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
4. 하트 보인 적 있으신 분?(4)
“하아…….”
은찬이 티셔츠 밑단으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며 숨을 내뱉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6년 전으로 회귀했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쉽사리 진정할 수가 없었다. 신기하고 두근거리는 건 둘째 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더 컸다.
연습실을 나가면 원래의 27살 유은찬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갑자기 과거로 돌아온 만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 또한 쉽게 발생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드는 탓에, 평가가 끝나고도 계속 연습실에 남아 아무 생각 없이 춤만 췄더니 그제야 좀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우선 감사 인사는 해야 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바라던 대로 시간을 되돌려 줬으니. 단순히 사고로 발생한 우연이든 그게 아니든 결과적으론 고마웠다.
‘만화에서 보면 꼭 그동안 안 들리던 목소리가 들리던데.’
혹시나 뭐가 더 있지는 않을까 싶어 속으로 인벤토리를 생성해 달라고 요구도 해보고 허공에 다른 게 뜨지는 않나 두리번거려 보기도 했지만 그 하트와 별, 그리고 시스템창이 전부인 것 같았다.
‘좀 전에는 무슨 스킬도 주던데. 마법 소년도 아니고 뭐야, 대체.’
그렇게 또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자, 춤을 추느라 헐떡이던 숨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
은찬은 연습실 내부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끄고는 연습실 벽면에 붙어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10:58 P.M.]‘너무 늦었네?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연습실 사용 시간은 오후 10시까지.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딱히 상관없으려나.’
이후 후배 그룹인 유토피아가 데뷔하고 나서는 달라졌지만, 칠월칠석 데뷔조를 꾸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나는 가장 예쁨받는 연습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소속사 1호 연습생이기도 했고, 회사의 말이라면 곧잘 들었으니 어른들에게는 꽤나 기특하게 보였을 거다. 그러니 연습 시간 한 시간 정도 넘긴 건 적당히 주의만 주고 넘어가시겠지.
‘스탯창에서 보여주는 스탯, 꽤나 정확한가 본데?’
연습을 하며 느낀 건, 잔기술 같은 부분은 당연히 연습을 더 해야겠지만 유연성과 기본기는 되레 27살이었던 때의 나보다 지금 21살의 유은찬이 낫다는 점이다.
나이가 어린 덕분인지 오래 연습해도 상대적으로 덜 지쳤고. 지금도 멀쩡히 고시원까지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비 올 듯이 땀날 정도로 연습을 하고 난 뒤의 기분이야 항상 좋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김칫국 마시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 상상하는 데 돈이 들지는 않잖아?
***
1. 유은찬
2. 서주혁
3. 오리온
4. 홍별
5. 도이선
6. 연가을
7. 현주인
8. 함정원
9.
10.
11.
12.…….
연습실 문을 닫고 나오며, 오후에 트레이너 선생님이 불러준 순위를 곱씹었다.
3위까지야 거의 고정 순위였으니 그렇다 쳐도, 연습생 생활을 반년도 채 하지 않은 홍별이 4위라니. 캐스팅 전부터 각종 SNS에서 스타 취급을 받아왔으니 끼가 있는 건 확실하겠지만.
‘새삼 대단하네… 그런데 이전에는 6위가 현주인 아니었나?’
현주인은 다른 연습생들이 평가를 받는 동안 구석에서 지루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거나 대본을 외우는 등 개인행동을 서슴없이 해댔다. 누가 봐도 아이돌 데뷔에 흥미가 없어 보일 정도로. 게다가 드라마 촬영 스케줄로 인해 레슨이 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얘도 마음잡고 성실하게 굴면 상위권으로 쑥 올라올 텐데.’
은찬이 봤을 때 연기 빼고 모든 걸 설렁설렁하는 현주인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대표님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건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만했다.
‘…좀 아쉽긴 해.’
자율 연습 몇 번만 더 참여했어도 상위권은 따놓을 재능 있는 놈이 7위에 안주하고 있다는 게 아깝…기는 무슨! 하나도 안 아깝다!
핫, 하고 순간 정신을 차린 은찬은 손바닥으로 제 양 뺨을 톡톡 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도대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냈다. 오지랖이 넓다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어차피 현주인은 연기를 더 하고 싶어 했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너더러 아이돌 하라고 안 한다. 지금 이 거리감 그대로 유지하자. 누군지는 몰라도 그러라고 시간을 되돌려 주신 것 아니겠냐.
그렇게까지 생각했는데 무의식적으로 미련이 남긴 하는 걸 보니, 그래도 옛 멤버라고 아주 신경을 끄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번엔 굳이 나서지 않을 거니까…….’
마음을 다잡은 은찬은 연습실의 불을 끈 뒤 문단속을 했다. 컴컴한 회사 내부조차 지금의 은찬에게는 밝아 보였다.
‘회사 건물 세워지고 6년을 넘게 있었는데 오늘이 제일 반갑네.’
익숙한 정문이 새삼 새로워 보이고 그런 거지. 회귀한 첫날 맞이하는 밤공기는 다른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쾌했다.
***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전에 살던 고시원으로 돌아가던 중, 편의점에 들른 은찬은 평소대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챙겨 들었다.
‘럭키! 이거 품절 안 되어 있네.’
유동 인구가 많은 이쪽 편의점 특성상 조금만 늦어도 삼각김밥이 없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허탕 친 적이 부지기수였고. 다행히 오늘은 딱 하나 남은 걸 차지할 수 있었다.
“…총 3,200원입니다.”
