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32
32.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2)
새벽 동안 몸을 뒤척이며 생각을 해본 바, 이왕 컴백한다는 사실이 흘러 나갔으니 앨범 컨셉까지 스포를 해서 그 관심을 이어가도록 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기는 했다.
1. 없던 일이라는 듯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기
→ 앨범 컨셉이나 곡이 공개된 건 아니므로 아직 추측을 할 여지가 남아 있긴 하다. 단, 안전성에 비해 화제성은 떨어진다.
2. 팬들에게 컴백 관련 투표를 진행하기
→ 컴백 관련 투표를 진행해서 팬들이 타이틀곡을 고르도록 하면 어떨까. 아이돌 팬들이 투표나 순위에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익히 검증된 사실이다. 안전성이 떨어지는 반면 화제성을 챙길 가능성은 크다.
…이 정도인데.
‘첫 번째 방법은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두 번째 방법은 팬들끼리 많이들 싸우고 답답해하시던데…….’
굳이 투표 같은 걸로 팬들끼리 싸움 붙일 필요는 없겠지. 확실히 이목이야 집중되겠지만 그런 날 선 반응은 원하지 않는다. 어떤 의도였든 경쟁을 붙이기 시작한다면 불가피하게 서로 깎아내리고 날을 세울 테니까.
우리 팬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걸 보고 싶진 않다. 좋은 것만 보게 해주고, 좋은 노래만 듣게 해줘도 모자랄 판에.
그래서 저 두 개의 아이디어는 지우고, 적당히 반반씩 섞은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역시 곧장 컨셉을 노출시켜서 관심을 이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그것도 혼날 건 혼난 후에야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대표님이 어젯밤에 보낸 메시지를 바라보던 은찬이 깊게 심호흡했다.
***
칼같이 오전이 되자마자 찾아온 매니저 형은 등교한 나머지 멤버들을 제외한 은찬과 가을을 차에 태우고 묵묵히 회사로 향했다. 어제는 시끌벅적한 게 퇴근한 뒤 즐거운 저녁을 보내시는 것 같더니, 지금은 싹 굳어 있는 매니저 형의 얼굴을 보자 은찬도 속이 쓰렸다.
‘죄송하네… 매번 고생하시는데.’
안색은 허옇게 질려서 자꾸만 손바닥을 바지에 비비는 모습을 보아하니 긴장하신 게 분명하다. 하긴 나라도 긴장되고 당황스러웠겠지.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고가 터졌으니까.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기죽지 마라, 나의 아가들아.’
저 말과 함께 우리를 세미나실로 올려 보낼 땐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대표님, 저희 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성인이 아직 너희 둘밖에 없구나. 나머지는 학교 갔고? 리온이는?”
나란히 선 은찬과 가을을 번갈아 바라보던 대표님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고는 턱을 괴며 천천히 입을 달싹거렸다.
“리온이는 곡 한번 다시 살펴봐야 해서 나머지 애들이랑 같이 온다고 했어요.”
“뭐, 너희가 말은 더 잘 통할지도 모르니… 나쁘지 않겠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은찬은 지금 대표님이 어지간히 짜증이 난 상태라고 판단했다.
‘어제 메시지 말투부터 다른 것 같긴 했는데…….’
정말 예민해지신 듯, 태블릿 화면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대표님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표정을 구겼다.
가을이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은찬이 그런 대표님을 향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표님, 일단 리더가 되어서 제대로 멤버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죄송합니다.”
“어? 아냐.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살짝 고개를 숙인 은찬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장 먼저 매 맞으려고 사과부터 한 건데, 안 먹히는 건가?
물론 사람 좋은 편이신 대표님께서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은 없으시겠지만, 별이에게 모든 질타를 받게 하는 것도 좀 그래서 나섰던 건데.
“은찬이, 고개 들고 나 좀 보자. 가을이도.”
“……?”
