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20
20. 달라진 것들(4)
은찬이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
현주인이었다.
너무도 뜬금없는 등장에 은찬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숙소를 나서기 전 현주인이 잠깐 놀러 오긴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레슨받고 있을 시간일 텐데?
‘왜 아직도 여기 있지?’
은찬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현주인은 그런 은찬을 지나쳐 사생팬 무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찬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곧장 뒤를 따라갔다.
당장 막아야 했다. 저래선 과거와 달라질 것 없이 이상한 루머나 생성될 터였다.
“저기요.”
현주인이랑 내가 같은 그룹이든 아니든, 저 사생팬들이랑은 엮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배우라서 타격이 비교적 적을 수는 있어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은찬이 현주인을 막아서기 위해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근데 이 자식, 상태가 좀… 이상한데?’
현주인은 특기인 on/off 능력은 어디 두고 오기라도 한 건지 표정이 아주 쌀쌀맞게 굳어 있었다. 얘가 이럴 리 없는데.
“남의 집 앞에서 아까부터 서성이시던데, 뭐 하는 짓이에요? 할 짓 없어요?”
동시에 은찬의 행동도 멈췄다.
‘현주인이 팬들한테 화를 낸다고?’
내가 알던 현주인은 팬한테 다정한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돌 활동은 대충 했어도 본인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늘 좋았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저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건가 싶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주인은 그걸 해냈다.
그 때문인지 ‘현주인=애증’이라며 까면서 덕질하는, 소위 ‘까빠’들이 현주인 팬 지분율의 90%를 차지했었고.
온라인상에서는 조롱거리로 자리 잡혔을지언정, 오프라인으로 우리를 보러 와주는 팬들은 만족도가 꽤나 높았는지 다들 다음, 다다음 행사에서도 꾸준하게 얼굴을 비쳤으니까. 본인들끼리는 한 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 우리한텐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칠월칠석이 망돌 소리 들으면서도 6년간 활동을 간간이나마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이유가 꽤 컸다.
그랬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바뀐다고?
이번에도 사생팬들 데리고 카페에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하는 현주인이라니 너무 낯설었다. 얘는 사생팬 앞에서도 표정연기를 그만둔 적이 없었는데.
‘내가 회귀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가?’
그게 아니라면 현주인이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모든 게 회귀로 귀결되는 느낌이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납득을 할 수가 없으니까.
“…뭐야. 현주인 아니야?”
“왜 여기 있어? 주인아, 너도 데뷔해?”
“하아…….”
현주인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덩달아 은찬의 어깨에도 긴장으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얘가 도대체 뭘 하려고.
찰칵-
‘…응?’
앞서 했던 생각들이 무색하게 현주인은 곧장 후면 카메라로 사생팬 무리를 촬영했다. 그것도 연속촬영으로. 은찬이 당황하는 사이에도 셔터 소리는 반복해서 울려댔다.
‘쟤 지금 설마 사생팬들 얼굴 찍는 거야?’
그냥 엄포가 아니었다고?
“스토킹으로 신고합니다. 회사에 말해서 블랙리스트에도 올려 드릴게요.”
찍어둔 결과물이 만족스러운지 갤러리를 슥슥 돌려 사진을 확인한 현주인이 씩 미소 지었다. 예전의 온화하기만 했던 가식적 얼굴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뭔가 좀…….
‘뒷목이 서늘한데.’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주인은 남들 앞에서 본인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기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뭐야. 우리 찍는 거예요?!
“미친… 현주인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현주인은 그런 사생팬들을 다 무시하더니 통화창을 열어 112를 눌렀다.
“…야, 잠시만!”
그 모습을 본 은찬이 곧장 소리를 내질렀다.
저 방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경찰이 오더라도 소용없다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 은찬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사생팬들 중 미성년자가 절반이 넘었던 탓에 저쪽 부모님을 모셔 와야 했고, 우리 쪽에서도 직접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적당히 참고 살아라’, ‘유명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연예인이 유난이다’ 같은 말만 들었지,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 쪽에서 별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사생팬들은 더 미친 듯이 붙어 다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아.’
