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38
38. 악연과 필연(4)
본론을 깨달은 듯 은찬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이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알 수 없는 은찬의 표정 변화에 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할 말 있으면 제대로 해.”
“아냐. 별건 아니고…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분명히 용건이 있었는데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는 걸 주인 역시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역배우 활동을 하며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뛰어들었던 주인이다.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거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이런 쪽에 예민하다면 예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주인의 눈에 비친 은찬은 분명 할 말이 있었는데 삼킨 모습.
하지만 굳이 캐묻는 성격도 아니고 귀찮은 일을 만드는 건 질색이라 적당히 분위기 맞춰 바뀐 주제에 대해서나 얘기하기로 했다.
“무슨 부탁.”
“별건 아니고… 너도 이제 성인이니까 어디서 자든 신경 안 쓸게. 근데 연습만은 열심히 참여해 주면 안 되냐? 막상 하면 제일 잘하면서 왜 안 하는 거야.”
“또 그 말이야?”
“어, 또 이 말이야. 그리고 단톡방에 매번 공지 올리는 거 답장 좀 해줘. 민망하니까.”
“그래. 시간 맞으면.”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찬은 무언가 개운치 못한 듯 왼손으로 머리를 살짝 감싸 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은 이만 갈게.”
대화는 흐지부지 종결됐다. 주인이 무의식적으로 은찬을 불렀다.
“유은찬.”
“어?”
뒤돌아본 은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에 살짝 당황한 주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자 은찬이 손을 흔들며 현관으로 향했다.
패기 좋게 이곳에 들어오던 때와 달리 축 처진 뒷모습이었다.
***
‘그땐 그랬지…….’
정말 협조할 의향이 있다면 이번엔 전처럼 스캔들을 몰고 다니진 않을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 괜한 노파심에 현주인을 쳐다보며 말문을 텄다.
“야, 너 왜 회… 윽!”
“뭐?”
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따가움에 은찬이 목을 반사적으로 감싸 쥐었다.
앗차, 현주인에게 확답을 들었다는 기쁨에 무의식적으로 ‘회귀’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낼 뻔했다. 제법 놀란 듯한 현주인의 모습을 확인한 은찬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얘는 내가 회귀라는 말 못 하는 걸 알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거야?’
설마하니 이 새끼가 나 아파한다고 놀랄 놈은 아니잖아.
“컥, 큼큼… 야, 너 어떻게 왔어?”
목에서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아까 목에 가해진 데미지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
현주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대놓고 물어봤나.
“나는 아마도 죽어서 여기 온 걸 거야.”
현주인의 표정이 설핏 움찔거렸다.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여전히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웬만하면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고 싶은데. 나야 죽어서 왔다지만 얘는 다른 방법으로 왔을 확률이 높으니까. 성격상 시스템이랑 거래 같은 걸 했을 수도 있고.’
스킬을 써볼까. 마인드 컨트롤이 또 나와준다면 저놈한테서 듣고 싶었던 것들을 다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편하다고 해도 남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찝찝한 마음 또한 공존했다.
그렇다고 은찬이 이런 중요한 일을 그냥 넘길 만할 성격은 아니었다.
‘일단 얘가 입을 열어야 앞으로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
최소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정도는 들어둬야 한다.
“현주인, 넌 어떻게 왔어?”
“…왜 이렇게 끈질겨? 그게 그렇게 궁금해?”
현주인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약간의 욕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역시 스킬을 써야 하려나.
스탯창의 행운 스탯이 만점이었던 게 계속해서 5성 스킬을 뽑았던 것과 연관이 있어 보였으니 뽑기 결과가 안 좋을 거라는 걱정이 들진 않는다. 현주인에게 그걸 두 번이나 쓰는 게 거슬릴 뿐이지.
‘현주인은 나보단 늦게 회귀했을 테니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
[획득 가능 스킬 리스트](스킬 레어도 – 획득 확률)
[전용] ★5 – 0.00001 %★5 – 0.0001 %
★4 – 1 %
★3 – 10 %
★2 – 33 %
★1 – 55 %
-현재 유은찬 님의 뽑기 사용 가능 횟수 : 1
—–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은찬이 뽑기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분위기 왜 이래요?”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리온이 나타났다. 은찬의 시선이 리온에게 쏠리자 시스템창은 사라졌다.
