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2
2. 하트 보인 적 있으신 분?(2)
“저기요, 손님! 아, 진짜… 저기요!”
귓가에 때려 박히는 낯선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분명 어제 남은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숙소에서 잠들었는데.
“손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된다고요.”
누군가 짜증 내는 소리에 깨어난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돼? 대충 눈동자를 굴려서 확인해 보니 소속사 근처 24시 카페인 거 같은데.
“저기요, 손님.”
당황으로 굳어 답이 없는 은찬의 태도에 카페 알바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꿈인가?”
“꿈 아니고요. 계속 주무실 거면 자리는 이만 비워주시겠어요?”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에 곧장 알바생의 짜증 어린 대답이 날아들었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던 거지? 모르는 사이 몽유병이라도 생긴 건가. 숙소에서 자고 있던 놈이 왜 뜬금없이 카페에 기어 들어와서 잠을 잔 거야.
‘우선 사과부터 해야…….’
상황 파악이 되진 않았으나, 카페에 상당한 민폐를 끼친 건 맞는 것 같으니.
은찬이 사과를 하기 위해 알바생 쪽으로 몸을 돌렸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데 손안의 이물감에 손바닥을 펼치자 묵주반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걸 손에 쥐고 잔 건가? 여기서도?’
일단은 사과부터 해야 했다. 반지는 주머니에 대충 욱여넣고 고개를 위로 올리자 앞치마를 두른 알바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
[ ♡ -40% ]하트와 숫자가 번쩍이는 중이었다.
‘뭐야, 저건. 이 카페 알바생 언제부터 저런 머리띠… 같은 걸 썼지?’
자세히 보니 홀로그램 같기도 하고, 무슨 게임의 시스템창 같기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잠들었나 봐요.”
“…네, 뭐… 괜찮아요. 주무시지만 않으면.”
[ ♡ +10% ]나와 눈이 마주친 알바생의 머릿속에 계속 떠 있던 하트가 점점 차오르더니, 숫자 또한 –40%에서 +10%로 변했다.
저게 도대체 뭔데? 하다 하다 이젠 환각까지 보이는 건가.
[ 히든 이벤트 달성 ! 호감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만들기 ] [ system : 운이 좋은 당신을 위해 첫 1회성 스킬 ‘속마음 확인’을 지급합니다. 부디 유용하게 사용하시길! ]‘속마음 확인?’
이젠 환청까지. 미친 걸까. 병원 가서 추가 처방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선생님, 이것도 우울증 증세인가요. 이상한 게 보이고 들려요.
당황한 은찬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트와 숫자도 보이는 마당에 속마음 확인 스킬이라니,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뭔진 몰라도 준다는데 일단 한번 써볼까.’
지급된 스킬을 사용한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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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의 머릿속에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웅웅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는데, 확연히 지금까지 주고받던 대화의 선명한 목소리와는 대비됐다. 정말 ‘속마음’이 들리는 것처럼.
‘…저 사람 입이 안 움직여. 그럼 이게 속마음이라는 건가?’
은찬이 빙긋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폐 끼쳐서 정말 죄송해요.”
이 상황이 이상한 건 둘째 치고 내가 연예인인 걸 알아봐 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든다니 고맙기까지 했다.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을 뿐인데 알바생의 표정은 점점 당황으로 물들더니 입술 사이가 바르르 떨렸다.
“자, 잠시만요!”
그러고는 곧장 카운터 안으로 달려가더니 쿠키 봉투 하나를 은찬 앞에 내밀었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든 은찬은 당황스러웠지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화낸 거 죄송해서 드리는 서비스예요. 자주 오세요!”
“아니에요! 괜찮은데…….”
“많이 만들어서 남은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어… 네, 감사합니다.”
준다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한 손에 공짜 쿠키를 받아 들고 카페를 나왔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더 다운됐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꿈이라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하긴 한데.’
