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21
21. 달라진 것들(5)
그러고 보면 야간 타임의 그 남자 알바생은 항상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차분하고, 어두우면서, 어딘가 다가가기 힘든.
편의점이 회사와 숙소 근처인 데다가 자주 방문했던 만큼, 은찬은 알바생들의 근무 요일과 시간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스케줄이나 연습이 끝난 뒤에는 편의점에 가는 일이 잦았기에 야간 타임인 그 남자와는 꽤 자주 마주쳤었다. 그때마다 그는 평범하게 맞아주었지만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 사람 잘생기지 않았냐는 은찬의 감상에 매니저 형 역시 긍정할 정도였는데도, 외모가 눈에 띄기보다는 그 분위기가 먼저 와닿았다. 항상 겉에 까만 장막 하나가 깔려져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마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때로는 일부러 1+1 간식을 사서 그 알바생에게 건네기도 했다. 괜히 부담을 줄 수도 있으니 상대 쪽에서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만.
‘피곤하실 텐데 하나 드세요!’라든가, ‘두 개는 너무 많은데 하나 드시겠어요?’ 정도로.
그때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네, 잘 먹을게요.’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는 싫어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긴장했는데,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건네는 그 모습에 나름 뿌듯하기도 했었고.
단순히 늦은 시간에 일을 하는 탓에 기력이 없던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오지랖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다.
‘그래도 힘들 때 누군가가 챙겨주면 그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자는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흘러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을 땐 내심 기뻤다.
아무튼 그 알바생이 이걸 전해줬다는 건데.
발매되지도 않은 소년미 앨범을 남한테 줄 수 있을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건가.
회귀를 하고 시스템창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일상과 달라졌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연습생이었으려나… 하긴 그 얼굴에 캐스팅을 안 당하는 것도 이상하지.’
게다가 이걸 나에게 전한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조차 안 간다.
내가 소년미 팬인 걸 알고 있었나?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앨범을 얻은 거지? 그 사람도 회귀 비슷한 걸 한 걸까?
다시금 소년미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하긴 이건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이상하긴 하지. 이 시기에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
은찬은 앨범을 다시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곤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이름… 이름이 뭐더라?’
은찬은 남자 알바생의 명찰이라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굴과 키, 그 밖의 특징 같은 건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데 이름 하나만이 모호했다.
“아.”
무언가 퍼뜩 떠오른 듯 은찬이 서랍을 뒤적여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 위에 제 핸드폰 번호를 날려 적었다.
‘…지금 1시 10분이니까…….’
은찬이 모자를 푹 눌러썼다. 다시 그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
***
“어서 오세요… 어?”
“아, 안녕하세요. 허억… 헉…….”
“뭐 두고 가셨어요?”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아까 그 여자 알바생에게 인사를 건넨 은찬이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앞만 보고 한달음에 오느라 숨이 벅찼다.
알바생은 그런 은찬을 슬쩍 흘겨보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은찬은 숨을 가다듬으며 진열대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2,700원입니다.”
“그거 드세요.”
“네?”
빈손으로 부탁할 수는 없으니까. 카드를 내밀면서도 은찬은 살짝 머뭇거렸다. 내가 할 질문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는 하는 게 맞았다. 새벽이라 손님이 드문드문 오는 게 다행이었다.
눈치를 살필 겸 계산하는 알바생을 슬쩍 흘겨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것도 같은데, 역시 갑자기 이러면 좀 당황스러우려나.
커피를 받아 들며 꾸벅 인사를 해 보이는 알바생에게 은찬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을 건넸다.
“저, 혹시…….”
“네, 네?”
“죄송한데 그 앨범 전해달라고 했던 남자 알바생분… 성함이라도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아, 네…….”
은찬이 마른침을 모아 삼켰다. 이름을 들으면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연 머릿속에 뭔가 떠오를지도.
“그 오빠 이름은 윤… 응? 뭐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아… 기억 안 나세요?”
은찬이 되묻자 알바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으로 목을 감싸 쥔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알바생은 작게 중얼거렸다.
“왜 목이 아프지…….”