‘…따로 물어볼 기회를 잡아야겠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
은찬이 리온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워낙 표정 관리를 못하는 편이라 리온의 앞에서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포커페이스는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은찬은 살짝 묘한 웃음을 지으며 현주인을 향해 말했다.
“애 앞인데 욕은 하지 말자, 주인아.”
“핫, 하하.”
그러자 현주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침대에 다시 주저앉더니 그대로 널브러졌다.
‘하나도 안 웃긴 상황인데… 뭐야?’
저렇게 웃는 현주인을 본 게 워낙 오랜만이라 은찬이 얼굴을 찡그렸다. 싫다는 게 아니라, 너무 의외라서. 왜 저렇게 웃는 건지 궁금할 만하잖아.
“형들, 제가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달라고…….”
“아, 아냐. 싸우는 거 아니야. 그렇지, 현주인?”
“뭐…….”
“네, 그렇다고 쳐드릴 테니까 문에 붙여둔 주의 사항 다시 한번 읽어주세요.”
들어오자마자 쎄하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에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리온이 한숨 쉬며 말했다. 나와 현주인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번갈아 바라보기도 했으니 아마 우리 둘이 싸우고 있던 거라고 확신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말릴 생각 또한 없어 보였다.
은찬이 가방을 정리하는 리온을 뒤로하고 누워 있는 현주인의 근처에 가 몸을 숙였다.
“물어볼 거 많으니까 나중에 나 좀 봐.”
“…글쎄. 들을 것도 별로 없을 텐데.”
“웃기고 있네.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냐.”
일부러 리온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소근거렸는데 이 자식이 도와주질 않는다. 현주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평소와 같은 목소리 톤으로 대답했다. 당황한 은찬은 입매를 구기며 눈으로는 리온을 좇았다.
“협력하겠단 것도 진짜니까 작작 캐물어.”
“널 믿으라고? 지금까지 모르는 척했잖아.”
“…어차피 도와주려고 온 건데. 싫음 말고.”
“뭐? 그게 무슨……!”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네, 이게.
“형…….”
반사적으로 언성을 높이자 이번에는 현주인의 시비 대신 리온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대놓고 질책하는 게 아닌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을 은찬도 아니었다.
“미안… 우리 막내 피곤하지. 우리 이제 자려고, 하하. 잘 자~”
겨우겨우 입꼬리를 올리며 현주인 옆자리를 벗어났다.
어떻게 하나를 해결하면 또 의문점이 생기냐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속으로 혀만 차고 있는데 문득 책상 서랍 한편에 숨겨두었던 소년미 앨범이 생각났다.
‘맞아. 저것도 있었지.’
이 원인 모를 회귀 후, 현주인을 내 편으로 둘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
저놈의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일단 같은 현상을 겪고 있고,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고 있으니 말이 잘 통하긴 할 거다. 거기다 같은 그룹 멤버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같은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으니 일단은 본인 말대로 협력해 줄 것이다.
‘혹시 현주인이 소년미 앨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지.’
어차피 본인 입으로 도와주려고 온 거라고 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현주인이 거짓말을 하는 놈은 아니다.
***
그 이후로 시간은 소란스럽고 빠르게 지났다. 현주인과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을 정도로.
‘저 자식, 설마 일부러 날 피하는 건 아니겠지?’
그 이후로 은찬은 현주인을 불러낼 만한 타이밍을 틈틈이 엿봤지만 소득이라곤 없었다. 룸메이트인데도 현주인이 항상 이선이, 주혁이와 같이 있는 통에 도저히 둘이서 얘기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쟤네들… 적당히 어울려 다니는 정도였지, 저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은찬이 기억하는 현주인은 분명히 독고다이였다. 근데 이상하게 이번 생에는 유독 셋이서 붙어 다니는 것 같단 말이지.
게다가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다 같이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멤버들이 왕창 있는데 갑자기 한 명만 불러내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현주인이 누구를 피해 다닐 성격은 아닌데…….’