무엇보다 쟤네가 또 무슨 망발을 퍼뜨리고 다닐지 걱정이 됐다.
회귀 전에도 저 무리는 SNS 같은 데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게 내 눈에 보일 정도로 집착 또한 대단해서, 화를 내든 무시를 하든 몇 년을 내리 쫓아다녔다.
이런 현주인의 행동이 불발탄이라도 될까 걱정스러웠던 은찬이 옆으로 붙어 서자, 사생팬 무리는 우리가 단합이라도 한 것 같아 보였는지 쟤네 작정했다며 도망치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뭘 했다고…….’
오히려 현주인을 회유하려던 입장이라 살짝 억울했다.
“아, 씨……!”
“미친, 시발… 야, 가자.”
자기들끼리 욕을 하며 사라지는 사생팬 무리들을 바라보던 현주인이 귀 쪽에 가져다 댔던 핸드폰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액정을 보니 전화는커녕 하는 시늉만 냈던 모양이다.
“어차피 신고할 생각 없었어.”
누가 봐도 경찰에 신고해서 ‘인생은 실전이다’를 몸소 보여줄 생각인 것 같았는데. 여전히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더 이상 사생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긴장이 탁 풀렸다. 은찬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현주인을 올려다봤다. 늘 그랬듯 별다른 표정이 없는 얼굴이다. 여유롭다 못해 태연해 보일 정도로.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은찬이 아는 한, 현주인은 이미지에 금이 가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의 기준에서 넘는 걸 싫어했다. 그 ‘기준’이라는 게 은찬이 납득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령 현주인에게 여자 연예인들과의 스캔들은 기준 안 행동, 팬들한테 매너 없게 구는 건 기준 밖 행동이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이상한 놈이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그런 현주인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행동인데.
‘얘가 왜 이래, 진짜?’
뭘 잘못 먹었거나, 아니면 최근 며칠 사이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건가? 은찬이 슬쩍 걱정 어린 한마디를 건넸다.
“…너 괜찮냐?”
“뭐, 안 괜찮을 것도 없지. 어차피 난 아직 아이돌 아니니까 상관없어.”
‘…아직?’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쟤가 저런 부사를 굳이 붙여서 말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순간 머릿속에 현주인이 아이돌도 궁금해한다던 이선과 주혁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본인이 배우 하겠다고 했잖아?
‘설마하니 다른 소속사에서 아이돌 데뷔 컨택이라도 온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현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니 나와는 관계없지만. 저런 의미심장한 말은 차치하고라도. 현주인의 태도가 미묘했다.
‘이때의 현주인이 원래 이런 성격이던가?’
좀 더 남한테 무관심하고, 자기랑 관련된 일이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억 속 현주인은 분명, 아역배우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시달려서 사람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질려 있었다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덕분에 사람 많은 곳을 무지막지하게 싫어했고, 타인과 교류하는 행위 자체도 달갑지 않아 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항상 최소한의 노력만 했고 일에 관련된 게 아니라면 죽을 만큼 귀찮아했다. 거기에 결과 중심적인 데다 개인주의 성향도 강해서 남을 배려하는 일은 비즈니스로 엮인 게 아니면 절대 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기억만 끄집어봐도 그랬다.
심지어 자기는 단체생활과 맞지 않고 혼자가 좋다는 발언을 하기도 해서, 우리 팬들이 쟤 지금 탈퇴하고 싶은 거 어필하냐며 한바탕 뒤집어진 적도 있었다.
그런 놈이 대체 무슨 변덕으로?
“쟤네도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안 찾아오겠지. 간다. 형도 들어가.”
“지금 뭐 하는… 아니, 일단 레슨은 어쩌고? 너 지금 개인 레슨 시간 아냐?”
“도와줘도 난리네. 우선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냐?”
“아니, 그게…….”
무언가 항변을 하려던 은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지금 아이돌도 아닌 열아홉 살 배우 현주인한테 이런 걸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답답한 마음을 참아내며 은찬은 입술만 깨물었다.
