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3
3. 하트 보인 적 있으신 분?(3)
‘이렇게 쉽게 회귀한다고?’
이상했다. 소원을 들어줄 거였다면 지난 6년간 내가 힘들어했을 때 도와줄 수도 있지 않았나. 간절함을 비교하자면 굳이 대볼 필요도 없이, 그때가 훨씬 더 컸을 거다.
원하던 상황에 놓였는데도 불구하고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던데.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어떤 속셈으로 날 회귀시켜서 이런 이상한 시스템창까지 띄우는 건지 알 방법이 없으니 불안감부터 앞섰다.
‘뭐… 이때가 꿈과 희망이 가장 넘쳐나던 시기는 맞긴 하다만.’
그래도 회귀 시점만큼은 베스트라고 볼 수 있겠다. 이때 나는 아이돌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지금이라면 헛꿈 꾸지 말고 빨리 다른 길 알아보라고 했겠지만.
“아!”
“엄살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 팔에서 둔탁한 소리과 함께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형, 뭐 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답도 없고…….”
은찬을 묘하게 바라보던 가을이 눈앞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오늘 왜 그래? 잠 못 잤어? 왜 이렇게 멍을 때려. 아직 어지럽나?”
“어? 아, 괜찮아.”
사실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며 걱정받을 처지는 아닌데.
재빨리 얼굴에서 당황을 지워낸 은찬이 애써 미소 지었다.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힘깨나 쓴 쪽은 가을이니까. 아까 쓰러졌던 날 휴게실로 데려가 깨어날 때까지 돌봐준 것도 가을이었고. 나보다 어린 동생한테 걱정 끼치는 것도 미안해져 더 쌩쌩한 척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다다음 번이 우리 차례야. 지금 주인이 한다.”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니 가을의 말대로 현주인의 월말 평가가 한창이었다.
무표정으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댄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보컬 코치님, 그리고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김광춘 대표님까지.
현주인은 준비한 솔로 무대를 끝마치곤 고개를 꾸벅이며 퇴장했고, 이어서 도이선과 서주혁의 2인조 무대가 시작됐다.
이 모든 게 이미 겪었던 일이라 익숙하긴 했으나, 잘 와닿지는 않았다.
‘…확신이 필요해.’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인지하긴 했다. 하지만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비현실적인 일이다 보니 아직도 조금 긴가민가했다. 뭔가 확신할 만한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아, 그거다.
“…가을아, 애교 좀 부려봐.”
“징그럽게 뭐라는 거야. 그딴 걸 어떻게 부려. 소름 돋게…….”
가을은 양팔을 교차로 접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애교의 ‘ㅇ’ 자도 모르던 과거의 가을이다.
‘데뷔 후에는 애교 자판기였으면서.’
과하다며 욕먹기도 했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게다가 그 컨셉이 나름 잘 맞았는지 처음엔 그렇게 애교 부리기 싫어하더니, 데뷔 연차가 쌓일수록 때와 장소 안 가리고 끼 부리던 게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근데 왜 끼 스탯은 겨우 별 2개였지?’
아무튼 오랜만에 이런 가을의 모습을 보니 이쪽도 나름 귀엽게 보였다.
“와, 나보다 작네…….”
그러고 보니 나보다 살짝 작은 키까지. 데뷔 후 1년 사이에 키가 훌쩍 커버려서 그 뒤론 쭉 올려다봤었는데.
확실히 고등학생 티를 막 벗어낸 스무 살 연가을이 맞았다. 무의식적으로 가을의 머리를 쓰다듬던 은찬에게 가을이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왜 이래?”
“그냥. 동생 귀여워서 그렇지.”
‘그 숫자 같은 거 다시 못 보나?’
막상 회귀했다는 걸 실감하니, 머리 위에 떠 있던 하트와 숫자들이 내심 신경 쓰였다.
그걸 다시 볼 수는 없을까. 아까는 정신이 없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살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러다 회귀한 이유 같은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속으로 ‘아까 그거 보여줘!’ 하고 몇 번 외쳐봤으나 다시 보이진 않았다.
“어……?”
갑자기 오한이 드는 동시에 몸살감기처럼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이제 곧 우리 차례라고 했는데, 또 쓰러질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된 상황이든 간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가을이에게 티 나지 않도록 뒷목의 식은땀을 훔쳐내던 은찬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잔여 횟수가 없는데 억지로 보려고 하면 안 되나?’
하루에 다섯 번. 그 이상을 보려고 하면 이렇게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좀 전에도 그래서 쓰러진 거고.
‘조금 귀찮네… 이렇게 애매한 능력을 왜 준 거야?’
어차피 딱히 쓸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남의 호감도 같은 거 봐서 어디에 쓴다고. 게다가 마이너스라면 내 기분만 안 좋아질 게 뻔하다.
“형, 진짜 괜찮아? 힘들면 말해. 순서라도 미뤄달라고 말씀드려 볼게.”
“야냐! 완전 멀쩡해. 봐봐.”
은찬이 괜히 팔근육에 힘을 주며 가을의 앞으로 내밀었다. 가을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왔지만 은찬의 태도에 더 말을 얹기를 그만둔 듯 보였다.
“…그래, 그럼. 얼른 끝내고 쉬자.”
“응, 걱정해 줘서 고맙다.”
몸을 비틀어 거울을 제대로 마주했다. 그 속에는 반팔 티셔츠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아직 어린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피어싱 하나 없이 깨끗한 귀까지. 완벽히 과거의 ‘나’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월말 평가는 빠질 수 없지. 다음이 어디 있다고.’
오늘 평가를 놓치면 데뷔도 없던 일이 된다.
