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27
27. 세상에 공짜는 없다(2)
[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스템창의 문구가 바뀌자마자 묵주반지를 끼고 있던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은찬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반지 낀 쪽 손을 반복적으로 쥐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왜 손가락이 아프지?’
워낙 피부처럼 끼고 다녔던 반지라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반지가 자신이 이곳에 있다며 자기주장이라도 하는 듯했다. 은찬은 손가락에 느껴지는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려 애썼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자 때마침 시스템창의 화면이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 ★5 마인드 컨트롤 – 1분 동안 상대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설마설마하긴 했는데, 5성이 나올 줄이야.
타이밍 좋게 등장한 행운에 은찬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곧장 스킬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만큼은 아파오는 검지의 감각도 원래 없던 것처럼 깨끗이 잊을 수 있었다.
은찬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현주인에게 눈을 맞췄다.
‘현주인 너 이 자식… 그 음흉한 속내를 낱낱이 고백하게 해준다, 내가.’
안 그래도 현주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제네시스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왜 갑자기 본인이 원하던 배우 활동을 뒤로하고 아이돌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현주인!”
“아?”
“하나만 묻자. 너야말로 나랑 같이 활동해도 괜찮겠어?”
정말 내가 불편하지 않아? 이맘때의 우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칠월칠석 시절 현주인과 나는 가치관과 성향이 정반대라 잘 안 맞았다. 그리고 회귀 이후 현주인이 나에게 보이는 묘한 태도 역시 영 꺼림칙했으니까.
이 정도면 옆에 있던 이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질문이니 괜찮을 것이다.
‘속마음을 다 토로해. 그냥 다 말해 버리라고.’
되뇌면서도 좀 과했나 싶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찌 되었든 궁금증들을 해소하지 못하는 이상, 나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납득하기 힘들 테니까. 최악의 경우 과거를 되풀이할 수도 있으니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은찬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다시 되물었으나 현주인은 답이 없었다.
“응?”
스킬이 안 통하는 건 아닐 텐데…….
현주인은 대답 대신 까끌해 보이는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짓씹는 중이었다. 미간 사이 깊게 파인 주름이 현주인의 짜증을 대변하는 중이었다. 덩달아 은찬의 긴장감도 치솟았다. 현주인이 입을 여는 이 몇 초간의 기다림이 몇 분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아… 귀찮게.”
얼굴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현주인과 궁금증을 내포한 이선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은찬은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얼굴 근육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현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거 긍정의 의미라는 거야?’
마인드 컨트롤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면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 지금 네 속마음을 실토하라는 게 내가 내세운 조건이었으니. 그렇다면 저게 현주인의 진짜 속내라는 건데.
“열심히 해볼 테니까 그렇게 불쾌하다는 표정은 좀 치워. 형한테 협력할 생각, 차고 넘친다고 했잖아. 그렇게 못 미더워?”
저 모든 말의 발화자가 현주인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 같은 말투라니. 마치 내가 알고 있던 현주인이 아닌 것 같았다. 저놈답지 않게 왜 저러는 거야? 은찬이 단박에 현주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이, 현주인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는 잘해보자, 형.”
‘…이번에는?’
현주인과 대화할 때마다 느끼던 묘한 기시감이 방금도 몸을 휘감았다. 그때 타이밍 좋게도 시스템창이 스킬 이용 시간을 알렸다.
[ system : 스킬 이용 시간 10초 남았습니다. ]‘아니, 아니. 잠깐, 잠깐, 잠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은찬이 속으로 내질렀다.
‘회귀라고 말해봐, 지금 당장!’
확인해 봐서 나쁠 것 없다. 현주인도 나처럼 회귀를 해서 저런 발언을 툭툭 떡밥처럼 던져대는 거라면 제약이 있을 테니 관련된 단어를 못 뱉을 것이다. 다른 단어나 뜬금없는 말들로 대체된 채 말하겠지. 마치 내가 주혁이 앞에서 당황했던 것처럼.
은찬은 눈을 빛내며 현주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쟤도 회 먹자고 한다면… 이건 빼박이다. 저 입에서 과연 어떤 말을 내뱉을지 내심 기대도 됐다. 현주인은 가만히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회귀?”
허탈했다. 목이 조이는 듯한 기분에 그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게 된 나와는 달리, 현주인은 너무도 쉽게 ‘회귀’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얘는 회귀한 게 아니야?’
은찬의 어깨가 축 처졌다. 현주인은 그런 은찬을 몇 초간 지그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선이 끼어들었다.
“응? 뭐라고?”
“뭐야. 나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이선은 인상을 쓰며 당황스러워하는 현주인의 등을 한 대 치고는 크게 웃었다. 현주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찡그리더니 괜히 팔짱을 꼈다.
“현주인, 너답지 않게 뭔 헛소리를 하고 그래.”
“그러게. 가자.”
무덤덤의 아이콘인 놈이 저렇게까지 행동하는 걸 보니 당황하긴 한 것 같다. 문제는 상황을 만든 당사자인 은찬이 그런 현주인을 고려해 줄 정신이 아니라는 거지만.