대표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자 정면에 태블릿 화면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오브 얼쓰’ 동 시간 시청률 19.7%… 팬들 사이의 ‘경쟁’도 시청률의 핵심 요소]은찬과 가을의 시야 바로 앞에 들이밀어진 화면 속에는, 주혁이 참가했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은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이미 끝난 프로그램이잖아요? 저희 중에 오디션 나갈 애도 없고… 만약 그런 생각이시라면 데뷔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주인이도 이제 합류해서…….”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계속 봐봐.”
혹시 이미 데뷔한 우리를 데리고 새 시즌에 참여하게 하려는 명목인가 싶어, 지레 식겁한 은찬이 말을 주저리 늘어놓았으나 다행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손이 땀에 젖은 것같이 축축했다. 속으로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은찬이 다음 페이지를 눈으로 좇았다.
그건 어제 은찬도 보았던 팬들의 반응 중 하나였다.
—–
ㅈㄴㅅㅅ 컴백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ㅋㅋㅋ
실은 말실수 아니고 어그로 노림수 아님?
지금 그래서 무슨 컨셉이냐고 다들 궁예질 중이잖음
이렇게 된 거 컨셉 공개하든가 우리한테 고르게 해줘봐라ㅇㅇ @미닛츠김광춘
공유 37 인용된 글 30 마음에 들어요 720
—–
‘공유가 많이 된 것도 아니고, 검색도 안 걸리게 초성으로 써놨는데 대표님이 이걸 어떻게 찾으셨지……? 혹시 본인 이름 검색하셨나…….’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대표님의 눈을 마주 보았다. 대표님은 무언가 엄청난 생각이라도 해냈다는 듯 입가에 뿌듯한 미소를 걸고 있으셨는데, 아까의 차분하고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런 거라면 좀… 웃긴 것 같기도.’
곁눈질을 하다 가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가을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는지 시선 교환 중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갈 뻔했다. 대표님이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골랐다.
“이렇게 된 거 컨셉 두 개를 투표 붙여서 팬들한테 고르게 해보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이지?”
“예?”
아,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셨던 게 이 이유였나.
“별로냐?”
‘와, 진짜 기가 막히게 이런 생각을 하셨네. 뇌트워크 공유라니 좀 그렇다.’
은찬은 당장 ‘네, 별로예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걸 겨우 참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체했다. 다행히 가을이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한마디로 은찬과 가을 모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버린 아이디어를 이렇게 딱 가져오실 줄은… 대표님 감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오히려 대표 입장이어서 철저하게 이런 생각만 할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팬에 대한 생각은 우리보다 덜할 수밖에 없을 테니. 화제성 모으고 돈벌이만 된다면 회사 입장에서야 땡큐겠지. 그렇다고 용인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황한 가을이 은찬의 팔 쪽을 살살 만져왔다. 어떻게 하냐는 듯한 제스처였다. 지금 여기서 논의를 할 수도 없고. 은찬은 길고 느린 숨을 내뱉은 뒤 대표님의 눈을 마주 보았다.
“대표님, 그럼 혹시 지금 생각해 두신 컨셉 있으세요? 컴백 사실은 둘째 치고 아직 저희한테도 컨셉 안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서프라이즈라고 더더욱 입단속 시키셨겠지만.
“아아, 맞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말해줘야겠지. 원래는 하이틴 컨셉으로 진행하려고 했어. 미리 말해줬으면 큰일 날 뻔했네.”
“하하…….”
가볍게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왠지 뼈가 느껴지는 말에 은찬은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억지로 눈을 접고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데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하이틴?’
예전에 현주인 합류 당시 보았던 여러 가지 SNS 반응들 중에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얘네 이번에 하이틴 컨셉으로 컴백한다던데 현주인도 껴서 7명으로 컴백하는 거 아니냐던.
인터넷상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그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게 찍어서 맞힐 수 있는 부분인가?
“혹시 컨셉에 대해 미리 알려준 멤버 있어요?”
“응? 없는데? 너희가 처음이야.”
멤버들도 모르는 컨셉을 어떻게 알고 정확히 맞혔지?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컨셉이었으니 그냥 추측으로 때려 맞힌 건가. 뒷골이 조금 쎄해지긴 했으나 이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다.
