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1
41. 의심의 씨앗(3)
“은찬 씨도 커피가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양손 가득 커피 캐리어를 챙겨 든 백무영 선배가 은찬을 향해 생글거렸다. 아까의 옅던 미소와 달리 악의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웃음이었다.
‘…사람 괜히 의심하고 그러는 거 안 좋은 행동이긴 하지.’
선배는 성격 자체가 솔직한 편이어서 이런 사석에서까지 연기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요즘의 선배야 일취월장으로 성장한 연기력으로 조명받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연기 같은 건 현주인이나 하는 거다. 저 빛나는 얼굴에 의심부터 들이미는 건 좋지 않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자.’
시스템 충돌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는 만큼 의심을 아예 접어두지는 않되, 너무 안일하게 마음을 놓고 있지 않으면 괜찮겠지. 기껏 시간 내서 후배 챙겨주고 사비로 관계자 전원에게 커피 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잖아.
***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다들 적당히 연습해 오고. 뭐, 외모 관리는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럼 본방 날 봅시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는 정말 커피만 전달하고는 일을 보러 가겠다며 미팅룸을 떠났다.
모니터링과 리딩 타임 자체는 전혀 길지 않았는데도 분위기가 꽤 경직되어 있었는데, 종료를 알리는 감독님의 박수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선배들이랑 같이 해서 그런가… 유독 긴장되네.’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도 괜스레 손이 차가워지고 말도 잘 안 나왔다.
“은찬아.”
은찬이 주변 정리를 하고 모든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던 참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며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이리로.”
스타일리스트 누나의 호출이었다.
차 옆에서 손짓을 하던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근처로 다가가기가 무섭게 줄자로 신체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어깨부터 시작해서 허리로 내려올수록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것 같았지만.
“은찬이… 살 더 빠졌어? 치수가 줄었는데.”
“앗, 그래요? 밥 잘 챙겨 먹을게요.”
“있던 것도 수선해야겠다.”
요즘 귀찮다고 저녁을 거르거나 대충 때워서 그런지 살이 빠졌나 보다. 신경 쓸 일이 많아 입맛이 없었는데 의식적으로라도 잘 챙겨 먹어야겠네.
‘살이 빠지면 체력이 줄고, 그러면 무대 설 때 곤란하니까.’
제네시스 단독콘서트에 서는 게 목표인 만큼 체력도 관리해야 하는데. 그동안 좀 안일했다.
어깨부터 발목까지 꼼꼼하게 줄자를 댄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그제야 할 일을 끝마쳤다는 듯 뿌듯한 얼굴로 차 문을 열었다. 회사로 향하는 도중에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은찬이 핸드폰을 찾았다.
[그룹 소년미 출신 백무영, 발 연기 논란 딛고 연기력 무르익어…]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백무영 세 글자를 검색하자마자 나온 기사 중 하나를 읽다 미간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역시 내 기억이 틀릴 리가 없다.
회귀 전 기억에 의하면 선배는 확실히 연기를 못했다. 물론 나한테는 가수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모습부터가 대단해 보이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어디다 잘한다고 명함 내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인기가 워낙 많았기에 캐스팅 제안은 끊이지 않았지만, 항상 발 연기 논란이 동반됐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의 성격과 비슷한 배역만 맡았다. 좀 가볍고, 쾌활하면서 잘생긴 역할.
당연히 정통 드라마에 출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웹드라마, 그것도 청춘물 위주로 출연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선배는…….
‘아예 제대로 배우의 길을 걸으실 셈인가… 지금 찍고 있는 것도 그렇고 진중한 역할 위주로 맡고 계시네. 차기작 배역도 사이코패스 역할이고. 이거 쉽지 않을 텐데.’
검색하다 얼결에 선배의 웹드라마 영상 하나를 클릭한 은찬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연기를 잘한다. 그것도 엄청! 영상 속 선배는 자신이 알던 선배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무대 안 서시려나…….’