의심스럽긴 했으나 어쨌든 그 이후로 파트 분배와 녹음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리온이가 갑자기 실력이 상승한 것 같다며 내게 지난번 활동보다 많은 파트를 분배해 줬기에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으니까, 뭐.
‘스탯 분배가 확실히 효과는 있는 것 같아.’
회귀 전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올라가지 않던 음역대까지 순조롭게 올라가다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보컬 스탯 만점인 가을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만간 리드보컬 타이틀은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운동부 유니폼을 메인으로 한 티저 촬영 또한 결과물이 좋았다.
오늘 자정, 첫 번째로 주혁이의 티저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진행한 덕에 대중들의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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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데뷔는두번이제맛이지 @jaesoosang_1
와 이번에 서주혁ㅋㅋㅋㅋㅋㅋㅋ
완전 걍 상견례 문전박대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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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jaesoosang_1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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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마렵다 @23KFKDNS2
근데 얘는 어떻게 저런 상큼한 컨셉에
저런 반바지를 입고도 양아치 같냐ㅋㅋㅋ
날티 ㅈㄴ 좋음 진짜
ㄴ @23KFKDNS2 님에게 보내는 답글
학교 ‘잘’ 나가는 놈이 아니라 학교 ‘안’ 나가는 놈 같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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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은찬과 대표님의 ‘어그로’ 작전도 성공이라고 말할 만했다.
은찬이 안도감에 작게 숨을 내뱉었다.
‘컴백에는 별문제 없겠어.’
“으음, 별아. 내 생각엔 너 거기 박자 안 맞는 것 같은데.”
“헉, 진짜? 으아… 여기만 수십 번 연습했는데… 아직도 안 맞아?”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엔 별이를 사이에 둔 이선과 주혁이 있었다. 셋이서 안무를 맞춰보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이선은 별이에게 안무에 대해 이야기하다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까지 정지시켰다. 그러자 주혁의 표정이 못마땅하게 찌푸려졌다.
이번 컨셉을 위해 더욱 파랗게 염색해 예전의 블루블랙보다 한 톤 밝아진 주혁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냐. 홍별, 너 지금 맞게 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대로 해.”
“어엉……?”
“뭐, 주혁이가 맞다면 맞는 거겠지~ 내 눈이 이상했나 보네. 내가 연습 부족인 건가?”
“어, 네가 연습 부족이야. 그러니까 애 좀 그만 잡아.”
주혁의 타박에 이선의 입술이 빼죽 튀어나왔다. 저 둘이 하는 대화야 늘 저런 식이었으니 별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그 사이에 낀 별은 전혀 편치 않아 보였다.
이선이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고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은찬에게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난 그냥… 아직 네가 불편해 보이길래.”
“별아!”
상황을 지켜보던 은찬이 그 틈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깜짝 놀랐는지 동공이 흔들리는 주혁과 요령 좋게 살짝 상체를 앞으로 뺀 이선이 은찬을 바라봤다.
“별아, 나랑 같이 음료수라도 좀 사 오자. 너희 뭐 마실래?”
“…그냥 물 마실게요.”
“형, 저는 파X에이드요. 감사합니다.”
확실히 눈치 빠른 둘답게 의도를 곧장 파악한 모양이다. 주혁은 한숨을 내쉬었으며, 이선은 여전히 생글거리는 낯으로 은찬에게 별이를 토스했다.
울상 짓고 있는 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 대꾸도 못 하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이 표정에서 뚝뚝 묻어났다.
그런 별이의 어깨를 붙잡고 밖으로 나서려던 참에 리온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곡명 정했어요.”
연습실 구석에 주저앉아 뭔가 막 하더니만, 계속 뒤엎던 곡명을 드디어 정했나 보다.
‘우리 막내가 또 얼마나 멋있는 타이틀을 붙여줬으려나.’
특히나 가사가 마음에 와닿던 노래다. 나를 보면서 영감을 떠올렸다더니 어떻게 이리 공감 갈 수 있는 가사를 만들어냈나 싶을 정도로.
마음 같아서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붙잡아서 ‘한 번만 들어보세요. 이번 우리 노래 완전 대박 아니에요?’ 하고 주접이라도 떨고 싶은 심정이다.
기대감에 찬 은찬의 시선이 리온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