은찬은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헛것이 보일 때
-환각 초기 증상
-정신착란 증세
그러나 시스템창 같은 게 보인다는 사람은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검색을 더 해봤자 시간 낭비일 게 뻔해 그만두고 홀드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20XX년 4월 30일]잠금화면 위에 떠 있는 날짜가 이상했다.
‘날짜가 왜 이래? 6년도 더 전이잖아.’
자는 사이 설정이 잘못되기라도 했나? 하지만 환경설정에 들어가 봐도 시간에 오류 같은 건 없었다. 나라가 바뀌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정확히 현재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 기종도 예전에 쓰던 거네. 항상 같은 회사 제품만 써서 UI가 익숙한 탓에 못 알아챌 뻔했는데, 후면 카메라 부분이 원래 쓰던 핸드폰과는 분명히 달랐다.
‘자각몽 같은 건가?’
하긴 이게 만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게 보일 때부터 알아봤다. 요즘 심신이 힘들다고 이런 꿈까지 꾸다니. 깨어나면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겠다.
♬♪-
[가을이]발신자의 이름을 내려다본 은찬이 멋쩍게 뒷목을 긁었다. 꿈치곤 꽤나 생생하네.
‘꿈이긴 해도 가을이 전화라면 일단 받는 게 낫겠지.’
문득 잠에서 깰 때까지 가만히 있기보다는 꿈이 어떤 내용인지 파악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꿈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니 내가 바라왔던 상황을 보여주려나.
병원 상담 날에 이것도 말씀드려야겠다.
이런 꿈을 꿨는데 괜찮은 건가요? 역시 상태가 더 악화된 거겠죠?
“응, 가을아.”
-형, 혹시 오늘 평가 있는 거 잊었어? 우리 일찍 나와서 합 맞춰보기로 했잖아.
“무슨 평가……?”
-이 형이 왜 이래……? 잠 덜 깼어? 월말 평가지. 아무튼 몇 시간 안 남았으니까 빨리 와.
“어? 어…….”
월말 평가라고?
20XX년 4월 30일이라면 칠월칠석으로 데뷔하기 전 마지막 월말 평가가 있던 날이긴 했다. 어쩌다 이런 꿈을 꾸게 된 거야. 이 시기에 미련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꿈을 꿀 정도는 아닌데.
‘뭐,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거 해보라는 건가.’
별 이상한 꿈을 다 꾸겠네. 은찬은 카페 옆 건물에 위치한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월말 평가를 치르던 단체 연습실은 3층이다. 빨리 오라던 가을의 말에 계단을 급히 뛰어 올라갔는데도 평소보다 숨차는 게 덜했다. 원래 이쯤 되면 심장이 벌렁거려서 숨을 고르고 있어야 정상인데, 지금은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히는 게 전부였다.
‘6년 전이라 몸 상태도 그때랑 같은 건가? 이건 확실히 좀 괜찮네.’
원래는 빈말로라도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꿈속에서도 땀을 흘리나? 순간적으로 위화감이 들긴 했으나,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덮쳐오는 연습생들의 시선에 그 생각도 쉽게 쓸려 나갔다.
‘다들 부지런하구만…….’
데뷔 전 매달 치러지던 월말 평가는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은 오전 8시 반. 아직 평가가 시작되기까지 4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지만 연습생들 중 절반이 미리 나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과거 이날엔 이른 오전부터 가을이와 함께 합을 맞춰봤던 것 같다. 데뷔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다들 정말 열심이었지. 그때를 떠올리니 새삼스레 기분이 상기됐다.
저기 구석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연가을, 그 옆에서 떠들고 있는 도이선과 서주혁… 그리고 아직 중학생인 함정원까지.
이렇게 열이 오른 분위기와 아직은 교체하기 전인 마룻바닥 냄새도 오랜만이었다.
“음?”
저게 뭐야…….
감상에 차서 멤버들의 앳된 얼굴을 바라볼 때가 아니었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와?”
불만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가을 [♡ +60%].
“웬일이래? 은찬 형이 우리보다 늦게 오고.”
