, 맞아. 은찬이도 잘생기긴 했는데~ 주인이 보러 온 거야, 우리.”
그렇게 말하며 우리 반응을 살피더니 재밌어하는 게 도통 말을 해도 들어먹을 것 같지 않았다.
“네… 그런데 이러시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멤버들한테도 피해 주는 거니까…….”
“주인아, 그때 출근길에 준 편지 봤어? 하늘색 편지지인데.”
“어떡해… 진짜 너무 잘생겼다.”
“…….”
지금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 맞지?
“으아!”
그때 뒤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지간히 놀란 듯한 별이가 있었다. 보아하니 무리 중 한 명이 팔짱이라도 끼려는 듯 홍별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 은찬이 다가가서 팔을 떼어내려다 멈칫했다.
‘하지 말라고 내쳤다가 다치거나 괜히 일이 커지면 어떡하지?’
별이도 같은 생각인지 몸을 뒤로 물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찬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 사달을 어떡하면 좋냐고.
“저기요.”
은찬이 우선은 별이한테 붙은 사생팬을 떼어놓기 위해 그쪽으로 향하던 찰나, 조용히 있던 현주인이 나섰다. 그 잘생긴 얼굴에 보기 좋은 미소를 걸치며 부드럽게 말을 걸자, 어수선하던 사생팬 무리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