‘현주인은 나처럼 회귀한 게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고 치기엔 의미심장한 말들을 너무 많이 했다. 칠월칠석 때도 그렇고, 제네시스 때도 그렇고. 데뷔 전에는 현주인과 합을 맞춰본 기억이 없는데 어째서 자꾸 예전에 같이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거지?
“윽!”
현주인과 이선이 떠난 자리에 멍하니 서서 골똘히 생각을 하던 찰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싶더니 가슴께에서 묵직한 아픔이 느껴졌다. 마치 누가 심장을 쥐고 주무르기라도 하는 듯한 아픔이었다. 나름 고통을 잘 참는 편이라 반지 낀 손가락의 고통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참을 만했는데, 이건 인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뭐지? 갑자기?’
은찬은 몰려오는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줄줄 흐르기 시작하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천천히 호흡을 내뱉었다. 심장에 관련된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약하다는 판정을 받은 적도 없는데.
‘회귀 첫날 호감도 열람 기능을 다 써놓고 쓰러졌을 때보다 정확히 5,000배 정도는 아픈 기분…….’
눈앞이 서서히 흐릿해지더니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마저 몽롱해졌다.
***
[유은찬.]“…….”
[은찬아, 많이 아프니?]회귀 전 들었던 장난 전화 속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 낯설고도 중성적이며 고운 목소리.
‘대체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몸도 묵직했다. 평생 귀신 나오는 꿈 한 번 꾼 적이 없는데 가위라도 눌리나 싶어 얼굴을 찌푸렸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가 지불을 가볍게 여기면 안 돼.] […반지 찾아서 몸 근처에 잘 두고.]또 영문 모를 소리.
아는 사람 중에는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경계는커녕 애틋함만 밀려왔다. 은찬은 입을 벌려 말을 하기 위해 애썼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몸을 뒤척이자 이번에는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아니, 때려 박혔다.
“유은찬!”
“…헉!”
감정 실린 그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자 익숙하고 잘생긴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왕창 구겨진 표정으로. 은찬은 눈을 몇 번 반복적으로 깜빡였다. 시야 안에는 현주인의 잘 빚어진 얼굴과 연습실 천장 조명만이 가득 들어찼다.
“…진짜 더럽게 손 많이 가게 한다니까.”
현주인?
의외의 존재가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에 은찬은 눈만 반복해서 깜빡였다. 얘가 왜 나랑 같이 있어? 현주인은 그런 은찬의 이마에 제 손을 대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열은 없네. 쉬다 가. 여기 잠시 쓴다고 말씀드려 놨으니까.”
“저기……”
뒤로 한 발짝 물러난 현주인에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상황 설명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숙취라도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댕댕 울려댔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은찬을 가만히 보고 있던 현주인은 혀를 차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이어갔다.
“궁금해할 것 같아서 대충 말해주는데, 너 아까 그 복도에서 쓰러졌고… 그거 깨어나길 기다렸어.”
말하다 말고 중간에 공백 있지 않았냐. 뭔가 엄청나게 축약되어 있는 듯한 그 말 뭔데.
“그게 다야?”
“뭐가.”
“말을 하다 만 것 같아서. 그게 끝이야? 네가 나 그 복도 한가운데에서 여기 연습실까지 데리고 와준 거야?”
“…의무실 선생님도 별일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냥 쉬어. 그리고 좀 놔라.”
무심코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은찬은 현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놓았다.
그래도 쓰러졌다 깨어난 사람한테 대답이라도 좀 친절하게 해주면 안 되냐,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그 대상은 현주인이다. 은찬은 더 물으려던 입을 다물고 눈만 가늘게 떴다. 저놈이 날 여기까지 옮겨다 준 것 자체가 기적이긴 한데.
“네가 왜 날 챙겨?”
적당히 돌려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직 정신이 없어서인지 필터링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말하고 보니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마른 입술만 슬쩍 축이는데, 정작 현주인은 별생각 안 드는지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내 탓도 있는데 내버려 두기도 좀 그래서. 진짜 간다. 레슨 시간 너무 지체됐어.”
“어? 응, 그래…….”
솔직히 짜증 내거나 화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의외의 대답에 제대로 벙쪘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미련 없이 사라지는 현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찬은 연습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헛웃음부터 내뱉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은연중에 현주인도 나처럼 회귀라도 해서 정신 차리고 아이돌 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내심 그런 기대감에 젖어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회귀’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걸 보아하니 헛다리를 짚은 듯하지만. 거기다 ‘대가’를 지불하고 스킬을 사용했더니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다.
‘뽑기라고 해서 돈이라도 빼 가는 건 줄 알았더니 체력을 끌어 쓰는 건가 보네.’
그럼 좀 말해주지 그랬냐. 신체적 피해가 오는 건 줄 알았으면 안 썼을 거다. 은찬은 아직도 웅웅 울려대는 머리에 뒷머리를 거칠게 털어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그락-
일어서자마자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묵주반지였다.
‘현주인이 챙겨줬나?’
내 손에 딱 맞는 반지여서 빠질 일은 거의 없는데. 은찬은 허리를 숙여 반지를 챙겨 들고 주머니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온통 이상한 것투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