갑자기 물어봤으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은찬이 적어뒀던 포스트잇을 반쯤 접어서 알바생에게 건넸다. 개인정보라 알려주기 곤란하다면 내 쪽에서 전달하는 건 가능할까 싶어 적어 온 건데, 역시 준비하길 잘했다.
“아, 그럼 그분 만나게 된다면 이 쪽지 좀 전해주실 수 있나요? 부탁합니다.”
“네… 아! 저 그 오빠랑 같이 찍은 사진 있는데. 한번 얼굴이라도 보실래요? 그 오빠 오디션 보고 다니던 사람이라 제가 데뷔하기 전에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했었거든요.”
알바생은 은찬이 건네준 쪽지를 카운터 안쪽에 놓더니 제 핸드폰을 들었다.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은찬으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알바생은 갤러리에서 어떤 사진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어?”
한참 갤러리를 뒤적이던 알바생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에 은찬이 곁눈질했으나 액정 위에 뜬 사진은, 이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여자 알바생의 단독 셀카일 뿐이었다. 그것도 옆쪽이 상당히 휑하니 비어 보이는.
…같이 찍은 사진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게 분명히 그 오빠랑 찍었던 사진인데.”
“네?”
“진짜인데…….”
인상을 구기면서도 머쓱한지 연신 뒷목을 매만지던 알바생은 갑자기 커피 감사하다며 슬쩍 인사하곤 그대로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에 은찬이 사진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자 알바생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네? 무슨 사진이요?”
영문을 모르는 은찬만 답답할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수확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은찬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럼 쪽지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건네고 편의점을 나왔다. 은찬의 뺨에 닿은 새벽 공기가 유달리 텁텁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확인한 핸드폰에는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전화가 찍혀 있었다.
사생팬 때문에 곤란해하던 저녁 시간대에 하나.
방금 전 편의점 알바생과 애기하고 있던 새벽 시간대에 하나.
‘누구지?’
일단 모르는 번호인 데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은찬은 확인만 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중요한 용건이 있는 거라면 문자라도 남기겠지.
***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이슈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이쪽 업계의 특성상 은찬도 더 이상 예전처럼 언급되지는 않았다. 다만,
‘나 때문에 미운털 박혔나 봐…….’
제네시스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안티도 팬이고 어그로도 관심이라지만 팬덤이 큰 소년미와 연관된 게 큰 타격이었다. 소년미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톱 아이돌그룹이었으니까.
그런 그룹이 불화의 전조 없이 갑작스레 재계약 불발 및 해체라는 소식을 투척해 버렸으니, 갈 길 잃은 팬들의 당황과 분노가 이쪽으로 향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무슨 죄야.’
더군다나 얼마 없던 방청석의 관객 또한 줄어들었다. 이래서야 회귀 전에 논란 생겼던 때와 다를 게 없다. 시발점이 현주인이냐, 유은찬이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인지, 소속사에서는 음방 마지막 주인 오늘 ‘악수회’를 빙자한 미니 팬 미팅을 개최했다. 선착순으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기에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여서 인원 미달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적당한 행사로 사건 무마하기’가 소속사의 목표였다면 성공이다.
최소한 이번 악수회에 참가한 사람들만큼은 우리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하면 되니까.
[팬싸 컷 낮은 남돌 ㅊㅊ받음] [동태눈 아니고 팬썹 좀 잘한다 싶은 그룹 있음?]같은 글에 주로 언급됐던 게 우리 그룹이었으니. 이 중에서 반은 적당히 구경하러 온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게 은찬이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 2주간 활동하면서 보러 와주는 팬들의 얼굴을 대략적으로 이미 외웠기도 하고, 진심으로 제네시스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 정도는 표정만 봐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회라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는 것도 오늘이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해.’
제네시스를 좋게 봐준 팬들이나, 미닛츠를 응원했던 팬들은 악수회가 진행되는 내내 하나같이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과 말들을 보내왔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했고.
“안녕하세요~”
이러한 상황이니 내가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예정된 악수회 인원은 150명이었으나 중간에 대기 인원이 많이 발생해 200명으로 늘어났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느라 목이 조금 아파왔지만 밝게 미소 지으며 다음 차례인 팬을 반겼다.