“뭐, 됐어.”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가겠다는 걸 표현하기라도 하듯 현주인은 망설임 없이 뒤돌았다. 은찬이 그런 현주인의 등에 대고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야, 잠깐만……!”
어떤 꿍꿍이가 있든, 변덕이든. 이런저런 의문점들은 제쳐두고 현주인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난 건 맞았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은찬이 현주인의 소맷자락을 잡아채고선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나갔다.
“고, 고맙다. 도와줘서.”
현주인이 그런 은찬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어, 알면 됐어.”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은찬은 현주인의 대답에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알면 됐어? 이왕 하는 말, 좀 예쁘게 해주면 덧나냐고. 거기다 비웃는 듯한 목소리라 더 울컥했다. 뭐냐.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다음에 또 보자, 형.”
그리고 현주인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은찬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헛것이 보이나?’
현주인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것도 나를 보고.
‘얘 진짜 안에 내용물 바뀐 거 아냐?’
어차피 이 이상 현주인을 잡을 생각도 없었기에 은찬은 곧장 뒤돌아 숙소로 달려왔다. 방금 전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얼떨떨해서 환각이라도 본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면…….
‘조만간 하늘이 두 쪽 나겠군. 아니면 뭘 잘못 주워 먹은 건가.’
정말로 다른 사람 같았다. 무표정이 디폴트인 데다가 내 앞에선 비웃을 때 빼고는 웃은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TV 화면 속 현주인은 잘 웃었지만.
말 그대로 연기할 때를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감정 표현이란 걸 딱히 하지 않는 놈이었는데.
‘설마 같은 그룹이 아니라고 내 앞에서도 연기를 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어디서 정신교육이라도 받고 온 건지. 기억과 다른 현주인의 태도에 온갖 잡생각과 함께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호감도도 +30%였지?’
아까 한 번 더 확인해 볼걸. 사생팬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호감도고 나발이고 그런 건 안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정말 어디서 회개라도 하고 온 것 같잖아. 생전 저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던 놈이 저러니까.”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다.
***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났으니 문을 열어야 하는데, 손이 녹슨 것처럼 삐걱거렸다. 멤버들을 맞닥뜨리면 제대로 사과하자.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전부 내 잘못이라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어 착잡했다.
은찬의 손목에서 편의점 비닐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발을 옮기니 부엌 쪽에서 주혁이 얼굴만 슬쩍 내밀어 은찬을 반겼다.
“은찬 형, 밥은 먹고 왔어요?”
“형, 주혁이가 컵라면으로 대충 때운다고 해서 제가 실력 발휘 좀 해봤는데! 짜파구리 드실래요? 배고파서 4개나 끓였거든요.”
그런 주혁의 옆에서 이선이 쑥 튀어나왔다. 당황한 은찬은 눈만 껌뻑이다 머뭇머뭇 답했다.
“어, 아니… 먹었어. 괜찮아.”
대충 맥주나 마시면서 저녁을 때울 생각이었다. 입맛도 별로 없는 데다 기껏 저녁 맛있게 먹을 애들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다.
“신경 쓰이면 방에서 먹을래요? 따로 그릇에 덜어줄게요.”
은찬의 손에 들린 비닐 봉투를 슥 훑어본 주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옆에 선 이선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형, 4개나 끓였다니까요? 저희 둘이 이거 다 못 먹…지는 않겠지만 같이 먹어요!”
“풉… 뭐야, 그게.”
이선의 말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멤버들이 현재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문명과 단절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을 신경 써주는 게 훤히 보여 괜스레 눈이 시려왔다.
‘얘네는 왜 이렇게 섬세한 거야.’
새삼 이 멤버들과 한 팀이란 게 감격스러웠다.
은찬은 부엌 쪽으로 다가가 주혁의 머리를 연신 비비적거렸다. 얘가 언제 이렇게 큰 거지. 분명 나보다 작았던 거 같은데, 이젠 나보다 눈높이가 높네.
“아냐. 리온이가 방에서 냄새난다고 싫어해. 신경 써줘서 고마워.”
“…머리 너무 만지지는 마세요.”