“시끄러워. 박자나 맞춰.”
“네에.”
이쪽을 반기는 듯 아닌 듯 애매한 태도의 도이선 [♡ 0%]과 서주혁 [♡ +30%].
그리고…….
‘쟤는 왜 벌써 와 있지?’
내 쪽을 슥- 노려보다 고개를 돌리는 함정원 [♡ -30%]까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까 카페 알바생에게서 보였던 하트가 애들 머리 위에서도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럼 그게 잠깐 동안 보이는 환각이 아니었단 말이야?
‘플러스에, 마이너스… 게다가 0도 있네? 저 수치들은 다 뭐야?’
믿기지 않는 상황에 은찬이 무의식적으로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눈앞에 게임 스탯창 같은 게 떠올랐다.
[ 유은찬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 system : 모든 스탯의 최대점은 ★★★★★이며, 특정 목표 달성 시 추가 스탯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스탯은 횟수 제한 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게 뭐야? 설마 아까 그 하트도 이거랑 연관이 있는 건가?’
혹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눈을 가로로 길게 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어라?’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욱신거리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
“형, 미안… 내가 괜히 빨리 오라고 했나.”
“…설마 나 쓰러졌어?”
“어. 그래도 그렇지. 평가 날인데 왜 컨디션 관리를 안 하는 거야… 괜찮아?”
누워 있던 나를 지켜보고 있던 건지, 눈을 뜨자마자 가을이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걱정과 답답함이 섞여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가을의 도움을 받아 몸을 천천히 일으키니 한숨만 푹푹 내쉬던 가을이 다시 말을 이어왔다.
“건강 좀 챙겨. 밥 또 안 먹었지?”
“…그럴걸?”
내가 이날 밥을 먹었던가.
몇 년 전 일을 그렇게 세세히 기억할 리가 없으니 이런 얼뜬 소리밖에 안 나왔다. 잠에서 깨면 데뷔 6주년을 맞이한 그룹 칠월칠석의 리더 유은찬으로 돌아와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와 있긴 무슨. 그대로였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이상한 하트 대신 시스템창이 떠 있다는 것 정도?
[ system : 금일 호감도 열람 가능 횟수 (0/5) ]정황상 아까 그 이상한 하트를 보는 데에도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이쯤 되니 그냥 개꿈이라 치부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좀 많다.
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었다. 제발 꿈이어라. 난 이런 이상한 거 필요 없어.
“악!”
엄청나게 아팠다. 이게 다 실제 상황이라고? 과거로 돌아온 것부터가 이상한데 하트와 시스템창이라니, 무슨 게임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거냐고. 현실도피도 정도껏이지. 이런 걸 바랐던 적은 없다.
[ 연가을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아까 보았던 스탯창이 가을이 옆에도 떠올랐다.
‘현재 능력치를 환산해서 보여주는 건가? 가을이 보컬 스탯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내 행운 스탯이 별 5개 만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 어정쩡한 미소만 짓고 있던 은찬은, 옆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가을이의 손목을 붙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야, 나 한 번만 때려봐.”
“…시키니까 왠지 하기 싫은데.”
“한 번만.”
“아, 좀! 그래도 이러는 거 보니 몸은 괜찮은 것 같네.”
제 손을 떨쳐낸 가을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형, 괜찮으면 얼른 준비하자. 월말 평가 받으러 가야 돼.”
…월말 평가? 아, 그랬지. 도무지 이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몸이 붕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이상한 하트와 스탯창을 보다가 기절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호감도 열람 가능 횟수가 없다는 시스템창이 떠 있었다.
‘(0/5)라면 호감도는 하루에 총 5번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일 테고.’
그런데 호감도가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나에 대한 호감도? 가을이 숫자가 조금 높았다는 점이나 함정원이 마이너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긴 한데.
이게 무슨 원리로 돌아가는 건지. 근본적으로 왜 과거로 돌아오게 된 건지 알 방도가 없었다.
아, 설마…….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이런 미래가 되도록 두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