‘시간 내서 우리를 보러 와준 사람들이니까 이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은찬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은찬이 유일하게 표정 관리를 잘하는 시간은 팬들 앞에 설 때였으니까.
“오시느라 힘들진 않았어요?”
게다가 그 사건으로 피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소년미의 팬으로서 이런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럽지만, 노이즈마케팅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긴 했는데, 그 일로 주목을 받긴 했는지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늘었다.
예를 들면 우선 ‘그래서 제네시스가 누군데?’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한 명은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어 영상까지 찾아보다가 슬며시 입덕하는 루트였다.
SNS에서 검색을 하다 보면 그렇게 제네시스에 스며들어서 며칠 내로 프로필사진을 우리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종종 발견되기도 했고.
불현듯 칠월칠석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부정적 관심인 건 똑같네. 입안이 조금 썼다.
새삼 멤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상황에 대해 딱히 물어보지 않는 것도, 평소처럼 대해주는 것도 고마웠다. 애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일단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은찬아! 무슨 생각 해?”
“앗.”
“괜찮아?”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은찬의 정신이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은찬이 눈을 접으며 앞에 앉은 팬의 손을 붙잡고 깍지를 꼈다.
“누나가 여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 근데 누나 염색하셨네요? 완전 잘 어울려요.”
“뭐야? 어떻게 알았어?”
“누나 자주 봤어요! 방청석에서.”
“어머, 은찬이 너 무슨 아이돌 2회차 같아!”
…정말 2회차니까요.
솔직한 대답은 속으로 삼키고 은찬은 씩 웃어 보였다.
“아까는 두세 번째 줄에 있지 않았어요?”
“응! 맞아! 나 몇 번 안 왔는데 기억하고 있었어? 감동이다…….”
“매번 옆의 친구분이랑 응원법 열심히 외쳐주시잖아요! 당연히 기억해야죠.”
“아… 어떡해, 진짜… 은찬아, 나 행복해서 쓰러… 아! 맞다! 잠깐만, 은찬아! 이거 한 번만 써주면 안 돼?”
“뭐예요? 아, 토끼 머리띠?”
이게 뭐 별거라고. 이런 간단한 거 하나 못 해줄 것도 없다. 무엇보다 당일에 공지한 악수회라 시간 내기도 빡빡했을 텐데, 그 짧은 사이에 이런 걸 준비해 오는 팬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더 잘해줘야 했다.
“대박… 너무 잘 어울려…….”
“그래요? 안 어울리지 않아요?”
“아니! 나는 무조건 은찬이가 토끼파라고 생각해!”
“푸핫, 그러면 다른 것도 있어요?”
“뭐… 사슴도 있고, 고양이도 있긴 한데. 내가 봤을 땐 토끼가 제일 잘 어울려!”
팬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악수회도 끝물이었다. 거의 마지막 순서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가며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다음 순서인 팬이 쭈뼛거리고 있길래 은찬이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음? 낯을 많이 가리시나?’
처음 오는 팬들은 긴장을 많이 하는 탓에 울먹거리거나 말을 잘 못 꺼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분도 그런 경우인가 보네. 마스크를 쓰고 정수리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팬의 모습을 본 은찬이 더욱 환하게 생글거렸다.
그때, 고개를 숙인 팬의 정수리 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히든 이벤트 달성! +??% 이상의 호감도를 가진 대상과의 조우 ] [ system :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당신에게 제일 호의적이군요. 1회성 스킬 ‘속마음 확인’을 지급합니다. ]‘역시 갑작스럽게 등장하잖아.’
어쨌든 시스템의 말대로라면 나를 좋아해서 이곳에 와준 거니까. 더 잘 대해줘야 했다. 은찬은 스킬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고개를 숙인 팬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데,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사람 얼굴 기억하는 데에는 자신 있었는데.
“…아, 제가 이런 데가 처음이라…서요.”
“많이 긴장하셨어요?”
그래도 악수회니까, 은찬이 손바닥을 쫙 펴 팬의 앞에 내밀었다. 팬이 머뭇거리다 금세 손을 맞잡아왔다. 닿은 손이 유독 축축했다. 뭔가 이상해서 자세를 바꾸려는 찰나였다.
“……?”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