주혁이 삐죽이며 답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은찬은 당장 마실 맥주 한 캔을 제외한 나머지 세 캔을 냉장고에 넣곤 다시금 주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있던 이선도 주혁의 머리를 같이 쓰다듬자 날카로운 시선이 이쪽으로 곧장 꽂혔다.
“…도이선, 작작하고 밥이나 먹어라.”
“응, 싫은데?”
“야! 하… 빨리 먹으라고. 면 불어 터지기 전에.”
원래 같았으면 이선이랑 또 투닥거렸을 텐데 나 배려해 준다고 화를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 울적했냐는 듯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그래, 이선아. 나도 이제 방 들어갈 거니까 주혁이랑 얼른 먹어.”
“넵, 형도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 사람들 화낼 곳 없어서 애꿎은 사람 하나 잡고 그러는 거니까.”
은찬은 그런 이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결 좋은 금발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아! 맞다. 가을이 형이랑 별이가 형 준다고 아이스크림 하프갤런으로 사다 놨는데, 그거 같이 먹어요.”
“응?”
“아까 둘이 운동 다녀오면서 사 왔어요. 제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형 오면 같이 먹을 거니까 손대지 말라고 하던데.”
“…….”
냉동실을 열어 아이스크림과 이선을 번갈아 보던 은찬이 감격에 겨워 별 대답 못 하고 있자 이선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신신당부했으면서 둘 다 지금 침대에 완전 뻗어 있다니까요? 저거 어차피 오늘 먹긴 글렀으니까 형 나중에라도 당 떨어질 때 먹어요. 저거 좋아하잖아.”
“아냐! 내일 애들 깨어 있을 때 다 같이 먹자. 이선이 너도 얼른 그거 먹어. 주혁이 말대로 면 불겠다.”
“네에- 오, 서주혁 나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린 거야? 기특해라.”
“지랄 말고 처먹기나 해라.”
은찬이 평소처럼 투닥이는 이선과 주혁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부엌을 나와 방으로 향했다.
‘우리 애들 진짜 너무 착해서 어떡하지?’
이런 애들한테 과거의 쓴맛을 다시 느끼게 할 순 없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회귀 전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당황하면 안 되고.
방에 들어오자 이어폰을 꽂고 있던 리온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리온이는 자고 있거나 작업 중이어서 인사도 못 하고 잘 거라 생각했는데. 은찬은 어정쩡하게 손을 흔들어 응했다.
‘응?’
그런데 리온의 옆 책상, 그러니까 은찬의 책상 위에 못 보던 게 하나 놓여 있었다. 정체는 포스트잇이 붙은 젤리 하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이건 누가 봐도 리온이의 짓이다. 아, 울면 안 되는데. 은찬의 두 눈에는 이미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리온아……! 고마워.”
은찬이 활짝 웃어 보이자 얼굴을 붉힌 리온이 고개를 홱 돌렸다. 대놓고 감사 인사 받는 게 아직 어색한 것 같았다. 품 안의 소년미 앨범을 책상 서랍 한편에 조심히 넣어두고 젤리는 잘 보이는 곳에 옮겨두었다. 기분 안 좋을 때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
‘미치겠네…….’
도무지 잠이 안 온다.
거의 2시간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도 잠에 들지 못했다. 하긴 머릿속이 복잡해서 시장통같이 시끄러웠으니 그럴 만도 하지.
SNS 게시글,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생각, 현주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미래에서나 발매되었을 소년미의 7주년 앨범.
마지막으로 정체 모를 편의점 알바생.
‘…….’
아, 도무지 안 되겠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 은찬은 곧장 책상으로 가 앉았다. 그러고는 리온이 깨지 않게끔 스탠드를 켜고 아까 넣어두었던 소년미 앨범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 원래 애들이 없을 때 몰래 보려고 했던 거지만, 모두가 잠들어 있는 지금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앨범을 펼치자 종이 한 장이 밑으로 빠져나왔다. 앨범 중간에 꽂혀 있었나? 아까 편의점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뵙겠네요.]은찬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랜만에……?’
의미를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이게 자연적으로 발생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모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그 이전 알바생이라는 남자,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