오늘도 4,000원 이하로 끼니 때우기 성공.
가끔 편의점 음식 외에 다른 걸 먹고 싶을 때가 있긴 하나 지금 내 처지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어, 근데 알바생 바뀌었네?’
회귀로 인한 나비효과… 뭐 그런 걸까. 아까 현주인도 그렇고.
예전 일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여기 편의점 남자 알바생만큼은 기억에 꽤나 선명히 남아 있다.
항상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면서도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행동이 빨랐는데, 약간 어두워 보이는 외모까지 눈에 띄었다. 주변에 잘난 얼굴이 많아 그런 쪽으론 무감해진 내가 흘겨볼 정도로.
그런데 지금 카운터에 있는 알바생은 그와 정확히 반대였다.
성별도 여자고, 특히 계산이 느려서 더욱더 대비됐다. 자꾸 이쪽을 흘긋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나 세수하고 나왔는데?’
어쨌든 딱히 급할 것도 없으니 느긋하게 기다리며 집에 가는 길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취 시절을 보냈던 방이니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컵라면이 든 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은찬은 기억을 따라 데뷔 전 살았던 소속사 근처 고시원으로 향했다. 역시 익숙하고 좁으면서도 그리운 장소다.
저 멀리 시골에서 아이돌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올라온 고등학생이 잡을 수 있던 건 그 고시원뿐이었다.
끼익-
계단을 밟자 들리는 삐걱이는 소리에 은찬의 몸이 움찔거렸다.
“으윽.”
맞다. 여기 이런 곳이었지.
새삼스럽게 불편한 것 좀 봐. 그 좁아터진 숙소에 시커먼 남자 놈들 7명이서 생활했으면서도 사람 사는 집에 한번 살아봤다고 이게 불편해질 줄이야.
더욱더 성공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이번엔 꼭 단콘 여는 아이돌이 되고 만다!’
은찬은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
찬물로 샤워를 하며 머리를 냉정하게 굴려보니,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월말 평가에서 현주인의 순위가 떨어진 건 아무래도 회귀로 인한 변화인 것 같으니 정황 정도는 파악해 두어야 한다.
아까는 정신이 없었지만 적당히 검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선, 은찬의 소속사 미닛츠 엔터테인먼트는 설립한 지 얼마 안 됐지만 특이한 연습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신생 소속사답게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미닛츠’ 시스템이었다.
연습생을 데뷔시키기도 전에 티저를 찍어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그로 인해 데뷔하기도 전에 미리 셀럽화 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시켰다.
이미 개인 팬이 있는 연습생들도 몇 명 있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신생 소속사치고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
‘팬이 아니어도 이 중에서 누가 데뷔하게 될지 재미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까.’
서바이벌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보니 인터넷에 이런저런 글들이 오르내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야 비공개 연습생이라 데뷔조를 추린 후에야 공개됐었지만.
‘미닛츠 시스템이 관심 끌기는 딱 좋지.’
이런 상황 속 SNS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도 단연 현주인이었다.
그다음은 서주혁 정도. 둘 다 미닛츠로 공개되자마자 화제성 척도인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갔으니까.
나 같은 경우에는 미닛츠로 공개하지 않고 계속 비공개 연습생으로 있다가 바로 데뷔했다. 이에 조금 서운함을 갖기도 했으나 대표님 왈, 히든카드 같은 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나 뭐라나.
대충 SNS를 훑어보니 네티즌들의 반응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것 말고도 지금 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내 생각대로 굴러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온전히 내 기억과 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없던 친구들도 고향을 떠날 때 다 두고 왔고…….’
나중에 성공해서 호의호식시켜 주려고 연락하는 거면 몰라도 지금 연락하기는 양심에 찔렸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지금 내 편의 하나 때문에 연락하는 건 좀…….
‘쓰레기지.’
그래도 그렇지, 터놓고 만날 사람 하나 없다니.
“나… 새삼 친구 없구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했다. 꽤 씁쓸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나는 서울에 친구라곤 개미 한 마리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를 믿는 수밖에 없네.’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이번만이라도.
‘혹시 나 말고도 미래에서 온 놈이 있다거나……?’
문득 스쳐간 가능성 하나에 은찬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곧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똑-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 찰나의 가능성도 미련 없이 폐기시켰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애초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세상에 실패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컵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밀어 넣으며 다시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낮에 봤던 시스템창 내용이… 어땠더라.’
워낙 경황이 없어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잔여 횟수 앞에 굳이 ‘금일’이라고 적혀 있던 걸 보면 호감도는 내일 다시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근데 쓸 일이 있긴 하려나. 사람 속마음 같은 거 읽어봤자, 도움이 되기보다는 속상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은데. 그냥 호감도 열람은 없는 셈 치는 게 속 편할 듯싶다.
‘근데 시스템창이 말하는 ‘특정 목표’가 뭐지?’
특정 목표를 달성하면 스탯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등장한 히든 이벤트 속 ‘스킬’이라는 건 무언가를 해내야 지급되는 것 같았고.
“으, 딱딱해.”
은찬은 불만을 중얼거리며 사람 하나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에 몸을 끼워 넣었다.
‘일단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수밖에 없나…….’
어차피 망한다고 해도 과거에 겪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최악은 이미 겪어봤으니.
“아, 맞다. 반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반지를 빼내 검지에 끼웠다.
역시 이 반지의 압박감이 느껴져야 덜 불안하다. 제자리로 돌아온 반지를 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머니의 유품인 탓도 있지만 상경했을 때부터 함께해 온 반지이기도 하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