“그나저나 월말 평가는 항상 떨린단 말이야. 형이랑 주혁이야 이미 데뷔조 확정이지만. 솔직히 둘은 순위 매기는 것도 그냥 절차상으로 하는 거잖아.”
가을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은찬의 그룹인 칠월칠석은 5월부터 데뷔조를 확정 짓고 연습했으니 지금이 딱 데뷔 전 마지막 평가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뷔 후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은찬이 돌이켰던 시기이기도 했다. 데뷔조가 완벽히 정해지기 직전인 데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던 날.
‘어쩌면 그동안 내가 너무 착하게 살아서 신이 안쓰럽게 여기셨다든가?’
은찬은 고개를 저으며 쓸데없는 생각들을 털어냈다. 헛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과거로 돌아온 거라면 이 기회를 홀랑 날려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준비했던 걸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형, 나 응원해 줘. 같이 데뷔하게.”
“어? 응, 당연히 같이 해야지.”
가을이는 꽤나 긴장한 모양인지 주먹을 쥔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온몸으로 떨리는 티를 내고 있지만 눈빛은 반짝이고 있는 모습에, 은찬 또한 묘하게 긴장이 옮는 것 같았으나 그 기분이 싫진 않았다.
무엇보다 가을이의 그 모습이 안쓰럽다기보다는 풋풋하고 귀여워 보였다. 연습생 시절 유은찬이라면 본인도 떨기 바빴겠지만 지금은 27살 유은찬이라 그런지 나름 여유가 있었다.
“엊그제 맞춰본 건 괜찮았는데… 역시 나는 춤이 모자라서 힘들려나.”
“가을이 너는 보컬이 독보적이니까 괜찮아.”
“뭐야.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가을이는 엄청난 위로를 받은 것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어차피 가을이가 원하는 대로 될 거다. 우린 칠월칠석으로 같이 데뷔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실수 안 해.”
가을이는 ‘와, 자신감.’ 하고 질색하듯이 대꾸했지만 딱히 개의치 않았다.
정해진 미래대로 흘러간다면 가을이는 이번 기회에 데뷔조 메인보컬 포지션을 맡게 되고, 이번 월말 평가 상위권 중 두 자리는 우리가 가져갈 거다.
“주혁이랑 이선이 잘 준비해 왔네. 다음 유은찬, 연가을 나와.”
♪♬♩-
“은찬이는 보컬 연습에 좀 더 집중하면 되겠고, 가을이는… 저번보다 많이 나아졌네.”
“네, 은찬 형이 도와줬어요.”
“응, 은찬이 잘하지. 그래. 들어가 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과거와 똑같이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때 월말 평가 무대를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솔직히 중간에 틀릴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체력도 연습생 시절 그대로라서 곡을 끝내는 데에 무리가 없었고.
실력이나 스킬적인 부분에서는 생각만큼 안 따라주는 면이 있긴 했지만, 이 당시의 나는 원래 이 정도였다. 애초에 데뷔 전 연습생과 망돌이긴 해도 6년 된 아이돌이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지. 그간 발전이 없었다는 소리니까.
‘기억은 27살 그때 그대로 남아 있고 신체는 21살이라니.’
타임 리프물의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회를 얻어서 탄탄대로를 달리는 주인공 캐릭터에 어울리는 놈이 아닌데.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그래 봤자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부정적인 생각이 충돌했다.
‘하지만 이게 진짜라면… 내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연습실 특유의 삐걱거리는 운동화 마찰음도 거슬린다기보다 마냥 기분 좋게 들렸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내가 밟는 마룻바닥이 대리석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형.”
“어?”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연습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불러 세웠다.
[ 현주인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얘가 왜 이래.
연습생 시절 현주인과 나는 굳이 말을 섞을 만큼 친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너무나도 뜬금없는 놈의 등장에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짜잔, 꿈이었습니다!’ 이러는 건 아니겠지?
실시간으로 커지는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목울대를 울렸다.
“형 멋있던데요.”
…이런 기억이 있었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고맙다?”
“네, 파이팅.”
솔직히 현주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이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얘가 사고 치고 다니기 전까지는 우리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현주인을 다시 보게 되면 껄끄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현주인 호감도도 확인할 수 있으려나?’
오늘은 잔여 횟수가 남아 있지 않지만 다음에 마주치게 된다면 한 번쯤은 확인해 봐도 될 것 같았다. 우리 사이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테니까.
할 말은 그게 전부였는지 쿨하게 뒤도는 현주인과 그 옆의 매니지먼트팀 실장님의 모습만이 은찬의 시야에 담겼다.
‘월말 평가 끝나자마자 촬영 가나 보네.’
이 시기의 현주인은 드라마를 찍고 있는 중이라 아이돌 데뷔에 딱히 미련이 없었다.
회사 공개 연습생이긴 했지만, 아역배우 출신이라 애초에 배우로 입사했던 애다.
이번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도록 내버려 둘까. 아이돌 하기 싫어서 결과적으로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버린 것 같으니.
‘일단은 좀 지켜보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지금은 전보다 여유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게 나을 듯하다. 과거에는 데뷔에만 급급해서 정신이 없었으니까.
내가 아는 미래대로 흘러간다면, 나는 엄청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무난히 데뷔하게 될 거다. 민망하기는 하지만 이래 봬도 이때는 대표님이 가장 아끼는 연습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거겠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얼핏 알고 있으니 미리 대비한다면 전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이번에는 멤버들끼리 단독콘서트를 꼭 해보고 싶어!’
이전 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 그리고 이전의 칠월칠석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단독콘서트.
이왕 회귀한 거, 아이돌로서 제대로 된 소원 하나쯤은 이루고 싶었다. 해피 엔딩을 꿈꿔본 지 하도 오래되어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게 조금 힘겨웠지만, 이번에는 조금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