위화감에 마른세수를 하고 있자 다 왔으니 내리라는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사 건물의 공용주차장 공기가 유독 쌀쌀하고 습했다. 레슨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여전히 백무영 선배에 대한 의구심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활동은 활동이다. 활동 준비는 열심히 해야지.
‘그러고 보니 오늘 티저 공개 마지막 날이네?’
차근차근 공개된 제네시스의 컴백 티저는 생각보다 더 많은 반응을 끌었다. 그리고 제일 핫한 반응을 끌고 올 것이라 예상,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는 게 바로 오늘.
“리온아, 현주인 아직 안 들어왔어?”
“어… 네. 그런가 봐요. 못 봤거든요.”
“이 새끼는 지 티저 공개되는 날에도 밖이야…….”
곧 있으면 현주인 티저가 올라온다.
연애나 이상한 친목질만 아니라면 그 자식한테 볼일이 많든 적든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자기 티저 나오는 날에는 방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러니까 내가 더 기대하는 것 같잖아.
현주인이 합류한다는 소식을 담은 기사가 진작 나가서 그런지 SNS에는 마지막 순서인 현주인을 기대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구독 계정의 피드는 이미 현주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
노리 @norriiea
오늘 현주인 티저 나오는 날 아냐?
누가 나 좀 기절시켰다가 12시에 깨워줬으면…
—–
팔로하면차단 @anjfqhkhh
오늘은 3시부터 행복해질 수 잇음 ㅇㅇ
12시만 존버 중
—–
현주인데뷔존버성공이다 @Rskdfod2dka
진짜 미쳐버릴거같아… 정신나갈것같아…
시간이너무안가…
——
이미 공개된 다른 멤버들의 티저에 대한 언급이 50.
현주인 티저에 대한 기대가 50.
도합 100의 게시글들이 은찬의 구독 계정 피드를 이루고 있었다.
하긴 현주인의 아이돌 데뷔를 기다렸던 팬들의 입장에서는 지금만큼 긴장되고 기대되는 순간이 없을 테니 공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11:59 P.M.]핸드폰 액정 속 시간을 확인한 은찬이 목울대를 울렸다. 티저 사진을 촬영할 때도 인원을 반반씩 나눠서 진행했기에 현주인이 입는 의상 정도만 알았지, 어떻게 찍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기에 더 기다려졌다.
아이돌로서 마음을 제대로 먹은 현주인의 모습은 어떠려나.
—–
GENESIS(제네시스)
@GENESIS_official
제네시스 두 번째 싱글 [FOOLMOON]
xGENESIS x제네시스
xJUIN x주인
(티저사진)(셀카)
—–
“돌았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육성으로 내뱉었다. 현주인이야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돌 스타일링을 빠방하게 두른 사진 속 현주인은 그냥 CG로 빚은 피사체나 다름없었다.
‘괜히 외모 스탯 만점이 아니구나,’
시스템이 만점을 준 이유를 알겠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비주얼은 백무영 선배 이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주인은 뭐 조금 비슷한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칠월칠석 시절의 그 덥고 무거운 스타일링이야 애초에 현주인한테 맞췄던 거라 당연히 잘 어울렸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된 지금, 이런 청량한 컨셉도 기가 막히게 잘 받을 줄은 몰랐다. 그저 감탄만 나왔다.
‘다 가진 새끼…….’
배우 현주인을 응원했던 게 무색할 만큼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은찬은 액정만 멍하니 바라보다 뒤에서 리온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잘 나왔네요. 구상한 대로 분위기가 나오겠어요.”
공감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리온은 별 대답 없이 은찬의 반응만 살폈다. 그러고는 얼른 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곧 제 침대 위로 돌아갔다.
‘이선이 금발, 현주인 은발. 조화가 딱 맞네. 감격적이다.’
어제 올라온 이선이의 티저와 현주인의 티저를 번갈아 보는데 무척 만족스러웠다. 유은찬의 비주얼 픽 두 명의 상반된 분위기가 제 맘에 쏙 들었다.