지금은 팬들에게 투표를 시키겠다는 대표님의 의지를 철회시키는 게 먼저였으니.
“대표님, 저는 그 하이틴 컨셉 요즘 감성에도 맞고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컨셉 두 개를 투표 붙이기보다는 우선 이 컨셉 티저를 찍고 천천히 푸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컨셉이 두 개면 회사도 일을 두 배로 해야 하고, 팬들끼리 분란도 일어날 것 같아서요.”
“저도 투표는 좀 그런 것 같아요…….”
은찬의 오목조목하고 논리정연한 주장에 심히 공감했는지 가을이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조했다. 오로지 대표님의 표정만 미동이 없었다. 은찬은 잘 알았다. 대표님의 저 표정은 들어줄 생각이 없을 때 짓는 미미한 미소라는 걸!
“아니, 내가 장담하는데 이렇게 하면 관심 끌 수 있다니까, 얘들아?”
이건 회유를 가장한 통보다. 이미 강경하게 생각을 굳힌 것 같은 대표님은 은찬이 말한 내용 중 어떠한 부분에도 공감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하이틴이 요즘 감성이긴 하지만 너희가 굳이 유행 따를 필요는 없고… 다른 컨셉을 보고 싶어 하는 팬도 있을 거 아니냐.”
그 다른 컨셉이 이상할 게 뻔하니까 문제라는 거지!
“그리고 관심도도 높일 수 있는데? 컨셉 티저 천천히 풀어봐야 그것만 못해. 그 왜… 너희들 말로 ‘어그로’라는 말도 있잖냐.”
“…대표님… 그렇긴 한데요… 제 생각에도 차라리 한 컨셉에 집중해서 퀄리티 높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직 투표로 관심 끌 만큼 팬덤도 확고하지 않고요…….”
“봐봐, 가을아. 너도 지금 애매하게 말하잖아. 확신할 수 있어? 투표 한번 해봐. 나머지 컨셉 하나는 뭐가 좋을지 생각해 보자고.”
가을이의 지당한 설득도 듣지 않으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답답해져 왔다. 우유 없이 고구마를 먹어도 이것보단 나을 거다. 은찬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확신한다. 아직 팬층이 두텁지도 않은데 투표를 붙였다간 그나마 붙은 코어층들도 죄다 박살 날 게 뻔하다. 실제로 칠월칠석 때도 팬덤끼리 싸우다가 다른 아이돌 찾아 떠났다고.
‘이럴 때 마인드 컨트롤 한 번 더 쓰면 딱일 텐데. 그동안 욕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그 뽑기를 돌리려면 ‘업적’을 달성해야 하지 않았던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업적 달성을 바라긴 글렀으니 도박이긴 하지만 대가를 지불해 뽑기 이용 횟수를 구매해야 했다. 저번에도 가능했으니 이번에도 되겠지. 막연한 생각이긴 했지만 은찬은 마인드 컨트롤이 나오길 간절히 빌며 속으로 되뇌었다.
‘빨리 좀……!’
반사적으로 목에 건 묵주반지를 매만지면서.
[ 뽑기 이용 횟수 구매 시 ‘대가’가 지불됩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곧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은찬은 오른쪽에 위치한 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때 체력이 깎이는 게 그대로 느껴져 다시는 무모하게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결국 이걸 또 쓰는군.
[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구가 바뀌자마자 목부터 심장 근처까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은찬이 입술 안쪽 살을 세게 깨물었다. 곧 누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심장 부근을 미친 듯이 밟는 것같이 아파왔다.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 속으로 5성이 나오기를 반복해 빌었다. 그동안 극악 확률을 잘만 뚫어왔으니까 이번에도!
‘무지갯빛……!’
[전용] ★5 선호도 파악은찬의 기대치가 밑으로 쑥 떨어졌다. 5성은 5성이긴 한데,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싶어 당장 대표님을 바라보았다.
[ ‘김광춘’ 님은 ‘아집’과 ‘무시’를 싫어합니다. ]그래도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은찬이 가을의 손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님! 저희 3시간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