이건 대박이 날 수밖에 없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안면 가득 띤 은찬이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
현주인 데뷔했음 @hyundebutplz
현주인 : 잘생길게
김광춘 : 지갑 훔쳐 갈게
나 : 죽을게
—–
Shining Moment @shiningmoment1111
아이돌이란 거… 진짜 좋구나…
공유 50 인용된 글 218 마음에 들어요 320
—–
이번만큼은 은찬도 이견이 없었다. 이런 반응들에 오히려 본인이 더 뿌듯할 지경이었다.
“아씨… 깜짝이야.”
“뭐야. 기분 나쁘게.”
뒤에서 훅 느껴지는 인기척에 깜짝 놀란 은찬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티저의 당사자인 현주인이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인기척 좀 내고 들어와.”
“내 얼굴 보고 있었으면서 말이 많네.”
비록 본체는 저런 성격이지만. 껍데기는 죄가 없다.
‘그러고 보니 진짜 외박 안 하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현주인은 본인이 한 말을 지키려고 하는 건지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퍽하면 개인 활동을 하느라 불참한다든가 회귀 전처럼 연습이나 레슨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문제없이 앞만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제네시스의 성공을 기대해 봐도 되는 걸까.
***
티저 공개 성공적.
앨범 준비는 순조롭고.
녹음 또한 완벽하다.
첫 방송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군무와 디테일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다. 현주인도 이탈 한번 한 적 없으니 이것 또한 금방 해결될 거다.
그사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제네시스의 단독 채널이 생길 거라는 소식이었다.
-너희 컴백이랑 동시에 팬덤명 정하고 단독 채널 오픈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제네시스 단독 채널이라니… 이제 라이브 방송도 할 수 있겠네! 소통 창구가 생겨서 다행이다.’
대표님은 별이의 독단적 라이브 방송 사건 이후로 최대한 빨리 소통 창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신 모양인지, 빠르게 협력체와 논의해 단독 채널을 만들 거라고 공지하셨다.
칠월칠석 활동 당시에도 소통 방식으로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을 가장 선호했던 은찬이었다. 팬들을 눈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어 자주 애용하고는 했으니 제네시스의 단독 채널 개설 소식은 은찬에게 크나큰 희소식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팬덤명.
곧 있을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번에는 까치 같은 이름이 아니길…….’
컴백까지 정확히 일주일이 남았다.
‘생각보다 너무 잘 풀리는데… 이렇게 순조로워도 되는 건가?’
너무 자기방어적인 생각이겠지?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둬서 나쁠 건 없다지만 처음부터 너무 초를 칠 필욘 없다. 게다가 곧 있으면 MC석 올라가야 하니까. 은찬은 자신을 다독이며 양손을 주먹 쥐었다.
“유은찬 파이팅……!”
“시끄러워.”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작게 되뇌었는데 옆에서 딴죽이 걸려왔다. 저 말투와 목소리. 굳이 되돌아볼 필요도 없이 현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너, 여기 왜 있어?”
나야 스페셜 MC라지만, 얘는 컴백이 다음 주인데 연습은 안 하고 왜 여기 있지?
“…볼일 있어서.”
볼일? M사에 갑자기? 그런 말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은찬이 혹시 자기가 놓친 단톡방의 공지가 있나 싶어 핸드폰을 뒤적거리는 사이, 언제 봐도 멋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은찬 씨… 그리고 현주인 씨.”
갑자기 뭔가 한꺼번에 와르르 들이닥쳐서 상황 인지 기능이 고장 나버렸다. 현주인이 이곳에 있는 것도 이상해 죽겠는데, 백무영 선배라니.
“선, 선배! 안녕하세요!”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 잘하고 있나 응원차.”
일단 인사부터 하고 백무영 선배를 반겼다. 백무영 선배는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생글거리며 듣기 좋은 목소리를 건네왔다.
마음 써서 여기까지 와주신 백무영 선배 덕분에 몸에 차 있던 긴장이 싹 내려간 기분이었다. 여전히 수상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다정하고 친절한 선배는 생애 처음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주인 씨?”
그런데 백무영 선배가 두 번이나 부르는데도 대답이 없는 놈의 얼굴을 살피니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못 들을 걸 들어버린 사람처럼.